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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펭귄이란 ㅣ 파란 이야기 9
류재향 지음, 김성라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류재향 작가님 이름은 낯익은데 작품은 떠오르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내가 접한 책들은 이분이 번역하신 책들이었다. 그러니까 작가이자 번역가이신 것. <나의 개 보드리>, <우리집 식탁이 사라졌어요>가 내가 읽은 책들이다.
한동안 마음에 드는 단편집을 만나지 못하다가 완전 찐하게 만나고 말았다. 나는 딱 이정도의 온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뜨거운 것은 부담스럽고, 동화가 서늘하면 마음이 안좋다. (그런 작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님. 개인 취향.) 봄날의 햇살 같은 온도. (아 이거 우영우에서 나왔던 대사였던가) 그런데 그 따뜻한 공기엔 외로움이 떠돈다.
동화를 통해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의 등을 쓸어주는 내 마음을 느끼다가 나는 궁금해진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하고 싶은가? 나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은 어른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일단 재미는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해보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느낀 것이 공감이든, 위로든, 나와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해든 그냥 소재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든 말이다.
나는 귀가 예민해서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시끄러운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 어른이나 애나 똑같다. 적당히 눈치가 있어서 떠들 때는 떠들더라도 입 다물 순간을 분별하는 사람이면 괜찮다. 대화가 풍성해야 모임이 즐거우니까. 하지만 시종일관 고막에 고통을 주는 인간들은 정말. 너무. 싫다. 가만히 보면 나는 마음속으로 편애를 하고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조용한 아이들을. 별말 없고, 말 건네면 살짝 웃고, 눈길 안 주어도 한구석에서 꼬물꼬물 애쓰고 있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뭐라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 폭발하는 아이들에게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가게 되어있고 그 치다꺼리를 하다 문득 정신이 들면 그 조용한 아이들은 저 멀리로 밀려나 있다.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표정도 나쁘지 않으니 괜찮은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된다. 예뻐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눈길 손길 별로 주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한다.
작가님이 이런 아이들을 포착하시고 마음으로 품어 주신 것에 고마움과 존경을 보내고 싶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조용히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이들, 그래도 최대한 주변을 이해하려는 아이들, 남 탓보다는 자신이 어찌하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 그 곁에 있어주려는 작가님의 마음을 어떤 아이들은 느끼지 않을까.
다섯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첫 번째는 표제작인 「우리에게 펭귄이란」이다. 식탁의 풍경을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까지 있는 대가족인데 아빠는 없다. 엄마의 나이가 많이 젊은 걸로 봐서, 혼자 키우게 된 남매를 친정 식구들과 함께 돌보는 상황인 것 같다.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결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는 힘든 법이다. “펭귄을 만나러 남극에 가야겠다.”고 계획을 밝힌 남동생과 그 실행을 말없이 돕고 기다리는 누나.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고양이를 안아보자」를 읽고 뒷 작품들과 상관없이 무조건 별 다섯 개라고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려 버렸다. 재혼 가정의 남매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졌다. 영국인 아빠와 헤어진 누나. 엄마와 사별한 남동생. 그 사이에는 작은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 또래에 걸맞는 방황을 하면서도 동생과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누나에게 엄지척을 보내주고 싶다.
「아람이의 편지」에서는 이혼으로 헤어진 자매가 나온다. 아람이는 아빠랑 살고, 언니는 엄마가 데려갔다. 아이고, 못할 짓이다.... 엄마 집 주소를 알아내 언니에게 편지를 써보는 아람이. 우리집이 언니집이었는데 이제 언니집 주소가 따로 있다는 게 낯선 아람이.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러 가는 길에 함께 해주는 친구.
「달팽이가 간다」에서는 달팽이처럼 느린 아이 우주가 나온다. 꼼지락꼼지락과 한눈팔기는 나의 특성이기도 하다. 어떤 계정에서 내 닉네임이 ‘달팽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에는 적응했다. 아주 힘들게. 지금도 출근하는 모든 날이 힘들다. 겨우 참고 하는 것일 뿐. 그런 내가 우주를 보는 마음이 어떻겠어. 하지만 나는 나와 동류인 ‘우주’들을 많이 챙겨주고 이해해주지 못했어. 오히려 독촉하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ㅠㅠ
「네모에게」의 네모는 봄이가 키우는 거북이다. 정작 네모를 봄이에게 사준 엄마는 아무 관심도 없다. 엄마는 대학생 때 봄이를 낳았고 출산 후 다시 복학해서 승무원이 되었다. 봄이는 아빠네 집에서 양육하고 있고(주로 할머니가) 엄마는 자유롭게 비행하며 살고 있다. 아빠 또한 그때 대학생이었으니 이제 겨우 30대 초반? 그래도 자식이 생기면 좀 일찍 철이 들던데 이 아빠는 아직도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백수. 할머니만 속이 터진다. 그래서 봄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신다. “너는 알아서 잘 자라야 해.”
그러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 바로 ‘알아서 잘 자라는’ 아이들이었네. 왜냐면 날 힘들게 안 하니까. 하지만 진짜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마음 둘 곳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서 자랄 수가 있을까. 내가 알아서 잘 자란다고 눈길을 덜 주었던 그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이 있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ㅠㅠ
그림에 대해 잘 몰라서 리뷰에 그림 이야기는 잘 안하는 편인데, 이번 책은 그림이 너무 좋았다는 말도 꼭 하고 싶다. 김성라 작가님의 작고 귀엽고 따뜻하며 사랑스럽고 살짝 외로운 느낌도 나는 그림이 내용과 너무 잘 어울렸고, 느낌을 더욱 풍부하게 살려 주었다. 글과 그림의 느낌이 이렇게 잘 맞도록 조합이 짜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딱 잘 만나신 것 같다.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님은 참 조심스러운 성품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책 속의 아이들 같은? 그래서 이렇게 다정한 이야기들을 쓰실 수 있었겠지만, 자신감 충전하셔서 더 왕성하게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책이 나오면 난 꼭 챙겨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