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엄마집 갔다가 동생한테 빌려온 골든아워 1,2권을 빠르게 훑어 읽었다. 연휴가 끝나면 이런 책을 붙들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나의 일에 소용되는 책을 읽어야 하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의 일'도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한달간의 병원생활에서 나는 늘 의료진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이 고압적이어서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그들의 전문성에 의지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병원에서 막말 고성 폭행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는 물론이고 간호사들의 손놀림 하나도 내게는 아버지를 살리는 동아줄처럼 보여서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간병인 여사님까지도.... 결국 아버지는 한달을 못버티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담당한 의료진이 특별히 대단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밤낮이 없던 그 치열한 느낌의 현장을. 가족으로 단기간 있기도 괴로웠던 그곳을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물론 그중에도 게으른 사람, 양심없는 사람, 실력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시스템이 있다는 신뢰가 우리 삶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있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그 시스템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의사인생을 다 걸고 노력해온 사람이다. 외상외과 전공인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상자들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의료진의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중증외상센터'를 세우고 뿌리내리는데 헌신해왔다.

그러나 그 노력이 쉬웠다면 이런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씨를 뿌리기도, 그 씨에서 싹이 나기도, 가느다란 뿌리를 땅에 박기도 뭐하나 쉽지 않았다. 온갖 욕과 애먼소리를 들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야 했다. 지원은 말뿐이었고 가장 중요한 인력지원이 없어서(이건 대한민국 어디나 그런듯ㅠ) 결국 현장인들을 갈아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교수 자신도 온몸이 성한데 없고 결국 한쪽 눈에 실명까지 왔으며ㅠ 간호사들도 유산은 기본이며 과로로 쓰러지기 다반사였다. 책을 끝까지 읽어봐도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며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로 끝맺는다.

이 책에서 이국종 교수는 거창한 신념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니 그것을 할 뿐이다. 그래서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며 목숨의 끈을 필사적으로 이어붙이는 것 뿐이다. 이런 환자들의 목숨은 1분, 1초에 달려있으니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며 그에 따른 몸의 무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간호진들은 대부분 여성들인데 이렇게 몸을 던지는 일(예를들면 공중강하 등)에 동행하는 모습들이 경이롭다. 일의 성격상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니 날밤을 새우는 일은 예사고, 늘 수면부족과 고질병에 시달린다. 난 잠 못자면 사람구실을 못하는데.... 거기에 언제 출동할지, 언제 죽음에 다다른 이들을 맞아야 할지 모르는 상시적 긴장상태, 그리고 산산이 부서진 몸과 뿜어나오는 선혈과 으깨진 장기들을 날마다 대해야 하는 일, 그 안에서 삶의 질이 어떠할까. 그들 또한 극한 노동자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가 상상하기 힘든 일상이다.

그의 10여년 기록 중 그와 함께 가슴을 친 대목이 많았으나 가장 최악은 2014년 4월의 기록이다. 세월호 침몰 때 그의 센터에서도 헬리콥터가 날아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지침이 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누구도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출동된 모든 팀들은 발이 묶인 채 기다렸다. 그렇게 세월호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았다.ㅠㅠ 그동안 한 목숨 구하기 위해 십여명이 매달려서 산다는 보장도 없는 환자를 헬기로 싣고 오는 일을 주도하던 의료인이, 수백명이 한꺼번에 수장당하는 일을 지켜보아야 했으니 그 기막힘과 분노가 어떠했을까. 그래서.... 아직도 잊힐 수가 없고 잊혀져서도 안되는 것 같다. 세월호는 말이다....ㅠㅠ

빨리 읽어야 해서 부분부분 대충 훑어 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음에 꽤 남을 것 같다.(어젯밤 꿈에도 나옴...) 무엇보다 같은 세상 살아가고 있는 어떤 이들의 치열한 삶이.... 그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개인을 갈아넣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내 업종에서 꽤 잔뼈가 굵었지만 아직도 늘 불안하고 긴장된 이 마음을 다잡으며 닥칠 일에 대한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뭔 일이 닥쳐도 그래도 죽고 살 일은 없잖아? 밤샐 일도 없고) 그의 일은 그의 일대로 나의 일은 나의 일대로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이교수처럼 나도 나의 일이니까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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