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운명은 푸른숲 역사 동화 13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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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의 새 장을 열었던 '푸른숲역사동화'의 최근작. 발간됐을 때 화제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몇달이 지나서야 읽어봤다. 내용이 무거워보이고 읽는데 오래걸릴 것 같은 느낌은 빗나갔다. 앉은자리에서 정신 들어보니 어느새 책의 후반부였다. "안돼~~ 왜 벌써 끝나~~"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삯바느질을 하는 엄마의 11살 아들 수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가 근근히 얻어다주는 밥만 먹고 지내던 작고 연약한 수길이 어느날부터 산에서 나뭇짐을 해나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걸까. 아이는 "팔자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다른 말로는 "암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도 했고.

그 시기는 봉건제도가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조선 말기였고, 일제가 침입해 수탈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엔 암흑이 있다. 개인의 암흑도 시대의 암흑도 있다. 노력해서 그 암흑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지금, 여기는 어떠한가?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분명히 세상은 좋아졌고, 편해졌고, 생명의 위협과 굶주림은 줄어들었지만 암흑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의 배경은 역사상 그 암흑이 가장 깊었던 시대라고 생각한다.

신분제도가 엄연히 남아있어 태생의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 수길을 절망케 했지만, 그래도 수길이 운명을 개척하는데는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조력이 있었다. 그중에는 장터의 칼갈이 아저씨도, 마을 최고의 부자 양반과 그의 손자도, 보잘것없는 나뭇짐을 받고 글을 가르쳐준 선비도 있었다. 이들은 때로는 각성으로, 때로는 교육으로, 때로는 입에 풀칠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소년의 앞길을 비춰주었다.

조력이 없다면 혼자서 길을 밝히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떨쳐 일어나는 데는 스스로의 내면의 힘이 가장 크다. 소년의 경우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이어져온 내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무덤'(묘자리)인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함구하던 어머니가 결국 아들을 데리고 간 곳은 을사의병 때의 격전지였다. 무덤은 컸다. 전사자들이 한꺼번에 묻혔기 때문이다.ㅠ

역사동화지만 이 책에선 실존했던 역사인물이 그대로 등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완전한 허구라고 보이지도 않으며 어느정도 대입이 가능하다. 안부자 가문은 이회영 일가를 연상시키고, 결국 이 일가를 따라 만주행에 동참하는 수길은 신흥무관학교의 무명 병사를 떠올리게 한다. 수길의 첫 걸음이 이 책의 마지막장이다. 거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이 책은 꽉 채워져있고 한달음에 읽혔다.

어떤 시대든 사람들이 자기 삶을 선택하는 방향은 갖가지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후대가 보았을 때 귀하게 여겨지는 선택은 있는 법이다. 수길이 선택한 길, 그가 받아들인 '운명'이 그를 어떤 길로 몰고 갔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일찍 보낸 엄마가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아들까지 떠나보내던 그 새벽밥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내가 느끼기엔 치열한 전투나 피맺힌 수탈의 현장이 묘사된 이야기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지만 한 소년의 생각과 실행을 쫓아간 이 조용한 이야기도 그 못지 않게 울림이 큰 것 같다. 이 책을 아이들과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시대와 차원은 다르지만 또다른 의미에서 '암흑'일수도 있는 이 시대에, 수길처럼 자신의 운명을 찾아 전진하는 아이들이면 좋겠다. 나도 자신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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