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의 마지막 임무, 학교 안전을 지켜라! - 안전한 생활 랄랄라 학교생활 4
이서윤 지음, 홍원표 그림 / 풀빛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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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해부터 1,2학년 주당 수업시수가 1시간 늘었고 '안전한 생활'이라는 교과서가 생겨났다. 창체에 편성해서 정해진 시수만큼을 다뤄야 한다.

그 교과가 생긴 배경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입아프고 기분도 나쁘니 언급을 관두겠다. 하여간 교과서까지 들어온 마당에 그 배경이 어떻든간에 수업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왕이면 시간만 때우는 수업은 하지 말자는게 이 지독한 모범교사의 몸에 배인 습성인지라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았다. 사실은 '안전한 생활' 교과서로 한 차시 수업을 해보고 너무 답답해서이기도 했다. 안전이란 학기초 학급세우기를 할 때부터 학급 규칙의 토대가 되는 요소이며 생활지도상 꾸준히 지도하고 있는 부분인데, 교과서를 떡하니 펴놓고 수업하자니 새삼스럽기 그지없었고 수업도 참 지루했다.

안전수업은 첫째로 실습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체험시설이 필수다. 교통안전이 주제라면 실제 도로와 거의 같은 교통안전학습장 같은 곳에서 실제로 길을 건너보며 익혀야 한다. 화재안전이라면 소화기를 모두다 다뤄보고, 연기를 피해 건물을 탈출하는 연습도 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설은 지차체 혹은 교육청별로 갖추어야하고 관내의 모든 1,2학년이 체험할 수 있도록 스케줄도 짜서 안내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것도 전혀 해놓지 않고 교과서만 던져 주고 시수만 늘려 놓으면 안전교육이 되냐고?(아, 욕 안할라고 했는데 더 말하다간 나오겠네)

실습으로 다루기가 어려운 내용일 때, 두번째 방법은 구체적인 내용의 실감나는 동영상 정도 될 것이다.(이런 수업자료들도 교사들에게 주어진게 거의 없다) 그다음 세번째 방법쯤이 책이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봐야지. 그래서 책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출판시장도 참 발이 빠르다. 때맞추어 딱 이런 책이 3월에 출간되었다. 이러한 실용적 목적의 책은 왠지 뜨악한 눈으로 보게 되는데, 이 책은 꽤 괜찮았다. 아직 다른 책을 다 살펴보지 못해서 확실히 정하진 못하겠지만 돌려읽기 목록에 넣어 함께 읽은 후에 무한 되새김질 하면 교과서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다.

이 책은 안전의 여러 분야 중 학교안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쓰셨다. (저자인 이서윤 선생님 이름을 처음 접했는데 이 책 말고도 저서가 많다. 이 책이 속한 '랄라라 학교생활' 시리즈를 모두 집필하신 듯) 초등교사가 쓴 학교안전책. 가장 실제적이지 않겠는가?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선생님은 오늘 비장한 각오로 여기에 왔답니다. 여러분에게 공포영화보다도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죠. 바로 학교는 안전한 곳이 아. 니. 다. 예요."

이 책의 주인공은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고, 퇴역한 슈퍼맨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슈퍼맨은 학교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와 안전수칙을 알려주며 사고 위기에서 아이들을 구해주기도 한다. 교사들이 우리반 또는 옆반 또는 옆학교에서 들었던 많은 사고들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연필이 귀에 꽂혀 연필심이 들어간 사고, 가위를 손에 들고 있다 눈을 찌른 사고, 칼질하다 손가락이 잘린 사고, 복도나 계단에서 넘어져 뇌진탕이나 앞니가 부러진 사고, 창가에서 떨어진 사고, 급식차를 거칠게 다루다 생긴 사고, 과학실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사고.... 그 외 운동장, 등하교길, 현장학습에서의 사고들을 들려주며 학교생활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책으로 하는 안전교육에 한계는 있겠으나 현장감있는 동화 형식이라 교과서보다는 백번 낫다. 이 책을 모두 읽고 해당주제가 나올 때마다 한꼭지씩 다루며 나의 경험도 들려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훨씬 낫겠다. 무엇보다 "너희들에게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라는 말을 더이상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 같다. 활자화된 책이 가진 말의 무게가 있다. 여기에 좀 빌붙어보겠다.^^

이 책에서의 표현대로 사고가 일어나는 건 한순간이다. 교사의 불가항력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그걸 감안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교사는 "막지 못하고 뭐했나?"는 비난 앞에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내제자 다쳤는데 맘편할 교사는 없을 터, 최대한 조심시키고 잘 연습시키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교사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되겠다.

책의 마지막장은 '부모님께 드리는 말씀'이다. 적절한 조언을 잘해주신 것 같다. "대부분의 안전사고의 시작은 아이들의 장난에서 시작됩니다. 부모와 교사가 너무 엄격한 것도 문제지만 너무 허용적인 것도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분명히 해서 평소에 안전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심어주셔야겠습니다."

동감이다. 교사들도 새겨들을 말이다. 올 한 해 아이들과 안전하고 즐거운 교실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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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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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라는 두껍고 딱딱한 느낌의 낱말을 제목으로 삼은 책들이 꽤 나왔다. 그 시작은 채인선 님의 <아름다운 가치사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이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초등샘들께 가장 사랑받은 책이 아닐까 한다. 학교 현장에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그 이후 사회가치사전도 나오고, 어린이 인성사전도 나오고 하더니 이번에는 감정에 대한 사전이 나왔다. 제목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이다. 백지를 주고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적어보라면 우리 아이들은 몇 개나 적을 수 있을까? 설마 10개도 못 적지는 않을테지? 20개는? 나는 몇개나 적을까? 세상을 꽤 살았으니 50개쯤? 이책에는 자그마치 80개의 낱말이 나온다. 펼친 페이지당 한 낱말이 제시되고, 왼쪽면엔 그 감정의 상황이 그림으로 표현되고 오른쪽면엔 낱말에 대한 풀이가 되어있다. 풀이는 가장 윗단에 사전적 풀이가 나오고 이어서 상황적 풀이가 세 가지쯤 나온다. 이 방식은 <아름다운 가치 사전>과 비슷하다.

'감정'을 다루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교사들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요즘에 와서야 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감정출석부 등을 활용하시는 분들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나는 아직 그 의미를 잘 모른다. 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학교차원에서 아주 좋은 종이에 칼라출력해서 일괄 나눠주었는데 그 활용 의미가 와닿지 않는 나는 번거롭기만 했었다. 요즘에는 감정카드도 다양하게 나와있다. 올해는 나도 활용해보려고 그 중의 하나를 구입했다.^^

새로 바뀐 국어교과에도 <3.마음을 표현해요>처럼 온전히 '감정'을 다룬 단원이 들어갔다. 왜 감정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사실상 이성보다는 감정이다. 이성이나 신념으로 가장한 감정도 많다. 본인도 그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표현에 서툰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건강한 표현이 나오고, 남의 감정을 이해할 줄 알아야 건강한 대응이 나온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전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 눈높이에서 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제목처럼 아홉살의 눈높이에서 썼다.(이렇게 하면 독자가 한정될듯한데 왜 꼭 나이를 명시했을까? 그건 좀 궁금하다^^) 예를 들면 [감격스러워 ; '역시 난 머리가 나쁘지 않아.' 2단도 못 외우다가 구구단을 다 외웠을 때 드는 마음] 이런 것들이다.

앞에서 말한 그 단원의 지도계획을 아직 세워보진 못했다. 일단 '어린이 감정 요리법'이란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생각인데, 그 책에서 다루는 감정의 종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감정들 정도여서, 이 감정들 외에도 우리 안에는 이렇게 많은 감정들이 살고 있단다 알려주기에 아주 좋은 책인 것 같다.

감정이란 잘 살피고 어루만지고 조절해주어야 하는 것,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둠속을 헤매는 일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 안에 꿈틀거리던 것들의 정체를 조금씩 깨달아가기를 바란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내용에 양장본이지만 딱딱하지 않은 표지, 크지 않고 아담한 판형 등이 어울려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많은 사랑을 받는 책이 되겠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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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아 떠나는 루와 파블로의 세계 여행 한울림 생태환경동화
시릴 디옹 외 지음, 뱅상 마에 그림, 권지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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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멋진 책이다!! 문체가 좀더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착착 감긴다면, 아이들이 빨려들 매력이 뭔가 있다면 좋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이 멋진 책이 아이들에게 외면당하면 어쩌지 라는 조바심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내일)에 대하여 꼭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들만 모아놓았다. 그 주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아 떠나는 루와 파블로의 세계여행>이다. 프랑스에 사는 루와 파블로는 학교에서 미세먼지로 체육시간이 취소되고 점심급식에 고기가 나오지 않고 대신 축산의 문제점에 대한 영화를 보던 날, 해결책을 찾는 여행을 부모님께 제안한다. 이렇게 가족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프랑스의 노르망디였다. 거기엔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는 부부가 있었다. 이러한 영속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화분 하나도 잘 못 키우는 나는 농부들이 가장 존경스럽고 특히 이런 농법을 실천하는 농부들이 세상을 살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농부들의 삶은 너무나 고단하고 소득이 없다. 이런 부분의 해결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농부 부부에게 왜 모든 농부들이 이렇게 농사짓지 않는 거냐고 묻는데, 그 대답이 충격적이다. "기존의 농사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모든 걸 막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은 농부들이 해마다 트랙터, 화학비료, 살충제를 사들이길 바란단다. 우리처럼 석유 한 방울 쓰지 않고 자연을 공짜로 이용하면서 농사짓는 걸 바라지 않아."

다음 여행지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이다. 여기서 아이들이 놀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 그리고 주민들의 투자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가고 있다는 것. 화석연료는 고갈되어가고 원전의 가공할 위험성이 드러난 지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에게 보여줄 좋은 사례가 되겠다.

다음 여행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재활용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친환경 퇴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는데 이것은 첫 여행지에서의 영속농법과 관련이 된다.

다음 주제는 경제로 넘어간다. 영국의 브리스틀이라는 도시에서는 지역화폐가 통용된다. 거대금융의 사슬 속에 들어가지 않고 지역의 경제를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이 되겠다. 여기서 예시한 '무인도에 표류한 은행가 이야기'는 섬뜩하다.

다음 여행지는 인도의 쿠탐바캄인데 여기서는 민주주의의 모델을 볼 수 있다. 카스트제도가 남아있던 마을에서, '시민의 모임'을 통해 마을의 일을 해결하는 마을이 되기까지. 거기에는 엘랑고 아저씨의 헌신이 있었다.

마지막 꼭지는 교육이었다. 여행지는 핀란드였다. 교육에서 민주시민을 길러낸다면 앞의 일들의 실행이 좀더 쉬울 것이다. 핀란드 교육은 익히 들어온 바인데 여기에선 교사 1인당 적은 학생수, 철저한 교사 양성과정, 자립능력을 키우는 교육과목, 기술직에 대한 차별 없음, 편안하고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 등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영화가 먼저 제작되고 책이 나중에 나온 경우다. 영화는 2016 세자르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당장 찾아봤는데 국내에선 상영되지도 않을 뿐더러 유료로 다운로드할 수도 없고 DVD도 발매되지 않았다.... 아 아쉽다. 올해는 2학년을 맡아서 이정도의 내용까지는 다룰 일이 없지만, 5학년을 할 때,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심도있게 다룰 수 있는 단원이 있었는데. DVD라도 발매되기를 바라야겠다. 한꼭지씩 읽어주고 해당부분 영화를 보면 매우 깊이있고 실제적인 접근이 가능하겠다.

돈이라는 거대한 우상, 경제라는 거대한 시스템, 발전이라는 거대한 신념으로 이루어진 이 단단한 구조에 우리는 과연 균열을 내고 인간다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과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이들이 모델로 선택한 등장인물들이 그 길에 앞장선 사람들일 것이다. 그 꼬리라도 붙들고 같이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나의 실천력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이 책의 마지막 꼭지, 교육의 현장에 선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고 느끼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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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거북 그림책이 참 좋아 15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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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별명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힘이 딸려서 '기진맥진'이다. 우리 중학교 때는 체력장이 있었는데 엄청나게 연습을 시켜댔다. 그중에 보람없는 아이가 있으니 바로 나였다. 그래서 체육선생님이 분통터지는 마음에 지어주신 별명이 이거다.

두번째는 '나무늘보'. 이건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결혼하고 방을 닦겠다고 걸레라도 빨아들고 앉으면 느르적느르적 작은 방 하나를 언제 다 닦을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보다못해 "거긴 아까 닦은 데잖아" 하면서 휙 닦아주면 5초면 끝났다.ㅎㅎ
두 캐릭터를 합치면 느리고 기운없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이 책은 이런 나에게 위로를 준다.

눈돌아가는 속도감 위주의 세상은 나를 주눅들게 한다. 여지껏 그것도 안해보고 뭐했어, 그나이 될때까지 한 게 뭐야, 남들 달리고 있는 거 안보여?.... 이 가운데서 그래도 생존경쟁면에서는 조금 덜한 선생으로 산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공부라도 조금 잘했으니 다행이지, 그때 삐끗했었다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대입에도 임용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고 심지어 그 이후 2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무의식에 있는 불안은 가끔 이런 꿈을 꾼다. 나는 무슨 판단 착오로 다시 임용을 봐야된다. 근데 낼모레가 시험인데 시험 과목도 모르고 교재도 없다. 막막한 마음에 어둑어둑한 대학교정을 헤매는데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꿈을 해석해본 적은 없으나 나도 뭔가 성취에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빨리 달리는데 뭐하고 있는가라는 무의식의 압박.

이 책의 수퍼거북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바로 그 거북이다. 경주에서 토끼를 이긴 거북이 말이다. 그건 거북이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거북은 스스로를 무섭게 단련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결과 토끼를 능가하는 '속도'를 얻게 된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선 거북은 낯선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한다.

토끼에게서 도전장이 왔다. 경기를 앞두고 거북의 압박감은 극에 달한다. 드디어 경기날이 되어 펼쳐지는 장면은 어디서 본 바로 그 장면인듯, 아닌듯...^^;; 어쨌거나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거북은 꿀맛같은 단잠을 되찾았다.

저마다 고유의 속도가 있다. 토끼가 뛰는 것을 굳이 말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북보고 뛰라고 한다면, 또는 거북 스스로가 뛰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한다면 그건 불행하다. 저마다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 행복하다고 이 책은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획일된 속도를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 그건 쉽지 않다는 점. 그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거북이에 가까운 나는 평생 꾸물꾸물 기어서 여기까지 왔다. 느린거 치고는 참 열심히 기어왔다. 타고난 책임감은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 결국 희생된 것은 나의 유흥과 오락, 여가시간이었다. 기본만 하는데도 그렇다. 그렇게 그럭저럭 오긴 했지만 늘 나의 속도에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난 슈퍼거북처럼 스스로를 단련할 의지력이 없어서 속도를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엄청난 위안을 받는다. 특히 침대 위에 행복하게 널부러진 그의 모습에서.

내 옆을 스쳐 토끼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거북이들이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토끼와 거북이, 치타와 나무늘보가 섞인 교실에서 저마다의 속도를 누리는 것은 가능할까. 나도 나무늘보인 주제에 내새끼들, 나의 아이들이 거북이인 것은 못봐주는게 부모마음, 어른마음이라서 말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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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리으리한 개집 그림책이 참 좋아 38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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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아까워서 천천히 봐야된다. 이 책 앞면지에 있는 애완동물 가게 쇼윈도우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20마리 가까운 귀여운 강아지들이 있었다. 나라면 어떤 강아지를 고를까? 생각하며 하나하나 살펴봤다. 다 귀여워서 고르기가 힘들다.^^

이중 끝에서 두번째 강아지 월월 씨가 어느 집에 팔려갔다. 가족들은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덩치가 커지고, 많이 먹고, 털이 빠지자 가족들의 첫 마음은 점점 식어간다. 결국 월월씨는 가장 슬픈 신세, 즉 유기견이 된다. 상처받은 월월 씨는 '다시는 사람 따위 믿지 않겠어!' 라고 다짐한다.

그다음 내용은 '이야기'니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월월 씨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근사한 집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심심하고 쓸쓸해졌다. 월월 씨는 2층을 세놓는다는 광고를 냈다. '인간은 빼고' 라는 단서를 붙여서.
그랬는데도 집을 보러 온 건 '인간' 가족이었다. 애가 셋이나 딸린. 거절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개 아저씨 좋아요!" 라며 달려들었고 게임 끝. 인간과의 동거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월월 씨가 인간에게 상처받아 퉁명스러워졌을 뿐 속마음은 인간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정을 나누는 가족이 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국 월월 씨는 이사가는 가족을 따라간다. '으리으리한 개집'을 두고.

뒷면지에선 이사간 집과 이웃집들의 내부를 보여준다. 모두 반려동물과 행복하고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고양이들과 할머니, 새들과 모녀. 그리고 월월씨 품에서 잠든 세 아이들. 참 따뜻하다. 이 책은 동물과 인간이 이렇게 서로를 아껴주는 다정한 한가족이 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삐딱한) 시각도 있을 수 있다. 누가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댔어? 누가 너희들의 좁은 집에서 나의 본능마저 제어당한 채 너희들의 사랑에만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댔어?

하지만 한 이야기에서 두 가지 주제를 다루기는 힘들고, 저런 주제를 이야기하는 책들도 더러 있으니 이 책은 이런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학대하고 버리는 것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사랑하며 함께 하는게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동물을 키워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그것이 소통된다고. 내 친구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때, 개가 주는 위로가 가장 컸다고 고백했다. 위로를 건네는 존재. 내 안색을 살피며 내 옆에 있어주는, 나의 슬픔을 느끼고 끙끙 같이 울어주는 존재. 또 그 존재가 아플 때 밤잠 못이루고, 이세상을 떠날 때 그 슬픔을 감수하며 옆을 지키는 인간. 이들의 사랑은 어찌됐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진정한 가족, 혹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늙은 부모님 곁을 지키는 늙은 개 몽이에게 감사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들은 누가 먼저 떠나든 서로의 옆을 지킬 것이다. 사랑하니까 말이다. 그건 어찌됐건 아름답다.

난 아직 그림책의 그림을 정확히 읽어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 책의 그림들이 너무 재밌다. 그림책 작가들은 그림 하나도 의미없이 허투루 그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자세히 볼수록 깨알재미가 쏟아진다. 특히 뒷표지의 그림, 월월 씨가 두고 간 집을 보고 푸하하 웃어버렸다. 뭐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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