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내일하는 사이
임봉근.임다운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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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 책 소개인가 광고인가를 봤다.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쓴 책이라고?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마침 있길래 빌려왔다. 편하게 재미있게 금방 읽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31년생 할머니와 91년생 손녀. 할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열 살쯤 많으시고 손녀도 내 딸보다 몇 살 많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중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다운 씨의 아빠 엄마 세대인 건데, 그 세대의 입장에 당연히 공감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에도, 다운 씨의 마음에도 공감이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운 씨한테는 고마운 마음이고, 할머니에게 많이 이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 할머니와 성이 같은가? 친할머니라고 해도 성이 같진 않잖아? 그건 할머니가 그 옛날, 모계로 자식들의 성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중학교도 겨우 가던 시대에 대학까지 갔던 할머니는 대학 나온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완전 사기결혼이었다. 딴살림을 차렸을 뿐 아니라 본처는 또 따로 있더라는.... 미련없이 남편의 짐을 새 여자한테 넘긴 할머니는 그 이후 자식들을 키우며 혼자 살았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친정 집안 재산까지 날린 할머니는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며 손녀딸의 존재를 가장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 할머니는 혼자 사신다. 딸들과 가까운 동네에 집을 얻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독거노인인 것은 맞다. 그동안은 다운이네랑 사셨다.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 집에서 손녀를 키워주며 사셨던 건데, 다운이도 결혼해 독립하고, 아들 며느리도 퇴직하자 각자의 독립적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완전 찬성이다. 평생 같이 산 부모도, 품에 안고 물고 빨던 자식도 나이들면 다 불편하다. 불편..... 참 씁쓸한데 그렇다, 불편하다. 그동안의 함께한 세월도 아무 소용 없이.ㅠ

할머니는 가곡이나 재즈를 좋아하시는 세련된 취향에 (그치만 뒤늦게 장민호에게 빠져 트로트의 매력도 알아가는 중) 요리나 뜨개질보다도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 나이대에는 드문 취미를 가지셨다. 덕분에 손녀에 대한 그리움을 비롯한 다양한 상념을 편지라는 형식으로 기록하셨고, 그것을 모으고 추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되어 있는데 1,3부는 손녀의 글, 2,4부는 할머니의 글이다.

할머니는 딱히 살림이나 육아에 소질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다운 씨의 성장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건 서로에게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둘은 서로 죽이 잘 잘 맞았다. 할머니가 보여주는 세상을 다운 씨는 재미있어했고, 그걸 보는 할머니는 행복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손녀의 좋은 양육자가 되었고, 다운 씨는 결혼하고도 할머니를 챙기는 손녀가 되었다. 거주지가 달라 기차를 타야 하는 것 같은데, 한달에 한번 꼴로 할머니 댁에 가서 장도 같이 보고 맛있는 것 같이 사먹고, 필요한 것 챙겨 드리고 돌아온다. 한달에 한번이 대수냐 할지 모르지만 기다리는 한달은 길어도 바쁜 한달은 순식간이다. 자식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운 씨의 글은 젊음처럼 경쾌하고, 할머니와 가족의 서사를 적절하게 잘 짜서 넣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할머니의 글에는 독거노인의 단상이 잘 들어있다. 두가지 감정을 대표로 꼽으라면 그리움과 외로움이다. 자식보다도 손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내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나라면 약간 부담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떨어져 있는 사랑이 곧 그리움인데 사랑이 부담된다는 거냐, 내가 좀 한심한 마음도 든다...ㅠ 할머니의 글 중에 아들이 전화해서 다운이한테 너무 전화하지 마라, 다운이네 집에는 가지 마라 했다고 무척 서운해하시는 내용이 있던데, 아들 마음도 나는 이해가 된다. (같은 세대라서?) 이와 같이 각 세대의 현실 상황과 마음이 두루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책이었다. 특히 할머니의 일상에 기본값으로 스며든 외로움이 간결한 문장 중에도 절절히 느껴진다.

물론 할머니는 치매도 안왔고, 아직 걸어다니시고, 다양한 음식을 즐기실 수 있고, 요양원에 들어가신 것도 아니니 다른 할머니들보다 얼마나 행복하시냐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그렇긴 해도 각자 외로움의 농도는 비교가 무의미한 것이니. 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각오할 외로움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게 된다. 기대하지 않음이 그 외로움을 줄여줄 수 있는지도. 또한 내 주변 노인들의 외로움을 덜어줄 방법이 딱히 없는 것도 슬픈 일이다.

두 사람이 이렇게 책을 내기 위한 협업을 한 것 자체가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 내일 하는 사이’ 라는 제목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인간은 오늘 내일 하는 존재이지. 내일이 지구의 마지막이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은 아니라도 뭔가 재미난 걸 최대한 마지막까지 도모하는 우리들이면 좋겠다. 할머니와 손녀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우리의 가는 길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아프고 편안했으면. 할머니 건강하고 재미나게 오래 사세요. 다운 씨도 행복하구요!

(아참, 출판사 이름 ‘안온’이 인상적이었다. 책과도 어울리고. ‘모자무싸’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낱말을 출판사 이름으로 보니 반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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