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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씩 빨라지는 째깍째깍 마을 ㅣ 한울림 별똥별 그림책
이사벨라 파글리아 지음, 프란체스카 아이엘로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8월
평점 :
내용도 문제의식도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이미 50년 전 <모모>에서 한 얘기가 여러 작품으로 계속 재화되는 느낌이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주제가 어디 있을까. 다른 인물, 다른 배경, 다른 사건, 다른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질 때 독자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그 주제를 받아들이면 충분히 좋은 것이다.
이 책은 나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느낌을 받지 못했다. 뒷장이 뻔히 예상되었고 내용이나 표현이 약간 전형적이고 직접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태를 비판하고 경고하는 내용이지만 세태를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내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바쁘게 일한답시고 여유를 잃고 소중한 것을 다 잊어버린 어른들이 나온다. 그리하여 행복한 삶을 유지할 것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남몰래 그것들을 지키고 키워온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설정에 대하여 회의가 든다. 어른들이 제정신이 아닌데 아이들만 초롱초롱하고 단단하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어른들이 미쳐 돌아가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미친 틈바구니에서 말라간다. 어른들이 주입한 병든 가치관을 가지고 한술 더뜨지 않으면 다행인 채로 새로운 행복을 상상하지 못하고 자라간다. 먼 곳은 모르겠고 지금 이곳은 그런 것 같다.
어른들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동안 사라진 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고 책이 사라졌다. 공원의 꽃, 농장의 나무와 채소, 결국엔 먹을 것들도 없어졌다. 어른들이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절망적이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끌었다. 거기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가꾸어간 초록동산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등장이 나에겐 반갑고 의미있었다. 세대간 연결과 소통이 있다면 이런 가능성도 있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가능성의 마지막 세대일 것만 같은데, 그 가능성도 점점 닫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초록동산으로 이끌기 전, 어린 소녀가 어른들을 깨우친 말에 주제가 다 들어있다고 하겠는데, 그게 너무 노골적으로 작가의 육성이어서 좀 재미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동안 어른들은 시계만 쳐다보고,
시간에 쫓겨 다니면서 바쁘다고만 했잖아요.
시곗바늘 소리만 듣느라 가장 중요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고요!”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람, 꽃, 벌, 식물, 동물, 모두 다요!”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작품의 메시지에는 깊이 공감한다. 갈수록 바빠지고 그와 비례해 갈수록 불안해지는 우리의 모습. 이전보다 풍요롭고, 이전보다 편리한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 걸까? 앞만 보고 질주하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