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재와 키완 - 두 아이가 만난 괴물에 대한 기록, 제1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75
오하림 지음, 애슝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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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며칠째 리뷰를 못 쓰고 있었다. 첫째는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알 수 없어서이고 둘째는 내가 제일 난감해하는 시간여행 이야기가 나와서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간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그 모순성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 그렇긴하지만 이 책을 그냥 흘려보내긴 뭔가 아쉬웠다. 느낌이 너무 색다르다. 난생 처음 본 곳에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다니는데 깨보니 꿈이었고 그 꿈이 너무 생생한 느낌?

'나'라는 화자는 '오랜 친구'에게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넣어둘 수가 없는 이야기라 '나'는 쓴다고 했다. 대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들은 그대로가 아닌 이것저것 바꿔서 쓴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진실이 아니지만 어쩌면 진실이 아니라는 게 진실이 아니어서 진실일 수도 있다는....??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 쓰고 있으므로 '나'는 전지적 시점에서 순재와 키완, 그리고 필립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끔 엉뚱하게 본문에서 "내가 말했다" 하는 식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책이다.

순재는 전학 온 키완과 친구가 되었다. 키완의 본래 이름은 백기완이다. 부모님을 잃은 기구한 사연과 함께 키완이 된 아이에게 순재와의 우정은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순재는 늘 그렇지는 않았다.

기묘하고 불편한 인물 필립. 이 아이는 왜 순재를 못마땅하게 주시하다가 "너는 어차피..." "너는 절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어." "너는 말야, .....너는 .....다른 애들 다 되는 열 살도 될 수 없어!" 라는 섬뜩한 소릴 못참고 내뱉는 걸까? 이 친구의 정체가 궁금한데 나중에 알고보니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로봇이었다. 제작자는 80대의 로봇공학자 백기완 박사. 박사는 무슨 임무를 지워서 이 로봇에게 시간여행을 시킨 걸까? 로봇은 임무를 완수했을까?

보통 시간여행자는 과거 시점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흐름을 바꾸지 않는(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르려면 필립은 박사의 지시에 불복해야 한다. 그것이 박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박사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면? 으아아아아 그때부턴 나도 모른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여행이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난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끝에서 두번째 장, 순재와 키완이 끌어안고 목놓아 우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순재는 왠지모를 불길함과 공포에 지쳐 있었고 키완은 어린 나이에 당한 엄청난 고난에 질려 눌려 있던 슬픔과 외로움이 그순간 고개를 들었다. 키완은 "순재야, 죽지 마아!" 하며 순재를 안았고 순재는 눈물이 터진 키완을 "울지 마, 울지 마...." 하며 안아주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서로에게 가장 깊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실 이전까지 순재는 키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박사가 준 임무를 띠고 온 필립이나 '나'가 키완의 고마움을 일깨워줘도 순재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를 구해주는 사람은 꼭꼭 아주 많이 좋아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며 힘들어 한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좀 그랬다. 그 말이 맞아서.

하지만 둘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장엔 작가의 의도로 짐작되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아홉 살짜리 아이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아주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당신은 그걸 생각하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해."
- 순재가 진정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도, 로봇도 아닌, 비정함 그 자체였다. 괴물은 우리 안에서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린다. 잡아 먹히기는 쉽고, 떨쳐 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아, 쓰고 보니 작가의 육성이 그대로 들어갔다는 느낌. 굉장히 강하다.)

그러고보니 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앞에서 말한 시간여행의 모든 장치를 끌어들인 작가의 스케일이 정말 크다. 시공간을 넘어 소중한 한 생명. 이걸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된다.

이 책은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면 아마 많은 조각들을 고쳐 놓아야 할 것이라 짐작한다. (뭐 꼭 두 번을 읽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한 번 읽은 느낌도 중요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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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2018-12-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네요~~~ 읽을 수록 또 읽고 싶은~~~
 
언니들의 세계사 - 역사를 만들고 미래를 이끈 50명의 여성 인물 이야기 지식곰곰 4
캐서린 핼리건 지음, 새라 월시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읽는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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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tory'라는 원제를 왜 '언니'들의 세계사라고 번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여성울 '언니'라고 칭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제목은 좀 눈에 띌 필요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50명의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대단히 두꺼운 책인가? 했는데 100쪽이 조금 넘을 뿐이다. 대신에 판형이 매우 크다. 보통 동화책의 2배 이상일 것 같다. 이렇게 큰 지면의 펼친 페이지 두 쪽에 한 인물씩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을 다루자면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텐데 2쪽이라니 읽을 것이 있겠나 싶겠지만 큰 판형 안에 요모조모 꽤 읽을 내용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는 한 인물의 기나긴 삶을 고작 두 페이지에 담아내야 하기에,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깊이 다루지는 못했답니다." 라고 전제했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짚어주었다. 하지만 이 50인 중에 모르는 인물도 꽤 많았던 내게는 간단히 소개하는 이 책으로도 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여성이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하고, 참정권을 가진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자신의 뜻을 펼치고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여성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이 오늘날 여성들이 딛고 설 땅을 단단히 다져 준 것이리라.

여러 분야의 인물들 중 더 관심이 간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프리다 칼로처럼 육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생은 존경스러웠고, 피터 래빗의 비어트릭스 포터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등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평생 발휘하며 살았던 인물들은 부럽기도 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고 "와, 수학도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실제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도 여기 나왔다. 그외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여성 학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었던 여성들은 비록 맞서야 할 어려움이 있었어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러한 시도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되는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다. 탈레반 치하에서의 여성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성은 아주 어린 아가씨였는데 출생연도를 보니 우리 아들 나이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라는 이 여성은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는 탈레반 정권에 맞서 교육활동을 계속하다 십대의 나이에 총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고. "학생 한 명과 교사 한 명,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크게 다가온다.

그외 <사라 버스를 타다>의 주인공 로자 파크스도 나오고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나오고 가장 마지막에 안네 프랑크가 나온다. 안네가 15세에 나치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책의 인물 중 최연소인 셈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희망은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우리를 다시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안네의 일기 속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세상은 계속 변화해 왔고 인간의, 그리고 여성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어 왔지만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았다. 싸움의 방향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는 나 자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찰 없는 싸움은 오히려 퇴보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두고 조금씩 보면 좋겠다. 근데 판형이 하도 커서 학급문고에 똑바로 꽂을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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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훅! 창비아동문고 295
진형민 지음, 최민호 그림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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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질이란 남보기에 어떠한가? 내로남불이란 말도 있는데 남보기에도 아름다운 연애질이란 건 과연 있는가? 아니 뭐 연애질이 꼭 남보기에도 아름다워야 하나?

이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초등 고학년을 담임하며 비교적 연애에 목매달지 않는 아이들과 지낼 때 학급운영이 즐거웠다. 그런 아이들 특징은 어리거나(아직 눈이 안떠짐ㅋ) 쿨하다.(좋으면 좋지만 아님 말고) 그 아이들과는 별다른 생활문제 없이 수업과 학급의 활동에 매진할 수 있다. 반면에 연애에 목매다는 아이들이 대다수면 정말 힘들었다. 일단 짜릿함에 눈 뜬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시시하고 지루하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소유욕을 가져오고 여러 비틀린 관계를 만들어 상처를 주고받는다. 파탄도 요란하게 내며 그 잔재를 치우는 일도 상당히 고약하다. 누구나 경험에 근거한 느낌을 갖는 법이라 난 초딩 연애질에 부정적이다.ㅎㅎ

그런데 이 책, 제목도 '사랑이 훅!' 뭔가 무척 심란한 얘기는 아닐까 싶었는데 참 예뻤다. 그래 이정도면 아름다운 연애질이라 이름해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이런 책들을 발견할 때마다 꼭꼭 적어두고 <초딩 연애 도서들 >이란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아이들의 사랑이 모두 대견하고 미더웠지만 이 아이들의 사랑도 그에 못지않게 예뻤다. 그렇다. 사랑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아름다워야 사랑이라 말하는게 나을까. 어떤 것은 사랑이라 이름붙인 욕심이나 폭력,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박담, 신지은, 엄선정이라는 3명의 여학생 친구들이 나온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멋지게 우정을 나눈다. 연애질은 우등생 공부벌레 엄선정이 먼저 시작했다. 그것도 그반에 가장 공부 못하는(대신 운동은 잘함) 이종수랑. 엄선정은 평강공주의 심정으로 이종수의 성적을 올려주려고 밤새 맞춤 문제집을 만드는 등 노력을 쏟아붓지만 이종수는 별 진전이 없을 뿐 아니라 그리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어느날 "이제 너 그만 만나고 싶어." 라는 종수의 통고와 함께 그들의 연애질에 종말이 찾아온다. "너는 뭘 했는데?!!" 라는 엄선정의 원망에 이종수는 대답했다. "그렇게 물어보면 할 말은 없는데.... 나는 널 그냥 좋아했어. 근데 넌 나한테 계속 화냈잖아."
상처받았겠지만 똑똑한 엄선정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금방 깨달은 것 같다. 그들은 원래의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돌아갔고 헤어졌단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만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엄선정이 먼저 찼을거란 아이들의 예측에 대해 입을 다문 이종수는 멋있다. 내가 본 애들은 그렇지 않았거든. 헤어지고는 더욱 찌질한....ㅠ 당연히 헤어질 수 있으며 헤어져도 괜찮다. 대신 멋져야 한다.

나머지 두 친구 박담과 신지은은 소위 삼각관계에 빠졌다. 박담의 소꿉친구 김호태를 신지은이 남몰래 사랑하게 된 것이다. 털털하고 눈치없는 박담은 그걸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심지어 신지은이 자기 오빠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기까지 한다. 게다가 소꿉친구 사이는 어느 순간 자신들도 모르는 요술봉의 터치에 의해 '사귀는 사이'로 바뀌고 만다. 오랜 세월 지켜본 이해에 근거한 사랑은 더 안정되고 단단하다. 그걸 지켜보는 신지은의 마음은 찢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난 울었어~ 내 사랑과 우정을 모두 버려야했기에~ 라고 건모 오라버니는 노래했지만 이 어린 친구들은 둘 다 지켜냈다. 멋진 사람에게 멋진 사랑이, 건강한 사람에게 건강한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니 아이들아. 먼저 멋지고 건강한 사람이 돼라. 사랑의 상처와 아픔까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픔 뒤의 성장과 아픔 뒤의 찌질함은 너희의 선택이란다.

다시 고학년을 맡으면 테마독서로 앞에 말한 <초딩 연애 도서> 목록을 활용해 볼까보다. 그중에서도 이 책이 가장 인기 예감이다. 제목처럼 훅! 들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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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뿜는 용 - 2019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6 대만 타이베이공립도서관 최고의책 선정 바람그림책 63
라이마 지음, 김금령 옮김 / 천개의바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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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카타르시스인가?^^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버럭이라는 용이 있었다. 모기 앵앵이에게 물려 화가 난 버럭이는 분을 참지 못해,
1. 버럭 소리를 질렀다.
2. 입에서 불이 뿜어 나왔다.
3. 불 뿜는 용이 되어 버렸다.

불 뿜는 용이 된 버럭이는 너무 힘들었다. 주변이 다 불타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타버리고(미다스의 손도 아닌 것이), 친구들까지 다치게 했다. 결국 아무도 버럭이 곁에 오지 않게 됐다. 심지어 "물 속에 담그면 될까?" 하고 풀에 들어갔는데 물이 펄펄 끓어 모두들 물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땅속에 얼굴을 묻으면 땅 속이 뜨거워지고. 소화기로 꺼도 안되고. 도대체 어째야 할까?

절망한 버럭이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그랬더니, 드디어 불이 꺼졌다. 풀장의 물로도, 소화기로도 꺼지지 않던 불이 눈물과 콧물에 꺼진 것이다. 안도감에 버럭이는 눈물을 매단 채 환하게 웃고, 친구들도 함께 기뻐한다.

눈물과 웃음이 가져온 감정의 정화. 이것을 카타르시스라 부를 것이다. 그렇구나.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도 감정의 정화 과정을 거쳐야 미련없이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 책에선 눈물이었지만 반드시 눈물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러나오는'과 '의도하지 않은(?)' 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는 아이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땡깡이라고 부른다. 그 울음은 몹시 피곤하다. 분노와 별 차이 없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우러나오는 눈물은 부정적 감정을 깨끗이 씻어주고 비록 꼬질꼬질한 얼굴과 쑥스러움을 남기더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부모나 교사는 이런 버럭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 주변을 태워 쑥대밭으로 만들고, 친구들을 다치게 하고, 그래서 아무도 친구하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더 심술을 부리는 버럭이들. 버럭이의 불길로부터 다른 아이들을 보호하며 동시에 버럭이를 다독이려면 도를 닦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버럭이들에게는 저런 감정의 정화 과정이 참 중요하겠다. 그런데 어떻게?

원래 그림책은 답을 잘 안 준다. 오히려 숙제를 주지.ㅎㅎ 대신 아이들은 그림책의 메시지를 거부하지 않는다. 분노의 화력과 그로 인해 기피 인물이 되어가는 버럭이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충분한 경고가 될 것이다. 우리반 버럭이에게 읽어주면 이 책의 버럭이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까? 오늘 체육관에서 경기에 졌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땡깡부리는 녀석을 가만 두고 나머지 모두 줄을 섰다. 조용히 체육관을 빠져나오는데 버럭이도 퉁퉁 부은 얼굴로 맨 뒤에 섰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버럭이 옆에 서서 걸었다. "보이는 니 모습 좀 생각해봐. 좀 떨어져서 니 모습을 보라구. 어떻게 보이나. 애들이 아무말 안하니까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것 같니? 쟤네들 머릿속에 니 모습이 조각되고 있는 중이야. 니 모습에 신경 좀 써."

나도 꼴사나운 걸 못 참아서 괜한 소릴 한다. 그냥 이 책을 보여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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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는 지겨워 -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웅진책마을 92
하서찬 지음, 애슝 그림 / 웅진주니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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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여럿이서 같이 읽고 얘기나눠보고 싶다. 이 안에 들어있는 상징들, 숨어있는 의미들을 나 혼자서 다 캐내지 못한 것 같아서다.

<빨래는 지겨워>라니 여성독자들을 위한 에세이도 아니고, 이게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자 동화제목으로 가당키나 한가? 근데 정말로 아이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겹도록. 빨래는 엄마 아빠였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빨아서 넌다. 바짝 마르면 그들은 빨래에서 다시 사람이 된다.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이 책에는 3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3편 모두가 이런 식이다. 가족과 가족이 준 상처에 대한 기괴한 상상력.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며 감탄했다. 그리고 작가가 표현한 부모의 모습에 공감한다. 이런 부모는 너무나 많다. 그래 나일수도 있고.

이시대의 어른아이는 그 부모인 아이어른들이 만든다. 아이어른인 부모는 자녀의 성장과 욕구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순간적 감정이 가장 중요하며 그게 충족되지 않을시 아무데서나 감정을 폭발시킨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를 통해 자신의 한을 풀려고 하며 그게 맘대로 안되면 분노한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잘 안되는 건 모두 남탓이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의 탓을 하거나 학교 탓, 친구 탓을 한다.

이러한 아이어른 밑에서 자라는 아이 중 내적 힘이 강한 아이들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어른아이가 되어 부모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놓은 판을 애써 제자리로 돌리거나 지킨다. [빨래는 지겨워]속의 아이는 때로 학교도 못가고 빨래를 한다. [악어가 된 엄마 아빠]속의 아이는 사람들이 악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악어우리를 지킨다. 정말 안쓰럽고 대견하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3자는 기도한다. 제발 저 아이가 한계에 이르기 전에 부모가 철이 들기를. 혹은 아이가 더 철이 들어 자신의 삶과 부모의 삶을 이성적으로 분리하기를.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아이어른 부모 밑에서 이렇게 애틋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지 못한다. 대개는 부모를 닮아 감정조절을 못하고 부모에게 충족하지 못한 사랑을 다른 곳에서 구하느라 껄떡거리거나 타인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어제 본 영화 <스타 이즈 본>의 남자주인공은 알콜중독 아버지의 그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다가 본인도 결국 약물중독 알콜중독을 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ㅠㅠ

다행히도, 작가의 시선은 따사롭다. [빨래는 지겨워]에서 바람에 날아간 엄마 빨래를 찾아 헤매다 길을 잃은 아이가 엄마와 극적으로 만났을 때, 엄마는 아이를 업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래. 노력해 볼게. 언젠가는 엄마 아빠도 훌륭한 어른이 될지 누가 아니."
그래. 이렇게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고 인정한 가족은 앞으로 좋아질 것이다. 아직도 남탓만 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그리고 나도 이 엄마와 동감이다. 나도 '언젠가는' 괜찮은 어른이 되길 꿈꾼다. '밑줄긋기'에 쓰고 싶은 반가운 문장이었다.

[악어가 된 엄마 아빠]에서 아이는 밤에만 인간으로 돌아오는 엄마 아빠에게 "행복해지고 싶다"며 조건을 제시한다. 사랑한다고 얘기할 것, 눈 마주칠 것, 끝까지 들어줄 것 등이었다. 이걸 수용한 엄마가 먼저 사람이 되었고 "다 이렇게 살아.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걸로 감사해야지." 하고 뻗대던 아빠는 뒤늦게 사람이 되었다. 어쨌든 해피엔딩이어서 다행.^^

나머지 한 편 [빵이 된 동생]에서는 영리하고 얄미운 동생에게 상처받은 덜 영리한 형이 나온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 동생은 형이 가장 좋아하는 초코 카스테라 한 덩이가 되어 무지막지하게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형은 과연 카스테라를 먹을까?^^ 영악한 동생과 동생 편 드는 엄마 사이에서 상처받는 형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두 편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인공은 매우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하여 이 작품도 해피엔딩.

해피엔딩 결말에 매우 만족한다. 아이들이 볼 책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보는 어른들은 이런 상황들이 해피엔딩으로 가기가 실제로는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어른들이여 제발 철 좀 들어서 아이들한테 상처 좀 그만 줍시다. 제발 자기 감정, 자기 자존심만 앞세워서 자녀 교육 갈아엎는 짓 좀 하지 맙시다. 낳았으면 끌어안고 책임 좀 집시다.

너무 나가면 안될 것 같다. 이정도만 하자. 작가의 첫 동화책인 것 같은데 원래 희곡을 쓰시는 분이라 한다. 기괴하면서도 따뜻한 상상력에 찬사를.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읽어보려고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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