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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트남
심진규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평점 :
묻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전쟁의 광기가 눈을 멀게 했던 것일까. 그들도 자상한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었거나, 꼬물꼬물 귀여운 아기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장도 아닌 마을에서 어머니 같은 노인들을, 자식 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무참히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우는 죽어가고,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적들(베트콩)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전과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 작전과 명령 자체에 문제가 있고, 필요 이상의 잔인함을 발휘한 개인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병사 개인으로서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고통이 그곳에 있었으며 아직도 남아 있다.
"무서워서 그랬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 무서웠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총을 쐈어. 죽을까 봐 무서웠고, 내가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게 무서웠어."
할아버지는 손자 도현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책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평생을 미루어왔던 사죄를 하러 손자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도현이가 그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의 회상일거라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판타지였다. 주인공을 현장에 갖다 놓는 방법이기 때문에 또래의 독자가 현장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가장 좋은 서사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왠지 그 판타지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었다. 공항 활주로에서, 쌀국수집에서 도현이 눈에만 띄는 티엔의 환영은 판타지로 이끄는 복선일 텐데도 왠지 뜬금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어색함이 내게는 약간 옥의 티로 작용해서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전체 내용에 작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들추기 두려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동화라는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도현이가 판타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50년 전 과거의 현장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곳. 거기에서 만난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다행히 좋은 분이었다. 전쟁고아가 된 티엔을 최대한 보살펴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 또한 한국군의 만행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고 티엔을 끝까지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평생 그 마음의 짐을 혼자서만 지고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 티엔을 찾으려 한다. 한국군이던 자신을 삼촌이라 따르던 아이, 하지만 한국군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아이....
우여곡절끝에 만난 티엔은 할아버지와 다름없어보일 정도로 늙은 모습이었다. 그는 호아쓰(peace)꽃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추모비(한국군에 대한 증오비) 주변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심고 가꾸며 한국이 진정한 사과를 하리라 믿어왔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찾아 애쓴다.
우리도 전쟁의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남아있다. 이분들이 온전한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 적 있는데 관람 동선 마지막에 베트남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실상과 사죄의 내용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과 같은 생각에서 그런 전시 구성을 한 것이 아닐까. 마땅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이다. 인간의 악마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곳이 전쟁터일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땅에, 그리고 지구상에 전쟁의 불씨를 없애는 일이라면 인간으로서 힘을 다해 동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거의 가해를 전쟁이어서 라는 이유로 얼버무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 태도는 이 책의 할아버지가 잘 보여주시고 있다. 평상시에 손자보다도 철부지 같았던 할아버지였기에 더 실감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시기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