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 옥토버 - 2022 요토 카네기 섀도어스 초이스상 수상작
카티야 발렌 지음, 안젤라 하딩 그림,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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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느낌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소재부터가 그렇다. 옥토버는 화자인 11살 소녀의 이름이다. 낱말뜻 그대로 옥토버는 10월에 태어났고 도시의 문명과 단절된 깊은 숲속에서 아빠와 둘이 산다. 엄마는 이런 삶에 동의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곁을 떠났다. 옥토버는 이 삶에 100% 동의하고 만족한다. 아이는 자신을 야생이라고 칭한다. 아이에게 야생은 최대의 가치다. 따라서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옥토버에게 사랑은 오직 아빠 뿐이다.

 

아빠는 강인하고 박식한 사람이었기에 옥토버는 야생이되 모글리나 늑대소녀는 아니었다. 그들의 집에는 책들이 가득 차 있었고 옥토버는 야생의 생활만큼이나 책읽기를 사랑했다. 다만 그들은 최대한 자급자족했고,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았다. 옥토버는 이와 다른 삶을 전혀 원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될까 끝까지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미심쩍어하는 나는 문명에 찌들은 사람이겠다. 나는 오히려 옥토버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모든 불편이 바로 해결되는 (그것도 남의 손으로) 아파트에서 평생 살기로 결심한 내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되고 악천후를 견뎌야 하는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이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 신선함을 만끽하는 옥토버를 보며 잠깐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편리함과 바꿀 생각이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옥토버의 숲속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사고가 벌어졌다. 어느날 엄마가 찾아왔고 그녀를 엄마라는 여자라고 칭하는 옥토버는 반발하며 나무 위로 달아나 적대감을 표출하는데, 그 와중에 아빠가 나무에서 떨어져 온몸이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는다. 이제 그들은 문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아빠는 런던의 큰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과 재활을 하고, 옥토버는 그토록 싫어하던 엄마라는 여자와 도시적인 주택에서 거주하게 된다. 심지어 생애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상황 또한 독자로서는 흥미로웠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옥토버는 늑대소녀는 아니었기에 학교생활이 대단한 화제일 것까진 아니었지만 문제는 옥토버의 내적 갈등이다. 야생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특히 옥토버가 구조해 기르던 올빼미 스티그를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두고 돌아선 마음, 아빠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과 절망감, 엄마라는 여자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어린 옥토버의 마음 속에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옥토버는 도시에서의 느낌을 나의 모든 감각이 뭉개지는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내가 그 느낌을 느껴봤을 리는 없지만 어렴풋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도시인들의 오감은 살아있다 해도 살아있는 게 아닐 수 있겠지. 자연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던 감각이 도시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짓눌림이나 뒤엉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아빠의 부상은 심각했지만 조금씩 회복되어갔고, 옥토버도 한자리에서 분노하며 머물지 않고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유수프라는 친구와 프로젝트 과제의 짝이 된 것은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박물관의 케이트 선생님을 통해 눈을 뜨게 된 사실들, 보물사냥꾼이 된 일, 사랑하는 올빼미 스티그의 비상을 보게 된 일, 엄마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일, 유수프와의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치게 된 일 등.... 이제 옥토버의 세상은 더 크게 열렸다. 성장하며 옥토버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독자들은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매력적이기는 하나 초반 진입이 조금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느낌으론 낯선 문체 때문인 것 같았다. 화자인 옥토버의 1인칭 시점인데, 항상 현재형 시제를 쓴다. 보통은 나는 함성을 질렀다.”라고 할 텐데 여기서는 나는 함성을 지른다.”라고 쓰는 식이다. 원서를 보지 못하니 어떤 차이와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낯설었다. 그리고 대화글이 따옴표 없이 문장 속에 들어있는데, 의도가 있을테고 거기에 동의하지만 읽기의 편의성으로만 따진다면 따옴표로 구분하는 편이 편하기는 하다. 가끔씩 섞여있는 운문은 어려운 말로 되어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도를 파악하려면 곱씹어 해석할 필요가 있는 문장들이어서 쉽지는 않다고 생각되었다. 초등 고학년 중에서도 독서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권해줄 만하겠고 중학생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타인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든 그것을 평가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옥토버가 보물 사냥에 몰두하는 것이 내게는 좀 집착처럼 여겨졌지만 작가는 그것을 통해서 이야기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었다. 산산히 부서졌다 파묻힌, 이제는 본 모습을 알 수 없는 조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누군가의 삶이었던 이야기. 세상은 이야기의 총체이며 나의 이야기도 그 일부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이야기들은 도처에 존재하고, 나는 그 이야기들 모두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모든 세상이 야생이며, 그 세상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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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줄줄이 이야기가 줄줄이 산하작은아이들 72
이소완 지음, 박지윤 그림 / 산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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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특이해서 어떤 책일까 궁금해하며 펼쳤다. 따뜻하고 예쁜 이야기였다. 제목은 이 책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한 아이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책은 줄줄이 다음 아이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연결된 이야기는 하나로 잘 통합되고 마무리된다. 각 아이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었고, 착하고 정이 가는 아이들이지만 비현실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표지에 그려진 빨간 장갑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소재다.

 

처음 등장하는 아이는 보라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친구가 없다. 보라의 새 집에선 집 앞 공원이 내려다보인다. 어느날 새벽 보라는 좋은 생각이 났다. 공원의 공터에 낙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트로부터 시작된 그림은 토끼 얼굴, 곰돌이 얼굴 등으로 점점 수준을 높여갔다. 그걸 만들어 놓고 집에 들어와 창문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라는 아주 커다란 고양이 그림을 완성한다.

 

다음 장에는 쌍둥이 형제 정우와 정민이가 등장한다. 동생 정우는 섬세하고 형 정민이는 과감하다. 정우가 공원에서 고양이 그림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그때, 심술궂은 고등학생 무리가 나타나 몇 번의 발길질로 작품을 순식간에 망쳐버리고 말았다. 슬퍼하던 정우는 흩어진 낙엽더미에서 빨간 장갑을 발견한다. 고양이의 눈이었던 장갑이었다. 장갑 크기를 보고 또래인 걸 알게된 정우는 더욱 안타까워하며 장갑 주인이자 낙엽그림의 작가를 찾고 싶어한다. 정민이는 그 얘기를 듣고 장갑 주인을 찾는 방을 써서 붙인다.

 

다음 등장하는 윤서는 오지랖이 태평양인 아이다. 장갑 주인도 아닌데 정우 정민 형제를 찾아가고, 도와주겠다 제안한다. 윤서네 집은 공원 근처에서 과일가게를 한다. 자연스럽게 과일가게는 그들 프로젝트의 거점이 된다.

 

장갑을 과일가게에 걸어두었지만 주인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그때 수아가 나타났다. 수아는 좀 특이한 수집 취미가 있는 아이였다. 주인 없는 주운 물건들을 잔뜩 갖고 있다. 공원에서 작은 장터같은 것을 열어 분실물들의 주인을 찾아주자고 제안한다. 분실물 지우개에 눈독을 들이지만 밉지 않은 태오, 도움은 안되고 얄밉기만 한 영수 등도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채원이! 이 아이도 실행력이 좋다. 아이들을 지휘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든다. 빨간 장갑은 다시 눈사람의 눈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보라는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장갑 찾아주기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외롭던 보라가 자신의 작품을 기억해주고 좋아해주는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에 설렘을 갖게 되는 과정을 흐뭇하게 그려놓았다. 빨간 장갑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방식은 이야기의 본질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공원의 낙엽그림이라는 첫 소재가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들까지 흥미롭게 잘 끌고나왔고 마무리까지 잘 이어졌다. 제목 그대로 줄줄이 줄줄이~

 

100쪽이 조금 안되는 분량은 3학년 정도에 딱 맞아 보이고, 2~4학년 정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전작인 맹물 옆에 콩짱 옆에 깜돌이처럼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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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학이 깃든 시민교육 - 교실 구석구석 시민교육
어린이문학공부모임 지음 / 에듀니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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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에서 모여 활동하시는 '어린이문학공부모임' 선생님들이 함께 쓰신 책이다. 일단 그 모임 이름부터가 부러웠다. 어린이문학공부모임. 요즘 어린이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으니 모임을 만들든, 기존 모임에 껴달라고 해서 들어가든 노력만 하면 못할 일도 아니었을텐데, 남과 속도를 맞추는 일에 서툴고 부담을 갖는 미련한 성격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고 말았다. 모이고 나누어야 성장하는 것 맞다. 나는 못하고 말았지만 후배 선생님들께는 적극 권하고 싶다. 나눈 것들을 잘 갈무리하여 이렇게 결과물을 내는 것도 찬성이다.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고 많이 배웠다.

이 책의 구성은 자유롭고 편안하다. 그렇다고 산만하진 않게 일관성도 있다. 각 장은 시민교육의 영역으로 나누어 구성하였고(인권, 문화다양성, 평화, 환경, 변화된 미래) 각 장 안에는 몇편의 에세이와 몇편의 서평 혹은 영화평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수업은? 에세이 안에 녹아들어 있다. 편안한 서술방식이라 더 좋았다. 접근성이 좋으면서 깊이도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되었다. 서평도 마찬가지다. 이 주제에 대하여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을 활용할 수 있을지 다양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여는 글로 '여느 1학년 선생님의 하루' 라는 글을 읽자니 공감의 한숨이 푹푹 새어나온다. 다들 이러시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시는 선생님들도 다들 비슷하구나. 다들 동동거리고 초긴장의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죄인이 되어 사는구나. 하지만 그런 상처로 마음문을 걸어잠그는 경우도 있고(나도 대략 그런 편) 더 잘해보기 위해 마음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도 있지. 저자 선생님들은 후자 쪽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1장 [함께 해서 소중한 우리]의 주제는 '인권'이다. 기존의 인권 책들과는 좀 느낌이 다른 게, 여기서는 특별히 '권리'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도 않고 강조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존재로서의 인정,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따뜻하게 펼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기처럼' 이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2장 [달라서 아름다운 우리]의 주제는 '문화다양성'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도시도 그렇지만 촌락의 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다문화가정들이 있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다고 들었다. 흔히 가족의 표준형태라고 여겨지는 양친부모+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대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양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장의 에세이와 서평들에선 자연스럽게 그 수업의 장면들이 스며나온다.

3장 [평화를 지키는 우리]는 평화 장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지구 곳곳에서 분쟁들이 있으며 일상의 평화로운 상태도 유지하기 좀처럼 쉽지 않다. 이 장의 에피소드와 책 소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담았다고 생각된다.

4장 [지구별을 사랑하는 우리]는 환경 장이다. 사실 환경 문제는 너무 크고 중요해서 단일 주제로 나온 책들도 많을 정도다. 이 책에선 짧지만 자연과 가까운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의 학급살이, 또 미세먼지에 좌우되는 안타까운 학교 현실 등이 실감나게 담겼다. 이 장에 소개된 책들 중 안읽어본 책들이 많아 메모해 뒀다 찾아봐야겠다.

5장 [내일을 꿈꾸는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는 장인데, 저자 선생님들의 진솔한 에세이들이 인상적이다. 지금에 비하면 엄청나게 궁핍(?)했던 어린시절의 의식주와 학교 환경을 라떼 이야기로 쓰신 글, 미니멀 라이프를 다짐하는 글, 첨단 디지털 수업을 선구적으로 해보셨지만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시는 글, 여러가지 교육방법 중 아직도 고민 중이지만 문학작품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지구에서 살아가는 법 두가지는 꼭 넣으신다는 글 등 다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같은 현장에 있는 분들이고 일부 저자분들과는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어서 더욱 공감했던 것 같다.

관심있는 주제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꾸리고, 함께 공부하며 그 과정을 성실히 기록하고 글을 써서 결과물로 나온 이 책이 많은 교사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마주이야기처럼 그대로 기록한 것도 실감나서 좋았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책과 동화책 중 안읽어본 책들을 찾아 읽어보면 또 새로운 면이 보일 것 같다. 어린이문학은 닳지 않는 샘물 같고 화수분 같은 우리의 든든하고 영원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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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2024-01-10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따뜻하고 과분한 리뷰 정말 고맙습니다. 인용하신 ‘공기처럼‘ 다가와 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신 것 같습니다.
 
뛰어! 상상도서관 (다림)
황지영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다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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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작가님이 이번에는 환경재난동화를 쓰셨구나. 예상가능한 가까운 미래의 기후재난을 다룬 동화다. 엄청난 절망과 고통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장미꽃이 핀다던가. 한가닥 희망만은 남겨놓고 끝난다. 그건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전쟁터에서도 아이들은 어울려 논다고 하지. 그런 희망. 어른들이 다 망쳐놓은 지구를 되살릴 주인공들에 대한 희망.

그런데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희망을 되살릴 아이들마저 사라져가는 저출산의 현실이다. 작품에는 그것까지 다루지는 않았지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하랴. 어디선가 스치듯 본 내용이라 정확하지는 않은데, 젊은이들의 비혼이나 딩크의 이유를 물으면 상당한 비율로 ‘기후위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걱정되는 세상에 자식을 남겨놓지 않겠다는 거다. 나야 이미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겨우 살다가 죽더라도.... 그 생각을 탓할 수가 없는 게,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거다. 나 때는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아 가정을 구성하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별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면 나도 다를 것 같다. 그러니 이 낭떠러지 그래프를 극복하려면 기후위기에 대한 희망적 전망이 꼭 나와야 할 것 같다.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그 가능성을 꼭 열어야 한다.

‘작가의 말’에 보면 작가는 이 책이 철저히 이야기로만 남기를, 절대 이런 미래가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썼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재난이 거대해지면 공고한 줄로만 알았던 사회시스템도 균열이 가고 결국 무너진다. 그러면 인간성이라는 것도 우스운 말이 될 것이다. 각자도생이며, 생존하려는 동물적 본능만 남을 것이다. 그건 곧 지옥이다. 이 책에서는 그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게 된다. 아직도 사회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평소에도 이에 대한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은 해수면 상승이 본격화 된 가까운 미래다. 고지대의 도시는 돈 많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이미 다 점령했고, 힘없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차올라오는 물을 바라보며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마로도 마찬가지다. 이웃들도 다 이사가고 몇 집 남지 않았다. 해안에는 침수 방지벽이 둘러쳐있고, 지정 대피소도 정해져 있지만 불안하다. 어느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폭풍 해일이 몰아친 것이다. 침수 방지벽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산 위의 대피소로 뛰었지만 휩쓸려 간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난리통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구하려던 할머니도 마로의 눈앞에서 휩쓸려갔다. 옆집 아줌마의 독려로 마로는 구사일생 대피소에 도착했다.

수색과 구조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이기심을 보게 된다. 세상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그래도 할머니가 아이를 구하려 하셨던 것, 마로가 할머니를 포기하지 않고 찾았던 것, 그 길을 말리면서도 친구와 아줌마가 동행했던 것 등의 서사에서 작가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보여주려 하셨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이런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후반부에 화자인 마로의 이런 말이 딱 우리의 심정이라고 하겠다.
“이번 태풍이 심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난 얼마나 많은 재난을 겪게 될까...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번에는 살아남았지만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얼마나 운이 좋아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살얼음 위에서 살아야만 할까. 이렇게 되기 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고 싶다. 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고 싶다. 제발 거기서 멈추라고, 제발 모든 걸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타임머신은 없고, 세상은 앞으로만 흐른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되돌릴 수는 없기에, 이 책의 애타는 경고가 우리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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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독깨비 (책콩 어린이) 80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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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와 일련의 시리즈는 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데, 첫 작품이라기엔 믿기 어려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대성공을 거두고 '원더'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아름다운 주제에 공감했고, 책의 문구나 영화의 대사들이 많이 인용되기도 했다.

그 작가의 신작이 동네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길래 바로 빌려왔다.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면서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주제가 있었다. 세상의 가치가 아무리 다양화되고 개인화되고 쿨해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근본은 선함을 추구하지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친절의 가치는 이미 전작과 영화에서 극대화된 바 있다. 이 작품에선 사람들의 인연, 그것도 죽음을 초월한 인연들까지 다룬다. 그게 나같은 사람들에겐 과해서 좀 부담스럽기도 했고, 애틋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이 작품에 좀 몰입이 어려웠던 이유는 판타지도 아닌데 시종일관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 때문이었다.주인공 소년 사일런스와 어릴 때부터 동행한 유령 미튼울. 그는 어떤 존재일까? 그 외에도 이 책엔 여러 명의 유령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단지 회상이나 추억, 마음의 위로 등의 역할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건 해결에 너무나 결정적인 역할들을 하곤 해서,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떤 유령의 존재는 정말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했는데, 나의 느낌은 '엥.....?????' 이어서, 이 설정 자체가 내겐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주제로 볼 때 이 설정은 뺄 수 없는 것이었겠다. 물리적 단절로 끝낼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의 애틋하고 소중한 인연. 그건 지금의 삶을 더 소중하고 책임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배경, 인물, 사건 모두 흥미진진하다. 1800년대 중반 보안관이 활동하던 시대의 미국. 위조화폐범들이 아버지를 끌고 가버린 사건. 베일에 싸인 과거를 가진 구두장이이자 사진사인 아버지와 지금은 홀로 남겨진 아들. 그 아들이 그를 태우러 온 말 '포니'를 타고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 이 책의 줄거리라 하겠다.

똑똑하고 강인한 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던 사일런스에게 그 여정은 말도 안되게 험난한 것이었지만, 신비로운 말 포니와 미튼울을 비롯한 수호자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악의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존재들로는 그지역 보안관과 부보안관. 첫 만남은 별로 미덥지 않더니만 그들은 정말 '찐'이었지 뭐야.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일런스에게 그들은 진정한 어른이자 가족이 되어준다.

너무 큰 슬픔도 있었고, 그에 못지 않은 위로도 있었다. 그리고 악은 그에 걸맞은 댓가를 받았다. 사일런스는 타인의 친절과 애타는 인연들의 사랑으로 잘 성장했다. 훌륭하게 짜여진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설정에 썩 몰입하진 못했지만, 인생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자세가 여전히 느껴져서 좋았다. 허투루 살아버릴 수 없는 내 인생과 인연의 소중함. 정성껏 살며, 나쁘게 살지 말자. 친절함은 누군가를 구한다. 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작가는 계속 이 말을 한다. 전작보다 배경의 스케일이 더 크고 긴박하며, 취재와 공부도 많이 해야 되었을 작품으로 느껴졌다. 원더처럼 영화로 또 제작되어도 멋있을 작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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