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무너지다 - 1990년대 생생 현대사 동화
이혜령 지음, 양양 그림 / 별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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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가 풍성히 나오고 있지만 현대사를 다룬 작품은 비교적 적었는데, 별숲 출판사에서 '생생 현대사 동화'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1950년대는 전쟁,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 2000년대는 월드컵을 배경으로 한다. 아이고, 2002 월드컵은 엊그제 일인거 같은데 역사동화가 나왔다고? 이런....ㅎㅎㅎ 그리고 1990년대는 이책. 이렇게 4권이 나와있고, 60년대 4.19혁명, 80년대 이산가족찾기, 또 80년대 6월 민주항쟁 이렇게 3권은 곧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진도 짱짱하고 기대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제목에 연도가 딱 박혀있다. 1995년. 어떤 사건일까? 이어지는 제목. '무너지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94, 95년에 이어진 '붕괴'의 충격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보던 TV 화면 속의 믿을 수 없던 장면을.... 94년엔 성수대교 가운데가 뚝 끊겨 차량들이 추락했고, 95년엔 고급 백화점의 상징이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린 끔찍한 잔해를 봐야했다. 삼풍백화점의 구조작업은 오래 걸렸고 실종자와 사망자가 날마다 갱신되는 가운데, 모두가 체념할 때쯤 생존자가 구조되어 인간의 생명력은 참 강하구나를 실감하기도 했었다. 그분들은 잘 살고 계실까.

그 사건을 다룬 역사동화는 쓰는 일도 고통이었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는 써놓아야 할 일이기에 참고 쓰시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고의 참혹함보다는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에 더 집중했다는 느낌이다. 단짝인 윤아-효은, 도하-정우 가족을 중심으로 사망자, 생존자, 구조대원, 유가족 등 다양한 상황을 고루 비춰준다.

도하는 대학생인 형과 유난히 사이가 좋다. 그날은 형이 알바비로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만났다. 도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먼저 내려왔고 형은 타려던 순간....

윤아는 엄마가 백화점 직원이라 바쁘시다. 늘 늦게 지쳐 들어오는 엄마는 백화점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만들기 재료를 사다주겠다고 약속하는데... 효은이네 집에서 같이 비디오를 보던 윤아는 효은엄마에게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는다.

정우네 아빠는 구급대원인데 계속되는 구조작업 중 쓰러졌다.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났다. 살려달라는 목소리와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겹쳐 괴로워한다.

실종자 가족 본부가 차려진 체육관에서는 애타는 기다림과 절망의 울음소리가 교차된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이들은 사망 가족을, 어떤 가족은 생존 가족을 맞이한다. 그리고 백화점의 붕괴는 조짐이 충분히 있었다는 사실과, 그걸 감추고 쉬쉬하며 이루어졌던 일들이 밝혀지며 온 국민이 분개한다.

나는 그 백화점에 안가봐서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지금은 싹 다듬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서 흔적을 알아볼 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재다. 이후로도 많은 인재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지. 과거의 인재에서 우리는 배우고 있는가? 그리하여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있는가? 늘 확인할 문제이다.

이 책에선 90년대 특유의 문화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도하, 정우가 서태지와 듀스를 좋아하고 그들의 춤과 패션을 따라했다거나, 비디오대여점이 성업하고 대여한 비디오로 집에서 영화를 봤다거나 하는 모습 말이다. (정말 얼마 안된거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과거가 되어버렸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삐삐'다. 쿨의 '애상'이라는 노래에 "삐삐쳐도 아무 대답 없던 너"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가사 때문에 이 곡은 박물관 곡이 되어버렸다. 삐삐는 휴대폰이 통용되기 직전, 과도기적으로 잠깐 있었던 통신매체다. 나는 사용을 한번도 안했는데, 사용자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삐삐가 이 사고의 구조과정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세월은 일방통행이고 역주행은 없다. 나의 기억에 생생한 이 사고가 역사동화의 소재가 되었듯이 지금 일어나는 일들도 내가 죽을 때쯤에 역사동화로 등장할 수 있겠구나. 그 내용이 더이상 참사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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