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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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리뷰를 쓴 기억이 거의 없다.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다. 토지, 태백산맥, 혼불 등의 대하소설들을 읽은 건 젊을 때였고, 이제는 그렇게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독서를 잘 못하겠다. 게다가 필요를 따지는 성향이 강해서인지 나이들면서 내 독서는 어린이책과 교육도서로 범위가 좁혀졌다.

그래도 너무나 유명한 이 작가의 <7년의 밤>은 읽었다. 그 책은 읽으면서도 힘들고 읽고 나서도 힘들었지만, 중간에 놓을 수는 없었다. 대단한 작가라 생각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가 "이 작가 책 또 나오면 갖다다오" 부탁하셔서 다른 책들도 빌려다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 이 책이 나온 걸 봤는데, 소설을 다시 읽겠다고 작심한 건 아니지만 끌렸다. 이름 때문인가. 이름 끝자라 내가 많이 사용하던 이름.

진이는 사람이름이고 지니는 동물 이름이었다. 영장류 중에서 보노보라는 동물. 진이는 사육사다. 이런 대목을 보아도 나는 작가들한테 감탄하곤 한다. 내가 경험의 폭이 좁아서인지, '아니 자기 경험 밖에 있는 세계를 어떻게 이렇게 속속들이 알수가 있지? 얼마나 취재를 했길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머리속에서 그려낼 수 있는, 남녀가 서로 팔자를 꼬고 꼬는 피곤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들지 않던 존경심이 이럴 때는 든다.

잘은 모르지만 이 작가의 작품 중에 판타지가 들어간 작품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것도 흔하디흔한 '체인지'류의 설정이라니. 이건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고 내가 읽어본 동화만 해도 몇 권 꼽을 수가 있을 정도인데... 그러나 읽다보면 이거 흔하잖아 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진이의 사고 장면, 지니의 몸 속에서 진이의 의식이 깨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 감탄이 나온다. 겪어봤어도 이렇게 묘사하긴 어렵겠다.... 라는. 누구나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를 다루는 수준은 엄청난 차이가 있구나.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세상엔 작가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확히 말하면 '체인지'가 아니었다. 사경을 헤매는 진이의 육신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지니의 육신에 의탁했을 뿐이다. 지니의 육신은 진이의 뜻을 따랐다가 지니의 본모습으로 돌아갔다가 양쪽을 오간다. 지니의 정신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도 마치 들여다보듯 묘사가 되어있다. 내가 이런 설정에 현실적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릴만큼.

불법 포획되어 팔리고 학대받는 동물들(이 책에선 보노보 지니), 그리고 침팬지 엄마라고 불릴만큼 그들과 교감했지만 신변의 위협 앞에 돌아섰던 진이, 긴 시간이 흘러 운명처럼 만난 두 존재. 비슷한 소재의 작품은 많이 있겠지만 이처럼 가슴 조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또 강인하지만 홀홀단신인 진이, 그리고 얼떨결에 그 영혼의 일을 돕게 된 부적응 백수 노숙자 민주. 철저히 외로웠던 두 남녀사람의 우정도 아름답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영원히 간직할.

누구나 혼자 떠난다는 면에서 그리 애탈 것은 없지만 여러겹의 외로움과 싸우며 버티던 저 젊은 인생이 저렇게 떠난다는 게 가슴아팠다. 하지만 다행이다. 그녀의 의식은 깨어 지니를 깊이 만나고, 또다른 외로운 한 사람 민주와 짧고 멋진 동행을 했으니.

선이 굵고 거친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선 예외적으로 곱고 여린(?...표현할 말이 잘 생각 안 남) 작품이라는 평인 듯하다. 가슴이 아려오긴 했으나 읽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아.... 소설도 읽고 싶구나. 하지만 모드 전환이 쉽지 않은 나는 일하면서 소설도 읽고 이런게 잘 안된다. 월급받는 일만 해도 지쳐버리는 저질체력이라서 말이다...ㅠ 이제 휴가 막바지다. 일할 땐 진이처럼 일하고 싶다. 전문적이고 강인하게. 때로는 누군가의 '다정한 그녀'가 되면서.(이 책에서 그 누군가는 영장류센터의 침팬지들) 그러고 싶다는 거지. 희망사항....;;;; 휴가의 유일한 소설 잘 읽었다. 이제 다음 휴가를 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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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8-1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진맥진이란 닉은 실제로 그렇게 될수 있어요.ㅎㅎ
닉넴을 건물주로 해야 자기의 무의식이 그런 방향으로 나간다네요.
내가한 말이 아니고 허지원인가 확실하진 않지만 심리학 교수가 쓴책에 그렇게 되어있더군요.

기진맥진 2019-08-19 23: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긍정적인 자기예언이 중요한데.... 어쩌다보니....ㅎㅎ
다른데서는 안쓰고 요기 알라딘에서만 써요.^^
 
내 마음 배송 완료 동화는 내 친구 89
송방순 지음, 김진화 그림 / 논장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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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방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다. 정말 죄송하게도 성함이 옛날분 같아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책을 펼쳤던 것 같다.(나도 참...^^;;;) 그런데 내용이나 문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간결한 문장, 실제적인 대화, 그리고 현실 가족의 문제를 다룬 내용.

송이는 참 서럽다. 부모님이 헤어져서 엄마랑 둘이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엄마는 송이를 더 애틋하게 보살피기는 커녕 거의 방치상태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돌아와도 먹을 것을 챙겨주기보단 리모컨을 들고 홈쇼핑에 빠져든다. 그렇다. 엄마는 홈쇼핑 중독이 됐다. 현관엔 뜯지도 않은 택배 박스들이 쌓여간다.

사실은 어른들도(아니 어른들이 더?) 중독에 취약하다. 마음이 외롭고 허할수록 더욱. 송이엄마가 송이를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강인하게 버틴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송이가 좋아하는 남친 형찬이랑 엄마들을 흉보며 나누는 대화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 엄만 맨날 운동만 하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수영, 헬스, 달리기까지.... 지쳐서 쓰러질 것 같다니까."
"너희 엄만 운동을 정말 좋아하나보다."
"그게 아니라 집에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여 숨이 막힌대. 그래서 이 운동 저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거래."
"그래? 우리 엄만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쇼핑을 하는 거라던데. 하여튼 어른들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정말 이상해."
(나는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혼자 까페콕하고 쉬기.... 이정도면 누구한테 피해 안줄 정도는 되려나?)
이 와중에 아이가 별 수 있겠나. 게임에 빠지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몰라보게 살이 쪄가는 송이. 사실 이정도도 대견하게 잘 버티고 있는 거긴 한데.

갈등 단계로 들어가며 이야기는 판타지가 된다. 송이가 쇼핑호스트를 따라 '쇼핑천국' 안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결국에는 엄마를 판매품으로 내놓게 되는데.... 엄마가 팔렸다가 반품, 이어서 송이가 팔렸다가 반품.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체험들, 그 후의 화해 등은 좀 뻔한 공식인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히긴 했다.

택배가 왔다. 또~? 마지막으로 온 이 택배는 아빠한테서 온 택배였다. 이 택배를 보는 엄마와 송이를 보니 판타지를 통과한 두 사람이 달라진 것이 확 느껴진다. 서로의 세상에 빠져서 같은 공간에 있으나 각각 홀로였던 모녀는 이제 생활을 공유한다. 판타지였긴 하나 이런 계기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자식을 위해서 산다며 매달리는 부모도, 자식과 다른 세상에 홀로 들어가버린 부모도 모두 자식에겐 괴로움과 슬픔이다. 적당한 공유.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필요하다. 시간도 공간도 활동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제목에 있겠지. "내 마음 배송 완료."

엄마들이 읽어봤으면 좋을만한 책이지만 판타지와 여러 흥미있는 설정들 때문에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4,5학년 정도에 적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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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8 친구 - 2019 가온빛 추천그림책 모두를 위한 그림책 18
다비드 칼리 지음, 고치미 그림, 나선희 옮김 / 책빛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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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이어서 도서실 근무를 하고 있다. 몇 년 전엔 방학때 도서실에 와서 한 시간 이상 책을 읽다 가는 아이들에게는 도장을 찍어주었고, 도장을 많이 모은 아이들은 개학하고 상을 주었다. 아주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시간 따져서 도장 찍어주랴, 진정한 독자가 아닌 등떠밀려 온 아이들은 왔을 뿐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에 그 아이들 관리하랴, 너무 힘들게 당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행히 도장과 시상은 없어졌다. 그러자 아주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빠져버렸다. 서너명 오는 게 고작이다.ㅠㅠ 그치만 한가한 도서실에서 근무할 때 좋은 게 있다. 그림책을 맘대로 꺼내놓고 펼쳐보는 것이다. 그림책들을 집으로 들고 가자니 어깨가 걱정되므로... 오늘도 그림책 서가 앞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뺐다 꽂았다 한다.

 

아주 작은 판형의 그림책이 큰 책들 사이에 끼어있고 제목은 뜻을 알 수 없는 숫자 4998... 궁금해서 꺼내 펴보았는데 한 두장을 넘기자마자 하하 웃게 되었다. 5000에서 둘 빠진 숫자. 나도 가끔 5000이 가까워져서 페친 정리한다는 분들의 글을 읽을 때가 있다. 나는 200여 명 정도 되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100명까지만 해야지했다가 ‘200명 넘으면 넘는 만큼 줄여서 200을 유지해야지했다가 그것도 어려워서 지금은 ‘300만 넘지 말자하고 있다. 사실 200이건 300이건 크게 의미있는 숫자는 아니니 별 상관이 없긴 하다.^^;;;

 

앞에서 말한 도서실 손님들 중 진정한 독자를 뺀 대다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어머니들, 억지로 도서실에 보내실 거면 휴대폰은 빼고 보내셔야죠. 집 아닌 도서실에서 휴대폰을 하는 것뿐이자나요...;;;) 이 책의 아이도 첫장부터 끝장까지 휴대폰을 보고 있다,

 

내 친구는 4998명이나 돼요. (ㅎㅎㅎ 많이도 맺었구나.)

그런데 그중에 3878명은 여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럼 천명은 만났다는 건데 그것도 대단하다.)

661명은...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공감. 숫자는 다르지만 나도 그래요.^^)

78명은 내 생일도 잊어버렸고요, 내가 생일을 잊어버린 친구도 89명이나 돼요. (난 생일 그런거 부모님과 자식 외에는 전혀 몰라요.ㅋㅋ)

122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메시지에 댓글을 달지 않아요.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

친구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내가 도와 준 친구는 33명이에요. 하지만 그 뒤에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요. (SNS에서의 도와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청원에 동의하거나, 질문에 답을 해 준 적은 있음)

내가 도와 달라고 하자 38명이 돕겠다고 했어요. (도와달라는 말 자체를 하기가 어렵다. 질문을 하고 도움되는 답변을 받은 적은 있음)

 

그러나 정작 집에 온 친구는 한 명뿐이었어요. (이게 핵심!!!)

이 친구와 둘이 앉아 피자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딱 붙어 앉아 함박웃음을 웃으며.....

같이 휴대폰을 한다.ㅎㅎㅎㅎㅎㅎㅎ 에고, 나가서 공을 차거나 책을 읽으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나.ㅋㅋㅋㅋ

5000에서 둘 빠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현대인의 관계 문제를 이야기하는 아주 작고 짧은 그림책이다. 책의 인물이 어른이 아니고 아이인 것은 그림책이라서기도 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관계도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허상의 관계들. 실친이 부족한 사람들은 SNS친으로 그 관계를 메꾸지만, 이 책에서처럼 내 눈 앞에 나타날 친구는 과연 있을까? 물론 실친이라 할지라도 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가끔은 실친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곁에 있지 않은 SNS친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으니. 그리고 적당한 관심과 격려를 받을 수도 있으니. 그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만, 그래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 폰 없이 살 수 없고 머리에서 한 쪽 끈이 늘상 폰에 연결되어 있다면 이미 빨간 불!! 뭐든 적당히란 왜이리 어려운지. 고학년 아이들과 읽어본다면 꽤나 술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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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김현수 지음 / 해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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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선뜻 손에 잡아지지 않았다. 그래, 요즘 아이들 힘들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근데 무슨 방법이 있겠나? 이런 생각이었을까? 읽고나면 더 시름이 깊어지는 책을 읽고 싶지가 않다. 그나마 하던 것마저 더 자신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래도 방학이니 독서 리스트에 넣고 한번 읽어 보았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다. 마음이 아픈 수많은 아이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이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말해야 될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마음 '고생'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자세히 얘기했다. '고생'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고생없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문제는 지금의 고생이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그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고생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서문에 이 호소가 담겨있다.
"우리 아이들이 겪는 현재의 고생과 괴로움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인들과 우스개로 주고받는 '이생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깨닫고 심장이 떨렸다. 난 부분적으로 잘안되는 부분을 얘기할 때,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이생망이야"하면서 웃곤 했는데 아이들에겐 그정도 개념이 아니었다. 아직 생의 반의 반도 살지 못한 아이들에게 남은 생에 대한 동력을 모조리 빼앗아버리는 무서운 말. 이생망.

마음 속으로 한 번 망한 생애를 다시 되살리기란 참 어렵습니다.(95쪽)

아이들이 이생망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그들의 책임은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차단된 사회, 그걸 알고 있는 부모들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결과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부모들은 그자리를 자식 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불리한 위치의 부모들은 조금 더 올라서거나 적어도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죽자사자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초등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불어넣는다. 이 와중에 본인들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처를 아이들에게 주고 서로의 관계는 멀어진다. 반대편에선 자신의 생도 추스리지 못하는 부모가 있고, 그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학대를 자식들에게 가한다. 얼마전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를 봤다. 드러난(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참혹한 현실이 세상에는 많다고 한다. 그 현장에 내던져진 아이들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그들에게 건강한 삶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는가?

이 책이 말해주는 전자의 부모들을 보고 난 불안해졌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겠다고 강조한 것들이 부모들의 욕심과 조급증에 기름을 붓고 정당성을 더욱 부여해준 적은 없었을까. 그랬다면 그 아이는 부모와 함께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휴식과 숨쉴 구멍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일 수는 없지 않나. 어떤 아이에게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격려의 외침이, 어떤 아이에게는 마음의 여유와 안식이 필요하다면 난 그걸 어떻게 분별하고 상황에 따라 해줄수가 있을까.
후자의 부모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으니 난 사실 아주 편한 교직생활을 해왔으며 인생의 쓴맛을 거의 못봤다고 하겠다. (드러나지 않아서 못본 것일수도) 이런 아이들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나 말이 뭐가 있을까. 아득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저자가 걱정하는 아이들의 모습 중 일부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가심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홀로를 자처하는 모습이나 경험의 폭을 축소하여 그 안에 나를 가두는 모습이.... 그러니 나는 자식들이 나를 안 닮은 걸 고마워 해야되나....ㅠ 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또한 남의 인생에 개입하거나 개입당하기 싫어하고 고통스럽고 오래걸리는 공감은 피하고 싶은지라 이들의 상담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아이들이 이러하다는 사실을 알고 몇가지 조심할 점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

- 일단 한 편이 되어주세요. 그 다음에 다른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은 괜찮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205쪽)
- 압박하거나 채근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어른의 역할은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호들갑이 가장 힘들고 짜증나는 반응 중 하나랍니다. (206쪽)
-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아주세요. (연결의 역할. 이거라도 할 수 있다면 덜 미안할 듯) (206쪽)
- 부모부터 생기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도 어른을 보고 삶이 그저 생존하기 위한 것,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함께하고 기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압니다.... 그저 자식 하나 잘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부모의 인생을 제한하지 마세요. (224쪽)

심히 공감한 부분
- 타인들의 행복과 후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부터, 오늘 하루 사회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타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삶의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타인의 규정이나 집단의 인정에 달린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뭔가 미련이 남아 꼰대같은 소리를 한다면, 아이들도 꿈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는 고생도 좀 감수했으면 좋겠고.(이 책 제목말고 좀 다른 차원의 고생) "지금의 진로교육은 바보같은 교육이에요. 요즘 아이들의 관심은 주로 이런 거예요." 라고 열변을 토하는 아이가 말해주는 걸 보니 더욱 걱정이다.
• 어떻게 화장품, 패션 쇼핑몰을 할 수 있을까?
• 어떻게 인기 BJ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까?
• 어떻게 사람 안 만나고 편히 살 수 있을까?
• 노래하면서 세계일주하고 쉬었다가 또 세계일주하고 그러면 안되나?....
이런 아이들의 욕구만을 들어준다고 좋은 세상이 올거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의사 판검사만 필요한게 아니듯이 연예인만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일들에 대한 가치, 그것에 대한 보상과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사회는 그것을 향해 가고 아이들은 노동의 가치와 감사를 배우며 건강하게 자란다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지. 가장 시급해보이는 내용을 옮겨적고 마치겠다. '아이들이 바라는 10가지 점화술'에서 마지막 10번째 내용이다.(259쪽)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헛고생, 헛수고를 조금이라도 줄여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억번 이상 이야기했듯이 이런 헛고생, 헛수고하는 공부로 인생을 무의미한 축제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불필요한 암기와 배배꼬인 문제와 줄세우기를 목적으로 하는 변별력만 뛰어난 현재의 입시제도를 한시바삐 없애주세요. 우리도 창조, 창의, 창발, 이런 용어가 들어간 활동도 하고, 고등학생이 책도 내고 중학생이 탐험도 나가고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단 한 번인 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살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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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캘러핸이라는 실존인물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전신마비 카툰 작가였다. 말그대로 '영화같은' 인생을 살다 갔다. 우리엄마보다 10년 젊으신데 10년 전 작고했으니 비교적 짧은 삶을 살다간 셈이다. 하지만 사는 동안 그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절망을 이겨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끝내 편해지지 않았다. 절망을 극복하기보다는 아예 절망하지 않기를, 역경을 이겨내기보다는 아예 역경이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쫄보인생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3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수 있음)
1.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2. 빨간머리다.
3. 학교 선생님이었다.(엥....)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저를 원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는 버려졌고 입양되었고 그곳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다. 그는 일찍부터 술담배를 했고 알콜중독자가 됐다.

상처받은 짐승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그동안 받아마땅했던 모든 사랑과 위로와 관심과 어루만짐이 있어야 그 몸부림이 잦아든다. 그제서야 우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차분히 말을 건넬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걸 알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 그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의 짐승 몸부림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금단증세로 덜덜 떠는 손으로 병째로 술을 들이키고, 비틀거리며 걷고 아무말이나 하고 아무나 만나 위험한 일에 빠져들고... 만취된 두 사람이 차로 걸어갈 때 알아차렸다. 아 저렇게 해서 사고는 일어나는구나....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병원에서의 시간, 온몸이 고정되어 겨우 말만 할 수 있는 그가 자원봉사자인 아누와 나누는 얘기가 너무 처절했다.(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 남)
"하나님께 말한다면, 제발 마비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악마에게 말한다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으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미 그의 척추는 부서져 전신이 마비된 상태. 퇴원한 그는 휠체어에 앉아 방문간병인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그 끔찍한 변화에도 알콜중독만은 그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는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간다. 집단상담 같은 모임인데 인도자인 도니와의 대화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주옥같은 대사가 오고가는 동안 깜빡깜빡 졸아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사를 많이 놓쳤다.;;;; 존은 도니가 제시한 12단계 프로그램을 하나씩 실행해나간다. 그와중에 환상속의 엄마를(그토록 원망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보고 음성을 듣기도 하고, 음주운전으로 자신을 이꼴로 만든 친구를 만나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때 그의 표정이 정말 편안해 보였다. 타인과의 화해(용서)는 그렇게 성공했다.

마지막 단계는 자신과의 화해(용서)일 터. 그는 이것을 무난히 해냈을까?

창피하게도 심각한 대화 도중 살짝 졸았던 이유는.... 이 영화는 극적인 역경극복 스토리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나고 막 감격스럽고 그렇지는 않다. 그냥 그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는 용서했다. 어쩌면 용서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우니까. 케이트 디카밀로의 동화 <생쥐기사 데스페로>가 생각났다. 데스페로가 자신을 버리고 사지에 밀어넣은 아빠를 용서할 때 작가가 뭐라고 했더라? 


["아빠, 아빠를 용서해요"
데스페로는 그 말을 하는 것이 가슴이 둘로 쪼개지지 않을 단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단다. 얘들아, 데스페로는 자기 자신을 구하려고 그 말을 한 거야.]

그렇게 존은 자신을 구했다. 영화 전반에 걸친 그의 표정변화는 동일배우라 믿기 힘들 정도로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타락한 짐승일 때의 표정-사고로 절망할 때의 표정-쓸쓸한 표정-체념한표정-편안한 표정-복잡한 표정-그리고 사랑과 기쁨의 표정도.

다시 본다면 그의 카툰 내용에 집중하고 싶다. 시각정보에 약한 데다 졸기까지해서 카툰 내용까지는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사고와 처지에 대한 감정이입이 심해서 참 힘들게 영화를 봤다. 그는 용서하고 편안해졌는지 몰라도 내 상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난 '스페셜'하지 않아도 좋으니 '워리'하지 않게 살고 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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