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분이와 돌고래 감동 그림책 6
다원 지음 / 이루리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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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엽고 따뜻한 그림책이 죽음을 다루고, 그것이 또 그렇게 슬프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되돌아가보기도 했다.

 

흘러가는 세월은 사진에 쓰여진 날짜들이 말해준다. 1960. 꽃분이는 어린 햇병아리 해녀다. ‘순이할머니가 꽃분이를 친절하게 인도하여 능숙한 해녀의 길로 이끈다. 둘이 함께 물질을 하던 1962년의 어느날, 함께 들어갔던 바다에서 꽃분이만 올라왔고 목이 터져라 순이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까 그 물 속에서 돌고래가 주변에 왔던 것을 독자들은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2024. 어린 꽃분이는 그때 순이할머니의 나이가 되었고, 함께 하는 해녀들은 많지 않다. 꽃분이도 이젠 물질이 힘겹다.

아이고 죽겠다.

이제 다 그만둘 때가 된 거야.”

 

요즘들어 유난히 돌고래가 꽃분이 주변을 맴돈다. 저놈이 웬일이지?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꽃분이. 그러던 어느날 돌고래가 장난을 걸어오고, 상대하던 꽃분이의 깨달음은 , 숨이!”.....

 

꽃분이는 그 옛날의 순이할머니를 만난다. 순이할머니는 떠나셨던 게 아니었다. 이제 꽃분이가 크게 깨닫는 표정으로 말한다.

이제 내 차례네.”

이제부턴 내가 지켜 줄게.”

 

점점 줄어가고 있는 해녀들을, 변해가고 있는 바다 생태계를 돌고래는 아니, 꽃분 할머니는 지켜주겠지. 아니 그것이 작가님의 바람이겠지.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고.

 

먹고사는 일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적당한 규모의, 자연의 섭리에 맞춘 일이 바로 해녀가 아닐까 한다. 한 번에 한 숨 만큼씩만의 작업,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씩만의 채취. 이런 일들이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날은 우리가 바다를 포기하는 날이 될 것 같아서.

 

태어나는 일도 가는 일도 자연의 섭리인 것을 스며들 듯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아직도 나이를 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작가님의 첫 책이 내용도 그림체도 새롭고 인상적이다. 자연의 섭리 속에서 서로의 지켜줌. 우리가 지향하고 지켜야 할 것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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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숲을 지날 때 온그림책 19
송미경 지음, 장선환 그림 / 봄볕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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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님 작품의 특이한 분위기는 한두번 느낀 것이 아닌 바, 새로운 것 하나가 또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맞이했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림책 치고는 글밥이 조금 많긴 해도 어쨌든 그림책이니 길 수도 복잡할 수도 없는데, 헉 나한테만 이렇게 난해한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건 아마도 내가 정답을 찾아서 그런 게 아닐까. 이것은 무슨 의미, 이건 무슨 상징 이렇게 줄을 긋고 납득이 되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독서를 해온 탓이 아닐까. 어느 작품이나 해석은 열려있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그만인 것이다.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꼭 나의 감상과 일치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이 책은 불안을 통과해 마음이 편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그림책 한 권의 독서에서도 정답을 찾지 못할 때 당황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당위에 가까운 추구가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추구가 더 이상 의미 없어졌을 때 오히려 편안하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이해가 가는 느낌이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안개 숲’ 이란 여러 감정, 그중에서도 ‘불안’이 가장 짙게 깔린 곳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 안개 속처럼 보이는 것도 안보이는 것도 아니게 뿌옇다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안개는, 무겁다. 모든 것을 무겁게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한편으론 감싸준다. 포근하게. 장선환 그림작가님은 어둠 속 안개숲의 느낌을 너무나 잘 그려냈다. 꿈속에서 가본 것 같은 절반의 기시감을 준다. 나도 언젠가 저 속에 있었어, 불안하고 외로웠지. 눈물겨웠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여기에 있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송미경 작가님의 다소 기이한 동화들은 이렇게 나의 무의식에 잠겨있었던 것 같은 안개처럼 뿌연 감정을 건드린다.

어느날 느닷없이 어른들은 모두 동물이 되었고, 달라진 세상에서 다르게 주어진 역할들을 부여받아 살아간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지만, 아가들은 동물들이 방문해 보살피고, 어린이들은 동물 부부에게 입양되고, 청소년들은 필요할 때 약간의 조력 외에는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게 된다. 연이는 청소년이다. 늑대 부부에게 입양된다는 동생 설이를 늦기 전에 만나려고 서둘러 가는 길에 안개 숲을 통과한다. 사슴과 함께. 몇몇 동물들을 만나며.

상상도 못했던 변화가 세상을 뒤덮었지만 비명도 탄식도 들썩임도 없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관계의 끈이 스르륵 풀려버렸지만 아쉬움도 눈물도 없었다. 그 모든것이 담담하고 당연하게, 평온하게 남았다. 비오면 우산을 쓰듯 자연스럽게. 다시 원래의 세상이 된다 해도, 아니면 이것이 쭉 세상의 방식이 된다 해도 그다지 놀랍지도 서럽지도 않을 것 같다.

안개숲을 빠져나와 함박눈의 세상이 된 마을에 들어서서, 연이는 찾던 동생 설이를 만났다. 한발 늦었다. 설이는 이미 늑대 가족의 일원이 되어 눈밭을 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쉽지 않았다. 연이는 눈을 맞으며 그들이 떠난 자리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요즘 내가 자주 접해야 하는 한 가정이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다 힘들어해서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다. 무슨 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는 모르나 부모는 만회하려 죽을 힘을 쓰는데 아이는 부모를 한계로 밀어붙인다. 얼마전엔 “고아원에 보내 달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걸 보았다. 가족이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지? 인간은 왜 노루나 사슴처럼 태어나자마자 겅중겅중 뛰어나가지 못하고 저렇게 오랜 세월 부모의 희생을 먹고 자라야 하는지, 그 희생의 밥을 먹지 못한 인간은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랑만이 구원이라고 하는데 나는 인간이 사랑에 좀 초연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외로움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 상태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말없이 동행해주고, 여기까지인 곳에선 미련없이 보낸다. 다시 기약할 수 없을지라도 슬퍼하진 않는다.
"어디서든 다시 만나자. 반드시 이 모습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더 어렵고 깊은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서늘하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했던 안개숲의 느낌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연이 또한 그 느낌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한발 앞도 볼 수 없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점만은 분명하고, 어떤 시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 존재가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내가 아끼던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설이의 요요처럼.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이 모습으로 존재하기에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살아가되 연연하지는 않을테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눈밭에 혼자 남은 연이가(사실은 내가) 불쌍하지 않아보인다. 차갑고도 다정한 그 기운은 어쩌면 우주를 운행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이처럼 감상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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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걷고 달리고 한울림 장애공감 그림책
김혜온 지음, 전해숙 그림 / 한울림스페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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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모래사장에 놓인 새햐얀 운동화가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책장을 넘기니 실제로 이 운동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의 화자로.

나는 지호의 운동화.

내 친구 지호는 어딜 가든 나를 꼭 챙기지.”

 

운동화는 걷고, 뛰기도 하고, 공놀이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휠체어다. 그러니까 운동화가 직접 땅을 딛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햐얗게 깨끗한 운동화는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엄마와 아빠도 있고, 선생님, 공익근무요원, 친구들까지.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있겠지. 지호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활기차게 잘 지낸다. 서고 걷지 못한다고 주눅들지 않고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가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한다. 여기까지는 지호의 장애가 그리 큰 제약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이동 약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니다. 지호의 운동화가 속상해라고 말하는 부분이 한 번 나온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곳도 많고

앞을 가로막는 것도 너무 많거든.”

어디든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은 휠체어는 사실 장애물을 많이 만난다. 평상시 의식하지도 못했던 턱 하나가 그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대중교통은 정말 험난한 길이다. 상상해보면 나라면 지레 포기했을 것 같다. 명랑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런 일 앞에서 늘 태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지호는 한 발 한 발 옮기는 걷기 연습을 오늘도 한다. 땀방울을 흩뿌려가며. 그리고 또 어느날은 신이 나서 여행가방을 챙긴다.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가기로 한 날이다. 바닷가에서, 캠프파이어에서 해맑게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지호의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흐뭇하게 해준다.

 

마지막 장의 지호는 조금 큰 모습이다. 얼굴에 약간의 쓸쓸함도 묻어 보인다. 어른이 되어가려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리고 화자인 운동화는 말한다.

나는 그대로인데, 지호는 어느새 한 뼘 커졌어.

쑥쑥 자라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지.”

 

이 그림책은 글밥이 많지 않은 편이다. 동화를 써오신 작가님, 특수교사로 현장에 있는 작가님에게 이 작업은 엄청난 절제의 작업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문장은 거의 시가 되었다.
난 지호의 운동화,

지호와 함께

걷고 달리고 울고 웃은,

여전히 하얗고 깨끗한 지호의 단짝 친구.”

 

뒷면지에는 글이 없고 그림 뿐인데, 비행기와 공항의 장면이 보인다. 지호는 그새 더 자랐고 휠체어를 끄는 이들은 모두 또래들이다. 이 장면 너무 희망적이다. 이런 장면이 일상이라면, 우린 훨씬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겠지.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인가? 우리를 돌아보는 책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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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선생님은 내 친구 + 선생님은 우리 친구 - 전2권 책콩 저학년
송언 지음, 김민우 그림 / 책과콩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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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 선생님은 몇년전 퇴직하시고는 특유의 교실이야기 동화를 딱 끊으시고 창작 옛이야기나 옛이야기 재화 등 다른 분야의 책들을 주로 쓰셨다. 선생님이 밝히신 적은 없지만 그렇게 마음먹으신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전 이 책이 나온걸 보았다. ! 다시 쓰시는 건가? 반가워 읽어보았다. 어디서 봤던 것 같다? 생각하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역시, 전에 쓰셨던 책(꼼지락 공주와 빗자루 선생님)이 절판되고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심정은 약간 복잡했다. 씁쓸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변한 걸 느껴서 씁쓸했고, 더이상 이런 얘기가 재밌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난 송언 선생님 작품을 읽으며 동심에 공감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할아버지샘을 존경한다 생각했는데, 이제 다시 읽어보니 불편한 것 투성이에 짜증까지 살짝 나는 것이었다.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둘 다겠지.ㅠㅠ

 

작가님의 전작들에 리뷰를 많이 써서 기억난다. 할아버지쌤은 인간적이고 품이 넓은 분이었지만 완벽하신 분은 아니다. 계획적이라기보단 즉흥적인 편에 가깝고 말이나 행동에 실수도 가끔 있는, 살짝 구멍이 있는 분이다.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말썽쟁이고 교실은 시끌벅적, 법석도 많이 벌어진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선생님이 각잡고 훈육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느새 조금씩 철이 들고,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 펄펄 살아 뛰는 상태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간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대로 만족한다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교직에 남아있는 나는, "저게 될까?" 라는 냉소가 나도 모르게 떠올라 흠칫 놀라고 있는 중이다. 일단은 제목부터가 말이 안된다고 느낀다. 교사는 친구가 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게 내 생각이다. 지들끼리 좋은 친구가 되도록 조력이나 잘해. 니가 왜 친구가 되겠다는 건데. 선생노릇이나 잘해라. 그러려면 너를 허물지 말아라. 한번 허물면 다시 못세운다. 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려고 시도했던 적은 없지만 이 실패와 후회의 사례는 수도없이 보고 들었다. 각자의 역할과 지켜야 할 위치가 있는 법이다. 친구는 반대합니다.

 

주인공 송지율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버릇없음에 다시 한번 경고등이 켜졌다. 거기에 '친구처럼' 상대하시고 기껏해야 "!" 한마디로 혼내시는 선생님. 하지만 지율이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 진심이 점점 아이를 성장시킨다. 이런 경우도 물론 있다. 선생님은 현직에 계실 때 많이 겪어보셨으니 이야기로 쓰셨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임자'는 못만나보신 게 아닐까. 앞에서 말했듯이 선생님도 실수하시고 구멍이 있던데 그 구멍을 누가 잡아채고 달려들었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구나. 내가 더이상 선생님의 교실동화를 즐길 수 없는 이유가. 선생님의 교실이야기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따지고들면 트집잡힐 요소들이 가끔 들어있다. 예를들면 아이들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중에는 신체적 특징으로 부르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김배불뚝이 등.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일이다. 곤욕을 치른다해도 쉴드도 쳐줄 수 없는.

 

게다가 요즘은 이뻐만 해주면 알아서 철드는.... 그럴거라 믿고 지켜만 봐서는 절대 안되는 힘든 아이들이 교실마다 기본적으로 있으며 한둘이 아닌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런 담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이렇게만 된다면' 하고 한숨을 쉬게 될 것 같다.

 

세상이 변한게 맞긴 맞구나. 인간적인 면이 많은걸 커버하던 시대는 지났다. 직업인은 그저 전문적이어야 할 뿐이다. 나 또한 인간적인 면이 꽤 되지만 난 나의 그런 면이 별로 좋지 않다. 전문적이길 추구하지만 능력이 좀 부족할 뿐.... 이렇게 송언 선생님의 동화는 '옛 이야기'가 되어가는가. 좀 슬프네.

 

생각해보니 송언 선생님의 작품 중에 <외아들 구출 소동>이라는 작품도 있다. 내용이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학교에서 온갖 횡포를 부리는 망나니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한번 형들한테 맞았던가 해서 화가 난 아빠가 쫓아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빠가 바로 진상 학부모, 다른 말로 몬스터 페어런츠였네. 검색해보니 무려 11년 전 작품이다. 그렇지, 작금의 상황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징조는 있었던 거지. 그리고 송언 선생님 또한 꽃밭에서 교직생활을 하신 것은 아니겠지....

 

할아버지 선생님의 힘 빼기와 여유, 그리고 나의 힘주기(긴장)와 조급함.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한다면 모두가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리라. 하지만 이제 무방비는 언감생심이 되었기에 아무 효율도 없는 힘주기와 경계를 하며 헛심을 빼고 있다. 송언 선생님께서 이 시대에 맞는 이상 교실을 보여주신다면 눈물겨운 마음으로 읽을 것 같은데. 바닥에 닿았으니 치고 올라가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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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씩 빨라지는 째깍째깍 마을 한울림 별똥별 그림책
이사벨라 파글리아 지음, 프란체스카 아이엘로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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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문제의식도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이미 50년 전 <모모>에서 한 얘기가 여러 작품으로 계속 재화되는 느낌이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주제가 어디 있을까. 다른 인물, 다른 배경, 다른 사건, 다른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질 때 독자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그 주제를 받아들이면 충분히 좋은 것이다.

 

이 책은 나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느낌을 받지 못했다. 뒷장이 뻔히 예상되었고 내용이나 표현이 약간 전형적이고 직접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태를 비판하고 경고하는 내용이지만 세태를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내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바쁘게 일한답시고 여유를 잃고 소중한 것을 다 잊어버린 어른들이 나온다. 그리하여 행복한 삶을 유지할 것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남몰래 그것들을 지키고 키워온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설정에 대하여 회의가 든다. 어른들이 제정신이 아닌데 아이들만 초롱초롱하고 단단하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어른들이 미쳐 돌아가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미친 틈바구니에서 말라간다. 어른들이 주입한 병든 가치관을 가지고 한술 더뜨지 않으면 다행인 채로 새로운 행복을 상상하지 못하고 자라간다. 먼 곳은 모르겠고 지금 이곳은 그런 것 같다.

 

어른들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동안 사라진 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고 책이 사라졌다. 공원의 꽃, 농장의 나무와 채소, 결국엔 먹을 것들도 없어졌다. 어른들이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절망적이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끌었다. 거기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가꾸어간 초록동산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등장이 나에겐 반갑고 의미있었다. 세대간 연결과 소통이 있다면 이런 가능성도 있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가능성의 마지막 세대일 것만 같은데, 그 가능성도 점점 닫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초록동산으로 이끌기 전, 어린 소녀가 어른들을 깨우친 말에 주제가 다 들어있다고 하겠는데, 그게 너무 노골적으로 작가의 육성이어서 좀 재미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동안 어른들은 시계만 쳐다보고,

시간에 쫓겨 다니면서 바쁘다고만 했잖아요.

시곗바늘 소리만 듣느라 가장 중요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고요!”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람, , , 식물, 동물, 모두 다요!”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작품의 메시지에는 깊이 공감한다. 갈수록 바빠지고 그와 비례해 갈수록 불안해지는 우리의 모습. 이전보다 풍요롭고, 이전보다 편리한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 걸까? 앞만 보고 질주하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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