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거북 그림책이 참 좋아 15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별명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힘이 딸려서 '기진맥진'이다. 우리 중학교 때는 체력장이 있었는데 엄청나게 연습을 시켜댔다. 그중에 보람없는 아이가 있으니 바로 나였다. 그래서 체육선생님이 분통터지는 마음에 지어주신 별명이 이거다.

두번째는 '나무늘보'. 이건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결혼하고 방을 닦겠다고 걸레라도 빨아들고 앉으면 느르적느르적 작은 방 하나를 언제 다 닦을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보다못해 "거긴 아까 닦은 데잖아" 하면서 휙 닦아주면 5초면 끝났다.ㅎㅎ
두 캐릭터를 합치면 느리고 기운없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이 책은 이런 나에게 위로를 준다.

눈돌아가는 속도감 위주의 세상은 나를 주눅들게 한다. 여지껏 그것도 안해보고 뭐했어, 그나이 될때까지 한 게 뭐야, 남들 달리고 있는 거 안보여?.... 이 가운데서 그래도 생존경쟁면에서는 조금 덜한 선생으로 산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공부라도 조금 잘했으니 다행이지, 그때 삐끗했었다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대입에도 임용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고 심지어 그 이후 2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무의식에 있는 불안은 가끔 이런 꿈을 꾼다. 나는 무슨 판단 착오로 다시 임용을 봐야된다. 근데 낼모레가 시험인데 시험 과목도 모르고 교재도 없다. 막막한 마음에 어둑어둑한 대학교정을 헤매는데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꿈을 해석해본 적은 없으나 나도 뭔가 성취에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빨리 달리는데 뭐하고 있는가라는 무의식의 압박.

이 책의 수퍼거북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바로 그 거북이다. 경주에서 토끼를 이긴 거북이 말이다. 그건 거북이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거북은 스스로를 무섭게 단련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결과 토끼를 능가하는 '속도'를 얻게 된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선 거북은 낯선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한다.

토끼에게서 도전장이 왔다. 경기를 앞두고 거북의 압박감은 극에 달한다. 드디어 경기날이 되어 펼쳐지는 장면은 어디서 본 바로 그 장면인듯, 아닌듯...^^;; 어쨌거나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거북은 꿀맛같은 단잠을 되찾았다.

저마다 고유의 속도가 있다. 토끼가 뛰는 것을 굳이 말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북보고 뛰라고 한다면, 또는 거북 스스로가 뛰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한다면 그건 불행하다. 저마다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 행복하다고 이 책은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획일된 속도를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 그건 쉽지 않다는 점. 그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거북이에 가까운 나는 평생 꾸물꾸물 기어서 여기까지 왔다. 느린거 치고는 참 열심히 기어왔다. 타고난 책임감은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 결국 희생된 것은 나의 유흥과 오락, 여가시간이었다. 기본만 하는데도 그렇다. 그렇게 그럭저럭 오긴 했지만 늘 나의 속도에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난 슈퍼거북처럼 스스로를 단련할 의지력이 없어서 속도를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엄청난 위안을 받는다. 특히 침대 위에 행복하게 널부러진 그의 모습에서.

내 옆을 스쳐 토끼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거북이들이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토끼와 거북이, 치타와 나무늘보가 섞인 교실에서 저마다의 속도를 누리는 것은 가능할까. 나도 나무늘보인 주제에 내새끼들, 나의 아이들이 거북이인 것은 못봐주는게 부모마음, 어른마음이라서 말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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