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에서 왔니
김현경 지음 / M&K(엠앤케이)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 여름에 어린이용 미술해설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을 읽었다. 작가분이 소설가인데 '심리소설'을 쓰셨다는 소개에 바짝 호기심이 생겼다. 그중 애니어그램을 다룬 '실용심리학소설'이라는 이 책이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 한가한 연휴가 되어서야 읽어봤네.^^

내가 대단하다 생각하고, 흉내는 못내지만 좋아하는 후배교사들 중에 애니어그램을 깊이 공부하고 연수도 하는 샘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몇가지는 주워들었고 간단한 연수에 참여해 자가검사도 해보았다. 어느정도는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 나를 발전시킨다든가 학급운영이나 상담에 이용한다든가 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정도는 아니기도 하다. 어쨌든 궁금증은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나의 근본이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도 생각이 왔다갔다했다.

실용심리학을 다루었다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등장인물과 서사가 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며 주변 곁가지는 거의 없다. 그래도 분량은 400쪽을 훌쩍 넘는다. 한가족이라지만 7명이나 되거든. 거기에 자주 찾아오는 이모와 장남의 여자친구. 이렇게 해서 주인공은 9명이다. 느낌이 오시는가? 애니어그램에는 9개의 유형이 있다.

그중 5유형인 차남 나영수가 이 책의 화자다. 1유형인 원칙파 잔소리꾼 아빠, 7유형인 자유로운 영혼 엄마 슬하의 4남매, 그리고 동거인인 삼촌이 한집에 살고있다. 이들 가정엔 끊임없이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이에 대처하는 각 구성원들의 태도나 언행에서 그들의 성격을 추론해볼 수 있고, 실제로 내용중에 애니어그램과 연결을 시켜준다. (화자인 영수가 애니어그램에 관심이 생겨 연구하게 됐다는 설정)

좁은 집에 많은 인원이 복닥대며 서로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가족을 보면서, 아우 정말 싫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야 저게 가족이지 싶기도 하다. 물론 신경쓰는거 싫어하는 나는 절대 이집의 일원이고 싶지 않지만, 지지고 볶고 갈등하고 하면서도 생각을 키워나가고 끊임없이 조정해나가는 가족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다. 애니어그램으로 기획된 서사이기에 그걸 빼면 좀 헐거워지긴 하겠지만, 가족의 이야기만으로도 읽기에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옛날 연수때 검사 결과로 볼때 나는 1,9유형이 똑같이 높고 다음으로는 6유형이 높았다. 7유형이 가장 낮고 3,8유형도 낮다. 나머지(2,4,5)는 중간쯤이다. 이건 맞는 것 같다.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오락(유희)이다. 끝까지 남는 건 일(월급을 받거나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이걸 보면 7유형에서 가장 멀고 1유형에 가깝다. 그런데 그에 버금가게 놓칠 수 없는 건 쉼(휴식)이다. 이걸 보면 9유형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남 앞에 나서거나 리더가 되거나 유명해지거나 하는 일에는 그닥 관심이 없거나 부담스러워한다. 그걸 보면 3,8유형과 거리가 먼 것도 맞는 것 같다. 윤리, 도덕규범에 강박이 있고 '옳아야 한다'가 강한 것은 1유형의 특징이지만 경쟁을 꺼리고 피하는 것은 9유형의 특징이다. 그런데 '안전주의자'라는 표현을 보면 6유형 같기도 하다. 불안이 내면의 문제라는 점도. 1유형은 분노인데, 내 내면에 분노가 문제인가? 불안이 문제인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불안인 것 같다. 그러면 6유형인가?

이 책을 읽어보니 더 헷갈린다. 그런데 이책의 인물들로만 따져본다면 9유형인 삼촌은 나와 매우 거리가 멀다. 나는 직업을 자주 옮기고 자주 백수도 되는 생활을 불안해서 감당할 수 없을거다. 내가 편히 휴식하는 건 일한 후에 공인된 휴식이기 때문이다. 애교쟁이 6유형 막내딸과도 많이 다르다. 독재적 1유형 아빠와 가장 가깝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아빠만큼 세지 못해서 드러나는 행동은 같지 않지만.

영수가 가족들을 관찰하고 파악해가며 상황에 따른 구성원들의 대처를 이해하고 예측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영수 또한 전문가가 아닌 입문자인 바, 마지막에 가장 크게 터진 녀석이 바로!!ㅎㅎ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데, 또 각각 본가의 풍파를 안고 결혼한 가정이니 그 바람이 오죽할까. (그러니까 500쪽 가까이나 되는 책이 됐지.ㅎ) 절대 이 가족의 일원은 되고 싶지 않고 이중에 본받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이 가족의 삶을 높이 사고 싶다. 적어도 회피하지는 않아서. 아이구, 저렇게 깨져서 어째~ 하는 순간이 이들에겐 새로운 성찰과 조정의 시작이었다. 요즘에 이런 가정은 흔치 않다.

애니어그램 면에서 보면 나의 경우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진 못했는데, 아예 처음 접하는 경우라면 꽤 많은 걸 알게 될거라고 본다. 나의 경우도 책을 읽으며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나 데굴데굴 머리를 굴려보아서 좋았다. 결론은 못내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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