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의 독수리 - 히틀러를 쏘지 않은 병사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45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보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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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모퍼고는 10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영국의 국민작가라는데 우리나라에는 일부만 번역되어 나와있다. 대부분 판매지수도 그리 높지 않다. 그중 높은 책은 <켄즈케 왕국> 정도? 나도 그 책을 통해 마이클 모퍼고를 처음 접했다. 10여년 전 린드그렌을 읽으며 어린시절 독서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켄즈케 왕국은 처음 읽은 책이었지만 묘하게 독서의 추억을 자극했다. 그리고 동화는 대상연령이 어릴 뿐 결코 수준 낮은 장르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다. 내 나름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책인 셈이다.

마이클 모퍼고는 주로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쓴다.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에는 거의 전쟁이 나온다. <켄즈케 왕국>에서 무인도에 고립되어 혼자 살고 있던 켄즈케 씨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일본인이었고, <모차르트를 위한 질문>에서 대 바이올리니스트 파울로 레비가 간직한 비밀도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도 2차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 당시 독일인 가족이 겪는 이야기다. 그런가하면 <연들이 날고 있어>에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집으로>는 탈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걸친 다소 긴 기간을 다루고 있다. 1차 대전에 참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혁혁한 공을 세운 영국 군인 '빌리 바이런'씨에 대한 이야기다.

배경은 2차 대전이 한창인 영국. 바니와 엄마는 폭격으로 집을 잃고 친척집이 있는 시골로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텅 빈 기차 칸에 바니 모자와 한 중년남자만 있다. 폭격을 피해 터널 속에 갇힌 깜깜한 기차 안에서, 중년 남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차 대전때 최선을 다해 싸웠던 빌리의 이야기를. 그는 전투에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아주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 남은 독일군 병사를 살려준 것이다. 쏠 수 있었고 그는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무기만 내려놓고 가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후 무시무시한 반전이 일어났다. 극장의 뉴스영화에서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독일총통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인생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돌프 히틀러. 그자는 바로 그옛날 자신이 살려보낸 독일 병사였던 것이다.

그는 이 일을 자신이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암살 계획을 세우고 접근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일까지 고백했다. 바니 모자가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고, 이모집에 도착한 그들은 빌리 씨가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빌리 바이런의 이야기는 '헨리 텐디' 라는 실존인물의 실화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가 살려준 병사가 히틀러다 아니다 논란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100% 픽션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그 딜레마이다. 그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무척 불행했다. 개인 차원이 아닌 세계적인 불행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그의 행위는 옳지 못했는가?

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망설이지 않고 쏠 것이라 말하며 과거의 선택을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그 상태에서 인간의 최선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서술했으며 어떤 결론도 내려주지 않았다. 어찌보면 흥미있는 일화를 동화로 각색한 것에 그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가 이 실화를 다시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이 이야기 속에서 많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생명, 선택, 책임..... 아, 역시 마이클 모퍼고의 책은 무겁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읽혀보질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사실은 내가 어려워 엄두가 안 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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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하기 게임 일공일삼 6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이원경 옮김 / 비룡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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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신 앤드류 클레먼츠 님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내게 신이 주신 이야기 주머니가 있다면 이런 멋있는 글을 쓰고 싶다. <프린들 주세요>도 대단했는데 이 책도 못지않게 짜릿하다. 이 작가의 책으로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성적표>라는 책이었다. 다음으로는 10년 전에 읽었던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 ㄱㅈㅌ 교육감이 취임 일성으로 "미안하지만, 초등학생들도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었던 즈음이었다. 그 책을 읽고 "미안하다고? 미안한 짓을 왜 해!!" 하면서 분노의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해, 일제고사 거부를 허용한 담임들이 교사로서의 사형선고를 받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건도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촛불을 들며 mb정권의 먹구름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해.ㅠ)

이와같이 앤드류 클레먼츠는 작품마다 참 멋있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다. 어려운 교육학 책을 읽기에 독서력이 딸린다면 그냥 이분의 동화를 읽자!! (나만 해당되나 ㅎㅎ)

레이크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은 역대 유례없는 수다쟁이에 고래고래들이었다. 그리고 이또래의 특징대로 남녀 대결의 성향도 강했다. (이부분 우리반 아이들이 매우 공감할거라 예상한다. 평소 경기에서 승부욕이 강하지 않던 우리반 아이들이 남녀로 대결할 때 눈이 뒤집히도록 광분하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란 적 있다ㅋ) 이들은 서로를 수다쟁이라 비난하다가 시합을 벌이게 된다. 바로 말 안하기 게임!

이 책은 이 게임이 진행되는 열흘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게임의 규칙'을 수립했고 그중엔 "어른들께는 어쩔수 없이 대답하되 3단어 이내로 한다."와 같은 규정도 있다. 처음엔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조금 지나자 선생님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수업진행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선생님들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선생님들마다 반응이 다양한 것도 재미있었다. 이 상황에 분노하는 선생님, 즐기는 선생님, 이 현상을 연구하려 부지런히 기록하는 선생님.... 그냥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중단하라 명한다. 이후 자신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중단하지 않는 모습을 본 교장선생님은 순간 이성을 잃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마는데.... 이부분에서 나도 뜨끔했다. 절대 보여서는 안되는 모습이다. 다행히 교장선생님은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사도 실수할 수 있는데 빨리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스타일을 덜 구기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언어의 정선' 이다. 아이들은 수업중 세 낱말로 말해야 했기에 적절한 낱말을 찾기 위해 고도의 두뇌활동을 해야 했으며 평상시에 얼마나 필요이상의 말들을 해왔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의사소통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으며 언어의 쓰레기를 버리고 말을 줄여야 할 필요가 인간 대부분에게 있다. (말하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도 가만보면 쓸데없는 소리를 퍽 많이 한다ㅠ) 유난히 시끄럽고 말이 많은 학급을 맡을 때가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모두가 '남 얘기'다. 그것도 아님 말고 식의 근거 없는. 그로 인한 생활지도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본성대로 떠드는 것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의 절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른이 가장 그렇고, 고학년 정도라면 절제를 시작할 때라고 본다. 저학년도 조금은 필요하고. 이 게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던 이 말은 일리가 있다.
"간디는 수년간 매주에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마음에 질서가 생긴다고 믿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마음의 질서'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조용한 순간은 있어야 한다. 시종일관 시장바닥이라면 아이들은 차분히 생각할 힘을 잃게 된다. 서로 헐뜯기 여념이 없었던 초기의 아이들이 시장바닥 상태였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박수를 보내는 후기의 모습은 조용한 성찰을 거친 상태다. 게임을 통해 이렇게 멋진 변화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이 설득은 전혀 꼰대적이지도 설교적이지도 않으며 반전과 유머를 통해서 전해지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한편으로 내가 이 책에 환호를 보내는 것이 시끄러운 것을 혐오하는 나의 개인적 성향과 규칙과 질서를 중시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적 신분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아이들도 나만큼 공감할까? 이제 다음주부터 우리반 아이들이 돌려읽을 책에 이 책이 포함되어 있으니 한번 반응을 살펴봐야지. 내가 한 생각을 아이들이 할 가능성은 적지만, 적어도 재밌게는 읽으리라 생각한다. 교사인 내가 환호한다고 해서 설교책인 것은 아니고,ㅎ 흥미진진한 요소가 가득 있으니. 나와 같은 각도에서 공감하진 않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공감하며 읽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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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트남
심진규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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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전쟁의 광기가 눈을 멀게 했던 것일까. 그들도 자상한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었거나, 꼬물꼬물 귀여운 아기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장도 아닌 마을에서 어머니 같은 노인들을, 자식 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무참히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우는 죽어가고,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적들(베트콩)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전과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 작전과 명령 자체에 문제가 있고, 필요 이상의 잔인함을 발휘한 개인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병사 개인으로서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고통이 그곳에 있었으며 아직도 남아 있다.

"무서워서 그랬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 무서웠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총을 쐈어. 죽을까 봐 무서웠고, 내가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게 무서웠어."
할아버지는 손자 도현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책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평생을 미루어왔던 사죄를 하러 손자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도현이가 그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의 회상일거라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판타지였다. 주인공을 현장에 갖다 놓는 방법이기 때문에 또래의 독자가 현장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가장 좋은 서사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왠지 그 판타지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었다. 공항 활주로에서, 쌀국수집에서 도현이 눈에만 띄는 티엔의 환영은 판타지로 이끄는 복선일 텐데도 왠지 뜬금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어색함이 내게는 약간 옥의 티로 작용해서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전체 내용에 작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들추기 두려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동화라는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도현이가 판타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50년 전 과거의 현장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곳. 거기에서 만난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다행히 좋은 분이었다. 전쟁고아가 된 티엔을 최대한 보살펴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 또한 한국군의 만행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고 티엔을 끝까지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평생 그 마음의 짐을 혼자서만 지고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 티엔을 찾으려 한다. 한국군이던 자신을 삼촌이라 따르던 아이, 하지만 한국군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아이....

우여곡절끝에 만난 티엔은 할아버지와 다름없어보일 정도로 늙은 모습이었다. 그는 호아쓰(peace)꽃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추모비(한국군에 대한 증오비) 주변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심고 가꾸며 한국이 진정한 사과를 하리라 믿어왔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찾아 애쓴다.

우리도 전쟁의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남아있다. 이분들이 온전한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 적 있는데 관람 동선 마지막에 베트남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실상과 사죄의 내용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과 같은 생각에서 그런 전시 구성을 한 것이 아닐까. 마땅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이다. 인간의 악마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곳이 전쟁터일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땅에, 그리고 지구상에 전쟁의 불씨를 없애는 일이라면 인간으로서 힘을 다해 동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거의 가해를 전쟁이어서 라는 이유로 얼버무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 태도는 이 책의 할아버지가 잘 보여주시고 있다. 평상시에 손자보다도 철부지 같았던 할아버지였기에 더 실감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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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신부 문지아이들 154
김태호 지음, 정현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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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혹은 거리끼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면 "그럼 바퀴벌레도 소중하냐?", "파리도 소중하냐?" 이런 반박이 나오곤 하는데, 진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아하하하하하.... 풀벌레가 아닌 집곤충들을 극혐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동의하긴 어렵다. 근데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재밌다. 어쩜 이렇게 능청스럽게 진지하며, 심각한듯 우스울 수가!!^^

야무지고 사려깊은 파리신부와 인내심이 부족하고 뭔가 얼뗘 보이는 파리신랑은 함께 비행중이다. 먹이를 찾지 못해 고생을 겪던 중 천국과도 같은 곳에 당도했다.
"신이시여, 힘없고 불쌍한 우릴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자마자 발견한 그곳은 사람의 집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남자아이의 방. 거기엔 이미 많은 파리들이 아무 걱정없이 기거하고 있었으며 남자아이를 '신'이라고 불렀다. 그 신의 캐릭터인즉, 간식을 아무데서나 먹고, 잘 흘리고, 아무데나 버리며, 치우지 않고, 잘 씻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파리들은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이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그 만찬의 묘사가 정말이지 리얼하다. 우엑~~~~

그러나 그곳에 다리가 여섯개밖에 안남은 늙은 거미가 함께 살고 있었으니.... 그 거미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빨간 나무는 시작이고
거꾸로 비는 끝이다.
거꾸로 비가 내리면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라."

그것은 일종의 재앙 예언 같은 것이었지만 누구도 미리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스포에 개의치 않고 리뷰를 쓴다지만 이런 것까지 말하진 말자^^;;) 동료들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파리신부는 그 '신'에게 할 수 있는 대로 복수를 하고 그곳을 떠나려 한다. '신'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방을 치우기 시작하고.... 그러나 그곳을 떠나는 파리부부에게 더욱 화려한 천국이 펼쳐지는데 그곳은.....ㅋㅋㅋ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생명을 사랑하자"의 효과가 클까? "으헉, 방 좀 치우자." 의 효과가 클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내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파리의 사랑을 받는 건 사양하겠어. 뽀뽀도 물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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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이 알렙에게 환상책방 9
최영희 지음, PJ.KIM 그림 / 해와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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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200쪽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한참 걸렸다. (피곤해서 그런 탓도 있음) SF를 많이 안읽어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고도 상당히 잘 짜여진 작품인 것 같다. 지구의 멸망, 새로 정착한 세계, 그 세계의 모순과 음모, 해결 등 장대한 이야기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속에 잘 들어있고 작가의 메세지도 묵직하다.

여름방학 때 최영희 님의 <인간만 골라골라풀>을 읽고 오호~ 했더니 여러 분들이 우리나라 SF계의 주목받는 작가라고 추천해 주셔서 마침 신간이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모든 작품이 고뇌의 결과물로 나오겠지만 특히 SF는 과학적 지식도 갖추어야 하고 상상력도 뛰어나야 하며 허무맹랑하되 허무맹랑해선 안되는, 조건이 까다로운 장르라서 쓰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의 말' 맨 끝에 고인이 된 스승님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학소설가가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라고 하신 걸 보니 앞으로도 작품이 계속 나오겠다. 일단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설정한 미래는 이렇다.

1. 지구멸망은 핵무기 : 지구는 핵무기로 인해 멸망했다. 생태계가 끝장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생존할 가능성이 없어 지구를 탈출했다.

2. 다음 세계의 지배자는 인공지능 : 생존자들은 테라 행성에서 마마돔을 짓고 그 안에서 최대한 환경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지배자는 마마. 그는 인공지능이다.

3. 그들이 대를 잇는 방식은 인간복제 : 마마돔은 정확히 200명의 인구로 유지되며 100세를 채우면 그의 유전자를 배양한 새로운 인간으로 교체된다. 사고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마마는 이 세계를 존속할 모든 정보와 기술을 지닌 존재다. 그는 마마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가 주는 정보 외엔 알 수 없다. 마마돔의 바깥 세계에 대하여 다른 사실을 눈치챈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고를 위장한 죽음에 이르고, 그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들은 피할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주인공 소녀 이름 알렙이나 마마돔 밖의 생명체 이름 룩스 등의 작명에도 작가의 심사숙고가 느껴진다. 책 전체에 작가가 담고자 한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내용이 허술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알렙과 알렙이 만나면 빛이 비치리라.
그날이 오면 세상은 지혜를 되찾으리라."
수수께끼 같은 약속의 노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 속에 작가는 지구를 지킬 지혜를 담아놓기도 했다.

이 책은 절대악에 맞서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지키는 영웅적 이야기는 아니다. 극적인 대결은 없지만 뭔가 희망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난다. 지금의 지구에도 이만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인가? 작가의 다음 책도 꼭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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