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한숨 도감 큰곰자리 81
무라카미 시코 지음, 나카다 이쿠미 그림,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게시판에 여러 권의 책이 올라왔는데 이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서점에서 줄거리를 찾아보니 어떤 학급에 '주제별 도감 만들기'라는 과제가 주어졌고 주인공 모둠이 '한숨 도감'으로 주제를 정해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이 담긴 것 같았다. 다른 것 볼 것도 없이 바로 이 책을 신청했다. 지난 학기에 우리도 사전 단원이 있었고 '나만의 사전 만들기' 활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주제를 '한숨'으로 잡았다는 것도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웠다.

 

화자인 란타네 모둠이 삐걱거리며 난항을 겪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바로 이것이 모둠과제였기 때문이다. 모둠과제로 아주 적절한 활동이긴 하다. 나는 개인작업으로 했지만... 모둠과제를 주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아이들끼리 시간을 맞추는 일, 의견을 조율하는 일, 역할을 분담하는 일, 성실하게 작업을 해서 결과물을 내는 일 등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진통과 시간낭비가 있을 수 있는데 이걸 감수하기가 너무 부담스럽다. 란타네 모둠이 지금 이 상황이다.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다른 모둠은 직업 도감, 반려동물 도감, 질병 도감 등으로 빨리 정하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란타네 모둠은 주어진 회의시간을 다 흘려보내고도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가장 조급한 란타가 드디어 '한숨'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냈다. 란타네 모둠은 교실의 4인 외에 1명이 더 있었다. 마음의 문제로 교실에 오지 못하고 보건실에서 지내는 유라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도 가능한가? 며칠이라면 몰라도 장기간 교실 입실을 거부하는 경우 보건실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나? 어쨌든 란타는 유라에게 모둠과제를 알려주러 갔다가 한숨 이야기를 하게 되고, 유라가 그려준 자신의 '한숨 요정'을 선물로 받아온다. 각자의 아바타와 같은 한숨 요정이 존재하고 란타의 경우처럼 그 둘이 대면할 수도 있다는 설정. 이것이 이 작품의 판타지 요소이다.

 

이렇게하여 주제는 정했는데, 두번째 난관은 유라와의 문제다. 란타는 유라를 딱하게 여겨 최대한 배려하려 하고, 유라의 그림솜씨를 알아보고 그림그리기 역할을 맡기려 하지만 다른 조원들과 이견이 생긴다. 특히 고유키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며 유라도 역할을 맡고 싶으면 교실로 와야 한다고 매정해보이는 말을 한다. 듣고보니 그렇다. 유라처럼 예외적인 친구에게 어떻게 하는게 맞을까? 모든걸 배려하며 맞춰주는게 맞을까? 원칙을 지키도록 단호하게 대하는게 맞을까?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도 자주 겪게되는 딜레마다. 알고보니 란타는 유라를 올해 처음 대하지만 고유키는 작년(3학년)부터 둘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라의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유라는 등교거부 이유를 친구의 놀림이라고만 밝히고 입을 다물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엄마하고의 문제였다. 가장 심각한 건 엄마가 그 사실을 아직까지도 꿈에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인식해야 인정, 해결 등의 다음 과정이 따를텐데 시작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알고 인정하기는커녕 유라 엄마는 본인이 대단히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 같다. 엄마가 유라한테 요구하는 것 중에 틀린 말은 없다. 다만 유라의 의지로 하는 것을 방해하고 강압한다는 것이 문제일 뿐. 이렇게 자식의 마음이 깊이 병들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모가 수두룩하다. 이 책에선 그래도 교사탓을 하며 학교를 뒤집어놓진 않아서 다행이다. 본인의 문제를 몰라서, 아니면 알기 때문에 더 집요하게 학교를 공격하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그 공격의 세기가 자신의 자식 사랑 척도라도 된다는 듯이, 남탓으로 부모노릇을 때우려고 드는 부모들. 유라 엄마는 그 지경까지는 아니다.

 

이런 배경에 한숨이라는 특별한 소재까지 얹었으니 이 책은 그리 가볍지는 않다. 중학년용으로 적당한 분량이지만 부모나 교사들이 함께 읽어도 좋겠다. 란타네 모둠은 시작이 순조롭지 못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도감을 완성했다. 주제가 창의적인 만큼 기존 자료들을 활용할 수 없었을 테고, 주로 인터뷰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자료를 통해 한숨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거쳐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 아주 제법이었다. 도감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까워 보였다.

 

나도 한숨을 많이 쉬는 사람이다. 란타네 도감에 의하면 한숨에는 순기능도 있으니 억지로 한숨을 참으려 하지는 않겠다.

나는 오늘도 한숨과 함꼐 살아간다.” (본문 마지막 문장)

우리 모둠이 생각한 한숨은 그저 슬프거나 괴로워서 쉬는 게 아니랍니다.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담겨있지요. 그래서 누군가 한숨 쉬는 걸 들었을 때, 왜 그래? 괜찮니?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한숨 도감 마지막 문단)

 

모둠과제는 깔끔하게 마쳤지만, 유라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결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희망을 보여주긴 하지만. 핵심을 겨누지 않으면서 조심조심 맴도니까 이처럼 더딘 것이 아닐까? 라는 답답함도 든다. 내가 너무 조급해서 그런 것이겠지? 근데 조급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왔던 것인지 나라면 이렇게 기다리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답은 없는 것이니 나도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 새로운 소재의 흥미로운 동화였다. 한숨에 대한 어린이들의 철학적 고찰이 담겼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