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학교 만들기 - 인디스쿨 함께 쓰는 책 프로젝트 1
공창수 외 지음 / 지식프레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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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라는 책을 읽고 깊이 공감했다. 요즘 아이들의 병적인 현상은 그 원인이 모두 놀이의 결여에 닿아있다.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거나 육체적 정신적인 폭력을 즐기게 되어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만든다. 교실에서 교사가 해결해주기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교과전담이어서 다음 해에 2학년을 맡자마자 당장 실천을 했다. 학교가 근린공원과 맞닿아 있는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학교 시정표와는 다르게 맘대로 블럭수업을 하고 중간놀이 시간을 만들어 노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노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근린공원에 나가 일단 우유부터 마시고, 중앙마당에서 출발하여 근린공원을 한바퀴 뛰고, 그 다음은 고무줄놀이, 경찰과 도둑놀이 등 그때그때 아이들이 '꽂힌' 놀이를 중심으로 놀다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아쉬운 마음을 안고 교실로 들어와 나머지 수업을 했다. 통합교과 '봄' 수업을 할 때는 쑥을 캐서 쑥버무리를 해 먹고(공원에서 뜯은 쑥은 아이들 몰래 버리고 소요산 청정지역에서 시어머님이 뜯어오신 쑥으로 대체^^;;) '이웃' 수업을 할 때는 마을의 놀이터를 하루에 한 군데씩 순례하며 놀았다. '가을' 수업을 할 때는 이곳저곳 다니며 가장 이쁜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고 낙엽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겨울엔 바람개비를 만들어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고, 눈이 오면 당연히 눈놀이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지금도 이 때 아이들이 보고싶다. 교실에 찜통을 걸고 쑥버무리를 쪄서 한 쪽씩 떼어 주었을 때, "아잉~ 맛이가 이상해~" 이러다가 "음 그래도 맛있다." 짭짭 오물오물 먹던 아이의 이쁜 입이 생각난다. 별별 희한한 아이들이 많던 반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놀며 부대끼며 고생인 줄도 모르고 한 해를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일 년은 불법으로 점철된 한해였다는 것을...^^;;; 그리고 20년 경력의 40대 교사가 어찌 그리 무식하고 용감할 수가 있었던가 라는 것을....ㅠ 근린공원이든 어디든 학교 밖을 나가려면 결재를 득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생각했더라면 일년을 그렇게 놀며 보내진 못했을 것이다.


다음 해에는 3학년을 맡았는데, 나가 놀려면 결재를 득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은 데다가, 갑자기 늘어난 9개의 각각 이름 붙여진 교과를 공부하려니 좀처럼 놀 틈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또 있었으니, 다년간 수제작해 온 온갖 교구들과 틈틈이 사 모은 보드게임들이다. 창체 시간을 활용해 이것들을 가르쳐 놓았더니 아이들은 쉬는시간만 되면 모두 바닥에 깔려 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수업 종이 치면 정리시키고 수업을 시작하는 게 좀 어려웠을 뿐, 쉬는 시간을 활용한 놀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옆반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와도 아이들은 무사히(?) 놀이에 빠져 있었다. 난 흐뭇했다. 마치 놀이에 일가견이 생긴 교사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올해, 고학년을 맡았다. 첫날 내 소개에서 난 용감하게도 놀이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라고 날 소개했다. 아이들이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뭔가 불길한....?^^;;) 그랬다. 내 생각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놀이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냥 자유시간' 둘째는 '축구 아니면 피구' !


'그냥 자유시간'을 줄 수도 있다. 전의 아이들처럼 바닥에 깔려 잘 놀아준다면 말이다. 말하자면 내 의도대로 놀아주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얘네들은 달랐다. "절대로 너의 뜻대로 놀아주진 않겠어" 라는 듯이, 애써 마련한 그 수많은 교구와 보드게임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보통 쉬는시간 관리를 한 달 정도 하면 자리가 잡혀서 교실에서 꼬물꼬물 복작복작 보기 좋게 놀기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하루같이 관리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에 못 가게 할 수는 없으니 쉬는시간마다 신경쓰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마실나가는 것(복도나 남의 교실에서 다른 반과 뒤섞여 떠들며 노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많은 생활지도 문제가 발생했고 정말 골치가 아팠다. 이것 하나가 정착되지 않으니 아이들을 이뻐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첫 체육시간부터 이 아이들은 축구 아니면 피구를 하자고 했다. 그걸 너희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몇몇이 삐죽거리며 입이 댓발 나왔다. 줄 세우기부터 놀이로 진행했는데 반응이 별로,,,, 남은 시간을 술래잡기류의 몸풀기 놀이로 진행했는데 이건 최악이었다. 마치 "우리들을 뭘로 보고 이따위 시시한 놀이를...?"이라는 태도. 매주 잘 계획된 주간학습 안내를 나눠주고 거기에 준해 수업을 진행해 나갔더니 그제야 이해를 했다. 금요일에 주간학습 안내를 나눠주면 체육수업부터 살펴보고 "우와 다음주에는 발야구네~!"  "에잉, 다음 주는 소고춤이구나...." 이렇게 되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 한달간, 그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축구가 아닌 체육수업'을 진행하는 동안의 삐걱거림은 내게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한 학기 내내 학급운영이 껄끄럽고 힘들었다. 모든 수업에 앞서 체육수업을 철저히 준비했다. 한 달 이후로는 아이들도 체육수업에 순순히 즐겁게 잘 따라왔다. 그래도 그 한 달의 삐걱거림의 여파는 오래 갔다. 놀이에 대한 자신감은 그냥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졌다.


놀이에 한한 한, 나의 한계를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학년들 앞에서는 그 한계가 발현되지는 않았다. 편해문 선생님의 주장처럼 아이들은 그저 텅빈 시간을 놓아주면 창조적으로 잘 놀았다. 나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이쁘고 즐거웠다. 하지만 고학년은 좀 달랐다. 이 아이들은 이미 많이 굳어있다. 놀이의 창조성은, 한참동안 놀이로 말랑하게 풀어주어야 그제야 발휘되는 것 같다. 그때까지는 교사의 리더십과 운영의 묘가 많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 점에서 많이 미숙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한계. 내가 아이들을 '놀려' 줄 수는 있으나 함께 '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 안타깝다.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읽고 끄적거리고 온갖 상상놀이를 하며 '조용히' 놀았다. 몸을 쓰는 놀이를 즐기지 않았다. 어릴 때도 즐기지 않았던 놀이를 40이 넘어 무슨 수로 즐기겠는가? 가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오지랖 쩌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는데, 나한테는 그냥 이게 놀이다. 각자 자기에게 놀이인 것을 하고 놀면 되는 것을. 어쩌다가 놀이까지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온갖 세심함으로 함께 놀아주어야 되는 세상이 되었을까? 우리 어렸을 때 선생님은 그런거 안해주셔도 우린 잘 놀았고 앞날 미리 걱정하지 않고 날마다 즐겁고 행복했었는데.... 이런 한탄은 사실 의미가 없고, 이 시대는 이게 필요하니 어찌됐건 난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은 이런 한계와 난관에 봉착한 나에게 많은 참고가 되겠다. 이 저자들의 '학교야 놀자' 책도 가지고 있고 가끔 활용하곤 했는데, 이 책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아이디어도 넘치고, 활용도도 높다. 특히 체육수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팁들이 많이 들어 있고, 체육과 역사를 결합한 역사 RPG게임은 초등교사들의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라 뿌듯하고도 반갑다.


책을 읽다보니 놀이의 고수인 이 책의 저자분들도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놀이수업을 자기 것으로 만드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는 문제점의 불거짐-난관-해결의 과정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난관 속에서 헤매고 있듯이 말이다. 왜 뭐하나 쉬운게 없을까? 놀이까지도 이렇게 노력해야 하나? 라는 한숨이 살짝, 나온다. 놀이란 건 저절로 돼야 되는거 아니야? 우린 어렸을 때 누가 가르쳐 줬었나?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맞다. 우리 어릴 땐 결핍이 아니었고 이 아이들 시대는 결핍이다. 그러니 애써서라도 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이 글을 끝내고 난 다시 정독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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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품은 바다 이야기 생각을 더하는 그림책
키아라 카르미나티 글, 루치아 스쿠데리 그림 / 책속물고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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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바닷가에 나가 보거나, 배를 타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것도 잠시, 난 두려움에 젖어든다. 비가 많이 와 불어난 중랑천만 봐도 가슴이 탁 막혀올 만큼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바다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곳.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정이 일차적으로 두려움이라면, 그 이후는 동경이다. 난 바다를 친숙하게 느낄 수는 없는 사람이라 좀 유감이지만, 그곳이 보금자리인 생명들에게는 얼마다 자유롭고 소중한 공간일지를 생각해본다. 제돌이가 잡혀와 수조 안에 갇혀서 인간이 요구하는 묘기를 부리며 살아야 했을 때 얼마나 불행했을지, 지금 자유로워진 제돌이는 그 바다의 품에서 얼마나 행복할지.


이 책을 정보그림책으로 분류하는 게 맞을지 좀 헷갈린다. 바다 속 생명들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정보그림책으로 손색이 없다. 바다수세미와 같은 해면동물들, 흩어지지 않는 멸치떼의 대열, 동물과 식물의 특징을 모두 가졌지만 동물로 구분되는 산호, 소라게들과 쌍으로 움직이는 말미잘, 모통에 비해 입이 작아 빠른 속도로 헤엄쳐야만 하는 참치 등....


그러나 매 장마다 저명한 작가들이 쓴 바다에 관한 구절들이 함께 구성되어 있어 이 책은 단순한 정보그림책이라 하기엔 매우 문학적이고 감각적이다. 첫장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 나오는 한 구절이 들어있다. 네모선장의 말이다.

 "나는 바다를 사랑합니다.

바다는 지구의 10분의 7을 뒤덮고 있어요.

넓디넓은 사막 같지만 가까이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절대 혼자라고 느끼지 않아요.

바다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끝없는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네모 선장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했었던 것 같다. 아로낙스 박사가 구조된 후, 행방과 생사를 알 수 없는 네모선장과 아틸러스호를 뒤로 한 채 책을 덮어야 했을 때의 가슴아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었던 바닷속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도.


더 나아가 이 책은 거북이 페이지에서 우리가 버린 비닐을 먹고 거북이가 죽기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나를 지켜야 해! 그것이 너희를 지키는 길이니까!" 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남기기도 한다.


그림도 색채도 아름답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바다에 대한 환상에 젖어보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그 환상과 내가 버리는 쓰레기 한 장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시원한 판형으로 바다에 대한 많은 느낌을 담은 이 책. 아이들이 많이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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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유령 크니기 - 2011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선정 토토의 그림책
벤야민 좀머할더 글.그림, 루시드 폴 (Lucid Fall) 옮김 / 토토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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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를 보고 책을 선택해보기는 처음이다. 루시드 폴? '고등어'와 '레미제라블'과 '햇살은 따뜻해'를 부른 그 가수 루시드 폴? 알고보니 이 사람은 노래가사만 감각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번역에다 직접 책을 쓰는 작가이도 하구나.... 어찌됐든 그렇게 나는 이 책을 골랐다.

 

검정색 매직 하나만 있어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그림과 무채색의 배경... 검정 보자기를 뒤집어 쓴 듯한 주인공 크니기가 보인다. 크니기는 생일에 이모한테서 책을 선물받는다. 근데 그 책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텅 비어 있었다. 크니기는 속상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더 두꺼운 책들도 찾아보았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포기한 크니기가 잠든 사이에 책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곧이어 책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무늬들과 빛깔들..... 크니기가 온갖 상상을 하자 그 모양과 색깔들은 제작기 자리를 잡고 책장 하나하나를 그득히 물들인다.

 

명쾌한 주제를 마지막 장에서 던져준다.

"책은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었어요"

 

아침 독서 시간에 책을 읽는 아이들을 지켜본다. 형형생색의 이미지들 가운데에서 행복한 헤엄을 치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런가하면 '까만건 글씨고 하얀건 종이지? 읽으라니까 펴놓고는 있는다.'라는 듯이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부여잡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교실 시계의 바늘을 눈으로 끌어올릴 듯 책이 아닌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책상 위에 누구나 책을 펴놓고 있지만 그것은 다 같은 책이 아닌 것이다.

 

텅 빈 책을 넘기고 있는 아이들의 눈에, 그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은 언제 보이게 될까? 이 책을 보여준다고 그게 보일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함께 읽고 말해주고 싶다. "책은 눈과 마음이 함께 읽는 거란다. 그래야 이야기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서 살아 숨쉬지. 그럼 넌 인생의 행복 하나를 얻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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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몰라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규칙 생각을 더하면 5
게라르도 콜롬보.마리나 모르푸르고 지음, 일라리아 파치올리 그림 / 책속물고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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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사람들(어린이들 포함)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이라는 것이 장점이고.... 그러나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는 점이 단점이라 하겠다. 책을 읽으며 맞아, 그 때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였어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목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5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내밀었을 때 몇 장 읽고 덮지 않을 아이를 머리에 떠올려보니 딱 한 명 있다. 우리반에서 별명이 '브레인'인 아이. 사회시간에 아이들이 전혀 모르는 '전문용어'로 발표를 하는 그 아이. 매사에 의미를 깊이 따지는 그 아이.


나머지 아이들을 상상하니...^^ 그림도 흥미롭고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일단 손에 잡을 수는 있겠지만, 중간을 넘길 아이는 없어보인다. 내용의 훌륭함을 따져볼 때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구성과 서술을 달리해서 일단 아이들이 읽어낼 수 있게 만들어졌으면 참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긴 해도 어쨌든 내게는 꽤 괜찮은 책이었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규칙과 배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들이 규칙을 지켜야 할 이유에 대해서 '어기면 혼나니까' 정도로 인식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어떻게 가르쳐야 그렇게 될까? 그런 고민에 이 책을 일정 부분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수직사회와 수평사회에 대한 비교와 설명이 참 인상깊었다. 내가 속한 작은 사회부터(이를테면 학급) 수평사회로 만드는 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실천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힐 자신은 없지만 이 책의 정신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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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당연한 말이다. 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게 아니다.

소통하며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거야!" 라고 피를 토하듯 외치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처에 있다. 정치판에도 있고, 온라인에도 넘친다. 동료들 중에도 있고 상사들 중에도 있다.

 

아이들은 어떨까? 올해 우리반에는 그런 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쑤셔대는 비수로 상처받거나 빈정 상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담임인 나도 그 중의 하나라면 믿으려나? 그런가 하면 이 아이를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들도 꽤 된다. 운동을 잘하고 웃기기도 해서 주로 드센 남자아이들의 구심체 역할을 한다. 그뿐이 아니라  여자아이들 중에도 때론 상처받으면서조차 이 아이를 미워하지 못하는 가련한 녀인네들이 있다. 소위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청순가련형 녀인들이다. 난 젊었을 때부터 이런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가슴을 감싸안고 쓰러지면서도 이 아이에 대한 애정을 놓지못하는 녀인네들을 보니 솔직히 속이 터진다. 

 

이 아이는 쌍시옷이나 쌍기역이 들어간 소위 쌍욕들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는다. 대신에 "니 주제에~" "병신아 꺼져" "장애 찐따 같은게" 와 같이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막말들을 서슴지 않고 한다. 표정과 제스처까지 곁들이면 누구도 상처 안받고는 못배긴다. 오죽하면 어른인 나도 상처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위안이 있다면,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가끔은 "이 녀석도 어린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카리스마도 없는 담임인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때론 그 녀석의 투정에 공감도 해주고 솔직히 내 감정을 얘기해주기도 한다. "널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가졌다고 느꼈다. 이러저러이러저러 했을 때이다. 그렇게 하면 누구든 상처받는다. 나도 너무나 불쾌했었단 말이다. 그게 너의 의도는 아니지 않니? 그리고 그건 인간에 대한 예의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이 녀석은 날 무서워하지는 않되 일정선을 지키려 눈치는 보고 있는 중이다. 그게 고맙기도 한데.......

 

사건은 또 터졌다. 학급대항 운동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이 아이(A라고 하겠다)한테 받은 상처가 큰 B라는 아이가 있다. B는 특히 운동에 약하다. 같이 경기를 하면 좀 답답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이렇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도 감싸주고 격려하는 게 친구고, 반듯하고 배려있는 사람의 태도이지 않나?

연습을 할 때, 의외로 B가 크게 표나지 않게 그럭저럭 하고 있어서 안심을 했다. 그게 담임의 불찰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긴장한 B는 연습 때 하던 것의 반의 반도 못했다.  A의 다그침이 쏟아졌다. 욕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해! 저렇게 하라고! 와 같은 감정섞인 고함에 B는 그만 얼어붙었다. 마비된 사람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우리 팀은 당연히 패했다.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B의 심정이 참담했으리라. 몇몇 괞찮은 녀석들이 다가와 B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위로했다. B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아무래도 불안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도서실에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마침 국어도 말의 영향에 관련된 단원을 할 차례라 아이들과 함께 읽으려고 대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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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게 아니랍니다 / 엘리자베스 베르딕 / 지식더미

 

여러분의 말은 여러분의 것이랍니다.

무슨 말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말할지는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어요.

여러분의 말은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 줄 수도 있어요.

 

말은 상처를 주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 여러분을 상처받게 하는 말을 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도....

슬프거나,

몹시 화가 나거나,

겁에 질릴 거예요.

아니면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거나,

할 말이 없어지지요.....

 

다음날, 수업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1교시 쉬는 시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학교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단다....

이틀간 엄마랑 집에서 지내면서 쉬고 월요일에 등교하겠다고 한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이 아이가 받는 말의 상처를 완전히 차단해 줄 수는 없다. 이 아이의 환경을 무균실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은 그 어머니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저 나는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교육적으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국어시간이 되어 "오늘은 그림책으로 국어수업을 시작합니다"라고 했다. 이 책을 중간쯤 보여줬다. 그리고 어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얘기를 들었다. 이 책의 뒷부분으로 마무리를 했다. 너희들이 일부러 나쁜 말을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떤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줄을 알았으면 같은 상황에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당부했다. 아이들은 기운없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을 했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얘기를 듣던 A와 눈이 마주쳤다. 학기초에 보이던 반항적이고 불만이 가득한 눈빛은 사라져있다. 그런 눈빛이 이제는 내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 대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2년 전 얘기를 꺼낸다.(2년 전에도 A와 B는 같은 반이었고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아무도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자신은 억울하게 혼난 적도 많단다.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시는 당시의 담임선생님께 이 아이는 아직도 한이 맺혀 있다. 야, 그럼 제정신 박힌 선생이면 당연히 피해자 편을 들지 가해자 편을 들겠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일단 삼키고, 그 이야기는 우리 둘이 하자. 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문다. 울 듯한 표정이다. 조만간 이 아이가 쏟아놓는 말을 일단 무조건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당이 될까?^^;;; 모르겠다. 이런 바보같은 선생이 또 있으려나...........


스토리는 없이 교훈을 열거하는 방식의 이 책은, 평상시 같으면 그냥 넘겼을 책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니 이 책의 제목에 꽂히게 되었다. 무엇이 됐든 아이들의 수면에 작은 돌 하나 던져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어른들은(나는) 얼마나 말을 조심하면서 산다고..... 이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 그냥 제목만 기억하겠다. 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책을 읽어봐야 될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지만 그들이 내 말에 귀 기울일 일은 없으니, 나는 나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이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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