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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들어줘 닥터 별냥 1 ㅣ 고민을 들어줘 닥터 별냥 1
이지음 지음, 문채빈 그림 / 꿈터 / 2023년 7월
평점 :
<강남사장님> 작가님의 세 번째 책이다. 강남사장님도 고양이였고 이번 닥터 별냥도 역시 고양이다. 같은 고양이라도 캐릭터는 다르다. 강남사장님이 산전수전 다 겪은 입체적인 캐릭터였다면 이번 닥터별냥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고양이의 전형적인 캐릭터면서 새침함과 쿨함보다는 따뜻함이 더 많다는 느낌인데, 이 책이 1권이니 계속 읽다보면 드러나겠지.
판타지로 들어가는 마법의 통로, 꼭 필요한 아이들 눈에만 띄는 그 통로, 그곳에 들어간 아이들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구조라도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르게 느껴지니 이야기는 무한히 창조될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그곳은 닥터 별냥과 뇽뇽 간호사가 있는 ‘별난 보건실’이다. 보건실 하면 생각나는 곳? 배경은 학교다. 판타지의 통로를 발견하는 아이들은 ‘학교가 가기 싫은’ 아이들이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마음이 상하면 어쩌나 해서.... 작가님에게도 학교를 악마화 하는 시각이 있으신가... 학교를 교도소에, 교사를 간수에 비유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조건 불행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인정받고, 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균형잡힌 식단으로 밥을 먹고, 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마음껏 친구들과 활동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공교육의 숨통을 끊어놓으면 가장 불쌍해지는 존재들이 누구인지 알아요? 공교육을 깔아뭉개는 것으로 자신의 지적 우월을 과시하려는 인간들. 그러면서 자신들이 꽤나 의식있는 줄 착각하는 인간들. 이제 교육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속이 시원하십니까? 이걸 일으키는데 오랜 진통이 있을텐데 당신들은 발 쏙 빼고 모른척 하겠죠? 그래도 상관없는데 제발 입방정은 떨지 말아요. 고생을 해도 우리가 할거니까 나불대지라도 말라고!
(죄송합니다. 요즘 속상해서...ㅠ) 다행히도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작가님은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봐주었다. 근원이 녹으면 현상도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 당장 파르르하는 것보다 침착하고 여유있게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 아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 번째 봄이 편에서 닥터 별냥은 이렇게 말한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아주 커져서 학교 가는 게 싫어지기까지 하면 ‘더 잘하고 싶어 병’에 걸린 거야. 그런데 이건 착한 욕심이라 누구나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병이지. 한번 이 병을 앓을 때마다 어린이는 쑥쑥 자란단다.”
1학년 봄이는 중간놀이 시간에 운동화 끈을 못 묶어서 쩔쩔맨다. 선생님한테 묶어달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스스로! 잘해요!” 라는 구호를 강조하시다 마지막에 묶어주신다. 내일부터는 끈 없는 신발 신고 오라고 말씀하시면서. 하지만 봄이는 끈 있는 운동화가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하기 싫다. 그렇지만 끈 묶는 건 맘대로 안되고. 그 욕심의 간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별난 보건실’에 다녀온 봄이는 이렇게 달라졌다.
- 주문을 외우고 나니 조급하던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봄이는 한 번만 더 해보고, 안되면 내일부터 끈 없는 신발을 신고 오기로 했어요. 집에서 좀더 연습하고, 나중에 끈 있는 운동화를 신어도 괜찮으니까요.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38~39쪽)
얼마나 상식적인가? 작가님 감사합니다.^^;;;
두 번째 준서 편이 가장 긴장되었다. 제목이 [가만히가 너무 힘들어요] 딱 그 간수 얘기를 하려는 건가 싶어서... 아니, 일단 착석은 해야 수업이 되지 그걸 부정하면 어쩌라고?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별난 보건실에는 마음이 들리는 스피커가 있는데 준서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자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은 학교에 가기 싫은 게 아니라 노는 것도, 가만히 있는 것도 둘 다 잘하는 아이가 되고 싶어요.”
닥터 별냥의 치료는 놀아주는 것이었다. 아주 땀이 한바가지 나올 정도로. 준서가 헉헉대며 그만 놀자고 할 때까지. 처방전에 적어준 마법의 주문은 “노는 시간을 만들어라.”였다.
노는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이걸 다 채워줄 수는 없다. 우리 어릴 때는 학교 끝나고 아이들과 누구 집엔가 모여 숙제를 해치운 후에 우르르 나가서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뛰어놀았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 얘기를 하면 뭐하겠냐만, 아이들의 놀이는 학교와 부모, 사회가 모두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몸으로 놀다보면 조금씩 다치는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에 너무 민감하면 놀이를 안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놀이 시간에 줄넘기하다 혼자 넘어져 다친 부모가 그 담임한테 가한 모욕과 긴 시간동안의 마음고생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니 대체 원하는 게 뭔가? 놀리지 말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학교에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요구하면 안 된다.
세 번째 담희 편의 제목은 ‘울보는 싫어요’이다. 닥터 별냥은 이런 말을 해준다.
“많이 울어본 아이는 우는 아이 옆에 있어 주라고 눈물샘이 깊은 거였어. 담희는 울기의 달인이었던 거야. 함께 울어주는 아이는 울기의 달인이거든.”
처방전에 적힌 마법의 주문은 이렇다.
“울어도 괜찮아.
함께 울어 주는 건 더더욱 괜찮아.”
앞으로도 담희는 계속 울보일 수 있겠지만, 마음속에 두려움은 사라질 것 같다.
이렇게 세 아이의 이야기로 1권이 구성되었다. 계속 나올 모양인데 2권부터는 또 어떤 고민을 가진 아이들이 나올까? 아이들의 고민이라도 그 종류와 깊이가 다양하다. 그것들을 세심하게, 재미나게, 울다가 웃을 수 있게 그려내 주시면 좋겠다. 힐링을 표방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시리즈가 되길 바라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