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문병욱
이상교 지음, 한연진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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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교 작가님도 꽤 많은 책을 내신 분이다. 시집, 그림책, 동화책에 옛이야기 재화까지. 나도 몇권 갖고 있는데 서평은 처음 써보는 것 같다. (기억이 확실치가...;;;)

작품이 맘에 드는 이유는 그때마다 다양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무심한 듯 조용한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이런 얘기 나도 쓰겠다 싶을 만큼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절대 쓸 수 없는 이야기. 잘 보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쓰기 어렵지 않을까.

2학년 첫날 '나'(예지)는 새학급에 적응하려 주변을 살핀다. 근처에 아무말 없는 병욱이가 앉아있다. 선민이라는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너 문병욱 바보인 거 알아? 말도 잘 안하고 날마다 주머니에 손 넣고 다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보인 건 아닌데."

나는 이 대목에서 평범하고 위대했던 우리 학급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교실붕괴를 막아준 건 나의 지도력이 아니고 이런 아이들의 내적인 힘이었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떠벌이거나 부풀리지 않고, 타인에 대한 호의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아이들. 남의 흠을 잡아 약점으로 깔아뭉개지 않고 슬며시 빈틈을 괴어주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포진해 있는 학급은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학급의 철근이다.

이런 아이들이 팔방미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하다. 주목받거나 찬사를 받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에나 스며들어있어 그 존재감은 놀랍다. 눈이 밝은 교사는 그 빛을 알아볼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대전 4인방 같은 아이들이 학급을 초토화시키면 그 빛도 사그러지는 경우가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가능하다.

어제 이른 출근길에 웬 고등학생이 "선생님!" 하고 날 반갑게 불렀다. 얼굴을 보니 7년 전에 가르쳤던 아이였다. "선생님, 안녕하시죠? 제가 벌써 고3입니다.ㅎㅎ" 하면서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 그 아이. 서로 갈 길이 바빠 인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출근길 내내 그 아이 생각을 했다. 또 만나면 이 말을 꼭 해줄거야. 너가 있어서 정말 좋았어. 너는 우리반의 쿠션이었어. 너랑, 꼭 너같은 몇명의 친구들이 있어서 숱한 말썽들 속에서도 우린 웃고 의지할 수 있었어. 멀리서도 나를 보면 부르면서 달려오는 너희들이 너무 신기했어. 사소한 얘기를 웃으면서 하다가 또 인사하고 뛰어가는 너희가 너무 고마웠어. 그런데 너희는 그걸 몰라. 너희같은 애들의 특징이지. 자기들은 몰라. 얼마나 귀한지.ㅎㅎ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예지와 병욱이의 학교생활은 계속된다. 병욱이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고 한다. 개학식날에 교문 앞에서 병욱이와 할머니, 예지와 엄마는 서로 꾸벅 인사를 나누었다. 예지는 그것도 좋은 기억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시간에 친구 얼굴 그리기를 했을 때, 병욱이는 누가봐도 예지를 닮은 아이를 그렸다.

병욱이는 여전히 쉬는 시간에도 책만 본다. 예지가 다가가 "그 책 재미있어?" 하고 묻자 수줍게 대답을 하는데, 아이들은 또 순진하지. 뭔데? 뭔데? 하면서 병욱이 주변으로 몰려든다. 병욱이는 이렇게 조금씩 아이들 사이에 스며든다. 여전히 말은 없지만.

병욱이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생각해본다. 꽤 괜찮은 어른의 모습이 그려진다. 난 너무 시끄러운 사람은 부담스러워서, 이런 사람이 더 좋다. 말없이 자기 할 일 하고 조용히 배려해 주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러니 바보니 이상한 애니 쑥덕거리는 사람들이 진짜 바보다. 그냥 옆에 함께 있으면 되는데.

수많은 교사들이 온몸으로 버텨내다 결국 부서지고 무너진 학급들을 생각하다 이 따뜻한 교실을 보니 눈물겹다. 후배쌤들이 이런 교실에서 미소지으며 교육을 하길 바라는데 갈 길은 얼마나 멀까. 작가님이 그려내신 이 따뜻하고 평범한, 아니아니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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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6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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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1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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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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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1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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