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우와 나무군 ㅣ 봄볕어린이문학 24
최소희 지음, 김진미 그림 / 봄볕 / 2022년 8월
평점 :
-스포 많음 주의-
제목이 이상하네? 나무‘꾼’이 맞는데? 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답은 금방 나왔다. 나무군은 이름이었다. 무군이. 이제 막 5학년이 된 아이. 단짝 친구를 갖고 싶은 아이.
그렇더라도 제목이 딱 옛이야기를 연상시키잖아? 한글자만 고치면 선녀와 나무꾼인데, 아무 상관이 없을까? 있다. 그렇도 아주 많~이. 이 책은 말하자면 그 옛이야기의 패러디라 할 수 있다. 패러디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가히 옛이야기 재화의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라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짠대도 이런 생각은 할 수 없겠다.
배경은 옛날옛적이 아닌 현대, 동네와 학교다. 인물은 옛이야기 인물에 대입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기도 하다. 사건은 매우 다르다. 그 의미만 살짝 통한다고 할 수 있다.
5학년이 된 첫날, 기대하는 마음으로 등교하던 무군이는 쫓기는 고라니를 만나 건물 틈에 숨겨주고, 쫒아온 사냥꾼에게 거짓방향을 알려준다. 은혜를 갚겠다며 소원을 말하라는 고라니에게 무군이는 단짝 친구를 갖고 싶다고 한다. 고라니는 ‘오늘 전학 오는 아이의 점퍼를 숨겨라’라고 방법을 지시한다. 그건 도둑질이 아닐까? 미심쩍어하는 무군이에게 고라니는 도둑질이 아니고 장난이다, 늦게 돌려줄수록 더 친한 단짝이 된다며 옛이야기의 ‘날개옷 사건’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그렇다면 전학온 아이가 선녀겠구나! 응? 그런데 꼭 그런거 같지는 않네.....? 일찍 등교한 무군이는 자기보다 더 일찍 온 한 명의 아이가 전학생(진구) 인걸 알게된다. 화장실 간 사이에 떨리는 손으로 점퍼를 자기 가방에 쑤셔 넣었는데... 돌아온 진구는 아무리봐도 선녀 포지션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점퍼 어디갔냐고 소리지르는 폼이 보통이 아니야. 게다가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 수군거리더니 일제히 그녀석과 맞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굉장히 소문이 안좋은 아이인 것이다. 강전이구나.... 하고 바로 느낌이 왔다. 아이들은 무군이가 숨겼다고 말해도 믿지 않고 진구만 몰아붙이다가 선생님 안계신 틈에 교실에 딸린 학습준비실에 가둬 버렸다.
무군이는 진구의 결백을 증명하려 점퍼를 꺼내려 했는데... 가방 속의 점퍼가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한시가 급한 무군이는 고라니를 찾아 뛰쳐나왔다. 소원의 효력이 없어져도 괜찮다고 사정하자 고라니는 못마땅해하면서도 점퍼를 사물함에 옮겨놨다고 알려준다. 무군이는 달려가 점퍼를 꺼내고, 갇혀있던 진구에게 울며 사과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아, 이 마음에 진구가 감동해서 둘이 단짝친구가 되나보다. 그럼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네. 했는데.... 그렇게 뻔해서 좋은 책이 될 리가! 무군이의 폭풍 사과에도 진구는 별 반응이 없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가 진구와 선우의 사연이 펼쳐진다. 바로 그 강전의 사연 말이다.
날개옷(점퍼)은 진구가 잃어버렸지만 선녀에 대입되는 인물은 진구가 아니라 선우였다. 대입이 너무 어긋나잖아? 그건 아니었다. 점퍼는 원래 선우 것이었다. 진구가 잠시 빌린(이라고 쓰고 뺏은) 점퍼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무꾼1은 무군이, 나무꾼2는 진구라고 할 수 있겠다. 나무꾼 1,2의 차이점에서 이 책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진구는 선우를 그렇게 괴롭힐 마음은 없었고 장난이었는데 왜 선우가 그토록 상처받고 고통 속에 있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과를 해도 시늉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강전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일을 당해 보니 정말로 옛날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선우가 용서하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불쑥 찾아온 진구 앞에서 선우는 겁먹은 초식동물 같았고 주변 친구들의 비난에 진구는 돌아서야 했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총을 쏘려는 사냥꾼을 만났고, 도망가다가 무군이를 만나 아침의 그 자리에 숨었다.
그런데 고라니가 두 번째 나타났다! 고라니는 여전히 쫓기고 있었고, 이번엔 숨지 못해서 사냥꾼의 총을 맞고 말았다. 그런데 그 총이.... 살상무기가 아니었다는 반전! 여기에서 작가는 ‘꼬리표’라는 의미있는 소재를 도입했다. ‘꼬리표를 붙인다’는 것은 좋은 의미는 아니다. 남의 험담을 하며 억울하게 붙이는 경우도 있으니까.(우리나라엔 더욱 많은 듯ㅠㅠ) 하지만 붙을 꼬리표는 붙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떼려면 그만큼의 통렬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노력으로 그 꼬리표를 뗀 사람에 한해서는 사회가 그를 용납해 주어야 하고 다시 꼬리표를 붙이면 안 된다. 그게 잘 안되고 뒤죽박죽 되어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엉망진창인 게 아닌가. 결국 진구도 저항을 포기하고 꼬리표를 붙였다. 당분간은 괴롭겠지만 진구는 그걸 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냥꾼도 이렇게 말한다.
“꼬리표를 달면 부끄러워야 정상이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 부끄러움을 느낀다니 양심이 아직 살아 있구나. 양심이 살아 있으면 공식이 달라진단다. 고라니처럼 오래 걸리진 않겠어. 이제 네 꼬리표는 너 하기 나름이다.” (144쪽)
사냥꾼의 정체 또한 반전!
“나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서도 괴로웠어. 내 인생의 소중한 한때가 다른 사람 때문에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잖아.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억울해서 너무 고통스러웠어.” (149쪽)
“그래서 내가 먼저 나를 일으키자고 생각했어. 낡고 해진 날개옷을 부여잡고 울고만 있기에는 나한테 너무 미안했어.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152쪽)
이정도면 스포가 너무 심했다....^^;;; 이 책은 지금보다 더 많이 팔려야 한다. TV에 나오는 많은 어른들이 읽어야 되기에....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안읽어도 괜찮은 사람들만 읽고 반성하겠지....ㅠ 그들이 사과할 줄 모른다면 많은 선녀들이 힘을 내어 일어나는 수밖에. 그리고 주변에선 그들을 응원하고 힘을 모으는 수밖에.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니므로 사회는 부단히 점검하고 살피고 고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
아이들 모두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심호흡을 좀 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기만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육성이 꽤 많이 들어간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 육성이 요즘 학교에서 꼭 필요했던 말인데다가 옛이야기 패러디 속에 들어있어 그렇게 교훈동화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이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들어 읽었는데, 최근의 발견 중에서 손꼽을 월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