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고 단것에 미쳤다고 하든 말든 - 맛있는 한시漢詩
강혜선 지음 / 서유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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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가던 책이 도서관 신간서가에 꽂혀있어서 당장 들고 왔다. 한시와 음식이 결합된 책이라고 할까. 한문학 전공하신 교수님이 한시 중에서 음식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고 해석을 붙여 내신 책이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1. 한시로 '먹는 이야기'도 많이 썼구나
한시 하면 뭔가 고상하고 심각하거나 우아한 얘기만 썼을 것 같은데 이렇게 먹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구나. 책의 분량도 꽤나 방대하다.
'먹는 이야기'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즐겁다. 아이들한테 글감으로 먹는 이야기를 주면 평소에 글쓰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신나서 잘쓴다. 한편 얼마전 음식 에세이를 한권 읽었는데 재밌더라구. 그때 검색해보고 그런 류의 책이 꽤 많은 것도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먹는 즐거움만큼 큰 것도 드무니까.

2. 그 옛날에도 조리법은 최대한 다양했구나
'먹는 데 진심' 이라고들 하지. 옛날에도 다양한 식재료로 다양한 양념을 사용하여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려면 여자들이 고생깨나 했겠다. 지금도 '삼식이'는 지탄의 대상인데 옛날이야 누구나 삼식이였을테니 말이야... 돌아서면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는 해도 묘사된 음식들은 정말 지금 못지않게 맛있었겠다.

3. 한자는 정말 양반들의 문자였구나.
한시를 보니 정말 한자는 양반들의 언어일 수밖에 없었음이 실감난다. 드문드문 아는 한자들이 보이기는 하나 모르는 한자 투성이고 해석은 더욱 어렵다. 이 수많은 한자들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을까. 그러니 당연히 백성들에겐 그림의 떡이었겠지. 난 중고딩 때 한문 과목 성적이 꽤 좋았었는데 한구절이라도 읽어보려 눈을 부릅떠 봤지만 어림없었다.^^;;; 새삼 한글의 은혜로움에 찬사를.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이렇게 고서를 해석해 주시는 학자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4. 익숙한 음식을 보니 친근하구나
다루어진 음식도 얼마나 다양한지 총 5부의 편성으로 되어있다. 나의 특별한 밥상(재료별로 다시 나뉨), 문인들의 미식회, 길 위의 밥상, 계절 밥상, 다과상 이렇게 나뉘어 있으니 참 다채로운 구성과 내용이다. 첫장에서 선비들이 쌈싸먹는 모습을 표현한 시와 다양한 쌈채소 이름들을 보니 친근하다. 음 역시 쌈밥은 대표적인 k-푸드로구나. 계절밥상 여름편에 '꿀 탄 빙수'가 있길래 오잉? 하고 보았더니 여기서 빙수는 언 우유를 간 오늘날의 빙수가 아니고 말 그대로 '얼음물'이다. 왕과 그 측근만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원함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그러고보면 아무때나 냉장고만 열면 얼음이 한통 그득 차 있는 지금의 팔자가 얼마나 편한가.ㅎㅎ

5. 간식은, 특히 단 것은 귀했겠구나
제목인 '단 것'은 마지막장 '다과상'에 집중되어 있다. 현대 우리나라 입맛은 단맛에 거의 마비되어 있다시피 하다. 반찬에도 설탕을 때려넣으니까. 그렇지 않던 옛날에는 다소의 단맛도 황홀하게 즐겼던 것 같다. 각종 과일과 곶감, 떡 등을 귀하게 먹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책 제목 치고는 참 특이한 '날보고 단 것에 미쳤다고 하든 말든'은 엿에 대해서 쓴 김조순의 싯귀이다. 엿이야 뭐 지금은 단 것 축에도 못들지만. 그리고 나는 엿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당시를 상상하면 참 귀한 간식거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 사는 모든 일이 예로부터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음식도 예외는 아니다. 그 이어짐을 한시를 통해 알게된다는 점이 참 흥미롭고 특별했다. 책의 구성도 좋고 내용도 알차다고 느꼈다. 저자와 출판사 모두 오랜 기간 애써서 준비하신 책인 것 같다. 그런 만큼 독자도 한달음에 읽어치우긴 힘들다. 조금씩 음미하며 읽는 독서방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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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 포
이와세 조코 지음, 마쓰나리 마리코 그림, 이랑 옮김 / 다산어린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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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에피소드 하나에 불과한 이야기인데 어쩜 이렇게 깊고 따뜻할까. 그래선지 80쪽 정도의 얇은 분량인데 중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고학년이나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저학년이 읽기에도 어렵진 않다. 독자층이 한정된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이렇게 모두에게 열린 책은 참 귀하다.

요즘 고양이 없이는 얘기가 안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고양이는 동화의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새로울 게 없는 소재와 어찌보면 교훈적인 주제가 전혀 식상하지 않았다. 작가님이 보낸 아주 섬세한 물결이 다가와 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어느날 등하교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주인이 없어보이는 그 고양이는 하루를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몇번 쓰다듬다 그만 그 고양이에게 마음이 가버렸다. 하필이면 비까지 주룩주룩 내렸다. 하루로서는 고양이를 안고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연민을 보이고,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되어 하루는 너무 행복했다. 이름을 짓는 과정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것저것 불러봐도 반응이 없던 고양이가 '포'라는 이름에 살짝 반응했다. 그렇게 포는 하루네 고양이가 되었다.

그런데 갈등은 여기서부터다. 모리라는 아이가 전학왔다. 성격이 무척 좋은 친구였다. 둘은 친해져서 함께 하교하는데, 모리네 고양이가 이삿날 사라져서 아직 못찾았다는 얘길 듣는다.
"나는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묻지 않았다.
왠지 어떤 고양이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37쪽)

이제 하루는 모리를 멀리한다. 그럴수록 내적 갈등은 커져만 간다. 어느날 길에서 마주친 모리에게 잃어버린 고양이 이름이 '퐁'이라는 얘길 듣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가슴이 너무 쿵쾅거려서 모리랑 이야기하는 게 힘들었다." (52쪽)

집에 온 하루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포, 너는 내 고양이 포 맞지?" 하고 속삭인다.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하루의 애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방과후 수업에서 동물 그림을 그리던 날, 하루는 모리에게 저리 가라고 심술을 부리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혹시 포가 퐁이라면, 포를 모리에게 데려다줘야 하는걸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포와 너무 친해졌으니까.
정말 그러기 싫었다." (68쪽)

자고 있던 '포'를 부르며 쓰다듬던 하루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 착하고 여린 하루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루는 절대 부르고 싶지 않았던 그 이름을 불러본다.
"퐁....."
그러자 고양이의 반응이.... 이제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벌떡 일어났다. 결말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퐁이가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83쪽)

하루가 끝까지 숨기지 않고 모리를 집에 데려온 것에서 정직함, 양심을 지키는 태도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이정도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면 거기에는 사랑의 태도가 있다. 진정한 사랑. 그것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유를 넘어선 사랑, 상대의 행복을 지켜주고 더 나아가 찾아주는 태도가 사랑임을 이 어린 아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데서 수많은 비극, 때로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상대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도, 심지어 범죄자들도 자신은 사랑했다고 말한다. 인정해줄 수 없다. 이 작은 동화책이 말해주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니까.
"혹시 포가 퐁이라면, 퐁은 분명 모리가 엄청나게 보고 싶을거야.
나는 왜 지금까지 퐁이 마음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73쪽)

자신이 지은 이름 '포'를 미련없이 버리고 '퐁'을 부르는 이 아이를 보라. 어른 중에도 이보다 멋진 사랑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걸. 연인이든 친구든 자식이든 모든 관계에서. 그래서 난 포를 쓰다듬으며 떨구었던 하루의 눈물이 보석보다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느꼈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 얼마나 멋진 사람들이 될까. 그러면 세상이 무슨 걱정일까. 책을 읽는다고 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많은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른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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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내일하는 사이
임봉근.임다운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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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 책 소개인가 광고인가를 봤다.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쓴 책이라고?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마침 있길래 빌려왔다. 편하게 재미있게 금방 읽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31년생 할머니와 91년생 손녀. 할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열 살쯤 많으시고 손녀도 내 딸보다 몇 살 많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중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다운 씨의 아빠 엄마 세대인 건데, 그 세대의 입장에 당연히 공감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에도, 다운 씨의 마음에도 공감이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운 씨한테는 고마운 마음이고, 할머니에게 많이 이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 할머니와 성이 같은가? 친할머니라고 해도 성이 같진 않잖아? 그건 할머니가 그 옛날, 모계로 자식들의 성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중학교도 겨우 가던 시대에 대학까지 갔던 할머니는 대학 나온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완전 사기결혼이었다. 딴살림을 차렸을 뿐 아니라 본처는 또 따로 있더라는.... 미련없이 남편의 짐을 새 여자한테 넘긴 할머니는 그 이후 자식들을 키우며 혼자 살았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친정 집안 재산까지 날린 할머니는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며 손녀딸의 존재를 가장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 할머니는 혼자 사신다. 딸들과 가까운 동네에 집을 얻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독거노인인 것은 맞다. 그동안은 다운이네랑 사셨다.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 집에서 손녀를 키워주며 사셨던 건데, 다운이도 결혼해 독립하고, 아들 며느리도 퇴직하자 각자의 독립적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완전 찬성이다. 평생 같이 산 부모도, 품에 안고 물고 빨던 자식도 나이들면 다 불편하다. 불편..... 참 씁쓸한데 그렇다, 불편하다. 그동안의 함께한 세월도 아무 소용 없이.ㅠ

할머니는 가곡이나 재즈를 좋아하시는 세련된 취향에 (그치만 뒤늦게 장민호에게 빠져 트로트의 매력도 알아가는 중) 요리나 뜨개질보다도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 나이대에는 드문 취미를 가지셨다. 덕분에 손녀에 대한 그리움을 비롯한 다양한 상념을 편지라는 형식으로 기록하셨고, 그것을 모으고 추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되어 있는데 1,3부는 손녀의 글, 2,4부는 할머니의 글이다.

할머니는 딱히 살림이나 육아에 소질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다운 씨의 성장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건 서로에게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둘은 서로 죽이 잘 잘 맞았다. 할머니가 보여주는 세상을 다운 씨는 재미있어했고, 그걸 보는 할머니는 행복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손녀의 좋은 양육자가 되었고, 다운 씨는 결혼하고도 할머니를 챙기는 손녀가 되었다. 거주지가 달라 기차를 타야 하는 것 같은데, 한달에 한번 꼴로 할머니 댁에 가서 장도 같이 보고 맛있는 것 같이 사먹고, 필요한 것 챙겨 드리고 돌아온다. 한달에 한번이 대수냐 할지 모르지만 기다리는 한달은 길어도 바쁜 한달은 순식간이다. 자식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운 씨의 글은 젊음처럼 경쾌하고, 할머니와 가족의 서사를 적절하게 잘 짜서 넣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할머니의 글에는 독거노인의 단상이 잘 들어있다. 두가지 감정을 대표로 꼽으라면 그리움과 외로움이다. 자식보다도 손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내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나라면 약간 부담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떨어져 있는 사랑이 곧 그리움인데 사랑이 부담된다는 거냐, 내가 좀 한심한 마음도 든다...ㅠ 할머니의 글 중에 아들이 전화해서 다운이한테 너무 전화하지 마라, 다운이네 집에는 가지 마라 했다고 무척 서운해하시는 내용이 있던데, 아들 마음도 나는 이해가 된다. (같은 세대라서?) 이와 같이 각 세대의 현실 상황과 마음이 두루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책이었다. 특히 할머니의 일상에 기본값으로 스며든 외로움이 간결한 문장 중에도 절절히 느껴진다.

물론 할머니는 치매도 안왔고, 아직 걸어다니시고, 다양한 음식을 즐기실 수 있고, 요양원에 들어가신 것도 아니니 다른 할머니들보다 얼마나 행복하시냐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그렇긴 해도 각자 외로움의 농도는 비교가 무의미한 것이니. 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각오할 외로움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게 된다. 기대하지 않음이 그 외로움을 줄여줄 수 있는지도. 또한 내 주변 노인들의 외로움을 덜어줄 방법이 딱히 없는 것도 슬픈 일이다.

두 사람이 이렇게 책을 내기 위한 협업을 한 것 자체가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 내일 하는 사이’ 라는 제목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인간은 오늘 내일 하는 존재이지. 내일이 지구의 마지막이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은 아니라도 뭔가 재미난 걸 최대한 마지막까지 도모하는 우리들이면 좋겠다. 할머니와 손녀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우리의 가는 길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아프고 편안했으면. 할머니 건강하고 재미나게 오래 사세요. 다운 씨도 행복하구요!

(아참, 출판사 이름 ‘안온’이 인상적이었다. 책과도 어울리고. ‘모자무싸’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낱말을 출판사 이름으로 보니 반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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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아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산다면 - 마흔에 자폐를 알게 된 남편을 통해 보는 신경다양성의 세계
지은정 지음 / 새로온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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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자폐를 알게 된 남편을 통해 보는 신경다양성의 세계’ 라는 부제를 보고 골라든 책이다. 이 부제가 중요했다. 본제만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자폐나 신경다양성은 학생들과의 생활이 끝난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절실한 관심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관심의 끈이 다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두 단어를 보자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특정 직군이나 특정 연령대에 적합한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스펙트럼은 어찌나 넓은지, 그 넓이가 점점 더 펼쳐지는 느낌이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그 어딘가에 내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부딪치며 겪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을 어떤 틀에다 넣고 규정하거나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늘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성을, 특별히 신경다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알아보려 노력하면 더 좋을 것이다.

마흔 살에 자폐를 알게 되었다니, 그때까지 학업도 마치고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했다니 고기능 자폐에 해당될 것이다. 바로 저자의 남편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저자는 남편과 함께 산다는 것이 무척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게 미움이나 분노,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고 평생의 탐구 과제가 되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니 감동이다. 저자는 정말 보통 분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책도 쓰셨겠지만. 남편분(책 속에서 ‘스누피’로 칭함)도 마찬가지다. 신상명세만 안 밝혔다 뿐 매우 사적인 기록이며 본인의 정체성을 다 드러내는 것인데 책 쓰기에 동의하고 다 쓰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는 점이.

사실은 나도 과감각을 가진 편이라서 스펙트럼에서 상당히 가까운 쪽에 위치하지 않을까 하는 자각이 늘 있었다. 청각이 예민해서 소음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촉각의 불쾌감은 나보다 심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을 지경이다. 운동시설에서 코치님들이 터치하는 게 너무 싫지만 싫은 티를 내면 미안하니까 억지로 참는 게 너무 괴롭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나와 버린 날 터치없이 지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건 사실 돈내고 손해보는 일...;;;) 스누피도 나랑 비슷할까 했는데 예민하다고 다 같은 건 아니고 종류가 매우 다르더라. 또 나도 불안도가 매우 높은 사람인데 스누피의 불안과 강박, 그로 인한 행동 제약을 보면 나 정도는 불안 축에도 들지 못하긴 하겠더라....

이 모든 것들을 부부는 발견하며 대화하며 이해하며 인정하며 맞추어 나간다. 몇 마디 말로 끝냈지만 실제 과정은 매우 길고 지난했다. 그래도 평상심을 거의 유지한 저자, 사랑과 존중이 더욱 깊어진 부부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맞춘다는 것이 이렇게 거의 반평생이 걸린다해도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내심으로는 자신이 없지만.

부부는 최상위 난이도라 할 수 있겠고,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보며 '이상하다' '짜증난다'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등의 생각을 하기 전에 타인이 다와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에 담긴 사례도 전체 스펙트럼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래도 시야를 훨씬 넓혀줄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부부가 병원을 찾고 그들의 계획과는 다르게 약처방을 받게 된 점도 나에겐 관심사였는데, 첫 번째 약의 효과가 드라마틱했던 것도, 이후 다른 약을 찾아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정답은 없고, 모든 가능성에 열린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

저자가 소개해주신 간이 AQ(자폐스펙트럼 지수) 검사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도 한번 해보았는데 ‘비자폐성향’의 끝점수가 나왔다. 1점만 높으면 경계선으로 가는 점수였다. 평균보다는 훨씬 높았다. 혼자를 추구하는 극도의 내향성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 같지만, 어쨌든 누구나 이런저런 경향을 조합해서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다.

비정상이 아닌, 결함이 아닌, 특징으로 이해되는 세상을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쓰셨을 것이다. 나도 그 점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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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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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어떤 우연이 겹쳐서였다. 얼마전 멜론의 재생목록에 '새벽기차'와 '이층에서 본 거리'를 추가해서 길을 가며 들었다. 둘 다 젊을 때(어릴 때?) 좋아하던 곡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층에서 본 거리 가사가 처음 보는 것처럼 다가왔다. 에잉? 이런 가사였나? 왜 난 그때 아무 의문도 없이 들었을까? 제미나이의 해석을 한번 물어봤다.

"어렸을때 '다섯손가락'이란 그룹의 노래를 좋아했거든. 아주아주 오랜만에 오늘 '이층에서 본 거리'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가사가 새롭게 들리더라구.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적 내친구는 외면을 하고]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랬더니 제미나이의 답변이 아주 그럴듯했다.
'다섯손가락'의 명곡을 오랜만에 들으셨군요! 어릴 때 듣던 노래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 들으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 정말 특별하죠.
​질문하신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라는 구절은, 이 노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인 '순수했던 과거와의 결별'과 '비정하고 차가운 도시 삶에 물들어버린 서글픔'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몇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수녀'와 '친구'의 대비 (종교적 성스러움 vs 세속적 외면)
• ​수녀는 우리 사회에서 '순수함', '양심', '도덕', '평화' 혹은 '구원'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반면, 어릴 적 그 누구보다 순수했던 내 친구는 그 수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해 버립니다.
• ​이는 친구가 단순히 수녀라는 사람을 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던 일말의 순수함이나 양심을 마주하기 부끄러워 피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2. 도시 속에서 변해버린 인간관계와 무관심
• ​어릴 때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복잡하고 냉혹한 도시(이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의 삶에 적응하느라, 타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인'이 되어버린 것이죠.
• ​길거리에서 아는 체를 하지 않거나, 혹은 세상의 소외된 곳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무관심을 뜻하기도 합니다.
​3. '이층'이라는 관찰자 시점이 주는 쓸쓸함
• ​화자는 길거리에 섞여 있는 게 아니라 '이층'이라는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한때는 단짝이었을 친구가 거리에서 수녀를 외면하며 지나가는 차가운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하는 깊은 환멸과 쓸쓸함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한 가사입니다.

오호 그렇군 가사를 진짜 잘 쓰시네 하며 감탄하고 며칠 후, 알라딘에서 이 책이 나온걸 보았다. 오마나 웬일이야 하며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한참만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받아왔다. 수많은 곡 중 이 곡부터 읽어보았더니 제미나이의 설명과는 많이 달랐다.ㅎㅎㅎㅎ 하지만 창작물이야 손을 떠나면 감상자의 몫인 거고, 저 해석도 꽤나 일리있으며 창작자의 고뇌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미나이와 소설, 영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몇 번 나눠본 결과, 넘겨짚다가 팔부러지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오류를 짚어주면 앗! 제가 착각을 했군요! 하고는 시침 뚝 따고 계속 넘겨짚기를 한다. 그러려니 하며 거리를 두고 봐야지 뭐.ㅎㅎ)

하지만 정보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정확하지 않을까?
"이 곡, 멤버중 이두헌 씨가 만든 곡 같은데, 해석해보니 꽤나 문학적 소양이 있으신 것 같네."
이렇게 물었더니 또 좔좔좔 설명을 이어갔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다섯손가락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이두헌 씨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맞습니다.
​이두헌 씨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시적인 가사를 쓰는 음악가'로 아주 유명합니다. 단순히 귀에 꽂히는 노랫말이 아니라, 한 편의 단편 소설이나 시를 읽는 듯한 문학적 소양을 가사 곳곳에 녹여내기로 정평이 나 있죠.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한 편의 영화 같은 '시각적 묘사'
​이두헌 씨의 가사는 눈앞에 풍경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 ​<이층에서 본 거리>만 해도 '창가에 맺힌 빗방울', '길가에 지나가는 수녀', '약국에서 파는 담배'처럼 구체적인 오브제를 배치해 도시의 쓸쓸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시각화합니다.
• ​다섯손가락의 또 다른 메가 히트곡인 **<새벽기차>**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역시 이두헌 씨의 작품인데, 제목만 들어도 어떤 계절과 시간, 분위기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서정성을 자랑합니다.
​2. 일상의 풍경을 철학적으로 뒤트는 통찰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국'과 '담배',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인간의 소외와 현대 사회의 모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억지로 심오한 단어를 쓰지 않고,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게 진짜 문학적인 내공이죠.
​3.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행보
​실제로 이두헌 씨는 음악 활동 외에도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에세이집을 출간하거나 시인들과 교류하는 등 글과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의 깊은 사색과 독서량이 고스란히 다섯손가락의 노래에 자양분이 된 셈입니다.
​그 시절 청년이 썼던 청춘의 고뇌와 쓸쓸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다가오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창작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미나이는 그때 이 책이 나온 것을 몰랐겠지만, 이렇게 본인이 쓴 노래 가사로 풀어가는 '노래글' 책을 읽어보니 제미나이의 찬사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시대 음악에 향수가 있거나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면 책장이 술술술 넘어갈 것 같다. 나도 멜론에 노래를 추가해 들어가며 읽었는데, 내가 알던 곡은 극히 일부란 것도 알게 되었다.

AI와 나눈 얘기를 너무 길게 늘어놔버렸네. 몇가지 감상만 간단히 쓰고 마쳐야겠다.
1.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것.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굳이 부끄러운 얘기 아픈 얘기 안해도 AI가 저리 찬사를 해주는 인물 아닌가? 그래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노래' 이야기를 쓰자면 어떨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안쓰면 안썼지 자신의 이야기를 빼고 노래를 논할 순 없었을 테니까. 에필로그에 그 심정이 담겼다.
"다 말해 버렸네요.
더 할 말이 없는 건 아마 오늘뿐일 거예요
살아있는 한 또 뭔가 말하려 하겠죠.
말은 그렇잖아요. 비온 뒤 풀이 자라듯 또 무성할 테니.
하지만 우리는 곧 모두 말을 잃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말을 아무도 주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2. 노래도 어디로 어떻게 뻗어갈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 인생과 똑같은 것 같다. 이두헌 씨는 그의 메가 히트곡들이 의외로 매우 '싱겁게' 탄생했다고 말한다. (싱겁게라는 말이 세번인가 나왔는데, 난 그때마다 모자무싸 속의 시인 황진만이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같은 곡. 저자는 공연에서도 이 곡을 되도록 안부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 관객들의 니즈와 충돌한다.ㅎㅎ) 반면, 절절한 사연과 감정을 담아서 쓴 노래들이 묻혀있는 경우도 많다.

3. 예술가의 내면과 생활이 고요하고 잔잔할 수는 없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은 어떤 예술가나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애물단지인 것 같기도 하고... 치열한 감정 속에서 살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삶은 쉽지 않겠다.... 누구의 삶인들 쉽겠는가마는.... 그저 응원할 수밖에.

다섯손가락이 활동하던 시기는 나의 중고등 시절이었다. 그때 우린 친한 친구 생일에 음악테이프를 선물하길 좋아했는데, 자주 건넸던 음반이 바로 이 다섯손가락이었고 그외에 들국화와 부활 등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유튜브 검색해보니 3년 전에 모 방송사에서 '불꽃밴드' 라는 프로그램을 했더라고? 거기에 이 모든 아저씨들 다 나오셨다. (애들이 보면 할아버지라 하겠지만 난 아저씨라 하겠음. 오빠는 좀 그렇고ㅋ) 세월이 무상하도다..... 하지만 젊은이부터 늙은이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서로 따뜻하게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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