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의사 당통 저학년 씨알문고 7
김기정 지음, 윤예지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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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작가님의 저학년 동화가 북멘토 씨알문고에서 나온 것을 보고 서평신청을 했다. 일단 김기정 작가님 책은 재밌잖아. 아이들한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의 맛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화들이라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에 작가님이 창조하신 캐릭터는 토끼. 직업은 의사. 이름은 당통. 제목에 표방한 캐릭터는 기상천외한! 이게 의사랑 어울리는 말인가? 내용을 읽어보자.^^

 

당통은 이제 막 의사가 된 젊은 새내기다. 돈이 없어 허름한 건물 옥탑에 병원을 열었지만 찾아오는 환자가 없다. 하지만 실망과 좌절은 당통과 어울리지 않아! 좌충우돌하지만 하나둘씩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작은 이야기 4편으로 되어있는데 그때마다 다른 환자들이 나온다.

 

[악어의 오리발]에서 악어는 환자라기보다는.... 오리 알들을 꿀꺽한 도둑? 그의 뱃속에서 오리들을 구해주는 과정은 치료가 아니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어쨌든 기상천외한당통의 첫 번째 활약은 성공.

 

[호랑 씨 배 속 살림]의 환자는 호랑이. 간호사도 도망가버린 상황이지만 의사가 환자를 가릴 수는 없는 일.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호랑이 배 속의 상황은.... 그리고 당통의 수술. 그 결과는?

 

[코끼리 똥구멍] 저학년 아이들에게 똥 얘기는 직방이다. 그러고보니 표지에 아기코끼리의 똥꼬가! 돌덩이가 되어버린 코끼리의 변비 치료를 당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쏟아지는 똥 폭포는 치료의 성공을 알리는데 독자 어린이들의 반응은?^^

 

[여왕개미를 구하라!]에서의 환자는 여왕개미. 동물나라 의사도 힘들겠어. 호랑이나 코끼리를 치료하다가 이번엔 개미를 치료해야 한다니. 이번 치료는 해독이었는데 당통은 결국은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

 

젊고 초보인데다 엉뚱한 캐릭터의 당통이지만 직업적 전문성을 보이며 일에 몰두할 때는 멋있기만 하다. ‘작가의 말에 보니 김기정 작가님은 어릴 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에 대통령이라고 대답해서 어른들을 흐뭇하게 했지만, 스무살이 되어서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로 대답을 바꾸어 부모님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평생 그 길을 가고 계신데,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고뇌를 할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것 같다. 그리고 당통을 통해서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는 자세(그것이 어떤 일이든)를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그 일이 우리 사회에서 선호도 면에서 손꼽히는 의사라는 점에서 너무 선호되는 직업을 선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상관은 없다고 본다. 의사도 극한직업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어느 직업이나 멋지다. 그런데 읽고보니 조금 욕심은 생긴다. 다른 직업, 다른 동물의 캐릭터로 쭉 나오면 어떨까 하는?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김기정식 동화로 표현된 직업의 세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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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주머니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7
이경순 지음, 이지오 그림 / 마루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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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을 후루룩 넘겨보고는 좀 시시한 이야기가 아닌가 했다. 시시한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 긴장된 사건도 큰 갈등도 극복도 반전도 없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가끔은 사소한 이야기가 마음을 가득 채우는 때도 있는데 이 책에 그런 힘이 있었다. ...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세상이 행복해지는 조건이 있다면 나는 그 조건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귀찮은 게 딱 싫다. 주고 받는 것보다는 안주고 안받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관심은 고맙기보다는 불편할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참 간사해서, 귀찮아서 싫다면서도 외로운 것은 무섭다. 지금은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으니 배부른 소리를 하는거지 연결감이 전혀 없다면 쫄보인 나는 당장에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손내밀어 준다면 그건 거의 구원의 손길이겠지...

 

이 책의 1학년 금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아이다. 계단을 한참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집에 산다. 계단이 너무 길어 중간에 쉬어가라고 빨주노초파남보 의자가 놓인 동네다. 금이의 부러움 버튼이 두 개 있다. '특별한 날''초대장'이다. 금이에겐 좀처럼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이 책의 할머니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게 일단 매우 드문 일이다. 이렇게 단단한 마음 바탕을 가지고 기죽은 손녀딸의 마음을 북돋워주는 할머니가 계시다면.... 할머니는 세들어 살지만 옥상에 텃밭을 가꾸며 손녀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분이다.


오늘도 특별한 날은 아니었고 할머니와 금이는 또 힘겨운 계단을 오르는데 첫번째 의자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바로 제목의 꽃주머니였다. 향기롭고 아름다웠지만 주인이 찾을지 모르니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하는데 그 안에 든 쪽지가 보였다. 쪽지를 꺼내본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꽃주머니를 챙긴다. 무슨 내용이길래? 독자들은 궁금한데 책은 그냥 넘어간다. 물론 나중에 나온다. 맨 마지막에.

 

비가 오고, 할머니는 금이에게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한다. 옥상 텃밭에서 부추를 뜯어 부침개 반죽을 넉넉히 만들고 지글지글 부치기 시작한다. 아 부침개...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나도 부치고 싶어지는 광경이다. 그걸 금이에게 들려 이집저집 심부름을 보낸다. 요즘 이런거 받고 좋아할 사람이 있나...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의외로 이웃들은 반기며 고맙게 받는다. 주인집 아주머니, 옆집 아주머니와 언니는 기뻐하며 집에 있던 케이크, 머리핀 등으로 보답한다. 이제 뒷집이 남았는데 뒷집은 혼자 사시는 무뚝뚝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부침개를 드리러 갔다가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한가지만 말한다면 초대장’. 이렇게 해서 금이에게 오늘은 완벽히 특별한 날이 되었다.

 

쓰고 보니 진짜 별일은 없네. 흔한 부침개를 매개로 이웃들과의 교류가 소박하게 있었을 뿐이다. 귀엽고 순수한 금이의 시각으로 그것을 환하고 예쁘게 보여주었을 뿐. 그러나 가만 보면 도입과 결말에 그 쪽지가 있다. 모르는 이웃이라도 행운을 전해주고픈 그 따뜻한 쪽지.

 

동화니까 그렇지... 라고 하려는데, 작가님이 겪은 일이 씨앗이 되어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냥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도 뉴스를 보기 무서운 세상이라 해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사람들도 어느 구석엔가 존재하긴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난 하루는 행운이겠지.

 

계단으로 오르는 가파른 동네, 집집마다 대문이 있고, 그 대문 안에 마당이 있고 옥상도 있는 동네. 어렸을 때 골목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동네를 예쁜 삽화로 접하니 추억에 잠기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평생 아파트에서 살겠다!고 결심했으면서 말이다.^^;;;

 

세상의 문제는 환경문제부터 시작해서 소통과 연대의 문제도 게으름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 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이기심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게으름. 한마디로 귀차니즘? 편하려고 해서 이렇게 막다른 곳으로 왔다면 불편함을 좀 감수해야 반대쪽으로 갈 수 있을텐데. 이웃의 문을 두드릴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생각만 이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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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와 나무군 봄볕어린이문학 24
최소희 지음, 김진미 그림 / 봄볕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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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많음 주의-

제목이 이상하네? 나무‘꾼’이 맞는데? 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답은 금방 나왔다. 나무군은 이름이었다. 무군이. 이제 막 5학년이 된 아이. 단짝 친구를 갖고 싶은 아이.

그렇더라도 제목이 딱 옛이야기를 연상시키잖아? 한글자만 고치면 선녀와 나무꾼인데, 아무 상관이 없을까? 있다. 그렇도 아주 많~이. 이 책은 말하자면 그 옛이야기의 패러디라 할 수 있다. 패러디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가히 옛이야기 재화의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라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짠대도 이런 생각은 할 수 없겠다.

배경은 옛날옛적이 아닌 현대, 동네와 학교다. 인물은 옛이야기 인물에 대입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기도 하다. 사건은 매우 다르다. 그 의미만 살짝 통한다고 할 수 있다.

5학년이 된 첫날, 기대하는 마음으로 등교하던 무군이는 쫓기는 고라니를 만나 건물 틈에 숨겨주고, 쫒아온 사냥꾼에게 거짓방향을 알려준다. 은혜를 갚겠다며 소원을 말하라는 고라니에게 무군이는 단짝 친구를 갖고 싶다고 한다. 고라니는 ‘오늘 전학 오는 아이의 점퍼를 숨겨라’라고 방법을 지시한다. 그건 도둑질이 아닐까? 미심쩍어하는 무군이에게 고라니는 도둑질이 아니고 장난이다, 늦게 돌려줄수록 더 친한 단짝이 된다며 옛이야기의 ‘날개옷 사건’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그렇다면 전학온 아이가 선녀겠구나! 응? 그런데 꼭 그런거 같지는 않네.....? 일찍 등교한 무군이는 자기보다 더 일찍 온 한 명의 아이가 전학생(진구) 인걸 알게된다. 화장실 간 사이에 떨리는 손으로 점퍼를 자기 가방에 쑤셔 넣었는데... 돌아온 진구는 아무리봐도 선녀 포지션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점퍼 어디갔냐고 소리지르는 폼이 보통이 아니야. 게다가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 수군거리더니 일제히 그녀석과 맞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굉장히 소문이 안좋은 아이인 것이다. 강전이구나.... 하고 바로 느낌이 왔다. 아이들은 무군이가 숨겼다고 말해도 믿지 않고 진구만 몰아붙이다가 선생님 안계신 틈에 교실에 딸린 학습준비실에 가둬 버렸다.

무군이는 진구의 결백을 증명하려 점퍼를 꺼내려 했는데... 가방 속의 점퍼가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한시가 급한 무군이는 고라니를 찾아 뛰쳐나왔다. 소원의 효력이 없어져도 괜찮다고 사정하자 고라니는 못마땅해하면서도 점퍼를 사물함에 옮겨놨다고 알려준다. 무군이는 달려가 점퍼를 꺼내고, 갇혀있던 진구에게 울며 사과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아, 이 마음에 진구가 감동해서 둘이 단짝친구가 되나보다. 그럼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네. 했는데.... 그렇게 뻔해서 좋은 책이 될 리가! 무군이의 폭풍 사과에도 진구는 별 반응이 없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가 진구와 선우의 사연이 펼쳐진다. 바로 그 강전의 사연 말이다.

날개옷(점퍼)은 진구가 잃어버렸지만 선녀에 대입되는 인물은 진구가 아니라 선우였다. 대입이 너무 어긋나잖아? 그건 아니었다. 점퍼는 원래 선우 것이었다. 진구가 잠시 빌린(이라고 쓰고 뺏은) 점퍼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무꾼1은 무군이, 나무꾼2는 진구라고 할 수 있겠다. 나무꾼 1,2의 차이점에서 이 책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진구는 선우를 그렇게 괴롭힐 마음은 없었고 장난이었는데 왜 선우가 그토록 상처받고 고통 속에 있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과를 해도 시늉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강전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일을 당해 보니 정말로 옛날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선우가 용서하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불쑥 찾아온 진구 앞에서 선우는 겁먹은 초식동물 같았고 주변 친구들의 비난에 진구는 돌아서야 했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총을 쏘려는 사냥꾼을 만났고, 도망가다가 무군이를 만나 아침의 그 자리에 숨었다.

그런데 고라니가 두 번째 나타났다! 고라니는 여전히 쫓기고 있었고, 이번엔 숨지 못해서 사냥꾼의 총을 맞고 말았다. 그런데 그 총이.... 살상무기가 아니었다는 반전! 여기에서 작가는 ‘꼬리표’라는 의미있는 소재를 도입했다. ‘꼬리표를 붙인다’는 것은 좋은 의미는 아니다. 남의 험담을 하며 억울하게 붙이는 경우도 있으니까.(우리나라엔 더욱 많은 듯ㅠㅠ) 하지만 붙을 꼬리표는 붙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떼려면 그만큼의 통렬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노력으로 그 꼬리표를 뗀 사람에 한해서는 사회가 그를 용납해 주어야 하고 다시 꼬리표를 붙이면 안 된다. 그게 잘 안되고 뒤죽박죽 되어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엉망진창인 게 아닌가. 결국 진구도 저항을 포기하고 꼬리표를 붙였다. 당분간은 괴롭겠지만 진구는 그걸 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냥꾼도 이렇게 말한다.
“꼬리표를 달면 부끄러워야 정상이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 부끄러움을 느낀다니 양심이 아직 살아 있구나. 양심이 살아 있으면 공식이 달라진단다. 고라니처럼 오래 걸리진 않겠어. 이제 네 꼬리표는 너 하기 나름이다.” (144쪽)

사냥꾼의 정체 또한 반전!
“나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서도 괴로웠어. 내 인생의 소중한 한때가 다른 사람 때문에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잖아.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억울해서 너무 고통스러웠어.” (149쪽)
“그래서 내가 먼저 나를 일으키자고 생각했어. 낡고 해진 날개옷을 부여잡고 울고만 있기에는 나한테 너무 미안했어.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152쪽)

이정도면 스포가 너무 심했다....^^;;; 이 책은 지금보다 더 많이 팔려야 한다. TV에 나오는 많은 어른들이 읽어야 되기에....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안읽어도 괜찮은 사람들만 읽고 반성하겠지....ㅠ 그들이 사과할 줄 모른다면 많은 선녀들이 힘을 내어 일어나는 수밖에. 그리고 주변에선 그들을 응원하고 힘을 모으는 수밖에.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니므로 사회는 부단히 점검하고 살피고 고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

아이들 모두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심호흡을 좀 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기만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육성이 꽤 많이 들어간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 육성이 요즘 학교에서 꼭 필요했던 말인데다가 옛이야기 패러디 속에 들어있어 그렇게 교훈동화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이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들어 읽었는데, 최근의 발견 중에서 손꼽을 월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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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 2023 볼로냐 아동 도서전 Beauty and the World 선정작
빅터 D.O. 산토스 지음, 안나 포를라티 그림, 김서정 옮김 / 한빛에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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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나오는 그림책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만분의 일도 못 읽었을테지만 어쩌다 잡는 그림책들마다 오호... 하는 감탄을 작게 내뱉곤 한다. 읽고나서 검색해보면 잘 팔리는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책은 올해(2023) 나온 책인데 그림책 순위에 들어있는 걸 보니 잘 팔리는 책인가보다. 묻혀있는 그림책은 그것대로, 이렇게 입소문을 탄 책들은 그것대로 좋은 점들이 있다. 특히 이 책의 작가는 이름만으로도 독자를 몰고 올 작가는 아닌 듯한데, 내용에 의미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서 팔리는 게 아닐까. 2023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beauty and the world 선정작이었다거나 띠지에 김이나 작사가가 추천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약간의 영향만 주었겠지 라고 짐작해본다.^^

제목이 질문이나 마찬가지고(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본문은 스무고개를 하듯 단서 하나씩을 던져준다.
-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장난감보다, 강아지보다
여러분이 아는 그 누구보다 오래 전부터요.

첫장부터 맞추는 눈치빠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중반쯤 가서 알아챌 듯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확신하게 됐다.
- 나는 아기 고양이처럼 부드러울 수도 있고,
겨울 칼바람처럼 날카로울 수도 있어요.
나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답니다.

정답은 '언어'이다. 이 책의 그림작가에게도 감탄했다. 이분도 내가 잘 모르는 이름인데, 비유와 상징을 그림에 잘 담아내거나 풀어내어 작가 이름을 한 번 더 보게 만들었다. 한 장면만 예를 든다면,
- 여러분은 아기였을 때 나를 잘 몰랐어요.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나를 서서히 잊어버리게 될 거예요.
이 본문의 그림에 사람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아가들은 실꾸러미를 들고만 있고, 크면서 서서히 짜기 시작해 어른이 되면 완성해 입는다. 그 스웨터는 흰 바탕에 검정무늬... 그런데 노인이 되면서 그 실들은 서서히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한 장면에 담았다. 작가들의 표현력은 참 대단하다.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렇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해답만 찾고 이 책은 끝나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언어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어떤 나는 쏜살같이 사라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너무 많이 사라졌을 거예요.

4학년 1학기 국어 [9.자랑스러운 한글] 단원에서는 도입 차시에 '문자가 필요한 이유'를 알아보는데, 이때 사라져가는 세계의 문자들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한다. 아, 그때 이 책을 알았으면 읽어줬을텐데! 보여줬던 동영상보다 이 책이 훨씬 낫다. 의미도 풍부하며 예술적이고 메시지도 분명하다.

- 내가 하나 사라질 때마다 문화 하나가 사라져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독특한 눈 하나가요.
사라져요. 영원히.....
이 대목에서 작가의 안타까움을 볼 수 있다.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런 면에서도 외국어 실력을 갖추는게 좋은데, 나는 학창시절에 너무 게을렀지... 그게 많이 아쉽다. 이 책에도 그걸 '세상으로 가는 문'이라고 표현했던데 말이다.

중반쯤이면 다 알게되지만 그래도 답은 마지막장에 나온다. "나는, 언어랍니다." 하고. 펼친화면 가득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과 그 언어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보니 오, 작가가 언어학 박사시라네? 어쩐지.... 오래 기억하고 아이들에게도 읽어줄 책 한 권을 만나서 보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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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기예르모 데쿠르헤즈 지음,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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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순례를 하다 만난 책이다. 그림책인데 아주 두꺼웠다. 책에는 쪽수가 안 나와서 100쪽 넘겠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책정보를 보니 184쪽... 본 중에 가장 쪽수 많은 그림책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일반 그림책들보다는 종이가 고급질이 아니고 표지도 양장이 아니었다. 소박하고 읽기 편해서 좋았다.

로렌조라는 소년이 시골로 이사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로렌조는 와이파이가 안될까봐 걱정하는 딱 요즘 아이다. 주변에 펼쳐진 풍경과 예쁘고 오래된 집에 별 감흥이 없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보니 웬 커다란 옛가구가 방을 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뚜껑 덮는 오래된 오르간이 생각나기도 하는 그 가구는 책상이었다. 엄마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는 글씨를 손으로 쓰거나 타자로 쳤기 때문에 여러가지 물건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서랍도 많이 필요했다고. 정말 호기심이 발동할 정도로 많은 서랍이 달린 큰 책상이었다. 서랍은 다 비어있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뭔가가 하나 나왔다. 두꺼운 노트였다. 로렌조는 창가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거기엔 그 주인이 만든 이야기들이... 종이를 잘라서 만든 그림들과 함께 가득 들어있었다.

이책은 그러니까 책 속에 또 한 권의 책이 들어있는 책이다. 로렌조의 현재와 그 책의 과거가 교차되며 나온다. 옛 노트의 이야기들은 의미를 알듯말듯하고, 로렌조는 한편씩 읽을 때마다 자기 식으로 해석한 그림을 자신의 노트에 그려나갔다. (그 그림은 이 책의 말미에 나온다) 옛 노트의 그림들은 다양한 색종이 조각들로 대부분 그려졌는데, 콜라주 느낌이 아주 생생해서, 인쇄한 건줄 알면서도 몇번씩이나 돋은 부분을 만져보게 된다.^^;;;

소년은 오래된 노트의 그림이야기들을 읽어나가며 다양한 동물들(토끼,여우,새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그게 모두 한 사람의 인생 서사인 것, 말하자면 실화인 것을 깨닫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 [청동 드래곤]은 장난치고 꾸중듣던 어린시절을, 두번째 [장화와 모자]는 수줍은 첫사랑의 청소년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세번째 [공장]에서는 주인공이 커다란 사고를 당하고 인생의 암흑기에 빠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날 로렌조는 엄마와 같이 양로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마지막 이야기 [꿈의 여행자]를 읽는다. 주인공은 성냥갑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작은 쥐로 표현되었다. 그의 막막함이 느껴진다. 쥐는 편지를 남겼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 둘은 만나게 된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로렌조는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가 이 양로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종이만 자르고 있어."
소년이 그 방의 문을 두드리고, 드디어 망망대해를 떠도는 성냥갑속의 쥐와 발견자는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로렌조가 그 노트를 내밀자 할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소년을 반긴다. 둘은 서로의 노트를 갖기로 한다. 소년이 재해석해 그린 그림을 보고 할아버지는 감동한다. 누군가가 나의 기록을 읽고 나의 삶을 이렇게 표현해주었다는 것. 휠체어에서 보낸 반평생이 조금은 자유를 얻은 기분 아니었을까. 노인의 노트 마지막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노인의 메시지를 완벽히 알진 못하겠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누가 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발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다시 깊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 그는
내 안에서 다시 솟아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노인은 소년에게 그 집의 다락방에 숨겨져있는 그림도구통을 알려준다. 감사선물일 수도, 응원선물일 수도 있겠다. 책의 마지막장에서 소년이 그 옛 책상에 앉아 그 옛 도구들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어 흐뭇했다. 행복한 일을 찾은 소년에게 이제 와이파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보인다. 소년은 '꿈의 여행자'가 되어있는 것이니.

처음 알게된 아르헨티나 작가의 그림책은 그 분량만큼이나 풍성했다. 서로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은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나의 서사를 깊이 읽어주고 공감과 응원을 보내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누구에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은 이렇게 말한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원제는 When you look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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