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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평점 :
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별볼일없이 살아간다.
(월급값 하느라고 분주히 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러면서도 별볼일없는 하루에 대한 염려와 거부감이 있다.
휴일날 거한 계획을 세워 떨쳐 나가지도 못하면서, 덧없이 하루가 흘러갈까봐 걱정한다. 책이라도 좀 읽거나 공연이나 영화를 보거나 식구들을 잘 먹이거나 수업자료를 만들거나 하면 그나마 위안을 한다.
그런데 내가 그런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나 목적없이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뭐가 크게 다를까? 잘 모르겠다.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이 가족, 화자인 '나'(은수)의 가족은 내 눈에 참을 수 없이 한심했다. 나의 지인이라면 당장 "왜 저러고 살아? 어휴..." 라고 속말을 했을, 답답함이 가득했다. 송미경 작가님의 작품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안개같은 모호함에 싸여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그랬다. 덜 잠근 수도꼭지를 그냥 두고 사는 가족 같달까. 내가 가서 꽉 잠가버리고 나오면 속시원할거 같은. 그런데 끝까지 그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는듯.... 나중에는 그걸 잠그고 싶어 들썩거렸던 내 마음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달까. 뭔지 모르겠는 마음이 이 책 전체를 휩싼다. 나의 전제 자체가 틀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게 송미경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형태가 모호한 세상에서 나혼자 "아 그래서 그게 무슨 모양인건데! 네모야? 세모야?" 하면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세상은 니가 보는 차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 느끼게 하는?
'나'의 엄마는 어렸을 때 동생(소이)을 유원지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미미제과의 백일장에 어린시절 동생이 좋아했던 딸기웨하스의 추억을 써보냈다가 대상을 탔다. 그 사연이 마케팅에 이용되면서 가족은 실속도 없이 유명해졌다. 가족이 사는 단독주택은 누가 봐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웨하스 지붕으로 꾸며졌고, '내가 잃어버린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엄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받아주었다가 떠나면 보낸다. 막지도 않고 잡지도 않는다. 그러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름이 '제리미니베리'라고 했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하는 짓을 보면 나라면 샅샅이 검증하고 당장 내보낼텐데... 결국 어찌저찌 나가게는 되지만, 다시 돌아와 익숙한 풍경의 한 부분이 된다.
"드라마는 비록 삼류 드라마일지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략) 나에겐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141쪽)
드라마로 비유한데는 이유가 있다. 가족 외 중요한 인물, 동네 주민이자 친구인 마로니. 알고보니 이 사람은 드라마작가 마영희였다. 마영희로 말할 것 같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막장드라마 작가다. '나'와 삼촌, 그리고 이 드라마작가는 자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의 대화나 에피소드 속에 의미심장한 부분도 있고 웃기는 부분도 많다. 폭소 정도는 아니고 풋, 하고 웃게 되는 정도. 하지만 마로니는 충격적으로 슬프게 떠난다. 이 책에선 그것 또한 무심하게 툭, 놓아두고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의 소설이라면 기승전결을 통해 해결할 것들을 좀처럼 해결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속시원히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메리 소이 사건까지도. 어느날 마로니는 '나'에게 메리 소이를 정말 기다렸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데, 이후에 '나'는 이렇게 쓴다.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건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200쪽)
글쎄, 알듯말듯하다.
돌아보면 이 책에서 마로니의 역할은 '질문하기' 였던 것 같다. 삼촌에게도, 나(은수)에게도. 그 질문에 대체로 대답을 못하지만 질문은 거울처럼 자신을 보여주곤 했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가장 한심한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화자인 '나' 였는데, 얘는 거의 20년째 눈깜빡이 인형 미사엘을 끌어안고 살며 동네 '원더마트'를 천천히 일주하면서 백화점과 아울렛을 떠돌다 종착역으로 들어온 떨이 옷들을 구경하다 사는 것이 일과다. 부모는 벌인 일이 망해서 어려운데도 이런 딸의 소비에 돈을 대준다. 그러다 마트의 젠탱글 강좌에 다니게 되자 엄마는 기뻐한다.
"미사엘이나 안고 다니는 대신에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들뜬 표정을 애써 감추며..." (75쪽)
그러고보면 독촉하지 않았을 뿐이지 엄마들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후반부에 '나'는 친척 동네의 한 잡화점에 판매원으로 취직해서 다닌다. 이전과 다른 역할에 뿌듯함을 표현한 문장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얘가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독특한 글을.
이 책에서는 슬픔도 조금 우스꽝스러워지고 웃음에서도 슬픔이 느껴진다. 슬픔도 기쁨도 톤다운해서 결국 비슷한 색깔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늘도 잡화를 팔며 소설을 꿈꾸는 '나'는 비슷한 처지의 독자, 즉 나를 위로한다. 딱히 힘주진 않고.
한번 더 읽으면 다른 게 보일게 확실하지만 그냥 한번만 읽고 잘래. 나도 내일 잡화를 팔러... 뭐 그 비슷한 일을 하러 출근해야 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