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당연한 말이다. 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게 아니다.

소통하며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거야!" 라고 피를 토하듯 외치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처에 있다. 정치판에도 있고, 온라인에도 넘친다. 동료들 중에도 있고 상사들 중에도 있다.

 

아이들은 어떨까? 올해 우리반에는 그런 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쑤셔대는 비수로 상처받거나 빈정 상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담임인 나도 그 중의 하나라면 믿으려나? 그런가 하면 이 아이를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들도 꽤 된다. 운동을 잘하고 웃기기도 해서 주로 드센 남자아이들의 구심체 역할을 한다. 그뿐이 아니라  여자아이들 중에도 때론 상처받으면서조차 이 아이를 미워하지 못하는 가련한 녀인네들이 있다. 소위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청순가련형 녀인들이다. 난 젊었을 때부터 이런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가슴을 감싸안고 쓰러지면서도 이 아이에 대한 애정을 놓지못하는 녀인네들을 보니 솔직히 속이 터진다. 

 

이 아이는 쌍시옷이나 쌍기역이 들어간 소위 쌍욕들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는다. 대신에 "니 주제에~" "병신아 꺼져" "장애 찐따 같은게" 와 같이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막말들을 서슴지 않고 한다. 표정과 제스처까지 곁들이면 누구도 상처 안받고는 못배긴다. 오죽하면 어른인 나도 상처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위안이 있다면,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가끔은 "이 녀석도 어린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카리스마도 없는 담임인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때론 그 녀석의 투정에 공감도 해주고 솔직히 내 감정을 얘기해주기도 한다. "널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가졌다고 느꼈다. 이러저러이러저러 했을 때이다. 그렇게 하면 누구든 상처받는다. 나도 너무나 불쾌했었단 말이다. 그게 너의 의도는 아니지 않니? 그리고 그건 인간에 대한 예의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이 녀석은 날 무서워하지는 않되 일정선을 지키려 눈치는 보고 있는 중이다. 그게 고맙기도 한데.......

 

사건은 또 터졌다. 학급대항 운동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이 아이(A라고 하겠다)한테 받은 상처가 큰 B라는 아이가 있다. B는 특히 운동에 약하다. 같이 경기를 하면 좀 답답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이렇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도 감싸주고 격려하는 게 친구고, 반듯하고 배려있는 사람의 태도이지 않나?

연습을 할 때, 의외로 B가 크게 표나지 않게 그럭저럭 하고 있어서 안심을 했다. 그게 담임의 불찰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긴장한 B는 연습 때 하던 것의 반의 반도 못했다.  A의 다그침이 쏟아졌다. 욕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해! 저렇게 하라고! 와 같은 감정섞인 고함에 B는 그만 얼어붙었다. 마비된 사람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우리 팀은 당연히 패했다.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B의 심정이 참담했으리라. 몇몇 괞찮은 녀석들이 다가와 B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위로했다. B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아무래도 불안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도서실에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마침 국어도 말의 영향에 관련된 단원을 할 차례라 아이들과 함께 읽으려고 대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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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게 아니랍니다 / 엘리자베스 베르딕 / 지식더미

 

여러분의 말은 여러분의 것이랍니다.

무슨 말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말할지는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어요.

여러분의 말은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 줄 수도 있어요.

 

말은 상처를 주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 여러분을 상처받게 하는 말을 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도....

슬프거나,

몹시 화가 나거나,

겁에 질릴 거예요.

아니면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거나,

할 말이 없어지지요.....

 

다음날, 수업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1교시 쉬는 시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학교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단다....

이틀간 엄마랑 집에서 지내면서 쉬고 월요일에 등교하겠다고 한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이 아이가 받는 말의 상처를 완전히 차단해 줄 수는 없다. 이 아이의 환경을 무균실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은 그 어머니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저 나는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교육적으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국어시간이 되어 "오늘은 그림책으로 국어수업을 시작합니다"라고 했다. 이 책을 중간쯤 보여줬다. 그리고 어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얘기를 들었다. 이 책의 뒷부분으로 마무리를 했다. 너희들이 일부러 나쁜 말을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떤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줄을 알았으면 같은 상황에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당부했다. 아이들은 기운없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을 했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얘기를 듣던 A와 눈이 마주쳤다. 학기초에 보이던 반항적이고 불만이 가득한 눈빛은 사라져있다. 그런 눈빛이 이제는 내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 대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2년 전 얘기를 꺼낸다.(2년 전에도 A와 B는 같은 반이었고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아무도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자신은 억울하게 혼난 적도 많단다.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시는 당시의 담임선생님께 이 아이는 아직도 한이 맺혀 있다. 야, 그럼 제정신 박힌 선생이면 당연히 피해자 편을 들지 가해자 편을 들겠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일단 삼키고, 그 이야기는 우리 둘이 하자. 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문다. 울 듯한 표정이다. 조만간 이 아이가 쏟아놓는 말을 일단 무조건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당이 될까?^^;;; 모르겠다. 이런 바보같은 선생이 또 있으려나...........


스토리는 없이 교훈을 열거하는 방식의 이 책은, 평상시 같으면 그냥 넘겼을 책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니 이 책의 제목에 꽂히게 되었다. 무엇이 됐든 아이들의 수면에 작은 돌 하나 던져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어른들은(나는) 얼마나 말을 조심하면서 산다고..... 이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 그냥 제목만 기억하겠다. 말은 상처를 주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책을 읽어봐야 될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지만 그들이 내 말에 귀 기울일 일은 없으니, 나는 나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이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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