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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주머니 ㅣ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7
이경순 지음, 이지오 그림 / 마루비 / 2023년 8월
평점 :
얇은 책을 후루룩 넘겨보고는 좀 시시한 이야기가 아닌가 했다. 시시한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 긴장된 사건도 큰 갈등도 극복도 반전도 없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가끔은 사소한 이야기가 마음을 가득 채우는 때도 있는데 이 책에 그런 힘이 있었다. 오...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세상이 행복해지는 조건이 있다면 나는 그 조건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귀찮은 게 딱 싫다. 주고 받는 것보다는 안주고 안받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관심은 고맙기보다는 불편할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참 간사해서, 귀찮아서 싫다면서도 외로운 것은 무섭다. 지금은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으니 배부른 소리를 하는거지 연결감이 전혀 없다면 쫄보인 나는 당장에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손내밀어 준다면 그건 거의 구원의 손길이겠지...
이 책의 1학년 금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아이다. 계단을 한참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집에 산다. 계단이 너무 길어 중간에 쉬어가라고 빨주노초파남보 의자가 놓인 동네다. 금이의 부러움 버튼이 두 개 있다. '특별한 날'과 '초대장'이다. 금이에겐 좀처럼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이 책의 할머니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게 일단 매우 드문 일이다. 이렇게 단단한 마음 바탕을 가지고 기죽은 손녀딸의 마음을 북돋워주는 할머니가 계시다면.... 할머니는 세들어 살지만 옥상에 텃밭을 가꾸며 손녀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분이다.
오늘도 특별한 날은 아니었고 할머니와 금이는 또 힘겨운 계단을 오르는데 첫번째 의자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바로 제목의 ‘꽃주머니’였다. 향기롭고 아름다웠지만 주인이 찾을지 모르니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하는데 그 안에 든 쪽지가 보였다. 쪽지를 꺼내본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꽃주머니를 챙긴다. 무슨 내용이길래? 독자들은 궁금한데 책은 그냥 넘어간다. 물론 나중에 나온다. 맨 마지막에.
비가 오고, 할머니는 금이에게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한다. 옥상 텃밭에서 부추를 뜯어 부침개 반죽을 넉넉히 만들고 지글지글 부치기 시작한다. 아 부침개...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나도 부치고 싶어지는 광경이다. 그걸 금이에게 들려 이집저집 심부름을 보낸다. 요즘 이런거 받고 좋아할 사람이 있나...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의외로 이웃들은 반기며 고맙게 받는다. 주인집 아주머니, 옆집 아주머니와 언니는 기뻐하며 집에 있던 케이크, 머리핀 등으로 보답한다. 이제 뒷집이 남았는데 뒷집은 혼자 사시는 무뚝뚝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부침개를 드리러 갔다가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한가지만 말한다면 ‘초대장’. 이렇게 해서 금이에게 오늘은 완벽히 ‘특별한 날’이 되었다.
쓰고 보니 진짜 별일은 없네. 흔한 부침개를 매개로 이웃들과의 교류가 소박하게 있었을 뿐이다. 귀엽고 순수한 금이의 시각으로 그것을 환하고 예쁘게 보여주었을 뿐. 그러나 가만 보면 도입과 결말에 그 ‘쪽지’가 있다. 모르는 이웃이라도 행운을 전해주고픈 그 따뜻한 쪽지.
동화니까 그렇지... 라고 하려는데, 작가님이 겪은 일이 씨앗이 되어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냥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도 뉴스를 보기 무서운 세상이라 해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사람들도 어느 구석엔가 존재하긴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난 하루는 행운이겠지.
계단으로 오르는 가파른 동네, 집집마다 대문이 있고, 그 대문 안에 마당이 있고 옥상도 있는 동네. 어렸을 때 골목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동네를 예쁜 삽화로 접하니 추억에 잠기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평생 아파트에서 살겠다!고 결심했으면서 말이다.^^;;;
세상의 문제는 환경문제부터 시작해서 소통과 연대의 문제도 게으름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 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이기심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게으름. 한마디로 귀차니즘? 편하려고 해서 이렇게 막다른 곳으로 왔다면 불편함을 좀 감수해야 반대쪽으로 갈 수 있을텐데. 이웃의 문을 두드릴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생각만 이렇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