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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 ㅣ 상상도서관 (다림)
황지영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다림 / 2023년 7월
평점 :
황지영 작가님이 이번에는 환경재난동화를 쓰셨구나. 예상가능한 가까운 미래의 기후재난을 다룬 동화다. 엄청난 절망과 고통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장미꽃이 핀다던가. 한가닥 희망만은 남겨놓고 끝난다. 그건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전쟁터에서도 아이들은 어울려 논다고 하지. 그런 희망. 어른들이 다 망쳐놓은 지구를 되살릴 주인공들에 대한 희망.
그런데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희망을 되살릴 아이들마저 사라져가는 저출산의 현실이다. 작품에는 그것까지 다루지는 않았지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하랴. 어디선가 스치듯 본 내용이라 정확하지는 않은데, 젊은이들의 비혼이나 딩크의 이유를 물으면 상당한 비율로 ‘기후위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걱정되는 세상에 자식을 남겨놓지 않겠다는 거다. 나야 이미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겨우 살다가 죽더라도.... 그 생각을 탓할 수가 없는 게,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거다. 나 때는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아 가정을 구성하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별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면 나도 다를 것 같다. 그러니 이 낭떠러지 그래프를 극복하려면 기후위기에 대한 희망적 전망이 꼭 나와야 할 것 같다.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그 가능성을 꼭 열어야 한다.
‘작가의 말’에 보면 작가는 이 책이 철저히 이야기로만 남기를, 절대 이런 미래가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썼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재난이 거대해지면 공고한 줄로만 알았던 사회시스템도 균열이 가고 결국 무너진다. 그러면 인간성이라는 것도 우스운 말이 될 것이다. 각자도생이며, 생존하려는 동물적 본능만 남을 것이다. 그건 곧 지옥이다. 이 책에서는 그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게 된다. 아직도 사회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평소에도 이에 대한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은 해수면 상승이 본격화 된 가까운 미래다. 고지대의 도시는 돈 많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이미 다 점령했고, 힘없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차올라오는 물을 바라보며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마로도 마찬가지다. 이웃들도 다 이사가고 몇 집 남지 않았다. 해안에는 침수 방지벽이 둘러쳐있고, 지정 대피소도 정해져 있지만 불안하다. 어느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폭풍 해일이 몰아친 것이다. 침수 방지벽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산 위의 대피소로 뛰었지만 휩쓸려 간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난리통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구하려던 할머니도 마로의 눈앞에서 휩쓸려갔다. 옆집 아줌마의 독려로 마로는 구사일생 대피소에 도착했다.
수색과 구조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이기심을 보게 된다. 세상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그래도 할머니가 아이를 구하려 하셨던 것, 마로가 할머니를 포기하지 않고 찾았던 것, 그 길을 말리면서도 친구와 아줌마가 동행했던 것 등의 서사에서 작가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보여주려 하셨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이런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후반부에 화자인 마로의 이런 말이 딱 우리의 심정이라고 하겠다.
“이번 태풍이 심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난 얼마나 많은 재난을 겪게 될까...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번에는 살아남았지만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얼마나 운이 좋아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살얼음 위에서 살아야만 할까. 이렇게 되기 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고 싶다. 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고 싶다. 제발 거기서 멈추라고, 제발 모든 걸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타임머신은 없고, 세상은 앞으로만 흐른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되돌릴 수는 없기에, 이 책의 애타는 경고가 우리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