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에게 그래픽 노블 1
이루리 지음, 모지애 그림 / 이루리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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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리 작가님의 그림책 원격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강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작가님의 얼굴과 말투는 생생하다. 같은 교사는 아니지만 그림책 작가이자 출판인으로서 그림책에 진심인 인생을 사시는 분이어서 그림책 그 자체의 재미와 소중함을 느끼는 연수였다고 기억된다.

 

이번에 나온 지구인에게라는 책을 반가운 마음으로 펼쳤다. 새롭고 색다른 느낌으로 가득했다.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넘기던 책장은 어느새 놀라움과 슬픔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이 책에는 작가 가족의 평생의 아픔이 담겼다. 이 아픔을 드러내놓기 쉽지 않았으리라.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제 그 아픔의 소용돌이가 어느정도 가라앉고 상처에 딱지가 앉았기에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픔은 작은형의 죽음이었다. 작은형은 바보처럼 묵묵하게 가족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생전에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서야 알았기에 가족들은 더욱 아팠고 방황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이 그림책에는 많은 상징이 들어가 있는데, 작은형의 캐릭터와 가족의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창작한 작가의 설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괴물(외계인)이었다. 어느날 는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의 등에 올라탄 괴물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괴물은 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거칠게 만들고 있었다.

 

는 그 괴물을 떼어내려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큰형에게 끌려나가 혼나게 되었다. 다른 가족에게는 그 괴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나는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작은형이었다. 형은 전부터 그 괴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눈이 뜨인 는 가족 뿐 아니라 밖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괴물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둘은 함께 괴물 퇴치 방법을 연구한다. 하나도 성공하진 못했지만. 유일하게 성공한 건 목욕탕에서였다. 괴물은 따뜻한 비눗물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형제는 신나게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목욕이 끝나자 괴물들은 또다시 달라붙어 자라기 시작했다. 그래도 목욕하는 동안은 괴물과 분리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표현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작가는 목욕탕을 좋아하시나? 많은 어른들이 목욕탕에서 시름을 잊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아님. 대중목욕탕에 안 간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기도 하지.

 

그 일은 40여년 전, 작가님이 초등학생이고 작은 형이 고등학생일 때 일어났다. 전철역 승강장에서 형제는 아버지와 큰형을 보았다. 괴물 때문에 위험해지는 것을 본 순간, 작은형이 달려들었다. 결국 작은형은 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전철 사고. 이것은 작가의 작은형이 실제로 겪은 사고이다.

 

작은형의 유품을 정리하며 가족들은 작은형의 흔적들을 보게 된다. 그가 남겨놓은 가족사랑의 증거들을 보며 무심했던 자신들을 깨닫고 후회와 아픔으로 몸부림친다. 그때였다. 괴물들이 그들을 빠져나가 원래 왔던 밤하늘로 돌아가버린 것은.

 

그리고 작가의 말이 이어진다. 수십 년 동안 품고 아파했던 작은형의 이야기를 한다. 작은형에게 사랑의 인사를 건넨다. 작은형이 책을 만들며 사는 작가의 지금 모습을 보면 기뻐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구인에게>라는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지구인은 우리 모두가 아닐까. 뭐 당연하잖아. 우리가 지구인 아니면 뭔데. 그런데 그 괴물을 작은형은 아무래도 외계인인 것 같아라고 설명했었다. 이 책은 그 외계인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위로일까. 외계인을 떨쳐내고 지구인으로 살아가라는 응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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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 - 홀로 인생을 마주할 줄 아는 용기와 자유에 대하여
최철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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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보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했었나보다. 도서관에서 ‘신청하신 책이 도착했으니 모월모일까지 대출하시라’는 알림이 왔다. 내가 무슨 책을 신청했더라 하며 제목을 보니 이 책이었다. 요즘 나의 관심사 순위로 따지면 신청할 만한 책이었다. 수많은 정보가 잠시 눈에 머물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때 도서관에 바로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 책도 그럴 뻔했다.

다음날 바로 빌려와보니 크지 않은 판형에 본문도 빽빽하지 않고 쪽수도 160쪽 정도, 문장도 어렵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천천히 조금씩 읽어도 되지만 한번에 읽고자 한다면 집중해서 2시간 정도만 들이면 완독할 수 있겠다. 읽기는 이처럼 쉽지만 그 내용의 무게는 커서 속독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나는 속독을 해버린 탓에, 여운을 남겨두려고 이렇게 리뷰를 쓴다.

이 책의 저자는 80세가 넘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고령자의 저작물을 내가 읽은 적이 있었던가. 저작물을 바라진 않지만 나도 마지막 직전까지 정신 멀쩡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이분은 기자 생활을 수십 년 하셨고 신문사에서 중요 직책도 맡아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활약하신 분이다. 언론인으로서 활동할 당시의 글은 내가 접해보지 못했으니 나와 평소 생각이 다른 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는 오직 한 가지 주제의 내용만 담겼고, 그 주제에 나는 매우 동의한다. 그것은 웰 다잉, 다른 말로는 ‘존엄사’이다.

이 책에 그 구체적인 방법이 담겼나 해서 속독을 한 것 같다.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길이 명확하다면 누구나 그 길을 가지 왜 힘겹고 비참한 죽음을 택하겠나. 이 책을 통해서 그 길이 어렵다는 것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맘대로 안된다는 것을 더욱 깨달았을 뿐이다. 엥 그렇다면 이 책은 제껴, 패스!! 이건 아니다. 그렇다면 리뷰를 쓰고 있진 않겠지.

저자는 독거노인이다. 부인과 사별한 지도 10년이 넘었으며 안타깝게 딸도 젊은 나이에 떠나보냈다. 본인 또한 암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매우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노년이다. 하지만 그는 요리를 취미생활로 개발했고 이처럼 글도 쓰면서 홀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되도록 즐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존경스러운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벌써부터 그런 두려움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배웠건, 어떤 지위에 있었건, 돈이 많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두려움없이 독립적인 사람은 똑같이 훌륭하다.

저자는 ‘노년 남자’가 받는(받을 수밖에 없는?) 취급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르신들 세대도 노년으로 접어들면 독립성과 사회성 면에서 남녀가 역전된다. 남자노인들은 한마디로, 도움도 안되고 존재도 불편한, 민폐 무용지물이 된다. 여성의 노년도 크게 다를까마는 남자의 노년은 더 불쌍하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해봤자인 걸 알면서도 내 가까운 남자들이 걱정된다. 이러한 노년 남자로서 저자가 선택한 것은 이것이다. 제목에 있다. “고독사를 준비중입니다.”

「언젠가 내가 혼자 숨져있는 모습이 뒤늦게 발견됐다 하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 것을 아들 내외에게 여러 차례 일러두었다.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이 그러하니 아버지의 고독사를 섧게 여기지 말라 했다. 그건 불효가 아니다. 난 이대로가 좋다. 나의 평화를 위해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31쪽)
문제는 말년에 병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일단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라는 것을 잘 알아보고 미리 작성해 두어야 하겠다. 그런데 이걸 썼다고 해서 존엄사가 될 리는 만무하다. 가족들이 충분히 취지를 알고 동의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의 본인 선택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가족이 붙들기도 하지만 본인이 붙들기도 한다. 그건 정말 그때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를 것 같다.ㅠㅠ

저자는 웰 다잉에 관심을 갖고 강연활동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마지막을 경험하고 상담도 하였다. 그래서 얻게 된 생각을 나누려 이 책을 썼을 것이다. 타인들의 마지막에 대하여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진 않았다. 개인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한다. 그중에는 ‘부럽다. 나도 저렇게’ 라고 생각되는 마지막도 있지만 절대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은 길고 비참한 마지막도 있다. 여기에는 선택과 운명이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이 몇 퍼센트쯤 되는지 잘 모르겠다. 되도록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겼다. 그래야 “고독사를 준비중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씀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개인의 선택 여지가 지금으로선 크지 않은 것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 운운을 하고있는 것일 텐데, 저자 또한 그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려 사항에 넣지 않은 걸 보니 말이 그렇지 거의 가능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 체계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회복가능성이 없는 중증환자의 치료 목표를 연명에 두지 않는 것.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고통 속에서 목숨만 부지하지 않도록 치료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었으면 한다. 목숨의 길이보다 남은 삶의 질에 큰 목표를 두고 함께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상상이 조금은 덜 두려워질 것 같다. 나에 대해서도 내 부모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인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많은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병원에 한 달도 채 못 있고 돌아가셨다. 그 정도면 정말 잘 가신 거라고 모두들 말했었다. 하지만 그 한 달도 그보다는 편하게 있다 가셨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질 때가 있다. 콧줄을 통한 강제 영양공급이 아버지에게 결과적으로는 “기운차려서 고통을 더 느껴라” 라는 폭력이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도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는 게 많지 않은 나의 경험 중 하나다.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솔직하게 논의되고 최상의 선택을 본인과 가족들이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으면 좋겠다.

의료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세상. 이제는 더 이상 수명을 늘리는 것보다 이런 쪽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평온한 죽음을 돕는 의료. 죽음은 예외 없는 모든 이의 것이니까. 그걸 반대할 사람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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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무너지다 - 1990년대 생생 현대사 동화
이혜령 지음, 양양 그림 / 별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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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가 풍성히 나오고 있지만 현대사를 다룬 작품은 비교적 적었는데, 별숲 출판사에서 '생생 현대사 동화'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1950년대는 전쟁,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 2000년대는 월드컵을 배경으로 한다. 아이고, 2002 월드컵은 엊그제 일인거 같은데 역사동화가 나왔다고? 이런....ㅎㅎㅎ 그리고 1990년대는 이책. 이렇게 4권이 나와있고, 60년대 4.19혁명, 80년대 이산가족찾기, 또 80년대 6월 민주항쟁 이렇게 3권은 곧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진도 짱짱하고 기대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제목에 연도가 딱 박혀있다. 1995년. 어떤 사건일까? 이어지는 제목. '무너지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94, 95년에 이어진 '붕괴'의 충격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보던 TV 화면 속의 믿을 수 없던 장면을.... 94년엔 성수대교 가운데가 뚝 끊겨 차량들이 추락했고, 95년엔 고급 백화점의 상징이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린 끔찍한 잔해를 봐야했다. 삼풍백화점의 구조작업은 오래 걸렸고 실종자와 사망자가 날마다 갱신되는 가운데, 모두가 체념할 때쯤 생존자가 구조되어 인간의 생명력은 참 강하구나를 실감하기도 했었다. 그분들은 잘 살고 계실까.

그 사건을 다룬 역사동화는 쓰는 일도 고통이었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는 써놓아야 할 일이기에 참고 쓰시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고의 참혹함보다는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에 더 집중했다는 느낌이다. 단짝인 윤아-효은, 도하-정우 가족을 중심으로 사망자, 생존자, 구조대원, 유가족 등 다양한 상황을 고루 비춰준다.

도하는 대학생인 형과 유난히 사이가 좋다. 그날은 형이 알바비로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만났다. 도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먼저 내려왔고 형은 타려던 순간....

윤아는 엄마가 백화점 직원이라 바쁘시다. 늘 늦게 지쳐 들어오는 엄마는 백화점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만들기 재료를 사다주겠다고 약속하는데... 효은이네 집에서 같이 비디오를 보던 윤아는 효은엄마에게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는다.

정우네 아빠는 구급대원인데 계속되는 구조작업 중 쓰러졌다.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났다. 살려달라는 목소리와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겹쳐 괴로워한다.

실종자 가족 본부가 차려진 체육관에서는 애타는 기다림과 절망의 울음소리가 교차된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이들은 사망 가족을, 어떤 가족은 생존 가족을 맞이한다. 그리고 백화점의 붕괴는 조짐이 충분히 있었다는 사실과, 그걸 감추고 쉬쉬하며 이루어졌던 일들이 밝혀지며 온 국민이 분개한다.

나는 그 백화점에 안가봐서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지금은 싹 다듬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서 흔적을 알아볼 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재다. 이후로도 많은 인재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지. 과거의 인재에서 우리는 배우고 있는가? 그리하여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있는가? 늘 확인할 문제이다.

이 책에선 90년대 특유의 문화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도하, 정우가 서태지와 듀스를 좋아하고 그들의 춤과 패션을 따라했다거나, 비디오대여점이 성업하고 대여한 비디오로 집에서 영화를 봤다거나 하는 모습 말이다. (정말 얼마 안된거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과거가 되어버렸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삐삐'다. 쿨의 '애상'이라는 노래에 "삐삐쳐도 아무 대답 없던 너"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가사 때문에 이 곡은 박물관 곡이 되어버렸다. 삐삐는 휴대폰이 통용되기 직전, 과도기적으로 잠깐 있었던 통신매체다. 나는 사용을 한번도 안했는데, 사용자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삐삐가 이 사고의 구조과정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세월은 일방통행이고 역주행은 없다. 나의 기억에 생생한 이 사고가 역사동화의 소재가 되었듯이 지금 일어나는 일들도 내가 죽을 때쯤에 역사동화로 등장할 수 있겠구나. 그 내용이 더이상 참사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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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녀 찔레 오늘의 청소년 문학 42
심진규 지음 / 다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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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장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책이 팔리지 않는다니 나라도 꾸준히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어보지만, 나 또한 웬만하면 도서관에 의지하고 책을 거의 사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둘 곳이 없어서다. 책장은 포화상태고, 아무렇게나 쌓인 책더미 위에 또 책이 놓이게 되니 갈수록 정리도 난감하다. 이 책은 그 난감함을 무릅쓰고 오랜만에 내돈내산한 책이다. 여름방학이 가기 전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심진규 작가님의 책은 <조직의 쓴 맛>이라는 교실 이야기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역사동화에 집중하시는 것 같다. <강을 건너는 아이><, 1948>도 무척 좋았다. 이 작가님의 역사동화는 특히 서사의 울림이 매우 크다. (뭐라고 표현할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 그래서 시나리오로 리메이크하여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도 같은 느낌이어서 신기했다. 이 책의 배경은 이미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긴 했다. 병자호란때 청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이 겪는 고난을 주로 그린다.

 

역사동화에는 대부분 역사 속의 실존인물이 나오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추가된다. 여기서 주인공인 찔레는 후자다. 전자는 소현세자와 세자빈이다. 한국사를 읽으며 가장 아깝고 안타까운 인물이 내게는 소현세자다. 사람들 마음은 비슷해서인지 소현세자는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독살설이 유력했으나 지금은 가능성만 제기되고 병사 쪽에 좀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 어쨌든 왕실에서 태어나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고 자식들과 부인 일가가 몰살하는 비극을 당하느니 좀 힘들게 살더라도 평민으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권력은 인간을 어디까지 잔인하게 만드는가? 역사를 보며 전부터 들던 의문이다.

 

이 작품에서 소현세자는 찔레에게 구세주 같이 등장한다. 고향 땅에서 아버지, 동생과 생이별하며 포로로 끌려온 찔레. 탐욕스러운 조선인 역관은 첩으로 삼으려고 눈독을 들이고, 탈출 시도는 실패하며 사람 꼴이 아닌 지경에 이른다. 살아가며 누구나 선인과 악인을 만난다. 선인을 주로 만난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요, 그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찔레 또한 그 흉물스러운 역관과의 악연도 있었지만 시강원 관리 정뇌경, 해주댁 등 생명의 은인들도 만나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어딘가로 또 팔려가려는 찰나, 등장한 이가 바로 소현세자였다. 세자 관소의 재정과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농사를 짓기로 했고, 필요한 인력을 마침 팔려나가는 조선인들로 채우고자 했다는 설정이다. 세자 관소의 일꾼이 된 이들은 노예로 팔리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에 감사한다. 찔레는 그 영특함이 눈에 띄어 세자, 세자빈을 측근에서 돕는 위치가 되었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서양의 문물과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여기에서 실존 인물이 또 등장하는데, 청나라로 파견된 선교사 아담 샬이다.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교류가 있었고, 이 책에서는 거기에 찔레가 함께하는 것으로 나온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조선으로 돌아가기 직전 찔레가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는 장면도 나온다. 세례명은 바르바라. 종교적인 면을 굳이 축소하지 않은 느낌인데, 작가 본인의 종교가 반영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결말 부분이 그렇다. 쓰는 것은 작가 자유, 읽는 것은 독자 자유이니 나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찔레의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했다.

 

찔레라는 이름에 대하여, 나는 그저 작가님이 예쁜 이름을 지으셨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에 보니 찔레에 얽힌 설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 설화의 비극과 이 책의 찔레 가족의 비극은 맥이 같았다. 이렇게 설화를 모티프로 하여 그 이름을 차용하고 더 넓은 이야기로 확장해 나간 작가님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사동화를 쓴다는 것은 쓰는 시간 이상의 공부 시간이 필요한 일일 것 같아서, 창작 중에서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렇게 주인공과 함께 숨쉬며 그때의 고통에 안타까워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역사동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숨쉬어 보는 것. 그 느낌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르게 이끌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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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한숨 도감 큰곰자리 81
무라카미 시코 지음, 나카다 이쿠미 그림,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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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게시판에 여러 권의 책이 올라왔는데 이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서점에서 줄거리를 찾아보니 어떤 학급에 '주제별 도감 만들기'라는 과제가 주어졌고 주인공 모둠이 '한숨 도감'으로 주제를 정해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이 담긴 것 같았다. 다른 것 볼 것도 없이 바로 이 책을 신청했다. 지난 학기에 우리도 사전 단원이 있었고 '나만의 사전 만들기' 활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주제를 '한숨'으로 잡았다는 것도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웠다.

 

화자인 란타네 모둠이 삐걱거리며 난항을 겪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바로 이것이 모둠과제였기 때문이다. 모둠과제로 아주 적절한 활동이긴 하다. 나는 개인작업으로 했지만... 모둠과제를 주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아이들끼리 시간을 맞추는 일, 의견을 조율하는 일, 역할을 분담하는 일, 성실하게 작업을 해서 결과물을 내는 일 등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진통과 시간낭비가 있을 수 있는데 이걸 감수하기가 너무 부담스럽다. 란타네 모둠이 지금 이 상황이다.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다른 모둠은 직업 도감, 반려동물 도감, 질병 도감 등으로 빨리 정하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란타네 모둠은 주어진 회의시간을 다 흘려보내고도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가장 조급한 란타가 드디어 '한숨'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냈다. 란타네 모둠은 교실의 4인 외에 1명이 더 있었다. 마음의 문제로 교실에 오지 못하고 보건실에서 지내는 유라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도 가능한가? 며칠이라면 몰라도 장기간 교실 입실을 거부하는 경우 보건실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나? 어쨌든 란타는 유라에게 모둠과제를 알려주러 갔다가 한숨 이야기를 하게 되고, 유라가 그려준 자신의 '한숨 요정'을 선물로 받아온다. 각자의 아바타와 같은 한숨 요정이 존재하고 란타의 경우처럼 그 둘이 대면할 수도 있다는 설정. 이것이 이 작품의 판타지 요소이다.

 

이렇게하여 주제는 정했는데, 두번째 난관은 유라와의 문제다. 란타는 유라를 딱하게 여겨 최대한 배려하려 하고, 유라의 그림솜씨를 알아보고 그림그리기 역할을 맡기려 하지만 다른 조원들과 이견이 생긴다. 특히 고유키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며 유라도 역할을 맡고 싶으면 교실로 와야 한다고 매정해보이는 말을 한다. 듣고보니 그렇다. 유라처럼 예외적인 친구에게 어떻게 하는게 맞을까? 모든걸 배려하며 맞춰주는게 맞을까? 원칙을 지키도록 단호하게 대하는게 맞을까?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도 자주 겪게되는 딜레마다. 알고보니 란타는 유라를 올해 처음 대하지만 고유키는 작년(3학년)부터 둘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라의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유라는 등교거부 이유를 친구의 놀림이라고만 밝히고 입을 다물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엄마하고의 문제였다. 가장 심각한 건 엄마가 그 사실을 아직까지도 꿈에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인식해야 인정, 해결 등의 다음 과정이 따를텐데 시작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알고 인정하기는커녕 유라 엄마는 본인이 대단히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 같다. 엄마가 유라한테 요구하는 것 중에 틀린 말은 없다. 다만 유라의 의지로 하는 것을 방해하고 강압한다는 것이 문제일 뿐. 이렇게 자식의 마음이 깊이 병들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모가 수두룩하다. 이 책에선 그래도 교사탓을 하며 학교를 뒤집어놓진 않아서 다행이다. 본인의 문제를 몰라서, 아니면 알기 때문에 더 집요하게 학교를 공격하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그 공격의 세기가 자신의 자식 사랑 척도라도 된다는 듯이, 남탓으로 부모노릇을 때우려고 드는 부모들. 유라 엄마는 그 지경까지는 아니다.

 

이런 배경에 한숨이라는 특별한 소재까지 얹었으니 이 책은 그리 가볍지는 않다. 중학년용으로 적당한 분량이지만 부모나 교사들이 함께 읽어도 좋겠다. 란타네 모둠은 시작이 순조롭지 못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도감을 완성했다. 주제가 창의적인 만큼 기존 자료들을 활용할 수 없었을 테고, 주로 인터뷰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자료를 통해 한숨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거쳐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 아주 제법이었다. 도감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까워 보였다.

 

나도 한숨을 많이 쉬는 사람이다. 란타네 도감에 의하면 한숨에는 순기능도 있으니 억지로 한숨을 참으려 하지는 않겠다.

나는 오늘도 한숨과 함꼐 살아간다.” (본문 마지막 문장)

우리 모둠이 생각한 한숨은 그저 슬프거나 괴로워서 쉬는 게 아니랍니다.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담겨있지요. 그래서 누군가 한숨 쉬는 걸 들었을 때, 왜 그래? 괜찮니?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한숨 도감 마지막 문단)

 

모둠과제는 깔끔하게 마쳤지만, 유라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결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희망을 보여주긴 하지만. 핵심을 겨누지 않으면서 조심조심 맴도니까 이처럼 더딘 것이 아닐까? 라는 답답함도 든다. 내가 너무 조급해서 그런 것이겠지? 근데 조급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왔던 것인지 나라면 이렇게 기다리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답은 없는 것이니 나도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 새로운 소재의 흥미로운 동화였다. 한숨에 대한 어린이들의 철학적 고찰이 담겼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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