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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날에 ㅣ 산하 청소년
데보라 엘리스 지음, 배블링 북스 옮김 / 산하 / 2013년 4월
평점 :
2년 전 이 작가의 <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문제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었는데 아이들에겐 좀 어려워 보였지만 욕심을 부려 5학년 학급 아이들과 함께 읽고 독후활동도 해보았다. 결과적으론 별로 욕심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읽었고 책에 대해 호평을 보냈다. 나는 이 작가의 책을 검색해 보았다. 어린이용으로 나온 책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청소년소설로 나와 있었다. 나의 독서는 거의 학급 아이들과 읽을 책을 찾는 것이기에 아쉬움을 느끼며 넘어갔었다. 그러다 이번에 청소년 소설이라도 읽어보려고 몇 권 주문을 했다. 한권씩 읽어볼 참이다.
첫번째로 읽은 <아주 평범한 날에>는 분량이나 가독성 면에선 고학년어린이용으로 분류해도 큰 상관 없겠다. 이제 겨우 두번째 책을 읽었을 뿐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작가의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책 속에 삽화 하나 없지만 쭉쭉 나간다. (물론 손에 잡기까진 난관이 있을 터이다. "그림도 하나 없잖아!" 하면서^^)
내가 이 작가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건 그가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작가가 아니라 '운동가'(활동가?)라는 점이다. 작가소개에는 '반전인권운동가'라고 나온다. '자신의 사회적 관심과 도덕적 양심에 따라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소개도 있다. 그래서 그는 현장에 직접 들어가 충분한 취재를 한 후 작품을 쓰는 것 같다. 그 작품의 무대는 세계 곳곳, 주로 인권을 돌아보아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 벌어지는 곳들이니 그는 정말 치열하게 삶을 걸고 작품을 쓰는 작가라 하겠다.
이번 책의 배경은 인도다. 가난한 탄전마을 자리아에서 열세살 여자아이 발리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배불리 먹지도, 편히 자지도 못한채 고된 석탄줍기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발리가 어느날 자신이 천애고아란 것과 그동안 이모와 사촌인 줄 알고 끼어 살던 가족이 사실은 가족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며 발리는 "이 날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될 줄 몰랐다."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석탄트럭에 무작정 올라타 고향(?)을 떠난 발리는 콜카타라는 도시에 내려졌다. 자유를 얻었으나 등댈 곳도 의지할 이도 없는 아이는 거리를 떠돌며 노숙을 하게 된다. 길고양이같은 하루하루를 사는 아이의 모습은 거지꼴이다. 그리고 독자는 아이에게 심상치 않은 증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는데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저주받았다' '괴물'이라며 두려워하던 나병(한센병)이었다.
그 삶에서도 만남과 인연은 소중했다. 거리에서 만난 점쟁이는 아이에게 "친구들이 많이 생긴다"는 점괘를 뽑아주고는 잘못 뽑은거라고 했지만... 도시에 버려진 후 처음 만난 할아버지가 건네준 말들부터가 아이에겐 귀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냥 스쳐 보내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보며 웃음 지을 때 슬픔의 짐을 덜 수 있으니"라는 타고르의 싯귀를 들려주었다.
"너는 운이 좋은 거야. 덕분에 모험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겁이 나요."
"겁이 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평범한 날이기 때문이야."
여기에서 <아주 평범한 날에>라는 제목이 나왔나보다. 평범한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생의 모든 하루가 평범하다면? 솟구쳐 올라야 할 때를 모르고 계속 구덩이에 빠져만 있다면?
갠지스 강의 화장터에서 만난 의사 인드라 선생님과의 인연은 결정적이다. 그 도움을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방황이 있었지만 발리는 결국 받아들이고 병원의 여러 사람들과도 친구가 된다. (틀렸다던 점쟁이의 점괘는 맞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그동안의 쥐꼬리만한 기부를 그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병원의 운영은 이런 도움의 손길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존심 세고 독립적인 발리는 받은 도움을 꼭 되돌릴 것이고 이런 선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의 인세를 그 병원에 기부한다고 하니, 글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셈이다.
책에 밑줄 긋고 싶은 대목이 많았다. 시를 들려준 할아버지를 만난 후 발리의 생각 부분을 옮겨본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 어느 구석을 다룬 다음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그 무엇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이 끝날 때에는 우리의 몸을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생각은 소유할 수 있지만 그밖의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쓸 뿐이다. 잠시 쓰다가 돌려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