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김현수 지음 / 해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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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선뜻 손에 잡아지지 않았다. 그래, 요즘 아이들 힘들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근데 무슨 방법이 있겠나? 이런 생각이었을까? 읽고나면 더 시름이 깊어지는 책을 읽고 싶지가 않다. 그나마 하던 것마저 더 자신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래도 방학이니 독서 리스트에 넣고 한번 읽어 보았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다. 마음이 아픈 수많은 아이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이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말해야 될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마음 '고생'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자세히 얘기했다. '고생'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고생없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문제는 지금의 고생이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그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고생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서문에 이 호소가 담겨있다.
"우리 아이들이 겪는 현재의 고생과 괴로움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인들과 우스개로 주고받는 '이생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깨닫고 심장이 떨렸다. 난 부분적으로 잘안되는 부분을 얘기할 때,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이생망이야"하면서 웃곤 했는데 아이들에겐 그정도 개념이 아니었다. 아직 생의 반의 반도 살지 못한 아이들에게 남은 생에 대한 동력을 모조리 빼앗아버리는 무서운 말. 이생망.

마음 속으로 한 번 망한 생애를 다시 되살리기란 참 어렵습니다.(95쪽)

아이들이 이생망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그들의 책임은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차단된 사회, 그걸 알고 있는 부모들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결과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부모들은 그자리를 자식 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불리한 위치의 부모들은 조금 더 올라서거나 적어도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죽자사자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초등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불어넣는다. 이 와중에 본인들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처를 아이들에게 주고 서로의 관계는 멀어진다. 반대편에선 자신의 생도 추스리지 못하는 부모가 있고, 그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학대를 자식들에게 가한다. 얼마전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를 봤다. 드러난(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참혹한 현실이 세상에는 많다고 한다. 그 현장에 내던져진 아이들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그들에게 건강한 삶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는가?

이 책이 말해주는 전자의 부모들을 보고 난 불안해졌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겠다고 강조한 것들이 부모들의 욕심과 조급증에 기름을 붓고 정당성을 더욱 부여해준 적은 없었을까. 그랬다면 그 아이는 부모와 함께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휴식과 숨쉴 구멍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일 수는 없지 않나. 어떤 아이에게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격려의 외침이, 어떤 아이에게는 마음의 여유와 안식이 필요하다면 난 그걸 어떻게 분별하고 상황에 따라 해줄수가 있을까.
후자의 부모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으니 난 사실 아주 편한 교직생활을 해왔으며 인생의 쓴맛을 거의 못봤다고 하겠다. (드러나지 않아서 못본 것일수도) 이런 아이들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나 말이 뭐가 있을까. 아득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저자가 걱정하는 아이들의 모습 중 일부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가심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홀로를 자처하는 모습이나 경험의 폭을 축소하여 그 안에 나를 가두는 모습이.... 그러니 나는 자식들이 나를 안 닮은 걸 고마워 해야되나....ㅠ 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또한 남의 인생에 개입하거나 개입당하기 싫어하고 고통스럽고 오래걸리는 공감은 피하고 싶은지라 이들의 상담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아이들이 이러하다는 사실을 알고 몇가지 조심할 점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

- 일단 한 편이 되어주세요. 그 다음에 다른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은 괜찮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205쪽)
- 압박하거나 채근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어른의 역할은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호들갑이 가장 힘들고 짜증나는 반응 중 하나랍니다. (206쪽)
-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아주세요. (연결의 역할. 이거라도 할 수 있다면 덜 미안할 듯) (206쪽)
- 부모부터 생기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도 어른을 보고 삶이 그저 생존하기 위한 것,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함께하고 기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압니다.... 그저 자식 하나 잘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부모의 인생을 제한하지 마세요. (224쪽)

심히 공감한 부분
- 타인들의 행복과 후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부터, 오늘 하루 사회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타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삶의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타인의 규정이나 집단의 인정에 달린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뭔가 미련이 남아 꼰대같은 소리를 한다면, 아이들도 꿈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는 고생도 좀 감수했으면 좋겠고.(이 책 제목말고 좀 다른 차원의 고생) "지금의 진로교육은 바보같은 교육이에요. 요즘 아이들의 관심은 주로 이런 거예요." 라고 열변을 토하는 아이가 말해주는 걸 보니 더욱 걱정이다.
• 어떻게 화장품, 패션 쇼핑몰을 할 수 있을까?
• 어떻게 인기 BJ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까?
• 어떻게 사람 안 만나고 편히 살 수 있을까?
• 노래하면서 세계일주하고 쉬었다가 또 세계일주하고 그러면 안되나?....
이런 아이들의 욕구만을 들어준다고 좋은 세상이 올거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의사 판검사만 필요한게 아니듯이 연예인만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일들에 대한 가치, 그것에 대한 보상과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사회는 그것을 향해 가고 아이들은 노동의 가치와 감사를 배우며 건강하게 자란다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지. 가장 시급해보이는 내용을 옮겨적고 마치겠다. '아이들이 바라는 10가지 점화술'에서 마지막 10번째 내용이다.(259쪽)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헛고생, 헛수고를 조금이라도 줄여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억번 이상 이야기했듯이 이런 헛고생, 헛수고하는 공부로 인생을 무의미한 축제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불필요한 암기와 배배꼬인 문제와 줄세우기를 목적으로 하는 변별력만 뛰어난 현재의 입시제도를 한시바삐 없애주세요. 우리도 창조, 창의, 창발, 이런 용어가 들어간 활동도 하고, 고등학생이 책도 내고 중학생이 탐험도 나가고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단 한 번인 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살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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