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 - 홀로 인생을 마주할 줄 아는 용기와 자유에 대하여
최철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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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보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했었나보다. 도서관에서 ‘신청하신 책이 도착했으니 모월모일까지 대출하시라’는 알림이 왔다. 내가 무슨 책을 신청했더라 하며 제목을 보니 이 책이었다. 요즘 나의 관심사 순위로 따지면 신청할 만한 책이었다. 수많은 정보가 잠시 눈에 머물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때 도서관에 바로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 책도 그럴 뻔했다.

다음날 바로 빌려와보니 크지 않은 판형에 본문도 빽빽하지 않고 쪽수도 160쪽 정도, 문장도 어렵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천천히 조금씩 읽어도 되지만 한번에 읽고자 한다면 집중해서 2시간 정도만 들이면 완독할 수 있겠다. 읽기는 이처럼 쉽지만 그 내용의 무게는 커서 속독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나는 속독을 해버린 탓에, 여운을 남겨두려고 이렇게 리뷰를 쓴다.

이 책의 저자는 80세가 넘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고령자의 저작물을 내가 읽은 적이 있었던가. 저작물을 바라진 않지만 나도 마지막 직전까지 정신 멀쩡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이분은 기자 생활을 수십 년 하셨고 신문사에서 중요 직책도 맡아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활약하신 분이다. 언론인으로서 활동할 당시의 글은 내가 접해보지 못했으니 나와 평소 생각이 다른 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는 오직 한 가지 주제의 내용만 담겼고, 그 주제에 나는 매우 동의한다. 그것은 웰 다잉, 다른 말로는 ‘존엄사’이다.

이 책에 그 구체적인 방법이 담겼나 해서 속독을 한 것 같다.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길이 명확하다면 누구나 그 길을 가지 왜 힘겹고 비참한 죽음을 택하겠나. 이 책을 통해서 그 길이 어렵다는 것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맘대로 안된다는 것을 더욱 깨달았을 뿐이다. 엥 그렇다면 이 책은 제껴, 패스!! 이건 아니다. 그렇다면 리뷰를 쓰고 있진 않겠지.

저자는 독거노인이다. 부인과 사별한 지도 10년이 넘었으며 안타깝게 딸도 젊은 나이에 떠나보냈다. 본인 또한 암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매우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노년이다. 하지만 그는 요리를 취미생활로 개발했고 이처럼 글도 쓰면서 홀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되도록 즐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존경스러운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벌써부터 그런 두려움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배웠건, 어떤 지위에 있었건, 돈이 많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두려움없이 독립적인 사람은 똑같이 훌륭하다.

저자는 ‘노년 남자’가 받는(받을 수밖에 없는?) 취급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르신들 세대도 노년으로 접어들면 독립성과 사회성 면에서 남녀가 역전된다. 남자노인들은 한마디로, 도움도 안되고 존재도 불편한, 민폐 무용지물이 된다. 여성의 노년도 크게 다를까마는 남자의 노년은 더 불쌍하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해봤자인 걸 알면서도 내 가까운 남자들이 걱정된다. 이러한 노년 남자로서 저자가 선택한 것은 이것이다. 제목에 있다. “고독사를 준비중입니다.”

「언젠가 내가 혼자 숨져있는 모습이 뒤늦게 발견됐다 하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 것을 아들 내외에게 여러 차례 일러두었다.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이 그러하니 아버지의 고독사를 섧게 여기지 말라 했다. 그건 불효가 아니다. 난 이대로가 좋다. 나의 평화를 위해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31쪽)
문제는 말년에 병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일단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라는 것을 잘 알아보고 미리 작성해 두어야 하겠다. 그런데 이걸 썼다고 해서 존엄사가 될 리는 만무하다. 가족들이 충분히 취지를 알고 동의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의 본인 선택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가족이 붙들기도 하지만 본인이 붙들기도 한다. 그건 정말 그때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를 것 같다.ㅠㅠ

저자는 웰 다잉에 관심을 갖고 강연활동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마지막을 경험하고 상담도 하였다. 그래서 얻게 된 생각을 나누려 이 책을 썼을 것이다. 타인들의 마지막에 대하여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진 않았다. 개인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한다. 그중에는 ‘부럽다. 나도 저렇게’ 라고 생각되는 마지막도 있지만 절대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은 길고 비참한 마지막도 있다. 여기에는 선택과 운명이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이 몇 퍼센트쯤 되는지 잘 모르겠다. 되도록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겼다. 그래야 “고독사를 준비중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씀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개인의 선택 여지가 지금으로선 크지 않은 것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 운운을 하고있는 것일 텐데, 저자 또한 그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려 사항에 넣지 않은 걸 보니 말이 그렇지 거의 가능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 체계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회복가능성이 없는 중증환자의 치료 목표를 연명에 두지 않는 것.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고통 속에서 목숨만 부지하지 않도록 치료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었으면 한다. 목숨의 길이보다 남은 삶의 질에 큰 목표를 두고 함께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상상이 조금은 덜 두려워질 것 같다. 나에 대해서도 내 부모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인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많은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병원에 한 달도 채 못 있고 돌아가셨다. 그 정도면 정말 잘 가신 거라고 모두들 말했었다. 하지만 그 한 달도 그보다는 편하게 있다 가셨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질 때가 있다. 콧줄을 통한 강제 영양공급이 아버지에게 결과적으로는 “기운차려서 고통을 더 느껴라” 라는 폭력이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도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는 게 많지 않은 나의 경험 중 하나다.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솔직하게 논의되고 최상의 선택을 본인과 가족들이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으면 좋겠다.

의료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세상. 이제는 더 이상 수명을 늘리는 것보다 이런 쪽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평온한 죽음을 돕는 의료. 죽음은 예외 없는 모든 이의 것이니까. 그걸 반대할 사람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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