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선생님을 위한 심리학 -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며 당당한 교사로 살아가기
서준호 지음 / 지식프레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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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호 선생님의 전작 <교사의 자존감>을 읽고 긴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게 5년 전이니 일부는 기억이 희미해졌다. 저자의 특기인 심리극 사례가 많이 나와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도 심리극 사례가 많이 들어있다. 다만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착한 선생님'에게 중점이 있다는 사실이 차별점이다. 따로 다루어야 할 만큼 그렇게 사례가 많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물론 어느 직군에나 다양한 성격과 성향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교직도 예외는 아니다. 이기적이고 약아빠져서 상종하기 싫었던 사람도 있었다. '참 도움 안되네' 라고 느껴지거나 심지어 폭탄인 사람도 존재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착한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한 용어인 '착한 교사 증후군'이 중증부터 경증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하나 일부 특별한 성향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직군 전반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따로 다룬 책이 나온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 1년차인 내가 이 책을 보며 나를 진단해보니 나는 살짝만 걸친 경증에 해당되었던 것 같다. 중증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건 완전 착각이었다.ㅎㅎ 나는 거절도 할 수 있고 팩폭도 가끔 하며 내 영역이 아닌 일에선 미련없이 물러나고 포기할 수도 있다. 싫은 소리도 할 수 있고 가끔 버럭도 했다.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던 성품들이 실은 나를 지탱해줬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묘하네.^^;;; 어쨌든 이 착한 교사 증후군은 많은 교사들을 극한으로 몰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들의 훌륭한 점이 분명 많지만, 본인의 심신의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치유해야 할 점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모든 교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착한 교사'와 거리가 먼 교사들도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들의 수고와 마음고생 때문에 내가 편했구나 느끼고 짐을 좀 덜어 지면 좋지 않을까? 어디서든 중간이 없어서 탈이란 말이지. 이 책은 교직의 중간지(균형지대)를 찾아가는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저자인 서준호 선생님은 오랫동안 '성장교실' 운영자로 멘토링, 집단상담을 진행해오신 분이다. 이런 분도 교통사고, 건강악화, 새로운 학교, 어려운 학급 등등의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오자 결국 내담자들 중 한 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강철이 아닌 것이다. 저자의 이런 경험은 모든 고난이 모든 교사에게 다가올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거대한 상황 앞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착한 교사 증후군' 교사들은 자신을 자책한다. 그래서 더욱 더 상처받고 고통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심리적 양상들을 명확히 짚어 보여주고 솔루션도 제시한다.

1부 [착한 아이의 탄생]은 가정 안에서 착한 아이로 자랐던 '착한 아이'가 '착한 교사'로 고착되는 과정 등 '착한 선생님'의 탄생 배경을 다루고 있다.

2부 [착한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에서는 착한 교사의 대표적 증상 11가지와 그에 대한 설명, 심리극 사례, 솔루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핵심 파트라고 할 수 있겠고 분량상으로도 가장 많다.

나의 경우 가장 해당되었던 것은 '평가의 기준이 자기 밖에 있다'는 점이었다. 욕먹기 싫어하고 민폐 극혐인 사람들의 성향이 주로 이렇다. '타인의 반응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게'(86쪽) 되어 그 불안정한 기준에 늘 흔들린다. 격한 요구와 불만이 많은 작금의 현장이 이런 불안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하겠다. 그외 여러 사례들을 보니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몸이 자주 아픈 것,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 등의 증상들도 있었다. 지나온 몇몇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이 딱하면서도 민폐는 민폐다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착한 선생님'이어서 그랬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민폐를 극혐하면서 결국은 민폐를 끼치게 되고 더욱 자책하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후배를 도울 수 있는 선배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부 [착한 선생님이어도 괜찮아]에서는 내면가족체계(IFS)라는 용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2부의 증상들은 나를 지키기 위한 내면의 일꾼들이었을 수 있다. 이 내면의 방식을 들여다보면 깊은 곳의 나를 만날 수 있고 나를 세우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저자의 깊은 공부와 경험이 담긴 전문서적이면서도, 읽는 내내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 마음은 바로 "괜찮아요." 이다. 현장의 한가운데서 그 마음을 느껴온 저자가 동료들에게 건네는 간절하고 따뜻한 위로이자 격려이다. 이 책에 큰 위로를 받고 한걸음을 다시 떼는 선생님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본다. 아울러 저자가 2부의 말미에서 "바뀌어야 할 것은 사람보다 구조다." 라고 지적하셨듯이, 사회적 제도적으로도 착한 교사가 넘어지지 않을 울타리를 갖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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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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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읽어봤다. 평점이 생각보다 낮아서 100자평들을 훑어보니 별 한개부터 다섯개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말하자면 호불호가 크다는 뜻이겠다. 좋다 싫다 뿐 아니라 재미있다 재미없다도 많이 갈렸다. 박정민 배우가 넷플릭스를 운운한 추천사에 대해서도 공감 반 태클 반이었다.ㅎㅎ 독자들의 이렇게 엇갈린 반응도 나한테는 읽기 전 기대 요소가 되었다. 어떤 점이 넷플보다 재밌는지, 싫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느끼는지.

표제작인 [혼모노]를 먼저 읽었는데 읽자마자 딱 느낌이 왔다. 헐, 이게 뭐지. 라는 느낌. 얼떨떨하네, 뭔 얘길 하려는 거야. 라는 느낌. 이토록 무속이 강한 작품은 처음 보는데 그걸로 인간의 어떤 단면을 말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게 이렇게 끝난다고?

이어서 읽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렇게 끝난다고?'의 느낌은 이어졌다. 재미없다는 평가는 대체로 여기서 오는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소재들은 매 작품마다 파격적이었으니까. 유사성이 거의 없는 각각 새로운 소재들이었다. [혼모노]는 무속인들의 세계, [길티 클럽:호랑이만지기]는 영화감독에 대한 팬덤의 세계, [스무드]는 한국에 대해 아는게 없는 이민 3세대의 한국 출장기, [우호적 감정]은 마을 재생 사업을 맡은 스타트업 회사원들의 세계 .... 이런 식으로. 워낙 배경과 소재가 다양하여 능숙한 표현을 위해서는 공부와 조사를 많이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재밌는 점은,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처음의 느낌(헐, 이게 뭐지)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읽을수록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몰입감이 점점 더해졌다. 나의 경우 그 절정은 딱 가운데 있는 수록작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였다. 이 작품의 소재는 '건축'이고 주인공들은 건축가들이다. 그런데 그 건축물이 심상치 않은 것임이 곧 드러난다. 서울촌놈이라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동네라 제목을 보고도 느낌이 없었는데 그곳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잘 어우러져 있다. 건물 자체에 대한 내용은 허구보다는 대부분 사실이다. 비밀리의 참혹한 일을 하기 위한 건물의, 철저하게도 적합한 설계.... 그걸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하게 되고 어떤 마음으로 하는 것인가.... 너도 나도 많이들 말하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여기에 적용하면 맞는 것일까. 그걸로도 다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다면성과 의외성이 느껴진다. 그 건물은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여진다니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구나 싶으면서도 한쪽이 펴졌으면 다른 어딘가가 구겨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나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가진 사람이다.ㅠ

이런 나의 성향은, [우호적 감정]을 읽으면서 마을 프로젝트가 (진정한 의미로는) 실패할 것을 초장에 예감했다. 그런 게 가능하면 국가력이 필요없게? 동상이몽이라고,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속도 제각기 다를 뿐더러 그 순도가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라 인간의 선의에 기대서 뭘 한다는 건 기적을 바라는 일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슬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음...

[길티 클럽:호랑이 만지기]에서 화자가 한때 참여했던 영화감독 팬덤도 그렇다. 화자는 충성된 팬으로 결국 소수의 오프모임 멤버까지 되었지만 정작 모임에 가서는 소외와 조롱의 느낌까지 받고 온다. 다른 이들에겐 그 와중에도 실속과 속셈이 있었다. 난 그게 없었던 화자가 더 미련해 보인다. 결국 그 우상을 대면했던 시사회 자리에서 내면에 뭔가가 터지며 덕질의 종말이 예고없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이후 여행지에서 이빨 발톱 빼버린 호랑이 만지기의 그 복합적인 느낌은.... 인간의 팬심과 유사성이 있지 않을까. 유명인에 대한 우리의 소비가 바로 이런 모양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잉태기]는 자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집안 이야기이기도 해서 소재가 익숙하다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뒤로 갈수록 이질감이 커지다가 마지막 장면에선 과장이 너무 심한거 아니야?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활권이 매우 평범하고 소박해서라는 생각이 이어서 들면서 이런 세계도 존재하고, 그들의 높은 경제력만 빼면 생각이나 행동양식은 결국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그렇다. 자식을 소유하려 하고 자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려 하는 태도. 그건 재력이 있는 이들이나 내가 본 평범한 사람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성공시키는 요인이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라더니 이 책이 딱 그 꼴이었다. 다만 이 집의 문제는 그 둘이 극한 대립을 한다는 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딸의 양육을 놓고 무섭게 적대하는데, 그 고래싸움에 낀 새우는 누구겠는가? 바로 그들이 사랑한다는 딸 서진이. 어린애 같으면 말도 안하겠다. 이미 성인이 됐고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으며 출산도 앞두고 있다. 다 컸는데 그 고래싸움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그녀. 정말 딱하다. 저들은 대체 뭘 원하는가.

[메탈]에서는 오랜만에 옛날 헤비메탈 그룹의 이름들을 접했다. 주인공은 이들을 신봉하며 메탈음악을 추구하는 세 청년이다. 그중 둘은 20대가 되며 대학으로, 직업으로 타협해 들어갔지만 우림만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되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 것을 보니 내 속이 탈 지경이다. 나도 청년들의 부모이고, 꿈을 쫓는 자식도 현실을 쫓는 자식도 다 안쓰럽고 불쌍하다.ㅠ

결국은 그도 악기들을 다 치우고 아지트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몇년이나 절연했던 친구한테 전화를 거는데.... 영화로 치면 신호음에서 영화가 끝난다. 파도소리와 어우러지며.... 그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으며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성해나 작가는 절대로 이런 걸 말해주지 않는다. 딱 한 발 앞에서 끝내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열린 결말인데 독자들에게 정신적 고생을 안기는 열린 결말이랄까. 자괴감도 불안함도 파탄의 예감도 후회도 낭패감도 모두 독자가 끌어안아야 한다. 이 책이 폭발적 유명세를 탄 걸 보면 그걸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은 것이다. 나도 읽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높게 평가하고 싶다.

성해나 작가의 책은 <두고 온 여름>이라는 소품 같은 소설을 가장 먼저 접했고 이 책이 두번째다. 첫 책으로 살짝 엿봤다면 이번 책으로 활짝 열고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 느낌이다. 최근작으로 인비인이라는 책이 나왔던데 그건 '기담집'이래. 뭔가 무척 내 취향이 아닌 것....^^;;; 내가 그걸 읽어볼까 말까 망설이는 중에도 작가님의 이야기 주머니는 계속 채워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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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도망갔다
소복이 지음 / 나무의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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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그래픽노블이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들에게 더욱 그렇다. 엄마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한창인 이들은 폭풍 공감할 것이고 나처럼 한숨 돌린 사람들의 마음도 애틋할 것이다.

나는 손도 느리고 일도 살림도 그닥 잘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직장생활하며 두 아이를 키운게 돌아보면 신통하다. 주중도 주말도 밤도 낮도 없었다. 그냥 닥치고 몰아치니까 떠밀려 감당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퇴직하고 이제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독립했고 시아버님과는 하루 두세마디밖에 안하고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각자 조용히 산다. 평생 그리던 고요한 생활이 찾아왔달까. 그런데 생각만큼 좋지는 않다. 그럼 옛날로 돌아가? 아니아니 그건 절대로 더 싫다.ㅎㅎ

그때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 사는 커리어우먼' 이었을 것이다. 원룸이라도 혼자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했을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이런 생각조차도 길게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엄마를 보니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엄마는 까페가 유일한 쉴곳이라고 했다." (18쪽)
"엄마는 낯선 사람이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37쪽)
"아무도 없는 깊은 곳에 숨고 싶다고 했다." (41쪽)
지금은 온갖 까페들을 매일 돌아가며 전전할 수 있는데, 아이들 취학전에 양손에 한명씩 잡고 다니며 동네 던킨을 지나다가 그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런데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고급 브런치 레스토랑도 아니고 베이커리 카페도 아닌 동네 지하철역의 던킨 앞에서 그런 생각을 내가 했었다....

이 책의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장면으로 책이 시작된다. 집에는 아빠와 아이가 남았고, 아이가 화자다. 아이는 엄마가 했던 말들을 회상했고 자신이 아는 엄마를 아빠한테 얘기해주기도 한다. 마지막쯤에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가 나온다.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일까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시도하지 못했지만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 엄마가 누운 곳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 독자는 휴우~ 하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이 '도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이 엄마의 도망을 응원하는 건 '만성 도망'이 아니어서다.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회피도 아니어서다.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어쩜 저렇게 자식이랑 있기를 싫어할까 싶은 엄마들을 종종 보았다. 숨쉴 구멍을 아예 차단한 경우와 도망이 만성이 된 경우 둘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간이 있어야지. 이 집의 엄마처럼.

평상시에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애쓰고 밀도 높은 시간들을 살아내고, 축적해둔 여유들을 모아 가끔 한번씩 '도망'을 가길 추천한다. 남편찬스가 가장 좋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서로 찬스가 되어주는게 좋겠다. 뭐든 일방적인 건 좋지 않으니까. 조부모찬스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복이 많은 이들이다. 나는 아직 해당사항이 없지만서도 언젠가 해당이 되는 날이 오면 이 찬스에 투입될 수 있길 바라며 내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이 책의 엄마가 평소 얼마나 마음을 다했는지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알 수 있다. 아이는 정교한 말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엄마의 속마음과 진짜 모습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엄마의 한숨과 눈물까지도. 평소 엄마와 얼마나 밀접한 사이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외로워하지 않고 엄마를 기다릴 수 있다. 엄마의 회복은 이 아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며칠 힘들긴 했겠지만 아빠를 위해서도.

인생의 특정 시기에 주어진 빡셈을 아예 회피할 수는 없다. 그게 싫다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 일이다. 하지만 한계로까지 밀어부쳐지기 전에 이렇게 숨통을 틔우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걸 서로서로 해줄 수 있는 우리라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되겠지.
오랜만에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듣고 싶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캬. 명곡이다. 이 책도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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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수첩 ㅣ 우리학교 재미 도서관
송미경 지음, 최민지 그림 / 우리학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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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님의 저학년 동화가 또 나왔네. 이번 책은 특히 더 맘에 들었다. 내 취향이기도 하면서 송미경 작가님의 특징도 많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송미경 작가님의 특징으로는 서늘함도 있지만 이 작품 같은 귀여움도 있다. 작고 약간은 허당인 존재가 사부작거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너무 사랑스러운데 본인은 그런 걸 모른다. 그냥 마음과 생각이 가는대로 하는 것 뿐이다. 그게 더 사랑스럽다. 웃음도 나오고.

영아가 오빠의 곰인형을 부러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곰인형은 보물찾기에서 받은 거다. 오빠는 비법이 있다며 으스대기만 할 뿐 절대로 가르쳐 주진 않는다. 오빠들이 그렇지 뭐. 영아는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로 마음 먹는다.

조용하고 주로 집에서 혼자 노는 영아한테 이건 큰 결심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고 반응도 좋았다. 얘기하고 싶었는데 영아가 멍석을 깔아준 셈이랄까. 신나게 말해주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영아는 수첩에 적는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그 수첩에 적는 내용들이 귀여워 웃음이 난다.
비법 1. 넘어진다.
비법 2. 행운의 모자를 쓴다.
비법 3. 확률을 믿고 기다린다.
이런 식^^

인터뷰하는 아이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이 친구로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보물찾기 비법 인터뷰는 이 과정을 귀엽고 사소하게, 그러면서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제나는 적극적이고 밝고 유쾌하다. 로모는 통계를 논할 정도로 똑똑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재미없어 하지만 우리의 허당 영아는 눈을 빛내며 듣는다.) 어떤 아이는 관찰력이 좋다. 어떤 아이는 엉뚱하고 느낌 가는 대로 한다. 등등... 조용한 성격 탓에 친구가 적었던 영아는 이렇게 친구들이 점점 많이 생겨났다.

자! 이 모든 노력은 가을 소풍날을 위한 것이었다. 보물찾기가 있는 날. 드디어 이 날이 왔다. 영아는 과연 비법들을 활용해 보물을 찾았을까?^^

이정도 이야기였어도 괜찮았겠지만 좀더 깊은 부분이 있다. 작가님은 보물찾기 전 자연관찰과 글짓기 하는 시간을 자세하고 따뜻하게 펼쳐보여 주었다. 가을 단풍을 주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이 동화속(엥?) 모습처럼 아름답다. 아, 이런 모습이 정말 동화 속으로만 사라지지는 않겠지... 단풍 이야기를 하는 데는 로모처럼 안토시아닌 운운하는 논리적인 아이도 도움이 되고 지호 같은 시인도 도움이 된다. 함께 어우러져 가을을 느끼는 아이들이 예쁘다.
"선생님, 어쩌면 나뭇잎의 진짜 색은 가을에나 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친구도 시간이 지나야 진짜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50~51쪽)
제나의 이 말에 작가님이 하고 싶은 말이 담긴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은 늘 그림처럼 예쁜 존재들은 아니다. 그들은 무엇도 될 수 있는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생명체들이다. (이 책처럼 천사들도, 또는 그 반대편도...) 하지만 함께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거나 잊으면 안되겠다.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을 때 좌절하지도 말고.

마지막에 다시 오빠 얘기가 나와서 수미상관도 되면서 또한번 웃음을 준다. 전체적으로는 무해하고 예쁜 그림 한 장을 구석구석 미소를 띠고 살펴본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을 선생님들에게도, 어린이와 부모님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학급에서 함께 읽어도 좋겠다. 단, 마지막 활동으로 보물찾기는 꼭 해주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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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선우는 ㅣ 책 읽는 샤미 65
임지형 지음, 양양 그림 / 이지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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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개를 페북에서 두세번 접하고나니 궁금해져서 찾아 읽어보았다. 읽기 전에 정보를 찾아보니 개정해서 다시 펴낸 책이었다. 초판이 나온지 10년이 조금 넘었구나. 그때의 제목은 <마루타 소년>이다. 임지형 작가님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그 책은 접하지 못했는데 마침 잘된 일이다. 개정하며 달라진 점들이 있겠지만 초판을 못본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의 이름 정도다. 초판에선 경복이였던 것 같은데 이번 책에선 선우다. 그리고 그것이 제목이 되었다. '그해 선우는'. 경복이보다는 요즘 감성의 이름이라고 할까.(사실 난 경복이도 좋긴 한데^^) 삽화도 느낌이 달라 완전히 새로운 책이 된 느낌이다.

잔잔한 톤의 표지그림과는 다르게 내용은 무척이나 끔찍하고 잔인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제강점기 생체실험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에 이제는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이런 잔인함은 끝난 게 아니겠지. 어떤 형태로든 재현되고 있겠지. 우리 안에도 없는 게 아니겠지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 대상인 만큼 참혹한 묘사는 최대한 절제하고, 인간성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말라죽지 않은 마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알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인간애의 소중함은 놓치지 않도록 쓰여진 점이 좋았다.

200쪽 정도로 중학년도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역사동화라는 것이 자료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고, 역사적 상상력과 함께 사실관계도 놓치지 않아야 해서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 책은 두껍지 않은 분량에 그런 것들이 잘 녹아져 있어 고심의 흔적이 느껴진다. 200쪽은 2만 쪽일수도 있고 20만 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동화를 읽으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든다.

일본의 생체실험은 차마 인간이 할 짓이 아닌 악행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일본인 전체를 악인으로 묘사하진 않았다. 특히 환자와 마루타로 만난 일본인-조선인 두 소년의 우정은 어린이들 마음에 따뜻하게 퍼지는 온기와 감동을 줄 것 같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슬픔도 있었지만 희망을 기대하게 되는 열린 결말이 인상적이다.

어린이들에게 마땅히 분노해야 할 과거의 역사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인류애도 잃지 않게 하는 작품이다. 어린이들이 역사를 접할 때 역사동화로 만나는 방식을 병행하는 것에 나는 찬성한다. 시대별 여러 작품들과 함께 이 책도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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