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든 분식 -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 초승달문고 52
동지아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이 있지만 저학년 동화를 대상으로 하는 초승달 문학상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이 책이 그 첫 수상작이다. 처음 등장한 작가님인 것 같은데 이미 꽤 많은 작품을 써보신 것 같은 능숙한 필력이 느껴진다.

 

이 책은 많이 선택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수상작 프리미엄도 있는데다가, 제목이 짧으면서도 인상적이고, 표지가 너무 먹음직스럽다. 내용까지 총체적으로 맛있는! 느낌이 든다. 나도 오늘 몇 권의 읽을 책이 있었는데 이 책을 가장 먼저 골라 들었다. 노란 톤의 바탕 아래 그려진 분식과 닭강정이 너무 탐스러워 저절로 책에 손이 간다. 집게 사이에 쓰여진 <해든분식>이라는 제목도, 거기에 매달린 아이의 모습도 재미가 가득 담겼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변신 판타지는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되어서 헤아리기도 어렵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물건... 심지어 쓰레기로 변신하는 이야기까지도 나왔었지. 여기서의 변신을 보고 풋, 웃어버렸다. 몇 달 전 방영되었던 넷플릭스 드라마와 똑같은 변신이라니! 그 드라마 엄청 화제였고 내 주변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난 1화만 보고 그만두었는데.... (재미는 있었다 꽤 웃기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드라마의 변신이 어떤 결말로 갔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아마도 두 작품은 변신의 출발은 같되, 과정과 결말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문법과 저학년 동화의 문법은 다를 테니까.

 

해든분식을 운영하는 엄마의 둘째딸 강정인.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다. 이 책의 대표 독자로 2학년을 설정하신 것인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1,2학년보다는 2,3학년에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아주 단순하지는 않아서 3학년까지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2,3학년 담임이라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하고 싶을 정도로 내용이 재미있다.

 

더 좋은 건 모든 캐릭터의 건강함이다. 주변에 있을듯한 현실적인 캐릭터이며 평범한 우리가 겪는 자잘한 감정들을 다 겪으면서도 모든 길목에서 빛을 찾아 나아갈 것 같은 신뢰를 주는 캐릭터들. 때문에 저렇게 황당한 변신이 되었어도 저걸 어째, 하는 마음은 잠깐. 웃으며 지켜보게 된다. 언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마지막 순간에는 저절로 외치게 된다. 그래, 그거지!!^^

 

바쁘게 분식을 만들어 팔며 자매를 키우는 엄마도, 엄마끼리 친해서 어릴적부터 가까이 지냈던 준찬이도(그러고보니 엄마친구아들이네. 서로의 엄마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도 똑같아.ㅎㅎ) 정인이 친구들도. 다 평범하지만 건강하다. 지지고볶으며 사는 건 다 똑같지만 시선이 밝다. 이것이 독자에게까지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아프고 우울하고 괴롭고 슬프고 힘겹고 미치겠고 상처주고 이런 것도 인생이고 현실이지만 요즘은 아이들한테서도 가뜩이나 이런 것만 보여서.... 이 작품이 주는 맛은 더욱 특별했다. 여기 나오는 음식들은 사실 건강식은 아니지만, 이 책은 마음의 건강식이라고 할까? 쭉 한잔 마시고 나면 힘이 나는 맛. 이런 작품이 필요했어. 특히 아이들에게는 말이야. 이 책을 잘 챙겨둬야겠다. 읽어줄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으니.

(! 엄마들이 읽는 것도 추천한다. 아이랑 같이 읽으면 더 좋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로하, 파! 사계절 아동문고 112
강인송 지음, 안난초 그림 / 사계절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와이 해변에 노을이 지고 있고 열대의 식물들이 우거진 사이에서 세 아이가 훌라춤을 추고 있다. 이 표지그림이 주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뭔가 따뜻하면서도 시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모순된 느낌의 조화라고 할까. 이 느낌을 고루 섞으니 편안함이라는 느낌이 나온다.

 

이 느낌은 나의 갈망이기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난 어젯밤에도 꿈에서도 애를 쓰느라 잔 것 같지도 않게 자고 일어나 무거운 발을 끌면서 출근했다. 월요병이었나.... 나는 어딘가 엄청 먼 곳으로 이사를 갔고, 하지만 직장은 바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출근 시간을 감내하며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고, 전학수속을 밟아야 하기에 오늘 제시간에 출근하기가 어렵다는 걸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교감선생님한테 전화하면서 5교시에 있는 영어를 1교시로 옮겨주시면 2교시까지는 빨리 가보겠다고 했다. 꿈에서라도 통 크게 오늘 하루 결근하겠습니다!” 하지 못하는 나. 아이들을 새 학교에 넣고 서둘러 길을 가는데 어느새 이사간 곳이 아닌 늘 다니던 출근길을 가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출근길엔 다리가 하나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침수돼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이 바로 물에 잠겨 있었다. 지금 한시가 촉박한데 말이야! 물에 잠긴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높은 곳으로 피해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허둥지둥 뛰면서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의 하루는 그럭저럭 평탄한 편이다. 직장일이 쉽지는 않지만 남의 돈 벌기야 누구나 어려운 거고... 그런데도 난 편안하지 못하다. 이 책의 태양이와 비슷한 점이다. 태양이는 춤을 잘 춘다. 댄스학원을 다니는데 거기서 알아주는 실력자다. 최종선발에 뽑힐 것으로 자타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님과 독대한 자리에서 원장님은 태양이를 선발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다음 동작에만 집중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 없다는 거다.

 

나는 춤과는 거리가 멀지만 느긋하지 못함은 태양이와 비슷하다. 그리고 멋이 없다는 점도? 태양이는 상처받고 댄스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학교에서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라는 희한한 이름의 동아리에 떠밀리다시피 들어갔는데, 이건 하와이에 사는 물고기 이름이라나. 고정멤버라곤 리나 한명 밖에 없는 이 동아리에 태양이와 재재가 함께 들어가게 됐다.

 

리나한테서 배운 훌라춤은 그동안 격정적으로 추던 춤에 비하면 참 심심해 보였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이쪽 저쪽으로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손동작 좀 하는 그게 훌라춤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는 않은가보다. 태양이와 재재는 점점 그 매력에 빠져갔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그들은 자기주도적 페스티벌을 열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미세한 충돌은 알로하 정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태양이는 여기서도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본성을 버리지 못해서 전전긍긍한다. 자신이 안무를 완벽히 외운 것은 물론이고, 잘 안되는 재재한테까지도 스트레스를 준다. 리나는 태양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건 알로하 정신이 아니라는 거다.

 

알로하 정신이 뭐냐고 따지는 태양이에게 리나는 모두를 위한 마음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거지.” (60)

연습 제대로 안해서 망쳐도 알로하 정신이라고 할거냐며 태양이는 따진다.

어떻게 항상 다 괜찮고, 다 즐거워? 그게 말이 돼?”

웬만하면 다 같이 좋은 거. 그게 알로하고, 그게 훌라야” (61)

 

페스티벌은 용케 열었지만, 그들 차례에선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그동안의 연습이나 준비로 커버되는 일이 아닌.... 인생에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위기는 더 큰 격려와 웃음과 감동으로 넘어갔다. 확실히 알겠다. 이런게 알로하 정신인 것을. 열정과 편안함이 손잡은.

 

작가님은 훌라를 사랑하고 즐기는 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따뜻하게 쓸 수 없다. 작가의 경험의 세계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처음보는 이런 소재로 동화를 즐길 수 있게 작가님에게 찾아온 그 경험이 고맙게 느껴진다. “!”는 시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구령과 함께 즐거운 춤이 시작된다. 나도 어디선가 이 즐거운 구령을 붙이고 웃음과 함께 즐거운 작업을 해보고 싶다.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동화 아니면 비문학을 주로.... 어른책 자체를 별로 안읽음^^;;;

한강 소설도 안 읽었다. 채식주의자가 엄청 화제가 됐을 무렵, 그때 도서실 담당이던 때라 수서는 했지만 읽진 않았다.
뭔가 되게 불편하단 소릴 들어서다.

오늘 선배쌤과 만날일이 있었는데 작별과 채식을 맞바꾸었다. 작별도 아직 안읽었지만 쌤이 읽고싶어하셔서 일단 바꿨다. 어제 1교시가 도서실 시간이어서 갔는데 벌써들 다 빌려가시고 두권 남았더라고. 그중에 한권을 차지했다. 왜 그렇게들 빠르셔?ㅎㅎ

이 책은 과연, 내가 잘 읽을 책은 못되었다.
1편 채식주의자는 공감할 수 있었다. 공감이란 말은 주제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고통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해는 가 닿았다. 압도적인 폭력에 노출된 기억이 얼마나 각인되는지. 그 폭력의 행사자에게 적의가 생겼다. 그게 피할 수 없는 가족이라면? 인생의 첫번째 운은 태생인거다. 그런 면에서 난 풍족하진 못했어도 태생의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거다. 때로 너무 싫고 가당찮은 인간을 길에서라도 보게 되면 "개새끼! 마누라가 불쌍하다." 혹은 "저런게 시아버지면 이혼하겠다." 이런 욕을 속으로 뱉는데, 가족의 기억을 불행으로 채워주는 폭력인들이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더라구? 그런것들 어떻게 해야돼? 죽여버릴 수도 없고.ㅠㅠ

피가 가득한 숲을 통과하는 그녀의 꿈이 너무 생생한데, 그건 인간 세상의 시스템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피에 발을 담그고 산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모른다.ㅠ

2편 몽고반점은 빠르게 넘겼다. 뭐라고 감상을 하기 힘들다.

3편 나무불꽃을 가장 천천히 읽었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관점이 그나마 나와 가장 가까웠다. 그녀의 고통에 근접할 수는 없지만.... 사실 정신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는 그녀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다 못해 마지막엔 모든 섭식을 거부하는데, 그때 강박하고 억지로 주입하는 치료방식도 폭력이라 생각되었다. 여기에서 존엄사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목도 내겐 몹시 고통스러웠다.

"바보같이.
기껏 해칠 수 있는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동생을 보면서 그녀가 한 생각이다. 영혜는 이런 말도 했었다.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영혜는 이제 자신이 인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것 같았다. 숲에서 비를 맞으며 나무가 되려 했던 모습을 보아도.

한강의 작품을 이제야 겨우 보았지만 들은바에 의하면 그는 고통을 깊게 그려내는 작가인 것 같다. 읽기도 고통스러운데 쓰는 일이야 오죽할까. 왜 이런 일을 자임하게 되었을까. 운명의 영역일까.
이 책은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진 5.18이나 4.3 같은 역사의 고통이 아닌 개인의 고통을 다뤘다. 하긴 역사의 고통도 개인의 고통들의 총집합인 거지. 고통이란 면에선 다를게 없겠지. 생생하게 날이 선 고통의 서슬이 시퍼랬다. 인생사의 고통과 슬픔의 깊이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그걸 모르는 나는 아직까지 헛살았다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도 모르고 싶고.ㅠ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대출했으니 읽어볼거다. 어쩌면 다른 책도. 그다음 책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별볼일없이 살아간다.
(월급값 하느라고 분주히 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러면서도 별볼일없는 하루에 대한 염려와 거부감이 있다.
휴일날 거한 계획을 세워 떨쳐 나가지도 못하면서, 덧없이 하루가 흘러갈까봐 걱정한다. 책이라도 좀 읽거나 공연이나 영화를 보거나 식구들을 잘 먹이거나 수업자료를 만들거나 하면 그나마 위안을 한다.
그런데 내가 그런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나 목적없이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뭐가 크게 다를까? 잘 모르겠다.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이 가족, 화자인 '나'(은수)의 가족은 내 눈에 참을 수 없이 한심했다. 나의 지인이라면 당장 "왜 저러고 살아? 어휴..." 라고 속말을 했을, 답답함이 가득했다. 송미경 작가님의 작품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안개같은 모호함에 싸여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그랬다. 덜 잠근 수도꼭지를 그냥 두고 사는 가족 같달까. 내가 가서 꽉 잠가버리고 나오면 속시원할거 같은. 그런데 끝까지 그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는듯.... 나중에는 그걸 잠그고 싶어 들썩거렸던 내 마음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달까. 뭔지 모르겠는 마음이 이 책 전체를 휩싼다. 나의 전제 자체가 틀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게 송미경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형태가 모호한 세상에서 나혼자 "아 그래서 그게 무슨 모양인건데! 네모야? 세모야?" 하면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세상은 니가 보는 차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 느끼게 하는?

'나'의 엄마는 어렸을 때 동생(소이)을 유원지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미미제과의 백일장에 어린시절 동생이 좋아했던 딸기웨하스의 추억을 써보냈다가 대상을 탔다. 그 사연이 마케팅에 이용되면서 가족은 실속도 없이 유명해졌다. 가족이 사는 단독주택은 누가 봐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웨하스 지붕으로 꾸며졌고, '내가 잃어버린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엄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받아주었다가 떠나면 보낸다. 막지도 않고 잡지도 않는다. 그러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름이 '제리미니베리'라고 했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하는 짓을 보면 나라면 샅샅이 검증하고 당장 내보낼텐데... 결국 어찌저찌 나가게는 되지만, 다시 돌아와 익숙한 풍경의 한 부분이 된다.
"드라마는 비록 삼류 드라마일지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략) 나에겐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141쪽)

드라마로 비유한데는 이유가 있다. 가족 외 중요한 인물, 동네 주민이자 친구인 마로니. 알고보니 이 사람은 드라마작가 마영희였다. 마영희로 말할 것 같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막장드라마 작가다. '나'와 삼촌, 그리고 이 드라마작가는 자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의 대화나 에피소드 속에 의미심장한 부분도 있고 웃기는 부분도 많다. 폭소 정도는 아니고 풋, 하고 웃게 되는 정도. 하지만 마로니는 충격적으로 슬프게 떠난다. 이 책에선 그것 또한 무심하게 툭, 놓아두고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의 소설이라면 기승전결을 통해 해결할 것들을 좀처럼 해결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속시원히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메리 소이 사건까지도. 어느날 마로니는 '나'에게 메리 소이를 정말 기다렸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데, 이후에 '나'는 이렇게 쓴다.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건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200쪽)
글쎄, 알듯말듯하다.
돌아보면 이 책에서 마로니의 역할은 '질문하기' 였던 것 같다. 삼촌에게도, 나(은수)에게도. 그 질문에 대체로 대답을 못하지만 질문은 거울처럼 자신을 보여주곤 했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가장 한심한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화자인 '나' 였는데, 얘는 거의 20년째 눈깜빡이 인형 미사엘을 끌어안고 살며 동네 '원더마트'를 천천히 일주하면서 백화점과 아울렛을 떠돌다 종착역으로 들어온 떨이 옷들을 구경하다 사는 것이 일과다. 부모는 벌인 일이 망해서 어려운데도 이런 딸의 소비에 돈을 대준다. 그러다 마트의 젠탱글 강좌에 다니게 되자 엄마는 기뻐한다.
"미사엘이나 안고 다니는 대신에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들뜬 표정을 애써 감추며..." (75쪽)
그러고보면 독촉하지 않았을 뿐이지 엄마들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후반부에 '나'는 친척 동네의 한 잡화점에 판매원으로 취직해서 다닌다. 이전과 다른 역할에 뿌듯함을 표현한 문장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얘가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독특한 글을.

이 책에서는 슬픔도 조금 우스꽝스러워지고 웃음에서도 슬픔이 느껴진다. 슬픔도 기쁨도 톤다운해서 결국 비슷한 색깔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늘도 잡화를 팔며 소설을 꿈꾸는 '나'는 비슷한 처지의 독자, 즉 나를 위로한다. 딱히 힘주진 않고.

한번 더 읽으면 다른 게 보일게 확실하지만 그냥 한번만 읽고 잘래. 나도 내일 잡화를 팔러... 뭐 그 비슷한 일을 하러 출근해야 되니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냥냥 도넛 배달부 바람어린이책 30
이혜령 지음, 홍그림 그림 / 천개의바람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좀 과장해서) 한 작품 걸러 하나에는 나오는 고양이, 거기다가 음식점(가게) 류의 판타지 공간. 완전 유행 소재로 범벅이 된 책이잖아? 뭐 새로울 수가 있을까?

 

아 그래도 새로울 수가 있네...ㅎㅎㅎ 이야기라는 게 참 신기하다. 그래서 새 이야기는 끊임없이 쓰여지고 읽히는 거겠지. 개중에 마음에 안 들거나 전혀 인상적이지 않거나 재미없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었고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다. 고양이의 매력은 아직 식지 않았고, 도넛이라는 소재 또한 구미를 당긴다.

 

두리는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거의 키워주신 아이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병원에.... 그리고 가장 가슴아픈 일은, 할머니가 두리를 못 알아보신다는 것. 함께 했던 기억이 할머니에게선 사라져버렸다는 것.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밤양갱을 사가도 양갱만 낚아챌 뿐 두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콱 막히는 일이다.

 

돌아가는 길에 두리는 발을 다친 하얀 고양이를 만나 치료를 해주었는데, 그 고양이를 뒤따르다 판타지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거기에 냥냥도넛가게가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이름은 이야기를 담은 냥냥도넛이다. 인간에게 이야기의 의미는 뭘까.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도 그중의 한 작은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하얀 고양이 설탕이는 그 냥냥도넛의 배달부였다. 보기와는 달리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발까지 다쳤으니.... 그리하여 두리는 냥냥도넛의 임시 배달부 역할을 맡게 된다. 덩실이 집사 누나에게 덩실이의 이야기를 담은 도넛을 배달하는 역할이었다.

 

덩실이 누나네 집을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누나라기엔 할머니....? 그만큼 오래 함께한 사이였다는 거지. 나도 우리집 개한테는 엄마니까...^^;;; 그 누나가 도넛을 하나씩 먹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담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이번에는 두리가 냥냥도넛의 고객이 되고자 한다. 할머니를 위해서. 하지만 냥냥도넛에는 고양이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는데.... 두리는 기억을 잃은 할머니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고양이 한 마리의 캐릭터로 이끌어가는 책은 아니다. 배달부였던 설탕이, 집사 누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자기 갈 길로 떠난 덩실이, 두리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도넛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써 준 불곰 등 여러 캐릭터가 있다. 이 책의 2편이 나온다면 이중에서 불곰은 계속 중요한 역할로 나올 것 같다. 두리에게 냥냥도넛 출입증, 일명 불곰 카드를 주고 끝났으니까. 불곰의 눈썹에서 빛이 나면 두리를 부르는 거다. 배달할 도넛이 있어서. 이렇게 2편으로 이어지겠구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할머니가 기억을 되찾는다든지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이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나름의 행복도 현실적으로는 정말 어려운 것을 안다. 두리 같은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데, 할머니의 옆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존재가 현대사회에 얼마나 있을 것인지가 문제다. 입을 닫은 나는 재잘대는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저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어가는 것이구나. 이야기가 별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읽는 내 입에서는 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 책엔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많은 메시지가 보이지만 나는 그중 할머니와 그 옆에 앉은 두리의 장면에 눈이 고정되었다. 나이가 나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어려운 만큼 귀한 장면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