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부르는 바람의 노래
홍세기 지음 / 템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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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기 선생님을 알게된 건 홍이삭 가수 때문이었다. 58호의 무대를 본 후 그를 응원하고 있던 차에 페북에서 좋은교사 소속 선생님이 그 썸네일과 함께 "홍세기 선생님의 아들이 이런 청년으로 자랐구나!" 라고 올리신 걸 봤다. 검색해봤더니 그 아버님은 나와 공통분모가 아주 조금 (출신학교라든가 소속단체 정도)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보다가 꽤 많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얼마 전 나온 걸 알고 당장 읽어보았다. 그간 단편적으로 보았던 정보들이 서사로 엮여있었다. 흥미롭기도 했고, 감동도 받았다. 보기 전부터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객관적으로 좋은 책일지는....? 읽고나니 이 책은 그냥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라는 진입장벽이 있긴 하지만, 그 색채가 아주 찐하진 않고 저자의 필력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그의 태도가 난 좋았다. 마지못해 가는 길일지라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성실하고 사려깊게 임하는 그 태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며 감정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태도.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난 이런 사람을 좋아하기에 이 책이 크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리뷰의 흐름이 중구난방일 것 같지만 홍이삭 가수에게 빠진 얘기부터 해보겠다. 싱어게인 1,2는 좀 늦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시즌3은 58호의 독무대를 보자마자 바로 응원을 시작했다. 잠이 바로 오지 않을 땐 그의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게 한동안 일상이 됐다. 파도파도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참 무던하고 꾸준하게 열심히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라디오방송의 게스트 출연까지 끌어다 주었는데, 벤지가 영어로 진행하는 방송이었고 둘은 주로 시덥잖은 수다를 떨었다. 거기서 이런저런 tmi들을 알게 되었다. 교육자 가족이라는 것, 그중 부모님은 아프리카에서 교육을 하고 계신다는 것.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파푸아뉴기니에서 몇년 살았다는 것. 그걸 듣고 '아 선교사이신가보다' 했는데, 초등교사 출신인 것은 앞에서 말했듯 '홍세기' 라는 성함을 안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인 강학봉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홍이삭은 부부교사의 아들이었던 것. 참 남일 같지가 않았다.ㅎㅎㅎ

그의 모든 앨범을 멜론에서 다운받고 출근길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은 'Lean on me'와 '하나님의 세계' 'Give Thanks' 등이 함께 들어있는 ccm 영상이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예쁜 청년이 또있나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본 가장 오래된 영상은 10년이 넘은 영상이었는데, 거기엔 지금과 다른 모습의 홍이삭이 있었다. 부정교합 수술을 받기 전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놀랐다. 밥을 먹기도 호흡 때문에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 턱의 틀어짐이 매우 심했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그는 슈스케에 나가고 싶다고 말할 때는 천진난만했고, 수술에 대해서 말하며 부모님을 걱정할 때는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어린시절과 학창기를 부모님 사역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신체적으로도 저런 핸디캡을 가졌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어떻게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난 그게 충격이었다. 내 주변에 저런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건 홍이삭씨의 타고난 인품이기도 하겠지만 홍세기 선생님의 사역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납득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더 어른이 된 지금은 서로 응원하고 있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닌 바, 이 책을 읽어보고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도 자식한테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부자는 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홍세기 선생님 부부의 사역은 주로 교육사역이었다. 처음엔 선교사 자녀들을 주로 가르쳤다. 지금 계신 우간다의 쿠미대학으로 가게 된 것도 교육사역의 연장선일 것이다. 교대를 졸업하시고도 더 공부를 하시긴 했지만, 어쨌든 초등교사 출신이 대학의 총장 자리를 맡으신 건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이 일에 대하여 선생님은 '구레네 시몬'에 자신을 비유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러 골고다 언덕으로 갈때, 병사들은 일정구간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홍선생님은 이와 같이 자신이 '구레네 시몬' 임을 자처했다. 그건 본인이 감히 '십자가를 지겠다' 라고 말할 주제가 못된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그냥 나밖에 없다니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하기는 하지만 어서 적임자가 나타나 그 짐을 벗었으면 좋겠다는 정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그는 일을 꽤 잘해냈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 세상에는 주로 빈수레만 요란한 인간들이 앞에 나서서 설치면서 일을 그르친다.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 그런 것들이 설치는 걸 막으려면 찐인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데 찐들은 또 나서는 걸 싫어해요... 가끔은 무거운 어깨를 감수하고 일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찐이면서 적당히 앞에 나서줄 수도 있는 분들은 흔하지 않기에 난 그분들에게 늘 고마워한다.

쿠미대학교는 한국선교사가 설립한 학교지만 홍선생님이 임무를 시작할 때의 상태는 심각했다. 재정적으로도 악화되어 교직원들의 임금도 주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며, 교정은 방치되어 살풍경했고 수업 기자재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의미있는 교육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막막함이 전해지며 나라면 그냥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기도가 너무나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는 코뚜레 꿰인 황소처럼 묵묵히 일했고, 하나님은 수레의 바퀴를 서서히 굴려 주셨다. 돌아보면 기적인 것 같은 변화들은 조금씩, 또는 물밀듯이 일어났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는 꽤나 탄탄한 학교로 변모해갔다. 외관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하지만 진짜로 힘든 일은 이런 눈에 보이는 일들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 오만 정이 떨어지고 더 이상 일할 동력을 잃게 된다.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인내심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저자도 물론 이런 때의 마음 상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랑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점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저자의 태도에서 인상적인 점은 또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부족의 문화를 통합하고 희석하려는 시도보다 있는 그대로 장려하고 함께 즐기는 모습,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피부색이라는 감옥에 갇혔던 그들의 잠재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필요에 함께 하려는 태도였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자신의 태도조차도 주제넘은 것이 아닌지 경계한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조차도 그의 조심스러운 심정을 나타낸다.
“길지 않은 6년간의 우간다 쿠미대학교 생활을 글로 정리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었다. 어떻게 보면 이 경험으로 인해서 나는 우간다 사람들의 인식 깊은 곳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쉽게 생각한 ‘이들과 함께 살기’에 대한 뼈저린 통한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타 문화권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가슴 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저 이물질 같은 내가 저들 속에 들어가 주제넘게 여러 고민을 해댄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254쪽)

책날개에 제목에 대한 저자의 말이 나온다. 바람의 노래. 저자는 교육을 바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육이 당장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보다 사람들과 사회에 바람처럼 부드럽게 인격적으로 다가가 변화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어떤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자연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활동이 교육이다.”
저자의 비유대로라면, 우간다의 교육 형편은 아직 열악하지만 바람이 불 공간이 충분하다. 아직은 소수에게만 주어진 기회, 신분 상승을 꾀하는 기회로 우리나라의 수십년 전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불어온 바람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반면 과거와 달리 이제 거의 충족된 우리나라 교육에는 바람이 지나다닐 자리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이 리뷰에 우리 교육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고 답답하여 그만하겠지만, 누군가와 이 책을 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답답한 속을 터놓고 싶은 마음도 든다.

홍이삭 씨가 결승전에서 ‘바람의 노래’를 부르기 전, 아버지와 상의 끝에 정한 노래라고 했는데, 그날 매우 좋지 않았던 목상태로 부르기엔 살짝 힘들었던 부분이 있어서 나는 같이 보던 딸한테 이렇게 한탄했었다.
“아이고, 아빠 말은 들으면 안돼~~~~”
웃자고 한 소리였다.ㅎㅎㅎ ‘바람의 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니 그 무대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겸손한 저자는 이 가사의 마지막 구절은 그저 추구하는 바일 뿐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나는 더하다.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할까... 하지만 그의 사역에 동행하신 하나님은 연약한 사랑들이 모여 꼭 필요한 일에 쓰이고 길을 내는 광경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제 곧 소원대로 퇴직하실 선생님 부부의 건강과 새로운 길을 응원한다. 더불어 대안학교에서 일하는 든든한 따님 하늘 씨와 내가 평생 처음으로 팬까페 가입한 홍이삭 가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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