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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는 지겨워 -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ㅣ 웅진책마을 92
하서찬 지음, 애슝 그림 / 웅진주니어 / 2018년 7월
평점 :
이 책을 여럿이서 같이 읽고 얘기나눠보고 싶다. 이 안에 들어있는 상징들, 숨어있는 의미들을 나 혼자서 다 캐내지 못한 것 같아서다.
<빨래는 지겨워>라니 여성독자들을 위한 에세이도 아니고, 이게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자 동화제목으로 가당키나 한가? 근데 정말로 아이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겹도록. 빨래는 엄마 아빠였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빨아서 넌다. 바짝 마르면 그들은 빨래에서 다시 사람이 된다.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이 책에는 3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3편 모두가 이런 식이다. 가족과 가족이 준 상처에 대한 기괴한 상상력.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며 감탄했다. 그리고 작가가 표현한 부모의 모습에 공감한다. 이런 부모는 너무나 많다. 그래 나일수도 있고.
이시대의 어른아이는 그 부모인 아이어른들이 만든다. 아이어른인 부모는 자녀의 성장과 욕구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순간적 감정이 가장 중요하며 그게 충족되지 않을시 아무데서나 감정을 폭발시킨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를 통해 자신의 한을 풀려고 하며 그게 맘대로 안되면 분노한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잘 안되는 건 모두 남탓이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의 탓을 하거나 학교 탓, 친구 탓을 한다.
이러한 아이어른 밑에서 자라는 아이 중 내적 힘이 강한 아이들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어른아이가 되어 부모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놓은 판을 애써 제자리로 돌리거나 지킨다. [빨래는 지겨워]속의 아이는 때로 학교도 못가고 빨래를 한다. [악어가 된 엄마 아빠]속의 아이는 사람들이 악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악어우리를 지킨다. 정말 안쓰럽고 대견하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3자는 기도한다. 제발 저 아이가 한계에 이르기 전에 부모가 철이 들기를. 혹은 아이가 더 철이 들어 자신의 삶과 부모의 삶을 이성적으로 분리하기를.
그러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아이어른 부모 밑에서 이렇게 애틋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지 못한다. 대개는 부모를 닮아 감정조절을 못하고 부모에게 충족하지 못한 사랑을 다른 곳에서 구하느라 껄떡거리거나 타인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어제 본 영화 <스타 이즈 본>의 남자주인공은 알콜중독 아버지의 그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다가 본인도 결국 약물중독 알콜중독을 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ㅠㅠ
다행히도, 작가의 시선은 따사롭다. [빨래는 지겨워]에서 바람에 날아간 엄마 빨래를 찾아 헤매다 길을 잃은 아이가 엄마와 극적으로 만났을 때, 엄마는 아이를 업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래. 노력해 볼게. 언젠가는 엄마 아빠도 훌륭한 어른이 될지 누가 아니."
그래. 이렇게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고 인정한 가족은 앞으로 좋아질 것이다. 아직도 남탓만 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그리고 나도 이 엄마와 동감이다. 나도 '언젠가는' 괜찮은 어른이 되길 꿈꾼다. '밑줄긋기'에 쓰고 싶은 반가운 문장이었다.
[악어가 된 엄마 아빠]에서 아이는 밤에만 인간으로 돌아오는 엄마 아빠에게 "행복해지고 싶다"며 조건을 제시한다. 사랑한다고 얘기할 것, 눈 마주칠 것, 끝까지 들어줄 것 등이었다. 이걸 수용한 엄마가 먼저 사람이 되었고 "다 이렇게 살아.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걸로 감사해야지." 하고 뻗대던 아빠는 뒤늦게 사람이 되었다. 어쨌든 해피엔딩이어서 다행.^^
나머지 한 편 [빵이 된 동생]에서는 영리하고 얄미운 동생에게 상처받은 덜 영리한 형이 나온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 동생은 형이 가장 좋아하는 초코 카스테라 한 덩이가 되어 무지막지하게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형은 과연 카스테라를 먹을까?^^ 영악한 동생과 동생 편 드는 엄마 사이에서 상처받는 형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두 편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인공은 매우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하여 이 작품도 해피엔딩.
해피엔딩 결말에 매우 만족한다. 아이들이 볼 책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보는 어른들은 이런 상황들이 해피엔딩으로 가기가 실제로는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어른들이여 제발 철 좀 들어서 아이들한테 상처 좀 그만 줍시다. 제발 자기 감정, 자기 자존심만 앞세워서 자녀 교육 갈아엎는 짓 좀 하지 맙시다. 낳았으면 끌어안고 책임 좀 집시다.
너무 나가면 안될 것 같다. 이정도만 하자. 작가의 첫 동화책인 것 같은데 원래 희곡을 쓰시는 분이라 한다. 기괴하면서도 따뜻한 상상력에 찬사를.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읽어보려고 기억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