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도망갔다
소복이 지음 / 나무의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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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그래픽노블이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들에게 더욱 그렇다. 엄마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한창인 이들은 폭풍 공감할 것이고 나처럼 한숨 돌린 사람들의 마음도 애틋할 것이다.

나는 손도 느리고 일도 살림도 그닥 잘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직장생활하며 두 아이를 키운게 돌아보면 신통하다. 주중도 주말도 밤도 낮도 없었다. 그냥 닥치고 몰아치니까 떠밀려 감당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퇴직하고 이제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독립했고 시아버님과는 하루 두세마디밖에 안하고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각자 조용히 산다. 평생 그리던 고요한 생활이 찾아왔달까. 그런데 생각만큼 좋지는 않다. 그럼 옛날로 돌아가? 아니아니 그건 절대로 더 싫다.ㅎㅎ

그때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 사는 커리어우먼' 이었을 것이다. 원룸이라도 혼자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했을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이런 생각조차도 길게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엄마를 보니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엄마는 까페가 유일한 쉴곳이라고 했다." (18쪽)
"엄마는 낯선 사람이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37쪽)
"아무도 없는 깊은 곳에 숨고 싶다고 했다." (41쪽)
지금은 온갖 까페들을 매일 돌아가며 전전할 수 있는데, 아이들 취학전에 양손에 한명씩 잡고 다니며 동네 던킨을 지나다가 그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런데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고급 브런치 레스토랑도 아니고 베이커리 카페도 아닌 동네 지하철역의 던킨 앞에서 그런 생각을 내가 했었다....

이 책의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장면으로 책이 시작된다. 집에는 아빠와 아이가 남았고, 아이가 화자다. 아이는 엄마가 했던 말들을 회상했고 자신이 아는 엄마를 아빠한테 얘기해주기도 한다. 마지막쯤에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가 나온다.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일까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시도하지 못했지만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 엄마가 누운 곳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 독자는 휴우~ 하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이 '도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이 엄마의 도망을 응원하는 건 '만성 도망'이 아니어서다.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회피도 아니어서다.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어쩜 저렇게 자식이랑 있기를 싫어할까 싶은 엄마들을 종종 보았다. 숨쉴 구멍을 아예 차단한 경우와 도망이 만성이 된 경우 둘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간이 있어야지. 이 집의 엄마처럼.

평상시에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애쓰고 밀도 높은 시간들을 살아내고, 축적해둔 여유들을 모아 가끔 한번씩 '도망'을 가길 추천한다. 남편찬스가 가장 좋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서로 찬스가 되어주는게 좋겠다. 뭐든 일방적인 건 좋지 않으니까. 조부모찬스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복이 많은 이들이다. 나는 아직 해당사항이 없지만서도 언젠가 해당이 되는 날이 오면 이 찬스에 투입될 수 있길 바라며 내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이 책의 엄마가 평소 얼마나 마음을 다했는지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알 수 있다. 아이는 정교한 말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엄마의 속마음과 진짜 모습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엄마의 한숨과 눈물까지도. 평소 엄마와 얼마나 밀접한 사이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외로워하지 않고 엄마를 기다릴 수 있다. 엄마의 회복은 이 아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며칠 힘들긴 했겠지만 아빠를 위해서도.

인생의 특정 시기에 주어진 빡셈을 아예 회피할 수는 없다. 그게 싫다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 일이다. 하지만 한계로까지 밀어부쳐지기 전에 이렇게 숨통을 틔우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걸 서로서로 해줄 수 있는 우리라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되겠지.
오랜만에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듣고 싶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캬. 명곡이다. 이 책도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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