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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 2023 볼로냐 아동 도서전 Beauty and the World 선정작
빅터 D.O. 산토스 지음, 안나 포를라티 그림, 김서정 옮김 / 한빛에듀 / 2023년 4월
평점 :
쏟아져나오는 그림책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만분의 일도 못 읽었을테지만 어쩌다 잡는 그림책들마다 오호... 하는 감탄을 작게 내뱉곤 한다. 읽고나서 검색해보면 잘 팔리는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책은 올해(2023) 나온 책인데 그림책 순위에 들어있는 걸 보니 잘 팔리는 책인가보다. 묻혀있는 그림책은 그것대로, 이렇게 입소문을 탄 책들은 그것대로 좋은 점들이 있다. 특히 이 책의 작가는 이름만으로도 독자를 몰고 올 작가는 아닌 듯한데, 내용에 의미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서 팔리는 게 아닐까. 2023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beauty and the world 선정작이었다거나 띠지에 김이나 작사가가 추천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약간의 영향만 주었겠지 라고 짐작해본다.^^
제목이 질문이나 마찬가지고(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본문은 스무고개를 하듯 단서 하나씩을 던져준다.
-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장난감보다, 강아지보다
여러분이 아는 그 누구보다 오래 전부터요.
첫장부터 맞추는 눈치빠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중반쯤 가서 알아챌 듯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확신하게 됐다.
- 나는 아기 고양이처럼 부드러울 수도 있고,
겨울 칼바람처럼 날카로울 수도 있어요.
나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답니다.
정답은 '언어'이다. 이 책의 그림작가에게도 감탄했다. 이분도 내가 잘 모르는 이름인데, 비유와 상징을 그림에 잘 담아내거나 풀어내어 작가 이름을 한 번 더 보게 만들었다. 한 장면만 예를 든다면,
- 여러분은 아기였을 때 나를 잘 몰랐어요.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나를 서서히 잊어버리게 될 거예요.
이 본문의 그림에 사람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아가들은 실꾸러미를 들고만 있고, 크면서 서서히 짜기 시작해 어른이 되면 완성해 입는다. 그 스웨터는 흰 바탕에 검정무늬... 그런데 노인이 되면서 그 실들은 서서히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한 장면에 담았다. 작가들의 표현력은 참 대단하다.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렇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해답만 찾고 이 책은 끝나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언어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어떤 나는 쏜살같이 사라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너무 많이 사라졌을 거예요.
4학년 1학기 국어 [9.자랑스러운 한글] 단원에서는 도입 차시에 '문자가 필요한 이유'를 알아보는데, 이때 사라져가는 세계의 문자들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한다. 아, 그때 이 책을 알았으면 읽어줬을텐데! 보여줬던 동영상보다 이 책이 훨씬 낫다. 의미도 풍부하며 예술적이고 메시지도 분명하다.
- 내가 하나 사라질 때마다 문화 하나가 사라져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독특한 눈 하나가요.
사라져요. 영원히.....
이 대목에서 작가의 안타까움을 볼 수 있다.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런 면에서도 외국어 실력을 갖추는게 좋은데, 나는 학창시절에 너무 게을렀지... 그게 많이 아쉽다. 이 책에도 그걸 '세상으로 가는 문'이라고 표현했던데 말이다.
중반쯤이면 다 알게되지만 그래도 답은 마지막장에 나온다. "나는, 언어랍니다." 하고. 펼친화면 가득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과 그 언어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보니 오, 작가가 언어학 박사시라네? 어쩐지.... 오래 기억하고 아이들에게도 읽어줄 책 한 권을 만나서 보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