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 보통날의 그림책 7
최아영 지음 / 책읽는곰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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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쓸모가 있어야 하나?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쓸모에 회의가 들 때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나는 직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직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작으나마 나의 업무를 알차고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나의 쓸모 때문이다.

동학년에선 조그마한 자료라도 나누면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도움이 되지 못하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이 또한 나의 쓸모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쓸모가 정점에 있는 청장년 시기를 지나면 노년기에 접어들 텐데

모두가 그 시기를 두려워하는 것도 쓸모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버님은 함께 살면서 자식들에게 엄청난 쓸모를 유지하셨다.

손자들을 보살펴주셨고, 전직 목수셨던 이력을 살려 집안 곳곳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셨다.

재활용과 쓰레기 처리도 다 알아서 하시니 다른 가족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제는 90이 넘으셨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으시는데,

아직도 재활용을 넘기지 않으신다. 아버님이 깔끔하게 종류별로 묶은 재활용품을 바퀴 달린 카트에 싣고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나가시면 저 멀리서 경비원님이 보시고 달려온다.

아이고 어르신! 제가 하겠습니다.” 하시면 손을 내두르신다.

경비원님도 마찬가지고 주민들도, “저 할아버지 가족들은 뭐하는 거여할 거다.;;;;

그래도 아버님은 그걸 마치고 들어오셔야 모처럼 웃으신다.

아이고, 이번 주 일도 끝났다!” 하시면서.

그때 느낀다. 인간의 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아버님처럼 못할 텐데 더더욱 걱정이고.

 

친정 엄마도 마찬가진데, 매년 올해가 마지막이다 하면서도 동지 팥죽을 쒀서 딸들을 부른다.

엄마 팥죽은 진짜 맛있거든.ㅠㅠ

지난번에는 밑을 태워가지고 탄 맛이 반, 맛있는 맛이 반이었다. 그래도 탄 맛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하얀 도자기다. 장식용 도자기였던 걸로 보인다. 그런데 주둥이 한귀퉁이가 깨졌다. ‘쓸모가 없어진 도자기는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다음 장에 보니 한 할머니가 그 아이를 들어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러잖아도 깨지고 버려져서 속상한 아이에게 물을 끼얹고 박박 닦고, 밑바닥에 못으로 구멍까지 뚫는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표정인데 하얀 도자기에 그려진 표정들이 많은 걸 말해준다.

 

바닥에 구멍을 뚫을 때 짐작했듯이 이 아이는 화분이 되었다. 베란다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베란다엔 이런 운명으로 화분이 된 아이들이 즐비했다. 손잡이가 녹아내린 주전자, 이삿짐 옮길 때 부주의로 흠집난 항아리, 한때는 최고급 포도주가 담겼던 병 등등.... 같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저마다의 모습에 맞추어 생명 하나씩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하얀 도자기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됐다.

 

도자기의 몸에 담긴 흙에서 새싹이 돋아나오며, 표정도 조금씩 변해 간다. 노오란 꽃을 피울 때쯤엔 기대감도 느껴진다. 그 다음엔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게 된 도자기. 이젠 제범 수다까지 떤다.

내가 이 몸에 온갖 꽃을 다 담아봤지만, 열매를 담기는 또 처음이잖아.”

도자기는 이제 베란다의 완벽한 한 식구가 되었다. 마지막 장엔 할머니가 또 주워오신 듯한 어항이 잔뜩 속상한 표정으로 놓여있다. 모든 이해를 담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도자기.

 

뒷표지에 당신의 쓸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도자기의 쓸모는 완전히 끝난 듯했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을 때, 버린 주인도 도자기 자신도 그걸 인정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길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 주었다.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사회에 속한 삶을 살아가려는 평범한 모든 이에게 쓸모는 생명처럼 소중하다. 나는 도자기이기도 하고 할머니이기도 하다. 현직에 있는 지금은 할머니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너의 쓸모를 알려주는 데도 진통이 필요한 시간들. 이 시간들을 잘 보내고 나면 나의 쓸모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오겠지. 참 예쁘고 정겨운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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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부르는 바람의 노래
홍세기 지음 / 템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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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기 선생님을 알게된 건 홍이삭 가수 때문이었다. 58호의 무대를 본 후 그를 응원하고 있던 차에 페북에서 좋은교사 소속 선생님이 그 썸네일과 함께 "홍세기 선생님의 아들이 이런 청년으로 자랐구나!" 라고 올리신 걸 봤다. 검색해봤더니 그 아버님은 나와 공통분모가 아주 조금 (출신학교라든가 소속단체 정도)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보다가 꽤 많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얼마 전 나온 걸 알고 당장 읽어보았다. 그간 단편적으로 보았던 정보들이 서사로 엮여있었다. 흥미롭기도 했고, 감동도 받았다. 보기 전부터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객관적으로 좋은 책일지는....? 읽고나니 이 책은 그냥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라는 진입장벽이 있긴 하지만, 그 색채가 아주 찐하진 않고 저자의 필력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그의 태도가 난 좋았다. 마지못해 가는 길일지라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성실하고 사려깊게 임하는 그 태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며 감정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태도.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난 이런 사람을 좋아하기에 이 책이 크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리뷰의 흐름이 중구난방일 것 같지만 홍이삭 가수에게 빠진 얘기부터 해보겠다. 싱어게인 1,2는 좀 늦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시즌3은 58호의 독무대를 보자마자 바로 응원을 시작했다. 잠이 바로 오지 않을 땐 그의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게 한동안 일상이 됐다. 파도파도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참 무던하고 꾸준하게 열심히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라디오방송의 게스트 출연까지 끌어다 주었는데, 벤지가 영어로 진행하는 방송이었고 둘은 주로 시덥잖은 수다를 떨었다. 거기서 이런저런 tmi들을 알게 되었다. 교육자 가족이라는 것, 그중 부모님은 아프리카에서 교육을 하고 계신다는 것.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파푸아뉴기니에서 몇년 살았다는 것. 그걸 듣고 '아 선교사이신가보다' 했는데, 초등교사 출신인 것은 앞에서 말했듯 '홍세기' 라는 성함을 안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인 강학봉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홍이삭은 부부교사의 아들이었던 것. 참 남일 같지가 않았다.ㅎㅎㅎ

그의 모든 앨범을 멜론에서 다운받고 출근길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은 'Lean on me'와 '하나님의 세계' 'Give Thanks' 등이 함께 들어있는 ccm 영상이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예쁜 청년이 또있나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본 가장 오래된 영상은 10년이 넘은 영상이었는데, 거기엔 지금과 다른 모습의 홍이삭이 있었다. 부정교합 수술을 받기 전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놀랐다. 밥을 먹기도 호흡 때문에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 턱의 틀어짐이 매우 심했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그는 슈스케에 나가고 싶다고 말할 때는 천진난만했고, 수술에 대해서 말하며 부모님을 걱정할 때는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어린시절과 학창기를 부모님 사역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신체적으로도 저런 핸디캡을 가졌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어떻게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난 그게 충격이었다. 내 주변에 저런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건 홍이삭씨의 타고난 인품이기도 하겠지만 홍세기 선생님의 사역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납득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더 어른이 된 지금은 서로 응원하고 있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닌 바, 이 책을 읽어보고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도 자식한테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부자는 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홍세기 선생님 부부의 사역은 주로 교육사역이었다. 처음엔 선교사 자녀들을 주로 가르쳤다. 지금 계신 우간다의 쿠미대학으로 가게 된 것도 교육사역의 연장선일 것이다. 교대를 졸업하시고도 더 공부를 하시긴 했지만, 어쨌든 초등교사 출신이 대학의 총장 자리를 맡으신 건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이 일에 대하여 선생님은 '구레네 시몬'에 자신을 비유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러 골고다 언덕으로 갈때, 병사들은 일정구간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홍선생님은 이와 같이 자신이 '구레네 시몬' 임을 자처했다. 그건 본인이 감히 '십자가를 지겠다' 라고 말할 주제가 못된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그냥 나밖에 없다니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하기는 하지만 어서 적임자가 나타나 그 짐을 벗었으면 좋겠다는 정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그는 일을 꽤 잘해냈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 세상에는 주로 빈수레만 요란한 인간들이 앞에 나서서 설치면서 일을 그르친다.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 그런 것들이 설치는 걸 막으려면 찐인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데 찐들은 또 나서는 걸 싫어해요... 가끔은 무거운 어깨를 감수하고 일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찐이면서 적당히 앞에 나서줄 수도 있는 분들은 흔하지 않기에 난 그분들에게 늘 고마워한다.

쿠미대학교는 한국선교사가 설립한 학교지만 홍선생님이 임무를 시작할 때의 상태는 심각했다. 재정적으로도 악화되어 교직원들의 임금도 주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며, 교정은 방치되어 살풍경했고 수업 기자재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의미있는 교육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막막함이 전해지며 나라면 그냥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기도가 너무나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는 코뚜레 꿰인 황소처럼 묵묵히 일했고, 하나님은 수레의 바퀴를 서서히 굴려 주셨다. 돌아보면 기적인 것 같은 변화들은 조금씩, 또는 물밀듯이 일어났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는 꽤나 탄탄한 학교로 변모해갔다. 외관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하지만 진짜로 힘든 일은 이런 눈에 보이는 일들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 오만 정이 떨어지고 더 이상 일할 동력을 잃게 된다.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인내심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저자도 물론 이런 때의 마음 상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랑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점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저자의 태도에서 인상적인 점은 또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부족의 문화를 통합하고 희석하려는 시도보다 있는 그대로 장려하고 함께 즐기는 모습,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피부색이라는 감옥에 갇혔던 그들의 잠재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필요에 함께 하려는 태도였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자신의 태도조차도 주제넘은 것이 아닌지 경계한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조차도 그의 조심스러운 심정을 나타낸다.
“길지 않은 6년간의 우간다 쿠미대학교 생활을 글로 정리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었다. 어떻게 보면 이 경험으로 인해서 나는 우간다 사람들의 인식 깊은 곳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쉽게 생각한 ‘이들과 함께 살기’에 대한 뼈저린 통한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타 문화권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가슴 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저 이물질 같은 내가 저들 속에 들어가 주제넘게 여러 고민을 해댄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254쪽)

책날개에 제목에 대한 저자의 말이 나온다. 바람의 노래. 저자는 교육을 바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육이 당장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보다 사람들과 사회에 바람처럼 부드럽게 인격적으로 다가가 변화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어떤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자연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활동이 교육이다.”
저자의 비유대로라면, 우간다의 교육 형편은 아직 열악하지만 바람이 불 공간이 충분하다. 아직은 소수에게만 주어진 기회, 신분 상승을 꾀하는 기회로 우리나라의 수십년 전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불어온 바람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반면 과거와 달리 이제 거의 충족된 우리나라 교육에는 바람이 지나다닐 자리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이 리뷰에 우리 교육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고 답답하여 그만하겠지만, 누군가와 이 책을 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답답한 속을 터놓고 싶은 마음도 든다.

홍이삭 씨가 결승전에서 ‘바람의 노래’를 부르기 전, 아버지와 상의 끝에 정한 노래라고 했는데, 그날 매우 좋지 않았던 목상태로 부르기엔 살짝 힘들었던 부분이 있어서 나는 같이 보던 딸한테 이렇게 한탄했었다.
“아이고, 아빠 말은 들으면 안돼~~~~”
웃자고 한 소리였다.ㅎㅎㅎ ‘바람의 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니 그 무대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겸손한 저자는 이 가사의 마지막 구절은 그저 추구하는 바일 뿐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나는 더하다.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할까... 하지만 그의 사역에 동행하신 하나님은 연약한 사랑들이 모여 꼭 필요한 일에 쓰이고 길을 내는 광경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제 곧 소원대로 퇴직하실 선생님 부부의 건강과 새로운 길을 응원한다. 더불어 대안학교에서 일하는 든든한 따님 하늘 씨와 내가 평생 처음으로 팬까페 가입한 홍이삭 가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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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분이와 돌고래 감동 그림책 6
다원 지음 / 이루리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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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엽고 따뜻한 그림책이 죽음을 다루고, 그것이 또 그렇게 슬프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되돌아가보기도 했다.

 

흘러가는 세월은 사진에 쓰여진 날짜들이 말해준다. 1960. 꽃분이는 어린 햇병아리 해녀다. ‘순이할머니가 꽃분이를 친절하게 인도하여 능숙한 해녀의 길로 이끈다. 둘이 함께 물질을 하던 1962년의 어느날, 함께 들어갔던 바다에서 꽃분이만 올라왔고 목이 터져라 순이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까 그 물 속에서 돌고래가 주변에 왔던 것을 독자들은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2024. 어린 꽃분이는 그때 순이할머니의 나이가 되었고, 함께 하는 해녀들은 많지 않다. 꽃분이도 이젠 물질이 힘겹다.

아이고 죽겠다.

이제 다 그만둘 때가 된 거야.”

 

요즘들어 유난히 돌고래가 꽃분이 주변을 맴돈다. 저놈이 웬일이지?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꽃분이. 그러던 어느날 돌고래가 장난을 걸어오고, 상대하던 꽃분이의 깨달음은 , 숨이!”.....

 

꽃분이는 그 옛날의 순이할머니를 만난다. 순이할머니는 떠나셨던 게 아니었다. 이제 꽃분이가 크게 깨닫는 표정으로 말한다.

이제 내 차례네.”

이제부턴 내가 지켜 줄게.”

 

점점 줄어가고 있는 해녀들을, 변해가고 있는 바다 생태계를 돌고래는 아니, 꽃분 할머니는 지켜주겠지. 아니 그것이 작가님의 바람이겠지.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고.

 

먹고사는 일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적당한 규모의, 자연의 섭리에 맞춘 일이 바로 해녀가 아닐까 한다. 한 번에 한 숨 만큼씩만의 작업,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씩만의 채취. 이런 일들이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날은 우리가 바다를 포기하는 날이 될 것 같아서.

 

태어나는 일도 가는 일도 자연의 섭리인 것을 스며들 듯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아직도 나이를 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작가님의 첫 책이 내용도 그림체도 새롭고 인상적이다. 자연의 섭리 속에서 서로의 지켜줌. 우리가 지향하고 지켜야 할 것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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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숲을 지날 때 온그림책 19
송미경 지음, 장선환 그림 / 봄볕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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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님 작품의 특이한 분위기는 한두번 느낀 것이 아닌 바, 새로운 것 하나가 또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맞이했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림책 치고는 글밥이 조금 많긴 해도 어쨌든 그림책이니 길 수도 복잡할 수도 없는데, 헉 나한테만 이렇게 난해한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건 아마도 내가 정답을 찾아서 그런 게 아닐까. 이것은 무슨 의미, 이건 무슨 상징 이렇게 줄을 긋고 납득이 되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독서를 해온 탓이 아닐까. 어느 작품이나 해석은 열려있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그만인 것이다.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꼭 나의 감상과 일치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이 책은 불안을 통과해 마음이 편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그림책 한 권의 독서에서도 정답을 찾지 못할 때 당황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당위에 가까운 추구가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추구가 더 이상 의미 없어졌을 때 오히려 편안하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이해가 가는 느낌이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안개 숲’ 이란 여러 감정, 그중에서도 ‘불안’이 가장 짙게 깔린 곳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 안개 속처럼 보이는 것도 안보이는 것도 아니게 뿌옇다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안개는, 무겁다. 모든 것을 무겁게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한편으론 감싸준다. 포근하게. 장선환 그림작가님은 어둠 속 안개숲의 느낌을 너무나 잘 그려냈다. 꿈속에서 가본 것 같은 절반의 기시감을 준다. 나도 언젠가 저 속에 있었어, 불안하고 외로웠지. 눈물겨웠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여기에 있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송미경 작가님의 다소 기이한 동화들은 이렇게 나의 무의식에 잠겨있었던 것 같은 안개처럼 뿌연 감정을 건드린다.

어느날 느닷없이 어른들은 모두 동물이 되었고, 달라진 세상에서 다르게 주어진 역할들을 부여받아 살아간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지만, 아가들은 동물들이 방문해 보살피고, 어린이들은 동물 부부에게 입양되고, 청소년들은 필요할 때 약간의 조력 외에는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게 된다. 연이는 청소년이다. 늑대 부부에게 입양된다는 동생 설이를 늦기 전에 만나려고 서둘러 가는 길에 안개 숲을 통과한다. 사슴과 함께. 몇몇 동물들을 만나며.

상상도 못했던 변화가 세상을 뒤덮었지만 비명도 탄식도 들썩임도 없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관계의 끈이 스르륵 풀려버렸지만 아쉬움도 눈물도 없었다. 그 모든것이 담담하고 당연하게, 평온하게 남았다. 비오면 우산을 쓰듯 자연스럽게. 다시 원래의 세상이 된다 해도, 아니면 이것이 쭉 세상의 방식이 된다 해도 그다지 놀랍지도 서럽지도 않을 것 같다.

안개숲을 빠져나와 함박눈의 세상이 된 마을에 들어서서, 연이는 찾던 동생 설이를 만났다. 한발 늦었다. 설이는 이미 늑대 가족의 일원이 되어 눈밭을 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쉽지 않았다. 연이는 눈을 맞으며 그들이 떠난 자리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요즘 내가 자주 접해야 하는 한 가정이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다 힘들어해서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다. 무슨 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는 모르나 부모는 만회하려 죽을 힘을 쓰는데 아이는 부모를 한계로 밀어붙인다. 얼마전엔 “고아원에 보내 달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걸 보았다. 가족이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지? 인간은 왜 노루나 사슴처럼 태어나자마자 겅중겅중 뛰어나가지 못하고 저렇게 오랜 세월 부모의 희생을 먹고 자라야 하는지, 그 희생의 밥을 먹지 못한 인간은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랑만이 구원이라고 하는데 나는 인간이 사랑에 좀 초연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외로움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 상태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말없이 동행해주고, 여기까지인 곳에선 미련없이 보낸다. 다시 기약할 수 없을지라도 슬퍼하진 않는다.
"어디서든 다시 만나자. 반드시 이 모습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더 어렵고 깊은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서늘하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했던 안개숲의 느낌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연이 또한 그 느낌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한발 앞도 볼 수 없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점만은 분명하고, 어떤 시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 존재가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내가 아끼던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설이의 요요처럼.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이 모습으로 존재하기에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살아가되 연연하지는 않을테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눈밭에 혼자 남은 연이가(사실은 내가) 불쌍하지 않아보인다. 차갑고도 다정한 그 기운은 어쩌면 우주를 운행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이처럼 감상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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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걷고 달리고 한울림 장애공감 그림책
김혜온 지음, 전해숙 그림 / 한울림스페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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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모래사장에 놓인 새햐얀 운동화가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책장을 넘기니 실제로 이 운동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의 화자로.

나는 지호의 운동화.

내 친구 지호는 어딜 가든 나를 꼭 챙기지.”

 

운동화는 걷고, 뛰기도 하고, 공놀이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휠체어다. 그러니까 운동화가 직접 땅을 딛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햐얗게 깨끗한 운동화는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엄마와 아빠도 있고, 선생님, 공익근무요원, 친구들까지.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있겠지. 지호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활기차게 잘 지낸다. 서고 걷지 못한다고 주눅들지 않고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가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한다. 여기까지는 지호의 장애가 그리 큰 제약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이동 약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니다. 지호의 운동화가 속상해라고 말하는 부분이 한 번 나온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곳도 많고

앞을 가로막는 것도 너무 많거든.”

어디든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은 휠체어는 사실 장애물을 많이 만난다. 평상시 의식하지도 못했던 턱 하나가 그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대중교통은 정말 험난한 길이다. 상상해보면 나라면 지레 포기했을 것 같다. 명랑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런 일 앞에서 늘 태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지호는 한 발 한 발 옮기는 걷기 연습을 오늘도 한다. 땀방울을 흩뿌려가며. 그리고 또 어느날은 신이 나서 여행가방을 챙긴다.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가기로 한 날이다. 바닷가에서, 캠프파이어에서 해맑게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지호의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흐뭇하게 해준다.

 

마지막 장의 지호는 조금 큰 모습이다. 얼굴에 약간의 쓸쓸함도 묻어 보인다. 어른이 되어가려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리고 화자인 운동화는 말한다.

나는 그대로인데, 지호는 어느새 한 뼘 커졌어.

쑥쑥 자라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지.”

 

이 그림책은 글밥이 많지 않은 편이다. 동화를 써오신 작가님, 특수교사로 현장에 있는 작가님에게 이 작업은 엄청난 절제의 작업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문장은 거의 시가 되었다.
난 지호의 운동화,

지호와 함께

걷고 달리고 울고 웃은,

여전히 하얗고 깨끗한 지호의 단짝 친구.”

 

뒷면지에는 글이 없고 그림 뿐인데, 비행기와 공항의 장면이 보인다. 지호는 그새 더 자랐고 휠체어를 끄는 이들은 모두 또래들이다. 이 장면 너무 희망적이다. 이런 장면이 일상이라면, 우린 훨씬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겠지.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인가? 우리를 돌아보는 책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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