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에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30
전이수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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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이수 작가의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한 것이 재작년이었다. 그때 가르치던 아이들이 4학년, 2008년생들이었다. 전이수 작가도 2008년생.
“얘들아, 이 작가가 너희들이랑 같은 나이야. 지금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 다닌다면 너희들과 같은 4학년인 거지.”
그런데 올해 또 2008년생들을 맡았다. 올해는 6학년. 난 2008년생들과 인연이 많네. 그러고보니 전이수 작가도 이제 중학생이 되는구나.(나이로)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짤막하지만, 그래도 그 깊이 면에서 우리반 녀석들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온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피드백을 하다가 지친 날, 이 책을 보는 게 아니었다.ㅎㅎㅎ 니가 잘못한 거야! 그리고 이 작가는 무려 ‘영재발굴단’에 나왔던 영재라고. 평범한 아이들을 영재와 비교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마라.^^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나랑 비교해도 그렇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던가? 하면 할수록 마음이 들볶이고 심신이 고단해지는 이런 생각들을, 나는 외면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보면 나 또한 내 아들보다도 어린 이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기 힘든 것이다.

작가의 전작 중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고 아이들에게 소개했던 책은 『새로운 가족』이라는 그림책이었다. 담긴 메시지도 좋았고, 그 이야기가 장애를 가진 동생을 입양한 자신의 가족 이야기라는 점도 감동이었고, 그림도 상징도 다 감탄할 만했다. 그 책이 서사가 담긴 그림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림 에세이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다.

일단 그림 면에서, 작가는 성큼성큼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그림은 잘 볼 줄 모른다. 다만 작가가 아주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얼핏 어디서 본듯하다 싶은 작품도 있지만 배우고 시도하는 과정에 당연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에서도, 기법에서도, 색감에서도 아주 다양한 느낌들이 난다. 아직 고정되지 않은 이런 다양한 시도를 거쳐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갖게 될 것 같고, 자신의 색깔을 갖게 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길 독자로서 바란다.

글에서는 문득문득 어린아이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성숙함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물론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경험의 벽을 넘을 수는 없겠지만, 이 아이는 어쩌면 어른인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의 경험’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부모의 지지와 조력이 가장 큰 힘이 되었겠고, 스스로의 자기관리 능력도 대단해 보인다. 코로나 원격수업으로 폐인이 되어가는 몇몇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래 지속된 홈스쿨링에서도 이렇게 발전하고 결과물을 생산해 나가는 일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건, 예술가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일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예술가의 힘.
그리고 그 엄마의 위력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식에게 자유로운 마당을 펼쳐주고 존중하고 조력하며 자식과 대화를 나누고 묻고 답하며 생각을 돕는 일. 내면의 힘이 어지간해선 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부모와 자녀의 영재성의 콜라보가 아닐까 싶다.

앞부분의 내용이 서정적, 사색적 내용이라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소신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플라스틱 문제, 기아 문제, 노키즈 존에 대한 경험과 생각까지 담겨 있었다. 노키즈 존을 일부 납득하는 나는 좀 뜨끔했다.^^;;; 마지막 세 편의 글이 엄마에 대한 글이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고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놀라웠다. 정말 이 엄마는 아이들의 기둥이 되어 주었구나. 바깥에서의 어떤 성취보다 더 귀한 신뢰와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밤낮없이 바쁜 커리어우먼의 역할보다 더 많은 것을 했다고 본다. 나는 이렇게 살진 않았지. 무엇보다도 이렇게 단단할 기둥이 될 수가 없어서......

유명해지고 남들의 주목을 받을수록 이 가족의 결정 반경이 좁아질까 봐 조금은 걱정이 된다. (쓸데없는 오지랖ㅋ) 그냥 이들이 시선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지내다 예술적 샘물이 가득 고였을 때 그걸 흘려보내기만 했으면 좋겠다. 평범해도, 특별해도, 대단해도, 별볼일 없어도 모두 귀한 인생이다. 그런 눈으로 이 어린 예술가의 작품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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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에서 왔니
김현경 지음 / M&K(엠앤케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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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여름에 어린이용 미술해설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을 읽었다. 작가분이 소설가인데 '심리소설'을 쓰셨다는 소개에 바짝 호기심이 생겼다. 그중 애니어그램을 다룬 '실용심리학소설'이라는 이 책이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 한가한 연휴가 되어서야 읽어봤네.^^

내가 대단하다 생각하고, 흉내는 못내지만 좋아하는 후배교사들 중에 애니어그램을 깊이 공부하고 연수도 하는 샘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몇가지는 주워들었고 간단한 연수에 참여해 자가검사도 해보았다. 어느정도는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 나를 발전시킨다든가 학급운영이나 상담에 이용한다든가 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정도는 아니기도 하다. 어쨌든 궁금증은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나의 근본이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도 생각이 왔다갔다했다.

실용심리학을 다루었다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등장인물과 서사가 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며 주변 곁가지는 거의 없다. 그래도 분량은 400쪽을 훌쩍 넘는다. 한가족이라지만 7명이나 되거든. 거기에 자주 찾아오는 이모와 장남의 여자친구. 이렇게 해서 주인공은 9명이다. 느낌이 오시는가? 애니어그램에는 9개의 유형이 있다.

그중 5유형인 차남 나영수가 이 책의 화자다. 1유형인 원칙파 잔소리꾼 아빠, 7유형인 자유로운 영혼 엄마 슬하의 4남매, 그리고 동거인인 삼촌이 한집에 살고있다. 이들 가정엔 끊임없이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이에 대처하는 각 구성원들의 태도나 언행에서 그들의 성격을 추론해볼 수 있고, 실제로 내용중에 애니어그램과 연결을 시켜준다. (화자인 영수가 애니어그램에 관심이 생겨 연구하게 됐다는 설정)

좁은 집에 많은 인원이 복닥대며 서로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가족을 보면서, 아우 정말 싫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야 저게 가족이지 싶기도 하다. 물론 신경쓰는거 싫어하는 나는 절대 이집의 일원이고 싶지 않지만, 지지고 볶고 갈등하고 하면서도 생각을 키워나가고 끊임없이 조정해나가는 가족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다. 애니어그램으로 기획된 서사이기에 그걸 빼면 좀 헐거워지긴 하겠지만, 가족의 이야기만으로도 읽기에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옛날 연수때 검사 결과로 볼때 나는 1,9유형이 똑같이 높고 다음으로는 6유형이 높았다. 7유형이 가장 낮고 3,8유형도 낮다. 나머지(2,4,5)는 중간쯤이다. 이건 맞는 것 같다.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오락(유희)이다. 끝까지 남는 건 일(월급을 받거나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이걸 보면 7유형에서 가장 멀고 1유형에 가깝다. 그런데 그에 버금가게 놓칠 수 없는 건 쉼(휴식)이다. 이걸 보면 9유형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남 앞에 나서거나 리더가 되거나 유명해지거나 하는 일에는 그닥 관심이 없거나 부담스러워한다. 그걸 보면 3,8유형과 거리가 먼 것도 맞는 것 같다. 윤리, 도덕규범에 강박이 있고 '옳아야 한다'가 강한 것은 1유형의 특징이지만 경쟁을 꺼리고 피하는 것은 9유형의 특징이다. 그런데 '안전주의자'라는 표현을 보면 6유형 같기도 하다. 불안이 내면의 문제라는 점도. 1유형은 분노인데, 내 내면에 분노가 문제인가? 불안이 문제인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불안인 것 같다. 그러면 6유형인가?

이 책을 읽어보니 더 헷갈린다. 그런데 이책의 인물들로만 따져본다면 9유형인 삼촌은 나와 매우 거리가 멀다. 나는 직업을 자주 옮기고 자주 백수도 되는 생활을 불안해서 감당할 수 없을거다. 내가 편히 휴식하는 건 일한 후에 공인된 휴식이기 때문이다. 애교쟁이 6유형 막내딸과도 많이 다르다. 독재적 1유형 아빠와 가장 가깝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아빠만큼 세지 못해서 드러나는 행동은 같지 않지만.

영수가 가족들을 관찰하고 파악해가며 상황에 따른 구성원들의 대처를 이해하고 예측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영수 또한 전문가가 아닌 입문자인 바, 마지막에 가장 크게 터진 녀석이 바로!!ㅎㅎ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데, 또 각각 본가의 풍파를 안고 결혼한 가정이니 그 바람이 오죽할까. (그러니까 500쪽 가까이나 되는 책이 됐지.ㅎ) 절대 이 가족의 일원은 되고 싶지 않고 이중에 본받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이 가족의 삶을 높이 사고 싶다. 적어도 회피하지는 않아서. 아이구, 저렇게 깨져서 어째~ 하는 순간이 이들에겐 새로운 성찰과 조정의 시작이었다. 요즘에 이런 가정은 흔치 않다.

애니어그램 면에서 보면 나의 경우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진 못했는데, 아예 처음 접하는 경우라면 꽤 많은 걸 알게 될거라고 본다. 나의 경우도 책을 읽으며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나 데굴데굴 머리를 굴려보아서 좋았다. 결론은 못내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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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은 푸른숲 역사 동화 13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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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의 새 장을 열었던 '푸른숲역사동화'의 최근작. 발간됐을 때 화제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몇달이 지나서야 읽어봤다. 내용이 무거워보이고 읽는데 오래걸릴 것 같은 느낌은 빗나갔다. 앉은자리에서 정신 들어보니 어느새 책의 후반부였다. "안돼~~ 왜 벌써 끝나~~"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삯바느질을 하는 엄마의 11살 아들 수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가 근근히 얻어다주는 밥만 먹고 지내던 작고 연약한 수길이 어느날부터 산에서 나뭇짐을 해나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걸까. 아이는 "팔자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다른 말로는 "암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도 했고.

그 시기는 봉건제도가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조선 말기였고, 일제가 침입해 수탈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엔 암흑이 있다. 개인의 암흑도 시대의 암흑도 있다. 노력해서 그 암흑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지금, 여기는 어떠한가?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분명히 세상은 좋아졌고, 편해졌고, 생명의 위협과 굶주림은 줄어들었지만 암흑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의 배경은 역사상 그 암흑이 가장 깊었던 시대라고 생각한다.

신분제도가 엄연히 남아있어 태생의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 수길을 절망케 했지만, 그래도 수길이 운명을 개척하는데는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조력이 있었다. 그중에는 장터의 칼갈이 아저씨도, 마을 최고의 부자 양반과 그의 손자도, 보잘것없는 나뭇짐을 받고 글을 가르쳐준 선비도 있었다. 이들은 때로는 각성으로, 때로는 교육으로, 때로는 입에 풀칠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소년의 앞길을 비춰주었다.

조력이 없다면 혼자서 길을 밝히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떨쳐 일어나는 데는 스스로의 내면의 힘이 가장 크다. 소년의 경우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이어져온 내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무덤'(묘자리)인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함구하던 어머니가 결국 아들을 데리고 간 곳은 을사의병 때의 격전지였다. 무덤은 컸다. 전사자들이 한꺼번에 묻혔기 때문이다.ㅠ

역사동화지만 이 책에선 실존했던 역사인물이 그대로 등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완전한 허구라고 보이지도 않으며 어느정도 대입이 가능하다. 안부자 가문은 이회영 일가를 연상시키고, 결국 이 일가를 따라 만주행에 동참하는 수길은 신흥무관학교의 무명 병사를 떠올리게 한다. 수길의 첫 걸음이 이 책의 마지막장이다. 거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이 책은 꽉 채워져있고 한달음에 읽혔다.

어떤 시대든 사람들이 자기 삶을 선택하는 방향은 갖가지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후대가 보았을 때 귀하게 여겨지는 선택은 있는 법이다. 수길이 선택한 길, 그가 받아들인 '운명'이 그를 어떤 길로 몰고 갔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일찍 보낸 엄마가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아들까지 떠나보내던 그 새벽밥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내가 느끼기엔 치열한 전투나 피맺힌 수탈의 현장이 묘사된 이야기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지만 한 소년의 생각과 실행을 쫓아간 이 조용한 이야기도 그 못지 않게 울림이 큰 것 같다. 이 책을 아이들과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시대와 차원은 다르지만 또다른 의미에서 '암흑'일수도 있는 이 시대에, 수길처럼 자신의 운명을 찾아 전진하는 아이들이면 좋겠다. 나도 자신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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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휴먼어린이 고학년 문고 8
정연철 지음, 김진화 그림 / 휴먼어린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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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연휴, 보통 연휴도 아닌 성탄절 연휴인데도 마음이 밝지 않았다. 벌써 1년이 간거 실화인가? 집근처 작은 시네마 겸 까페에서 영화 한편 보고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커피 마시며 책읽다 오는 그 작은 취미 하나가 사치라고 1년내내 한번을 못가게 한 코로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 한해를 보내게 생겼구나. 연휴 첫날인 성탄절에 교회도 못가고 두문불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다행히 연휴 전날, 개점휴업 상태인 도서관을 그래도 꾸준히 활용하는 나를 위해 사서샘이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2학기 신청도서 왔어요. 한번 내려오세요."
정연철 선생님 책 2권을 골라왔다. 한권은 작년에, 한권은 올해 나온 책. 작년에 나온 책부터 읽어봤다. 세 편이 담긴 단편집이었다. 각 편은 단편 치고는 길었다.

첫편부터 몰아쳐오는 느낌이 있었다. 이게 정연철 선생님 작품의 장점인 것 같다. 작위적인 설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실감? 지어낸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어느 이웃의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 상황도 그렇고 대사도 그렇다. 리얼체(?)라고 하겠다.^^

세 편에서 공통된 키워드를 끌어올린다면 '역지사지'라고 하고 싶다. 평범한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과 다르지 않은 나 또한 역지사지를 거쳐야만 비로소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해진다. 처음부터 안다면 좋겠지만 그건 훌륭한 사람인 경우고, 평범하고 좀 부족한 사람들은 이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저팔계 가족]에서 나현이는 폐렴으로 입원했다. 소아병동 8인실의 바글바글함 속에는 온갖 진상들이 있었다. (그 진상들의 묘사가 또 리얼) 거기서 나현이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죄책감도 없이 괴롭히던 그 아이를. 병실에서 최고 진상이라 경멸하던 '저팔계 가족'의 저팔계마저도 나현이가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줬다. '그동안 왜 그랬을까. 도대체. 난.' 그 병실의 한 병상에는 누워만 있는 예진이가 있었고 움직이지 못하는 딸 옆에 24시간 붙어있는 그 엄마의 모습은 조용히 슬프기만 하다. 퇴원을 앞두고 예진이를 위해 두손모아 기도하는 나현이의 모습은 작가가 그려내지 않은 나현이의 다음 행보를 상상하게 한다. 세상의 많은 예진이와 예진이 엄마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등장인물들이 많은만큼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이야기였다.

[목격자를 찾습니다]의 발단은 태민이가 얻은 자유롭고 행복한 하루다. 시골 친척 결혼식에 따라가지 않은 태민이는 내맘대로 하루를 손에 넣게 되었는데... 그 하루의 끝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되고... 그건 악몽으로 계속 태민이를 괴롭힌다. 목격자! 두려움으로 그 장면을 외면했지만 며칠 후 태민이에게도 목격자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미치고 팔딱 뛸 상황에 필요한 건, 증거와 그 증거 확인에 협조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내 말을 무조건 믿어주는 친구가 있으면 금상첨화.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이제 태민이의 선택은 정해진 것이다.

표제작인 [사춘기 엄마]에서 모녀는 만날 싸운다. 여기서 모녀란 한영이의 엄마와 그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다. 둘다 딱하다. 여기서 팩폭을 날리며 역지사지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한영이. 그런데 난 좀 놀랐다. 지나가는 말이긴 했지만 한영이가 엄마 결혼 전 사고쳐서 낳은 아이란 점. (고학년쯤이면 이정도 내용은 괜찮으려나?) 그니까 지금 아빠는 남동생한테만 친아빠인 거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인물이 있다면 바로 아빠였다. 애딸린 미혼모랑 결혼해, 오갈데 없는 장모님 받아줘, 두사람 신경전 속에서 눈치껏 행동해, 기분 풀어줘, 친딸 아닌 한영이한테도 차별 안해.... 이런 남자가 있다고? 요즘 페북 보면서 중간중간 딸려나오는 '네이트판'을 몇 개 봤더니 이런 남자는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그냥 세상에 없을 것 같다.^^;;;;;;;; 사춘기여야 할 딸(손녀)한테 팩폭 맞고 수그러진 사춘기 엄마와 사춘기 할머니가 이제 딸의 사춘기를 받아줄 여유가 생긴다면 좋겠지. 다 사느라고 그렇다. 사는게 다 그렇기도 하고. 딸래미가 저렇게 잘 큰것만 해도 큰 걱정 하나는 던 것이다. 돈이야 뭐 원래 아껴가며 사는거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작품은 첫번째 이야기다. 분량에 비해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했는데, 그들의 스치듯 지나간 감정들도 가깝게 다가왔다. 내가 가장 절절하게 느낀 건 식물인간이 된 딸을 간병하는 예진이 엄마의 마음이었고, 아이들은 나현이의 후회 쪽에 집중해주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완벽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면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긴 했으면 좋겠다. 이것만 알아도 중간은 간다. 이 책은 우리 안에 부끄러움을 이끌어내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부끄러움을 드러낼 자신감을 주는 책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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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주 그리고 산신령 그래 책이야 34
이혜령 지음, 신민재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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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를 지으신 이혜령 작가님의 책을 두 권 몰아서 더 읽었다. 이 책과 단편집 한 권. <혹등고래...>도 그랬는데, 주로 남자아이가 주인공이고 그들 사이의 갈등이나 우정을 많이 다뤘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여학생 문제를 다룬 동화들이 훨씬 많은데 이렇게 남학생들 이야기가 재미있게 쓰여진 것을 읽으니 반가웠다. (물론 여학생 이야기는 여학생만, 남학생 이야기는 남학생만 읽는 건 아니다. 그런데 책과 담쌓은 아이들 중에 남학생이 더 많고, 그 아이들에게 여학생 소재의 책을 건네면 좀 뜨악해 하는 건 사실이다.^^;;;;)

이 책의 연령대는 <혹등고래...>보다 한단계 낮아서 4학년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주인공들도 4학년) 남학생 주인공 두 명이 경쟁심과 열등감에 갈등을 겪다 해결된다는 큰 구성은 혹등고래와 비슷한 점이다. 다만 이 책에는 '산신령'이라는 판타지 요소가 있어서 좀더 귀엽고 편안한 느낌이 난다.

태양이는 우주를 '굴러온 돌'이라 규정했다. 여기서 짐작할수 있다시피 우주는 전학생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온 친구다. 1학년 때 호주로 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그때만 해도 우주는 적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온 우주는? 키도 크지, 잘생겼지, 게다가 태양이의 자존심인 축구마저도! 더 잘해서 태양이의 자리를 위협하는 거다. 거기다 매너까지 있어 인기를 한몸에. 누가봐도 열등감과 시기심에 폭발할 상황 아닌가?^^

드러낼 순 없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빠' 때문이다. (이부분 혹등고래와도 겹친다) 우주는 아빠와 등산도 하고 공원에서 캐치볼도 하는데, 태양이네 아빠는 집을 나갔고 연락도 잘 받지 않는다. 상황은 태양이의 미움이 커져만 가도록 계속 흘러간다.

산신령의 등장. 아빠 없이 혼자서 산에 갔던 날 태양이는 산신령을 만났다. 재미있는 발상은 산신령이 흰수염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점. 오히려 어린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빠 없이 바쁜 엄마의 눈을 속이고 산신령과 한방에서 지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산신령은 태양이를 돕겠다고 한다. 뭘 어떻게? 그리하여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ㅎㅎ

어수룩한 산신령이 등장하여 이야기는 혹등고래보다 훨씬 경쾌해졌지만, 아이 내면의 갈등은 그리 가볍지 않다. 첫째로 아빠의 부재. 남자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다고들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경우 극복을 돕는 일에 매진해야겠지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남은 경우 아빠들의 책임감과 문제의식을 돌아볼 필요는 있다. 아들은 아빠의 그늘에서 쉬고 아빠를 닮으며 자란다.

두번째로 자존감의 상실과 그 결과로 빠져드는 열등감, 시기심. 이것이 사람을 얼마나 못나게 만드는지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돌이킬 성찰의 힘이 있다면 그의 인생은 새 빛을 얻을지니.

우주 쪽으로 카메라를 돌려보자. 우주는 과연 완벽하고 멋지기만 할까? 우주라고 찔리면 아픈 곳이 없을까? 우주가 태양이의 주전 자리를 완벽히 꿰차고 스타로 등극할 기회에서 가짜붕대를 감고 그 기회를 차버린 그 마음은 뭘까? 완벽한 도덕성?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린 절대 왕따가 될 수 없어."
"둘을 어떻게 왕따시키냐. 둘이 놀면 되지. 그치, 태양아?"
이런 대사를 이끌어낸 스토리 능력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각자 보냈던 3년의 시간은 각자의 상처 속에 높은 담을 쌓기에 충분했지만, 그 담을 일단 무너뜨리자 이전보다 더 큰 우정이 찾아왔다. 아이들이어서 가능한 것일수도 있고,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다.

산신령 은달이의 역할은? 살짝 거들 뿐?ㅎㅎㅎ 독자에게는 더 큰 역할을 해줬다. 은달이가 있어 유쾌하게 지켜봤다는 것. '나, 우주, 그리고 산신령'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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