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빵 - 2020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 2019 아침독서신문 선정 바람그림책 74
고토 미즈키 지음, 황진희 옮김 / 천개의바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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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어디서 본 작가더라 하고 봤더니 이 책이 첫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림체도 낯설다. 근데 맘에 든다. 첫 작품이 성공할 듯한 예감이다.^^

 

눈물빵이 뭘까 생각했다. 설마 눈물 젖은 빵일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이들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던 그 눈물빵? 그렇다. 바로 그거였다. 표지에 나온 가로로 긴 막대처럼 생긴 것, 그건 생쥐가 좋아하고 아끼는 식빵테두리였다. 어느날 생쥐는 그 식빵테두리를 눈물로 흠뻑 적신다.

 

첫 장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은 스케치만 되어 있고 이 생쥐만 채색이 되어있다. 다른 생쥐들은 모두 번쩍 손을 들고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얘는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날 것같아서....

 

이 장면이 대표하는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들 앞서 가고 있는데 혼자 뒤처진 나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함께 즐거워하는 그들 사이에서 나만 외롭다. 내가 슬픈지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떤 경우에 그들은 나를 비난하거나 공격하기도, 따돌리기도 한다......

 

남들 앞에서 울음을 참았던 아이는 혼자만의 비밀장소에 오자 비로소 눈물을 또옥 떨어뜨린다. 한 방울이 떨어지자 이제 걷잡을 수 없다. 아이가 좋아하던 손수건은 푹 젖어 묵직해졌다. 아이는 천장에 난 구멍으로 그것을 던져버리고, 아껴두었던 식빵 테두리를 먹으려 한다. 하지만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눈물에 젖은 빵이 되었다. 아이는 그것 역시 구멍으로 던진다. 그것을 새가 물고 가버렸다. 이번엔 눈물이 묻지 않은 그냥 빵을 던졌다. 그것 역시 새가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아가지 않고 말한다. “......”

 

이 대목에서 난 좀 웃었다. 울고 있는 아이야 미안~ 아이는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해 식빵테두리들을 적시고는 모두 던져올렸다. 수많은 새들이 날아와 모두 물어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 한 마리가 다시 돌아와 흠뻑 젖었던 아이의 손수건을 떨어뜨려 주었다. 이제 손수건은 보송보송 말라 있었다.


해석은 마음대로지만 나는 식빵테두리가 위로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내 눈물로 적신 위로는 상대방의 마음도 적시고 함께 치유가 된다. 하지만 밍숭맹숭 말로만의 위로는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한마디로 ....하다.^^ 난 이 표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웃기면서도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의 고생과 슬픔은 꼭 무익하진 않다. 그것이 눈물빵의 재료가 되니까. 눈물빵이 아니고선 진정한 위로는 어려우니까. 그런 의미에서 큰 고생을 안해 본 나는 위로의 자질이 좀 부족한 편이다.

 

마지막 장.

조용합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갑니다.“

마음에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릴 기운을 차렸다. 폭풍눈물 후의 회복.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가끔 신기하다. 눈물의 기능에 대해서. 안구를 건조하지 않게 해주고 먼지나 노폐물을 씻어내 주는 것이 생리적 기능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되었을 텐데 왜 신은 감정의 분출 기능까지 눈물에게 부여하셨을까. 그런데 그 두 번째 기능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사실. 그래서 이런 그림책까지 나오게 되었구나.

 

좀 반성이 된다. 나는 우는 사람을 보는 게 피곤하다. 울음소리 너무 싫어한다. (그러니 책 속의 아이도 나만의 공간에 가서 혼자 운 것이겠지.) 울음으로 원하는 것을 관철하려는 아이를 만나면 당장 뚝 그쳐!!”라고 소리지르고 싶다. 물론 그런 의도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감정은 흘러가도록 놓아둘 필요가 있다. 정리는 좀 지나고.... 그러면 다시 보송보송한 손수건이 돌아올 수 있는 거겠지.

 

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인생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고 있는 바, 눈물이 가진 위력, 전문용어로 카타르시스의 위력을 다룬 이 그림책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아이들과도, 어른들과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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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씨는 용감해! 같이 사는 가치 4
김성은 지음, 김소희 그림 / 책읽는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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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상적인 시리즈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네번째 책이 나왔다. 가치를 의인화해서 '~씨'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특징으로 제목을 했다. 『공감 씨는 힘이 세』, 『존중 씨는 따뜻해』이런 식으로. 이번 '정의 씨'는 '용감'하다고 한다.

순수한 이야기가 아닌 "잘 들어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단다...." 라고 가르치는 책들을 스스로 골라서 잡는 아이들이 많이 있을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별로 못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책들은 도덕 교과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건
어른의 입장이긴 한데, 중요한 미덕(가치)은 꼼꼼히 짚어준 후에 두고두고 되새기고 싶을 때가 있다. 학급을 세우는 중요한 가치라든가 할 때 말이다. 자주 말하면 잔소리가 되니, 한번 말할 때 깊이 다루는 게 좋다. 가장 나쁜 건 상대방이 뜻도 모르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다. 교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최악의 잔소리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시리즈 환영한다. 버츄카드에 있는 모든 미덕을 다 펴낼 수는 없겠지만 그중 한 12가지 정도? 시리즈가 계속 나오면 3월에 꾸준히 읽으며 학급의 핵심가치로 세워주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도덕적 설명이라 해도 작가의 고심이 들어간 작품이니 그냥 당위적 잔소리보다는 훨씬 낫다.


이전 시리즈를 정독하지 못했는데, 내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것은 '존중'이다. 교사가 학생을, 학생이 교사를, 친구가 친구를 존중한다면 폭력적 언행이나 상처는 없으리라. 거기에 '정의'가 함께하면 좋겠다. 물론 이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은 아니다. 상당한 교집합이 존재하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존중은 정의를, 정의는 존중을 전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접근하는 관점은 조금 다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정의'를 살펴보겠다.

먼저 사람 행동의 이유를 여러가지로 살펴본다. 건강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간은 여러 행동을 한다. 그리고 사람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한다. 여기에서 '정의'가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이 '옳다고 믿는 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잘못된 확신에 빠진 자들이 사회에 얼마나 해로운지 보아왔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정의연습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 이게 옳은 행동일까?' : 양심을 잘 보존해온 사람이라면 이 방법은 효과가 있다. 
두번째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다. : 이부분을 볼 때 '아름다운 아이' 책의 브라운 선생님의 수업에서 나온 금언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가 떠올랐다. 이 의미는 잘 새겨야 한다. 사람을 우선에 둔다는 말도 그렇다.
다음으로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태도, 나라면 어떻게 할까? 라고 묻기 등이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정의는 혼자 빨리 가기보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 가는 것, 비폭력의 방법으로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우리반 친구들의 "정의는 □다"를 모아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켜보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그림책으로 어린이 수준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책이 나와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교사인 내가 한 수준 위의 책을 읽고 모든 논의를 품을 시야를 가지면 좋은데, 옛날에 조금 읽다가 덮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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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존스의 전설 산하세계문학 11
야코브 베겔리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산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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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존스의 전설 / 야코브 베겔리우스 / 산하>

그림책인데 글밥이 제법 있고 쪽수도 100쪽이 넘는다. 읽는데 오래걸리진 않지만 내용은 고학년에 권할 만하다.

스웨덴 작가이고 글과 그림 작업을 다 했다. 스웨덴 최고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동화책을 많이 읽고 새로운 것을 한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아이들, 독서력이 부족해 동화책에 흥미를 못 느끼는 아이들에게 권해줘도 좋을 듯하다. 상당히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멋지다'는 느낌도 들고.

모험과 고난으로 점철된 샐리 존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그런데 샐리 존스가 사람이 아니라는 거. 고릴라다. 악천후의 칠흑같은 밤에 태어난 아기 고릴라를 보고 족장은 앞날에 많은 불행이 있을거라 예언했다. 그말대로 아기 때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밀렵군에게 고릴라를 산 상인은 관세를 아끼려고 사람 아기처럼 포대기에 싸서 배에 실었고 이때 샐리 존스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러나 고릴라는 돈이 되지 않았고 팔릴 때까지 비참하게 갇혀 있었다. 마침내 샐리를 산 부인은 샐리에게 지극히 잘해주었다. 알고보니 이 부인은 대도였고, 샐리에게 기술을 가르쳐 신출귀몰한 도둑질에 써먹었다. 결국 대도는 도망치고 하수인(샐리)만 잡혀 동물원 행. 비참하고 희망없는 몇년이 흐르고 샐리는 옆 우리에 들어온 오랑우탄(바바)과 친구가 되어 잠시 즐거움을 찾는가 하다가.... 또 서커스단에 팔리고, 마술사의 조수가 되고.... 마침내 탈주를 감행한다.

탈주의 과정은 아린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 같다. 자신만 탈주한 게 아니라 동물원으로 달려가 오랑우탄 바바를 구출하기까지.....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또다른 괴로움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갔으니.... 그들이 숨어든 곳은 배 안이었고 배는 멀고 험난한 항해를 시작했다. 기관사 보스만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배는 태풍을 만났고 침몰되었다. 이후로도 고난은 가는 곳마다 샐리를 따라다녔다. 한숨이 나올만큼.... 소설(혹은 실화)을 읽다가도 한 인생에 어떻게 이토록 많은 고난이 다가오는가 탄식이 나오는 인생이 있지 않던가. 결국 자포자기하고 학대받는 것으로 삶이 끝나는가?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마음이 통하고 서로 의지되며 믿을 수 있는 존재는 꼭 많아야 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진정한 사이라면 한 명으로도 족한 것. 샐리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바바는 아님) 그들의 만남은 기적 같았고, 서로에게 삶의 의지를 주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 샐리는 인생에 두 번의 극적인 재회를 했다. 첫번째가 앞에 말한 진정한 친구. 두번째는 대도 부인이었다. 샐리는 잊고 살았던, 대도 부인에게 배운 그 기술을 사용했다. (이부분 통쾌하고 재밌다) 그들은 그 돈으로 위기에서 벗어났고 둘만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접어든 어떤 곳에서 알게 되었다. 깊은 기억 속에 잠자던 샐리의 고향에 근접했다는 것을. 샐리는 고향의 동족을 향해 밀림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평생의 유일한 친구와 그들만의 항해를 계속할 것인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너무 오래 멀리 떨어져 왔다. 다시 돌아가도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함께해온 신뢰의 관계를 끝까지 하는 게 좋다."는 생각과 "우정이란 꼭 몸이 함께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샐리가 고향과 본능을 찾아간다면 친구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생각. 둘 다 충분히 가능하다. 문학토의는 이렇게 정답이 없는, 사전지식이 풍부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주제 뿐 아니라 샐리의 고난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짚어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그를 불행에 빠뜨린 것도, 진정한 친구가 된 것도 인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꼭 여기까지 가지 않아도 그들의 여정(아프리카 - 터키와 유럽 - 보르네오 섬 - 싱가포르 - 미국 - 아프리카) 이 대장정만 보아도 후덜덜하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다 읽고 뭔가 그리고 싶어질 것이다. 대단한 스케일의 그림책 한 권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꼭 권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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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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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엄마집 갔다가 동생한테 빌려온 골든아워 1,2권을 빠르게 훑어 읽었다. 연휴가 끝나면 이런 책을 붙들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나의 일에 소용되는 책을 읽어야 하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의 일'도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한달간의 병원생활에서 나는 늘 의료진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이 고압적이어서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그들의 전문성에 의지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병원에서 막말 고성 폭행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는 물론이고 간호사들의 손놀림 하나도 내게는 아버지를 살리는 동아줄처럼 보여서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간병인 여사님까지도.... 결국 아버지는 한달을 못버티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담당한 의료진이 특별히 대단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밤낮이 없던 그 치열한 느낌의 현장을. 가족으로 단기간 있기도 괴로웠던 그곳을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물론 그중에도 게으른 사람, 양심없는 사람, 실력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시스템이 있다는 신뢰가 우리 삶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있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그 시스템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의사인생을 다 걸고 노력해온 사람이다. 외상외과 전공인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상자들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의료진의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중증외상센터'를 세우고 뿌리내리는데 헌신해왔다.

그러나 그 노력이 쉬웠다면 이런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씨를 뿌리기도, 그 씨에서 싹이 나기도, 가느다란 뿌리를 땅에 박기도 뭐하나 쉽지 않았다. 온갖 욕과 애먼소리를 들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야 했다. 지원은 말뿐이었고 가장 중요한 인력지원이 없어서(이건 대한민국 어디나 그런듯ㅠ) 결국 현장인들을 갈아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교수 자신도 온몸이 성한데 없고 결국 한쪽 눈에 실명까지 왔으며ㅠ 간호사들도 유산은 기본이며 과로로 쓰러지기 다반사였다. 책을 끝까지 읽어봐도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며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로 끝맺는다.

이 책에서 이국종 교수는 거창한 신념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니 그것을 할 뿐이다. 그래서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며 목숨의 끈을 필사적으로 이어붙이는 것 뿐이다. 이런 환자들의 목숨은 1분, 1초에 달려있으니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며 그에 따른 몸의 무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간호진들은 대부분 여성들인데 이렇게 몸을 던지는 일(예를들면 공중강하 등)에 동행하는 모습들이 경이롭다. 일의 성격상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니 날밤을 새우는 일은 예사고, 늘 수면부족과 고질병에 시달린다. 난 잠 못자면 사람구실을 못하는데.... 거기에 언제 출동할지, 언제 죽음에 다다른 이들을 맞아야 할지 모르는 상시적 긴장상태, 그리고 산산이 부서진 몸과 뿜어나오는 선혈과 으깨진 장기들을 날마다 대해야 하는 일, 그 안에서 삶의 질이 어떠할까. 그들 또한 극한 노동자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가 상상하기 힘든 일상이다.

그의 10여년 기록 중 그와 함께 가슴을 친 대목이 많았으나 가장 최악은 2014년 4월의 기록이다. 세월호 침몰 때 그의 센터에서도 헬리콥터가 날아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지침이 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누구도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출동된 모든 팀들은 발이 묶인 채 기다렸다. 그렇게 세월호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았다.ㅠㅠ 그동안 한 목숨 구하기 위해 십여명이 매달려서 산다는 보장도 없는 환자를 헬기로 싣고 오는 일을 주도하던 의료인이, 수백명이 한꺼번에 수장당하는 일을 지켜보아야 했으니 그 기막힘과 분노가 어떠했을까. 그래서.... 아직도 잊힐 수가 없고 잊혀져서도 안되는 것 같다. 세월호는 말이다....ㅠㅠ

빨리 읽어야 해서 부분부분 대충 훑어 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음에 꽤 남을 것 같다.(어젯밤 꿈에도 나옴...) 무엇보다 같은 세상 살아가고 있는 어떤 이들의 치열한 삶이.... 그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개인을 갈아넣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내 업종에서 꽤 잔뼈가 굵었지만 아직도 늘 불안하고 긴장된 이 마음을 다잡으며 닥칠 일에 대한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뭔 일이 닥쳐도 그래도 죽고 살 일은 없잖아? 밤샐 일도 없고) 그의 일은 그의 일대로 나의 일은 나의 일대로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이교수처럼 나도 나의 일이니까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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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명절 유일 손님이 된 시누이네가 아직도 시댁에서 출발하지 못했다고 해서 식구들 아점을 후다닥 차려놓고 더숲에 와서 영화 <파이널 리스트>를 보았다.

난 예술을 동경한다. 예술을 잘하는 사람이 멋있다. 동시에 부럽고. 능력을 선택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예술적 능력, 그중에서도 음악을 선택하겠다. 라고 생각하곤 했다.

근데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을 뿐더러 피땀흘리는 노력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가끔 잊곤 한다. 거저먹는 인생은 없는 것이다. 행복이 성취에 있지 않지만, 어쨌건 성취에는 고통스런 노력과 연마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싫어 회피하면 그냥 평범한 능력을 갖는 것이고, 그 이상을 원한다면 그 연마의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

어쩌면 내게 없는 것은 예술적 능력보다도(물론 그것도 없다ㅋ) 이러한 인내심인지도 모른다. 적당히 일하고 일한 후의 휴식을 넘나 사랑하는 나에게 뛰어난 성취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에 등장한 이들은 퀸엘리자베스 콩쿨 파이널에 올라간 12명의 젊은이들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그리 오래 살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예술적 완성도와 인정을 위해 끊임없는 담금질을 한다. 시간의 밀도를 극강으로 높여야 한다. 그 극한을 보여주는 그들의 결승 전 합숙 8일. 하지만 잠깐의 산책대화에서 그들의 솔직한 내면이 비춰지기도 한다. 솔리스트가 된다고 행복할까? 콩쿨 입상한다고 성공하는 걸까? 심지어 뭐해먹고 살아야하지?에 가까운 고민까지....

이 콩쿨엔 한국인이 3명 올라갔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님에도 이 중 2명이 가장 많이 나온다. 한국인이 우승자였기 때문이다. 우승자가 있으면 탈락자가 있기 마련.... 이 영화는 둘을 같이 다룬다. 아니 마치 탈락자가 화자인 듯한 영화다. 때문에 우승자의 이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둘을 혼동해서 골탕먹었다는.....(에휴~~^^;;;)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곤 볼 수 없었다. 참가자들 전원의 경연을 일부라도 보여줬더라면 좀더 흥미진진했을텐데... 하여간 예술가들은 타고나며 또 만들어지고 진정한 예술가로 서려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늘 아들에게 피를 토하듯이 말했던 것, '젊을 때의 삶의 밀도'는 정말 중요하다. 내가 후회하는 것이 그거다. 물론 지금의 나는 늙어서 자연히 밀도를 낮출 때가 되었지만.... 세상이 말하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젊은 날을 생각과 느낌과 연마로 채우는 일은 그의 인생에 튼튼한 기본이 될 것이다. 음 결국 내 자식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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