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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트 구름 너머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탁경은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10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청소년소설도 가끔씩 읽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대부분 장편을 읽었던 것 같다. 이 책도 장편인 줄 알고 들었다가 첫 편이자 표제작인 「오르트 구름 너머」가 금방 끝나버려서 당황했다.ㅎㅎ 예상과는 달랐지만 단편의 느낌도 괜찮았다. 이어지는 작품들도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뭐랄까.... 고민하고 애쓰는 청소년? 뭐, 아닌 청소년도 많을 것이다. 생각이란 걸 안 하는 청소년.... 하지만 그들이 부각되어 보여서 그렇지 설마 다들 그렇기야 할까. 이런 청소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오르트 구름 너머」는 SF지만 과학이나 미래에 중점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성격과 성향이 정반대인 쌍둥이 자매 소율과 지율. 둘은 다른 만큼 서로에게 애틋하기도 하다. 혈육이니 당연한 것도 있겠지만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는 아파서 돌아가셨고 아빠는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빴고. 독보적인 과학자인 아빠는 광속추진체 개발에 성공했고 오르트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그 프로젝트에 소율이 뛰어들었고 지율만 남는다. 지율은 나와 비슷하다. 모험이나 명예, 기록적인 일 등에는 관심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소박한 행복이 더 소중하다. 지율은 이 일로 소율과 다투다가 말한다.
“우주선에 타는 순간 우리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거야.”
결국 지율만 남기고 두 사람은 떠났다. 순조롭진 않았고 장치의 오류도 있었지만 결국 무사히 돌아오긴 했다. 다시 만난 그들은........
소율의 편지에서, 장치 오류를 느끼고 새까만 우주 공간에서 깨어났던 그때의 느낌을 상상해봤다. 나는 지금 나를 둘러싼 온갖 잡다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여기서 죽는 것과 거기서 죽는 것은 다를 바가 없고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그런데 엄청난 외로움과 막막함, 공포가 다가온다. “사랑은 그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주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내가 여기서 복작대며 낑낑대며 살아가는 의미는 사랑인 것일까. 언젠가는 상상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날 인생들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엄마는 그곳에」의 가은이는 엄마의 관리로 만들어진 엄청난 우등생이었지만 지금은 할머니 집에서 지낸다. ‘한 달 전 엄마는 그곳에 갔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게 맞다는 사실에 또 놀라고....
그 엄마는 나보다 훨씬 자식에게 헌신적이다. 나는 그래도 해줄 수 없는 일에는 선을 그었고, “나도 쉬어야 살지.” 이런 주의였는데 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백하고 그 댓가 또한 치러야 하지만, 적어도 자식을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겠지. 가은이는 엄마에게 짧은 편지를 쓴다. 자신을 만들어주던 엄마는 이제 곁에 없지만 이제 진정한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나는 이렇게 가은이를 응원하지만, 자식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하는 엄마들에게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불상사를 겪어야만 아이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슬픈가. 부모들의 ‘자식 만들기’는 좀 멈추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청소년들의 문제는 뜻밖에도 ‘간병’이었다. 아... 간병의 고단함과 참혹함을 이렇게 보여주다니. 나이 든 나도 아직 제대로는 겪어보지 못했다고 느끼는 그것.... 인간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 주고 떠나는 그 고통, 간병. 앞으로 갈수록 어렵고 힘들어질 이 문제가 청소년소설에 나올 줄은 몰랐다. 마음이 참 무겁다. 그래도 이야기는 너무 어둡지는 않게 끝난다.
「시드볼트」는 이 책의 단편 5편 중 두 번째 SF다. 위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 그 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치지는 않았다. 종자 금고라는 뜻의 시드볼트는 ‘만약을 위한 시설’이고 실무자들은 그 ‘만약’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일하고 있다. 전세사기를 당해 오갈 곳 없어진 현준 부자는 시드볼트 중 한 곳인 ‘고요’에서 일하는 삼촌의 도움으로 그곳에 일자리를 얻어 살고 있다. 그러다 현준은 중요한 씨앗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는데, 그 범인은 어처구니없게도..... 깽판을 친 존재는 누구든 그 깽값을 무는 게 당연하지만 아이보다 못한 어른은 왜 이렇게 많으며 왜 아이들의 인생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가. 현준이처럼 의연한 경우는 많지 않을 텐데. 또한 기후위기 앞에서 현실의 사람들이 시드볼트 같은 대비를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마 도미노의 한 조각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그 대비책이란 것 또한 종이장보다도 못하게 깔려버릴 것이란 예상을 한다.
“봄이 오면 섬진강 변에 꽃들이 가득 피어나길 현준은 간절히 바랐다.” (118쪽)
나도 그렇게 바란다. 돌아오는 봄엔 섬진강 변에 가보고 싶다.
마지막 「오늘은 내가 아웃」은 교실에서의 권력 관계와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권력자 아이가 일일 왕따놀이 제안을 했고 현우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은 눈치보며 동참을 했다.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는 비참한 하루를 경험해야 했고. 결국 어른들에게 알려져 아주 모양 나쁘게 종료가 되었지만 파국으로까진 안 가서 다행이라고 할까.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한 파국도 많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상당히 교육적인(?) 결말로 가는데, 살짝 삽입된 작은 존재들의 판타지가 약간 뜬금없게 느껴진 것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의 교육적인(!) 메시지가 너무 좋았고,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가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의 이런 결심 때문이다.
“다만 남의 가슴에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겠다.” (160쪽)
나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실수하는 일일 테고. 그래도 노력은 해야된다.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각 편을 다 얘기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책은 두껍지 않고 읽는 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린다. 6학년쯤부터는 읽고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시작하며 ‘고민하고 애쓰는 청소년’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고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고통을 느끼기 싫어서 덮어놓고 외면하면 곪아서 썩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삶에서 그 전략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때론 그렇고. 아이들에겐 직면의 전략을 알려줘야 한다. 문학의 힘으로 그걸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들은 그 힘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