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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쓸모 ㅣ 보통날의 그림책 7
최아영 지음 / 책읽는곰 / 2024년 9월
평점 :
꼭 쓸모가 있어야 하나?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쓸모에 회의가 들 때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나는 직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직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작으나마 나의 업무를 알차고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나의 쓸모 때문이다.
동학년에선 조그마한 자료라도 나누면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도움이 되지 못하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이 또한 나의 쓸모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쓸모가 정점에 있는 청장년 시기를 지나면 노년기에 접어들 텐데
모두가 그 시기를 두려워하는 것도 쓸모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버님은 함께 살면서 자식들에게 엄청난 쓸모를 유지하셨다.
손자들을 보살펴주셨고, 전직 목수셨던 이력을 살려 집안 곳곳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셨다.
재활용과 쓰레기 처리도 다 알아서 하시니 다른 가족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제는 90이 넘으셨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으시는데,
아직도 재활용을 넘기지 않으신다. 아버님이 깔끔하게 종류별로 묶은 재활용품을 바퀴 달린 카트에 싣고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나가시면 저 멀리서 경비원님이 보시고 달려온다.
“아이고 어르신! 제가 하겠습니다.” 하시면 손을 내두르신다.
경비원님도 마찬가지고 주민들도, “저 할아버지 가족들은 뭐하는 거여” 할 거다.;;;;
그래도 아버님은 그걸 마치고 들어오셔야 모처럼 웃으신다.
“아이고, 이번 주 일도 끝났다!” 하시면서.
그때 느낀다. 인간의 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아버님처럼 못할 텐데 더더욱 걱정이고.
친정 엄마도 마찬가진데, 매년 올해가 마지막이다 하면서도 동지 팥죽을 쒀서 딸들을 부른다.
엄마 팥죽은 진짜 맛있거든.ㅠㅠ
지난번에는 밑을 태워가지고 탄 맛이 반, 맛있는 맛이 반이었다. 그래도 탄 맛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하얀 도자기다. 장식용 도자기였던 걸로 보인다. 그런데 주둥이 한귀퉁이가 깨졌다. ‘쓸모’가 없어진 도자기는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다음 장에 보니 한 할머니가 그 아이를 들어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러잖아도 깨지고 버려져서 속상한 아이에게 물을 끼얹고 박박 닦고, 밑바닥에 못으로 구멍까지 뚫는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표정’인데 하얀 도자기에 그려진 표정들이 많은 걸 말해준다.
바닥에 구멍을 뚫을 때 짐작했듯이 이 아이는 화분이 되었다. 베란다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베란다엔 이런 운명으로 화분이 된 아이들이 즐비했다. 손잡이가 녹아내린 주전자, 이삿짐 옮길 때 부주의로 흠집난 항아리, 한때는 최고급 포도주가 담겼던 병 등등.... 같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저마다의 모습에 맞추어 생명 하나씩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하얀 도자기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됐다.
도자기의 몸에 담긴 흙에서 새싹이 돋아나오며, 표정도 조금씩 변해 간다. 노오란 꽃을 피울 때쯤엔 기대감도 느껴진다. 그 다음엔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게 된 도자기. 이젠 제범 수다까지 떤다.
“내가 이 몸에 온갖 꽃을 다 담아봤지만, 열매를 담기는 또 처음이잖아.”
도자기는 이제 베란다의 완벽한 한 식구가 되었다. 마지막 장엔 할머니가 또 주워오신 듯한 어항이 잔뜩 속상한 표정으로 놓여있다. 모든 이해를 담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도자기.
뒷표지에 “당신의 쓸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도자기의 쓸모는 완전히 끝난 듯했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을 때, 버린 주인도 도자기 자신도 그걸 인정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길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 주었다.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사회에 속한 삶을 살아가려는 평범한 모든 이에게 쓸모는 생명처럼 소중하다. 나는 도자기이기도 하고 할머니이기도 하다. 현직에 있는 지금은 할머니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너의 쓸모’를 알려주는 데도 진통이 필요한 시간들. 이 시간들을 잘 보내고 나면 ‘나의 쓸모’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오겠지. 참 예쁘고 정겨운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