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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이 알렙에게 ㅣ 환상책방 9
최영희 지음, PJ.KIM 그림 / 해와나무 / 2018년 1월
평점 :
SF는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200쪽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한참 걸렸다. (피곤해서 그런 탓도 있음) SF를 많이 안읽어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고도 상당히 잘 짜여진 작품인 것 같다. 지구의 멸망, 새로 정착한 세계, 그 세계의 모순과 음모, 해결 등 장대한 이야기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속에 잘 들어있고 작가의 메세지도 묵직하다.
여름방학 때 최영희 님의 <인간만 골라골라풀>을 읽고 오호~ 했더니 여러 분들이 우리나라 SF계의 주목받는 작가라고 추천해 주셔서 마침 신간이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모든 작품이 고뇌의 결과물로 나오겠지만 특히 SF는 과학적 지식도 갖추어야 하고 상상력도 뛰어나야 하며 허무맹랑하되 허무맹랑해선 안되는, 조건이 까다로운 장르라서 쓰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의 말' 맨 끝에 고인이 된 스승님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학소설가가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라고 하신 걸 보니 앞으로도 작품이 계속 나오겠다. 일단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설정한 미래는 이렇다.
1. 지구멸망은 핵무기 : 지구는 핵무기로 인해 멸망했다. 생태계가 끝장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생존할 가능성이 없어 지구를 탈출했다.
2. 다음 세계의 지배자는 인공지능 : 생존자들은 테라 행성에서 마마돔을 짓고 그 안에서 최대한 환경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지배자는 마마. 그는 인공지능이다.
3. 그들이 대를 잇는 방식은 인간복제 : 마마돔은 정확히 200명의 인구로 유지되며 100세를 채우면 그의 유전자를 배양한 새로운 인간으로 교체된다. 사고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마마는 이 세계를 존속할 모든 정보와 기술을 지닌 존재다. 그는 마마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가 주는 정보 외엔 알 수 없다. 마마돔의 바깥 세계에 대하여 다른 사실을 눈치챈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고를 위장한 죽음에 이르고, 그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들은 피할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주인공 소녀 이름 알렙이나 마마돔 밖의 생명체 이름 룩스 등의 작명에도 작가의 심사숙고가 느껴진다. 책 전체에 작가가 담고자 한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내용이 허술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알렙과 알렙이 만나면 빛이 비치리라.
그날이 오면 세상은 지혜를 되찾으리라."
수수께끼 같은 약속의 노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 속에 작가는 지구를 지킬 지혜를 담아놓기도 했다.
이 책은 절대악에 맞서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지키는 영웅적 이야기는 아니다. 극적인 대결은 없지만 뭔가 희망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난다. 지금의 지구에도 이만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인가? 작가의 다음 책도 꼭 읽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