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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녀 찔레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42
심진규 지음 / 다른 / 2024년 6월
평점 :
출판시장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책이 팔리지 않는다니 나라도 꾸준히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어보지만, 나 또한 웬만하면 도서관에 의지하고 책을 거의 사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둘 곳이 없어서다. 책장은 포화상태고, 아무렇게나 쌓인 책더미 위에 또 책이 놓이게 되니 갈수록 정리도 난감하다. 이 책은 그 난감함을 무릅쓰고 오랜만에 내돈내산한 책이다. 여름방학이 가기 전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심진규 작가님의 책은 <조직의 쓴 맛>이라는 교실 이야기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역사동화에 집중하시는 것 같다. <강을 건너는 아이>와 <섬, 1948>도 무척 좋았다. 이 작가님의 역사동화는 특히 서사의 울림이 매우 크다. (뭐라고 표현할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 그래서 시나리오로 리메이크하여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도 같은 느낌이어서 신기했다. 이 책의 배경은 이미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긴 했다. 병자호란때 청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이 겪는 고난을 주로 그린다.
역사동화에는 대부분 역사 속의 실존인물이 나오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추가된다. 여기서 주인공인 찔레는 후자다. 전자는 소현세자와 세자빈이다. 한국사를 읽으며 가장 아깝고 안타까운 인물이 내게는 소현세자다. 사람들 마음은 비슷해서인지 소현세자는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독살설이 유력했으나 지금은 가능성만 제기되고 병사 쪽에 좀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 어쨌든 왕실에서 태어나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고 자식들과 부인 일가가 몰살하는 비극을 당하느니 좀 힘들게 살더라도 평민으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권력은 인간을 어디까지 잔인하게 만드는가? 역사를 보며 전부터 들던 의문이다.
이 작품에서 소현세자는 찔레에게 구세주 같이 등장한다. 고향 땅에서 아버지, 동생과 생이별하며 포로로 끌려온 찔레. 탐욕스러운 조선인 역관은 첩으로 삼으려고 눈독을 들이고, 탈출 시도는 실패하며 사람 꼴이 아닌 지경에 이른다. 살아가며 누구나 선인과 악인을 만난다. 선인을 주로 만난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요, 그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찔레 또한 그 흉물스러운 역관과의 악연도 있었지만 시강원 관리 정뇌경, 해주댁 등 생명의 은인들도 만나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어딘가로 또 팔려가려는 찰나, 등장한 이가 바로 소현세자였다. 세자 관소의 재정과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농사를 짓기로 했고, 필요한 인력을 마침 팔려나가는 조선인들로 채우고자 했다는 설정이다. 세자 관소의 일꾼이 된 이들은 노예로 팔리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에 감사한다. 찔레는 그 영특함이 눈에 띄어 세자, 세자빈을 측근에서 돕는 위치가 되었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서양의 문물과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여기에서 실존 인물이 또 등장하는데, 청나라로 파견된 선교사 아담 샬이다.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교류가 있었고, 이 책에서는 거기에 찔레가 함께하는 것으로 나온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조선으로 돌아가기 직전 찔레가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는 장면도 나온다. 세례명은 바르바라. 종교적인 면을 굳이 축소하지 않은 느낌인데, 작가 본인의 종교가 반영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결말 부분이 그렇다. 쓰는 것은 작가 자유, 읽는 것은 독자 자유이니 나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찔레의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했다.
찔레라는 이름에 대하여, 나는 그저 작가님이 예쁜 이름을 지으셨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에 보니 찔레에 얽힌 설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 설화의 비극과 이 책의 찔레 가족의 비극은 맥이 같았다. 이렇게 설화를 모티프로 하여 그 이름을 차용하고 더 넓은 이야기로 확장해 나간 작가님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사동화를 쓴다는 것은 쓰는 시간 이상의 공부 시간이 필요한 일일 것 같아서, 창작 중에서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렇게 주인공과 함께 숨쉬며 그때의 고통에 안타까워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역사동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숨쉬어 보는 것. 그 느낌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르게 이끌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