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긍정훈육법 -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 학급긍정훈육법
제인 넬슨 외 지음, 김성환 외 옮김, 김차명 그림 / 에듀니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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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던 날 난 공개수업을 했다. 동료장학이어서 서너 명의 동료교사가 참관을 했다. 수업설계에는 신경을 썼지만 자료 준비 등 세세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엔 좀 아까워서 그냥 넘어갔다. 평상시 수업을 보여줘야지, 안 쓰던 자료를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생각도 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그야말로 '평상시' 수업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중간에 '버럭'을 한 번 하고 다시 집중을 시킨 다음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두 번쯤 왔는데 아무리 평상시 수업이라지만 손님이 있는데 예의상 '버럭'을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진행을 했더니 수업은 갈수록 꼬여만 갔다. 겨우겨우 지도안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게 수업을 마쳤다. 참관하신 선생님들은 우리끼리의 예의로 좋은 평이 쓰여있는 참관록을 두고 가셨지만..... 난 아이들을 노려봤다. '이것들을 낼부터 어떻게 혼낼까?'  


참관록을 찬찬히 읽어보다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라는 부분에서 덜컥 걸렸다. 난 이 부분에 컴플렉스가 있다. 이상하게도 내 수업의 참관록에는 '허용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쓰신 분들은 좋은 의미로 그 단어를 쓰셨을 것이다.(이날을 제외하고 지금까지의 공개수업은 비교적 상큼하게 잘 끝났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단어는 나를 흠칫하게 한다. 마치 아이들을 손놓고 내버려두는, 무능한 교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난 이 부분에서 무능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아이들의 행동을 단호하게 통제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선택한 것은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친절한 동료교사를 많이 본다. 그들의 교실은 대체로 통제가 잘 안된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절한 교사는 끊임없이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 노력에 비해 아이들은 별로 감동받지 않는다. 그래도 이 친절한 교사는 "난 아이들에게 알아달라고 교육하는 게 아니야. 힘든 건 나의 숙명이야."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노력한다. 일면 존경스럽다. 나도 한때는 친절한 축에 들었지만 이 지난한 과정에서 포기하고 '버럭' 증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교사는 단호하다. 이 부분에 맺힌 게 많은 나는 이런 교사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복도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교사는 목소리를 깐다.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짧고 단호한 훈시 후 교사는 다시 아이들을 이동시킨다. 얼음들은 숨을 죽이고 걸어간다. 우와~ 난 이 과정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뭐냐.... 10년 후배도 저렇게 하는데... 난 헛살았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 교사는 이쪽 아니면 저쪽이기가 십상인 것이다. 친절하거나, 단호하거나. 그런데 '친절하며 단호한' 이라니 어떻게 하면 그게 될까? 그것이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다. 사실 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교사라서. 친절하다기엔 가끔 버럭을 하고, 단호하다기엔 애들이 너무 시끄럽다.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교사는 그야말로 나의 로망이다. 이 책에 비법이 있다니, 어찌 안 읽어볼 수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미리 분류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내가 취할 게 없다 싶으면 중간에 책을 덮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법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는 학급회의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실은 내가 굉장히 비선호하는) 방법이어서 솔직히 중간에 책을 덮을 고비가 몇 번 왔다. 하지만 이 교육법의 정신에 크게 공감하고 감동받을 만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가장 공감되는 것은 상벌제도의 폐해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상벌제도를 교실에서 전혀 시행하지 않는다. 불편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 상벌에 연연해 왔던 시절이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보면 처벌의 장기적인 영향 3Rs가 나오는데 반항(당신은 나를 통제할 수 없어. 내 멋대로 할 거야), 보복(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복수하고 상처 줄 거야), 후퇴(그래 나는 나쁜 사람이야)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은 문제행동(여기서는 '어긋난 행동'이라고 부른다)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오히려 강도가 더해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행동 아래 감춰진 신념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감정은 소속감과 자존감이다. 인간은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낄 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충족이 안되면 생존을 위한 행동(소위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의 자존감과 소속감에 흠집내는 짓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상처주고 상처받고, 힘들어했었다. 상벌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때그때 행동에 대한 지적을 말로 해야 했었는데, 씹어뱉듯이 말하는 나의 나쁜 말습관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또다른 징벌인 경우가 많았었다고 느낀다. 이제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행동만을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겠다. 너는 지금 이런 부분이 너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준다. 하지만 너는 변함없이 우리 반의 소중한 존재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이런 메세지를 어떻게 진심으로 전해줄 수 있을까? 상황마다 고민해야 되는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도 아이들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이나 버릇없는 행동, 자기들이 무슨 당연한 권리를 가진 듯이 행동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생긴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어긋난 행동' 을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행동 아래 감춰진 신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원인을 살펴보려는 노력 없이 그 아이를 단지 비난하고 처벌한다면 부정적 행동은 더욱 강화된다.   


이 책에서 발견한 내게 가장 중요한 지침은 <아이들이 해결 방법을 찾도록 하기> 였다. 단호한 교사라면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그때 그때 제시해 주고 거기에 따르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제시하는 방법은 그와 달랐다. 아이들에게 되묻고, 생각하게 하고, 해결방법을 찾도록 하고, 스스로가 선택한 방법을 지키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교사가 심판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동안 심판자로서의 내 역할은 참 위태위태하고도 부질없었다. 그러니 이 지침이 내 몸에 배도록 노력을 해 볼 생각이다.


가장 찔리는 문장을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학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83)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학생에게 존중받기를 바랄 수 있느냐? 라는 질문도 이어진다. 음..... 할 말이 없다. 나이가 들고, 이상이 꺾이고, 이곳 저곳에서 상처받고, 지치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아이들을 품어주어야 할 대상으로보다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진취적이기 보다는 방어적이 되고, 그러다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 성가신 일을 생산하는 존재들에게 무의식적인 적의가 생겨났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존중이란 없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이 책은 솔직히 나에게 방법적인 팁을 많이 주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미 굳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늘 하던 방식에서 멈칫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게 어쩌면 당분간은 더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한 후배가 이런 하소연을 했다. "차라리 모를 때가 편했는데 알면 알 수록 학급이 더 엉망이 돼요." 주워들은 건 있어서 나의 방식을 고집할 수가 없으니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왕도가 있었다면 누구나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길을 더 보여주었고 난 여러가지 길 사이에서 들락날락 하며 헤매고 있는 중이다.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아마 난 그만두는 날까지도 끝까지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의 고민이 아이들에게 조금의 약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그 고민을 선사한 이 책에게 감사한다. 사실 친절과 단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것만 해도 이 책은 나에게 큰 선물이며 잡는 과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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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만드는 우리 동네 발명가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2
린스런 지음, 쉐후이잉 그림, 권소현 옮김 / 책속물고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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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온지 꽤 오래된 <위대한 발명품이 나를 울려요> 라는 책이 떠올랐다. 10년 전 쯤에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자주 읽었던 책이다. 글씨도 많고 그림도 적은데다 칼라도 없어서 얼핏보면 어린이책 같지도 않았던 책.... 하지만 독서력이 좀 있는 아이들은 꽤나 좋아했던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인류에게 편리함을 선사한 위대한 발명품들의 이면을 보게 해주는 책이었는데, 우리가 편리함을 일정부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일을 멈출수가 없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사실에 근거한 두려움에는 직면해야만 한다. 눈을 감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요즘 핵발전과 방사능 문제에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이런 세상에 어떻게 자손들을 남기려 하는지 정말 대책없고 간도 크다는 생각을 한다.(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들과 딸을 남기고 갈거지만 말이다)


이 책은 <위대한 발명품...>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책이지만 나는 두 권에 함께 흐르는 주제를 보았다. 그것은 이제 인류는 선한 발명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하지 않다면 차라리 발명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 책의 괴상한 박사가 신기한 지우개를 발명품 쓰레기통에 미련없이 넣어버렸듯이. 인류의 비상한 머리는 비상하지 않은  짐승들의 머리보다도 결과적으로 악했다. 이제 우리는 터전을 잃어가고 있고, 그 악행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모든 동식물의 터전까지도 빼앗았다.


<위대한 발명품...>과는 다르게 이 책은 웃음을 머금고 볼 수 있다. 중학년 정도면 충분히 읽을 듯한 130쪽 정도의 분량에, 서툰듯 귀여운 삽화,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봤을 듯한 상상속의 발명품 이야기들이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힌다.


괴상한 나라의 괴상한 박사는 날씨 가방(자신이 원하는 날씨를 챙겨다니는 가방), 절대수면 베개(제 시간에 재워주는 베개), 만능 엘리베이터(수많은 기능이 있는... 마지막 백번째 기능이 대박^^), 하늘 리모컨(나중에 하늘 교환기로 바꿈)등등의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 발명품에 감탄한 마을 사람들은 트로피를 수여하려 하는데.... 신기한 나라에 신기한 박사의 발명품 또한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기한 박사도 동물들을 위한 공평한 투시유리, 달을 휴가보내고 떠오른 30개의 인공 달, 신기한 자국을 남기는 모기 예술가, 느티나무를 살리기 위한 변신페인트 등... 수많은 신기한 발명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고민하던 심사위원들은 두 박사에게 발명시합을 시키기로 한다. 이 배틀에서 누군가가 이겼을까?^^


기발하고 훈훈한 결말 후에 작가는, 말하고 싶은 주제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도 아닌 본인의 입으로 이렇게 말해버린다. "세상에는 많은 발명품이 있습니다. 어떤 발명품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어떤 발명품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또 어떤 발명품은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어떤 발명품은 우리를 미소짓게 하고 많은 영감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를 화나게 하고 경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는 발명품도 있습니다. 신기한 박사와 괴상한 박사는 모두 발명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일등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에나 따로 나옴직한 이런 작가의 육성이 본문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에는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 또한 이 주제에 너무나 공감한 나머지, 시비는 걸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발명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너무 좋은 책이 나와서 참 고맙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이런 작가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참 눈물겹도록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려는 세력,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그 콘크리트는 여간해서는 허물어지지 않는다. 지구의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줄 터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 콘크리트에 좀더 굳세게 맞서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가만 들여다 보면 그 세력은 내 안에도 있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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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한테만 그래? - 빨간머리 마빈의 억울한 이야기 햇살어린이 8
루이스 새커 지음, 슈 헬러드 그림, 황재연 옮김, 이준우 채색 / 현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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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에 계속될 학급 독서 프로그램을 위해서 3학년에게 적당한 창작동화를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외국 창작동화는 더욱 그렇다. 3학년이 참 책 골라주기가 힘든 학년이다. 이건 2학년한테 딱인데.... 또는, 글밥이 좀 많아, 4학년이라면 읽히겠는데.... 이런 책들이 대부분이라 방학 내내 이 책 저 책 가져다 읽었지만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작가 중심으로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적당한 두께의 책으로 루이스 새커의 <빨간 머리 마빈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루이스 새커라면 구덩이웨이싸이드 학교를 쓴 그.... 뉴베리상을 받은 작가가 아닌가? 일단 왜 나한테만 그래?를 먼저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방학 내내 찾던 걸 방학이 끝날 무렵 드디어 찾아냈다!!^^ 3학년에게 수준이 딱이고, 재미있고 주제도 좋다. 아이들이 공감할 요소들이 많고, 따라서 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많으니 다 읽고 가장 적당한 걸 골라봐야겠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송언 선생님의 마법사 똥맨에 열광하는 건 똥 이야기라서이고, 교사인 내가 그걸 아이들에게 골라주는 건 거기에 좋은 주제가 담겨 있어서다. 똥 다음으로 아이들이 즐기는 소재는 코딱지. 이 책은 바로 그 코딱지 이야기다. 따라서 아이들은 열광할 것이고 난 여기에 담긴 주제가 마음에 든다.^^

 

마빈은 공교로운 상황에 처해 학급의 왕따가 되고 말았다. 그 상황이라는 게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학급의 억센 녀석 클래런스가 경기에서 지게 생기자 마빈이 코딱지를 팠다는 거짓말로 마구 몰고 갔기 때문이다. 거기에 넘어가는 주변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의 단순함과, 단순함에서 나오는 잔인함을 실감한다. 결국 마빈의 편은 아무도 없게 되고, 선생님마저 여론에 따라 마빈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려버린다.

 

집에 가져가는 성적표에 선생님의 그런 의견이 적혀 있으니 마빈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그러나 온 가족이 모인 대화에서 마빈은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건 꼬마 린지의 이 질문 때문이었다.

코를 파는 게 왜 나빠?”

 

이후 문제를 해결하는 마빈의 방법이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지혜롭고도 후련한 결말. 왕따를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이렇게 명쾌한 책은 처음 읽었다. 사실 명쾌하다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자 어찌보면 단점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명쾌한 일은 사실상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그렇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현실성이 100%면 뭐하겠는가? 답답한 속 더 답답하게 해봤자 답이 나오는가? 이 책을 읽고 궁지에 몰린 아이들이 나름대로 그 궁지를 탈출할 건강한 방법을 모색해 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또 생각없는 다수에 속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그 생각없음을 깨닫고 쑥스러워 할 수 있다면!

 

본문 중에 아이들의 심리를 잘 포착한 내용이 있어서 한번 옮겨본다.

"아이들은 주로 혼자일 때 덜 야박해진다. 가장 공격적일 때가 떼로 몰려있을 때다. 몰려 있는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공격적으로 된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아이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제 다음 권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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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싫어요 맹&앵 동화책 9
고정욱 지음, 박재현 그림 / 맹앤앵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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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고정욱 님의 책들을 꼼꼼히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님께 막연한 편견과 오해가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말이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일을 많이 하다보니(별건 아니고 학교 도서관 담당으로 도서관에서 혼자 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가끔씩 목록을 요청하거나 책을 권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는데, 내 개인적인 취향임을 분명히 밝히고 권하긴 하지만, 그래도 찜찜함은 조금 남는다. 그동안 고정욱 님의 책을 권장도서 목록에 넣은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거나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읽어준 적은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주 특별한 우리 형>과 <사랑의 도서관> 정도를 읽고 그것이 그의 작품 전체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작품들이 훌륭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주제의식은 강하나 표현은 약간 밋밋하고 미담사례 중심의 뻔한 결말...? 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냐' 정도로 생각했었던 듯.... 더구나 매우 왕성하게 다작을 하시는 작가라서 한 편 한 편 장고 끝에 나오는 책들은 아니라고 넘겨짚었던 것 같다.


이 글을 보시지는 않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작가님께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싶다. 남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도 않은채 함부로 재단한 나의 시건방짐에 대해서.(그렇다고 남에게 떠든 적은 없으니 부디 용서하시길) 그러고 보니 그의 책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이나 <텃밭 가꾸는 아이>를 읽고 '엇, 새로운 느낌이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나는데.... 왜 편견은 이제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두 개의 한국 현대사>와 <한홍구의 특강>을 읽고서 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것을 하지 못한 역사가 얼마나 뼈아픈지를 느끼고 있던 중이었는데, 학교 도서실을 훑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헉! 제목이? 동화 제목이 <친일파가 싫어요>라는 말씀? 


왜 난 친일파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이 제목에는 흠칫했을까? 우리 사회에 정말 잘못된(어떤 이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버린) 공식 하나가 있는데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는 자들=자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좌파=빨갱이] 라는 공식이다. 이 공식에 순진한 분들은 그냥 넘어간다. 뉴스에서 친일파 어쩌구 하는 소리가 나오면 순수하고 무던하시고 남에게 싫은 소리 생전 할 줄 모르시는 우리 시부모님은 입을 맞추어 한탄을 하신다."아이구~ 그게 언제적 일인데 여직까지 난리여~ 이제 앞으로 잘 살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옛날 일로 트집잡을 거여~ 어뜨케 사람들이 싸울 생각밖에 안해~ 자기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아이구 어머님, 그게 아녀요. 권선징악이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정상적인 사회죠. 우린 친일파 때문에 그게 다 뒤집어졌잖아요. 오죽하면 친일파는 3대가 호강하고 독립운동가는 3대가 굶는다고 했겠어요. 그러니 기회주의가 판치고 옳은 일을 위해서 희생할 사람은 없는거 아녜요. 자손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면 좋으시겠어요?" 라는 말을.... 난 하지는 않는다.ㅠㅠ 


이 두껍지 않은 동화책 한 권은 그런 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과 논리와 호소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시골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농사꾼이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천용이네처럼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한다. 이 마을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이닥쳤다. 이 일대가 일제시대 때 친일파 송병준의 땅이었다고 그의 후손들이 땅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건 것이다.


이후 재판을 하고 판결이 나기까지, 이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의 고단한 투쟁 속에 한국 현대사의 뒤틀림이 그대로 녹아 있다. 정의감과 당위성만으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현실. 저들은 여유있게 비웃는다. 힘없는 자들의 외침은 더욱 처절해진다. 그들이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부짖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분노와 울분의 눈물이 흐른다.


1심에서 패소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절망적이기만 한 결말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역사를 보고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중요하게 본 것 같다. 이 책을 쓴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추천사에  나오는 한나 아렌트의 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정의이다. 정의가 없는 동정은 악마의 가장 강력한 공범자의 하나이다." 이 말이 어느 때보다도 공감이 되는 요즘이다. 자비가 아니라 정의라는 말이 무자비한 보복을 일컬음이 아님은 물론이다.  단지 정의, 그것이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불의가 판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것.


그늘진 곳을 비춰주는 작가의 눈은 정말 중요하고 큰 힘을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고정욱 님은 그것에 사명을 갖고 계신 듯 하다. 그 올곧고 자상한 눈에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그의 남은 작품들을 둘러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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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ty 2014-09-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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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와 함께한 여름 푸른숲 작은 나무 18
전성희 지음, 백대승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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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아직도 남아있는 그때의 감정을 가만히 모아 보면 많은 부분 외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처럼 이웃 간에 단절되어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 떠오른다. 개량한옥집이 쭉 붙어있던 서울 변두리의 골목길, 언니가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나는 집안일에 바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맴돌다가 골목길에 나온다. 봄햇살이 따뜻하고 눈부시다. 골목길에 주저앉아 혼자 놀다가 누군가 말을 붙이면 그 아이와 친구가 된다. 그 아이를 내일 또 볼 수도 있지만 다음날부터 영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난 가끔 그 아이와, 우리가 함께 했던 놀이를 생각한다. 아마 그 아이는 친척집에 잠깐 다니러 왔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진다......

 

이 책, 불가사리와 함께 한 여름을 읽다가 그 어린 시절 눈부신 골목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희준이의 즐거움과 신남, 고민, 그리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슬픔까지도 다 느낄 수가 있다니. 내가 아직 어른이 덜 된 것일까? 독자의 잊었던 감수성을 건드리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한 것일까?

 

희준이에게는 불가사리라는 친구가 있다. 벌레만할 때부터 키웠는데 음식이 아닌 쇠를 먹는 것을 알고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불가사리는 점점 커져서 집에서 키울 수가 없게 되어 집을 나간다. 하지만 기다리는 희준이 앞에 가끔씩 찾아온다. 깊은 밤,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둘만의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쇠를 먹는 불가사리의 식성이다. 몸집이 커질수록 많이 먹어야 하는데, 희준이가 구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동네에 나가보면 우체통도 있고 쇠로 된 공공시설도 많지만 그런 짓을 하지는 않고 주인이 주는 먹이만 먹는 불가사리. 희준이의 어깨가 무겁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고민만 깊어가는데.... 급기야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까지 하고 괴로움에 머리를 감싸쥔다.

 

마음만 괴롭고 줄 것은 하나도 없는 희준이 앞에 불가사리가 찾아왔다. 불가사리는 희준이를 태우고 가족여행이 취소되어 가지 못한 바다로 향했다. 희준이가 웃음을 되찾도록 실컷 놀아준 뒤, 불가사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이별을 고한다.

 

마지막이라니?”

앞으로도 난 널 계속 힘들게 만들 거야.”

아니야, 난 괜찮아.”

넌 괜찮지 않아.”

불가사리가 단호하게 말했어.

안 돼, 싫어!”

불가사리는 그저 부드럽게 웃기만 했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불가사리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마지막 남은 힘으로 희준이에게 추억을 선사한 불가사리는 다시 집 앞에 희준이를 사뿐히 내려주고 정말로 마지막 인사를 고한다.

안녕. 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 영원히.”

 

아이들에게도 이별은 찾아온다. 그것은 어른들의 이별보다 더 생생한 아픔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아픔을 간직하고 아이들은 큰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그 추억을 정확히 기억하든 어렴풋한 실루엣만 남아있든 간에, 따뜻한 이별의 아픔은 그의 마음에 좋은 밭을 일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난 아이들이 희준이의 아픔에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이들의 이별 장면에서 함께 가슴아파할 거라고. 아닐까? 에이, 불가사리가 어떻게 나타나, 말도 안돼! 라고 할까? 그런 반응을 보게 된다면 나야말로 가슴이 아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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