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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브레드위너 세트 - 전4권
데보라 엘리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데보라 엘리스의 <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를 읽고 시작한 이 작가의 작품읽기가 <아주 평범한 날에>를 지나 <브레드위너>에 이르렀다. 이 책은 4권으로 되어있어 호흡이 훨씬 길고, 등장인물도 많다. 전쟁과 인권침해의 현장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작가의 다른 책들과 일맥상통한다. 그중 이 책은 탈레반 정권의 폭압과 미군의 침공 사이에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과, 이를 극복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용감한 여성들의 삶을 다루었다.
영어에 약한 나는 제목인 'breadwinner'의 뜻을 몰라 찾아봐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가장이라는 뜻이 있었다. 남장을 하고 시장을 누비며 가족을 먹여살린 두 소녀, 파바나와 샤우지아가 바로 breadwinner 였다. 그녀들이 남장을 했던 이유, 거기에 아프간 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있다. 여성의 신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어 부르카와 차도르로 온몸을 휘감아야 하고 남자의 동행 없이는 거리에 나설수도 없는, 남자의 소유물이나 부속품같은 존재가 바로 여성이었던 것이다.
<1권 : 카불 시장의 남장 소녀들>에서 이러한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고등교육을 받은 파바나의 엄마도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무력하게 집에만 있는다. 아버지는 영국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그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숨겨야 하는 일이다. 결국 아버지는 탈레반에게 잡혀가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breadwinner가 되어야 하는 파바나는 남장을 하고 시장에서 이런저런 일로 푼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린다. 거기서 만난 또다른 남장소녀 샤우지아와 꿈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 이런 극한의 땅에서 꿈을 꾼다는 것은 가능할까? 20년 후 에펠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두 소녀는 각자의 험난한 여정 속으로 발을 디딘다.
<2권 : 위험한 여정>에선 두 친구 중 파바나의 고난의 여정이 펼쳐진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묻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엄마와 형제들을 찾아 홀로 떠난 여정은 참혹하다. 폭격과 지뢰의 위협 뿐 아니라 배고픔과 목마름은 습관이 되어야 하고 잘 곳도 씻을 곳도 없는 어린 소녀의 여정을 보니 내 일생 가장 힘들었던 날도 이 소녀의 하루보다는 편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생활은 대체 어떨까. 지구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잠깐 조금 힘들 때 징징거렸던 것이 후회된다. 파바나는 이 극한 여정에서도 사람을 만났고, 그들을 챙겼다. 폭격의 폐허 속에서 아기를 만나 데리고 갔고(세상에나 나 한 몸도 힘든데) 쉬러 들어간 동굴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소년 아시프를 만나 그와도 동행했다.(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티격태격하지만) 깊은 계곡에서 발견한 집의 레이라와는 자매의 정을 나눴지만... 레이라를 잃게 되는 장면은 이 책의 가장 슬프고 몸떨리는 장면 중 하나...ㅠ 그런데 바로 그 현장에서 엄마를, 가족을 만나게 되는 것이 또 인생의 아이러니다. 이렇게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파바나는 글을 쓴다. 샤우지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것은 사소한 개인의 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역사이며 기록이다. 기록의 힘은 크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글쓰기의 욕망을 주신 것일까. 6.25때 전사한 학도병의 주머니에서도 편지글이 나왔었지...ㅠ
< 3권 : 라벤더 들판의 꿈>은 샤우지아가 겪는 이야기다. 샤우지아가 품에 간직한 사진이 있다. 보랏빛 라벤더 들판... 소녀는 그곳이 있는 프랑스로 가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보랏빛은 커녕 흙먼지뿐이고 거지꼴을 하고 거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책에는 여자의 굴레를 벗고 일하며 싸우며 살아가는 용감한 여자어른 두 명이 나오는데 한 명은 파바나의 엄마고 한명은 위라 아줌마다. 위라 아줌마와 미망인 수용소에서 일하게 된 샤우지아는 자신의 꿈과의 괴리로 여러번 어깃장을 놓지만.... 결국 위라 아줌마의 뒤를 쫓아간다. 보랏빛 꿈은 그 다음으로 미루고, 한몸같던 개 재스퍼를 남겨두고....ㅠ
<4권 : 소녀 파수꾼>은 몇 년 후의 이야기다.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탈레반은 정권을 잃었다. 그러나 흩어진 탈레반들의 위협과, 남성들의 뇌리에 박힌 여성학대의 악습은 여전하다. 파바나의 엄마는 학교를 세웠고, 모두들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여학생들은 삶을 되찾아가지만, 그 댓가는 너무나 크다. 그곳에는 언제나 살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회의차 나갔던 엄마는 그들의 손에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학교는 폭파되고, 현장에 남아있던 파바나는 테러리스트라는 의심을 받고 미군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는다. 도대체 작은 한 소녀의 어깨에 지울 수 있는 고난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래도 완전히 비극으로 끝나진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이잖아. 뭘 바란 거야? 혹시 해피엔딩이라도?"
샤우지아의 이 말로 4부작은 모두 끝나는데, 이 말이 묘하게 희망과 약간의 미소를 준다.
책을 읽으며 이 장면이 영화라면, 이라는 상상을 많이 했다. 영화의 원작으로 더할나위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와 미국에선 얼마전에 개봉되었고 2018년엔 다른 나라들에도 개봉된다고. 우리나라에도 오겠지? 꼭 보고 싶다.(자막 없으면 못보니 꼭 와야돼^^;;;)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움이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는 너무 길어서 힘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영화를 함께 보고 나서는 책을 읽을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함께 읽기는 좀 힘들듯. 하긴 청소년소설이니.)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려 한다.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인하여 세상 어느 구석의 참혹함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지금 파바나와 샤우지아, 위라 아줌마와 같은 개개인은 아프간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이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