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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아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산다면 - 마흔에 자폐를 알게 된 남편을 통해 보는 신경다양성의 세계
지은정 지음 / 새로온봄 / 2026년 3월
평점 :
'마흔에 자폐를 알게 된 남편을 통해 보는 신경다양성의 세계’ 라는 부제를 보고 골라든 책이다. 이 부제가 중요했다. 본제만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자폐나 신경다양성은 학생들과의 생활이 끝난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절실한 관심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관심의 끈이 다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두 단어를 보자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특정 직군이나 특정 연령대에 적합한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스펙트럼은 어찌나 넓은지, 그 넓이가 점점 더 펼쳐지는 느낌이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그 어딘가에 내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부딪치며 겪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을 어떤 틀에다 넣고 규정하거나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늘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성을, 특별히 신경다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알아보려 노력하면 더 좋을 것이다.
마흔 살에 자폐를 알게 되었다니, 그때까지 학업도 마치고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했다니 고기능 자폐에 해당될 것이다. 바로 저자의 남편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저자는 남편과 함께 산다는 것이 무척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게 미움이나 분노,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고 평생의 탐구 과제가 되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니 감동이다. 저자는 정말 보통 분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책도 쓰셨겠지만. 남편분(책 속에서 ‘스누피’로 칭함)도 마찬가지다. 신상명세만 안 밝혔다 뿐 매우 사적인 기록이며 본인의 정체성을 다 드러내는 것인데 책 쓰기에 동의하고 다 쓰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는 점이.
사실은 나도 과감각을 가진 편이라서 스펙트럼에서 상당히 가까운 쪽에 위치하지 않을까 하는 자각이 늘 있었다. 청각이 예민해서 소음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촉각의 불쾌감은 나보다 심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을 지경이다. 운동시설에서 코치님들이 터치하는 게 너무 싫지만 싫은 티를 내면 미안하니까 억지로 참는 게 너무 괴롭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나와 버린 날 터치없이 지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건 사실 돈내고 손해보는 일...;;;) 스누피도 나랑 비슷할까 했는데 예민하다고 다 같은 건 아니고 종류가 매우 다르더라. 또 나도 불안도가 매우 높은 사람인데 스누피의 불안과 강박, 그로 인한 행동 제약을 보면 나 정도는 불안 축에도 들지 못하긴 하겠더라....
이 모든 것들을 부부는 발견하며 대화하며 이해하며 인정하며 맞추어 나간다. 몇 마디 말로 끝냈지만 실제 과정은 매우 길고 지난했다. 그래도 평상심을 거의 유지한 저자, 사랑과 존중이 더욱 깊어진 부부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맞춘다는 것이 이렇게 거의 반평생이 걸린다해도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내심으로는 자신이 없지만.
부부는 최상위 난이도라 할 수 있겠고,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보며 '이상하다' '짜증난다'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등의 생각을 하기 전에 타인이 다와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에 담긴 사례도 전체 스펙트럼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래도 시야를 훨씬 넓혀줄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부부가 병원을 찾고 그들의 계획과는 다르게 약처방을 받게 된 점도 나에겐 관심사였는데, 첫 번째 약의 효과가 드라마틱했던 것도, 이후 다른 약을 찾아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정답은 없고, 모든 가능성에 열린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
저자가 소개해주신 간이 AQ(자폐스펙트럼 지수) 검사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도 한번 해보았는데 ‘비자폐성향’의 끝점수가 나왔다. 1점만 높으면 경계선으로 가는 점수였다. 평균보다는 훨씬 높았다. 혼자를 추구하는 극도의 내향성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 같지만, 어쨌든 누구나 이런저런 경향을 조합해서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다.
비정상이 아닌, 결함이 아닌, 특징으로 이해되는 세상을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쓰셨을 것이다. 나도 그 점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