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이 대 호준이 - 정은주 이야기책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4
정은주 지음 / 북극곰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북극곰 출판사가 왠지 호감이 간다.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이름이 맘에 드는 것 같다.^^;;; 왠지 포근하고 따뜻한 그 이름. 그리고 재작년에 여기 편집장님이 진행하는 그림책 원격연수를 재밌게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나온 그림책들도 느낌이 좋은게 많았다.

여기에서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가 나오길래 도서실에 구입을 했다. 그중 한권을 방학때 읽으려고 챙겨놨는데 아뿔싸, 4권 다 챙길걸. 읽기 참 좋다. 우리반 아이들은 내가 읽어주는 책 듣기를 참 좋아하는 이쁜 아이들이었는데 12월에 뜨개질을 벌여놓고 도와주기 너무 정신없어서 책을 못읽어줬더니 "왜 요즘은 책 안읽어줘요?" 하고 조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개학하면 이 시리즈를 읽어줘야겠네. 2월은 며칠 안되는데 아쉬워라.

작가의 첫 책이다. 등단에 실패하고 직장인으로 살다가 이루리 그림책 워크숍을 통해 발탁된 분이라고 한다. 묻어놓았던 오랜 꿈을 이루고 첫 책이 이렇게 이쁘게 나와서 참 좋으시겠다. 이야기도 참 재밌다. 두 편이 실려있다. 그림책에서 글밥 있는 책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참고로 그림은 한 점도 없다.(좀 있어도 좋았을거 같은데?)

표제작인 <복길이 대 호준이>에서 복길이는 호준이의 밥이다. 한살 많고 덩치도 훨씬 큰 호준이는 합기도에서 복길이보다 띠가 낮지만 그래도 공포의 상대다. 게다가 이름 가지고 놀리는 통에 화가 나 죽겠다. "복실이 동생 복길이~!" 이런 식이다.(알고보니 복실이는 동네 고양이 이름이었다)

가뜩이나 이름 때문에 열받던 중, 아빠가 동료분의 강아지를 한달 맡아준다며 데려왔는데 그 이름이 복길이!! 사람 복길이는 은근히 심통을 부리지만 굴하지 않고 언제나 착하고 반듯한 강아지 복길이!^^
불만은 반전을 가져왔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똑똑한 이녀석을 맹훈련시켜 호준이라는 이름에 반응하게 하고 호준이 앞에 데려가 약을 올리는 것. 호준이는 약이 올라 펄펄 뛴다. 작전 성공!!

이런 일 끝에 약속한 한달이 지나 정든 강아지를 데려다주던 날, 강아지 복길이 이름의 사연도 듣고, 자신의 이름의 사연도 듣게 된다. 이제 더이상 놀림에 굴하지 않을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얘기!^^

이 책을 읽어주고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겠다. 부모님께 나의 태명은 뭐였는지, 내 이름은 누가 지어주셨는지, 왜 그렇게 지었는지 등을 듣고 와서 이야기 나누는거다.
내 이름으로 말하자면 남자 이름이다. 첫째인 언니한테 부모님은 당시로서는 아주 예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둘째인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아들이라 확신하고 남자이름을 지어놨다. 낳아보니 딸이었다. 엄마는 울었고 더 생각할 기운도 없어서 그 이름을 그냥 붙였다고 한다. 써놓고보니 꽤 슬픈 얘기네? 예쁜 이름이면 좋았겠지만 지금껏 그럭저럭 살아왔다. 이렇듯 이름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으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두번째 작품 <옥상의 전설>에서는 이제 나이들어(?) 골목대장 자리에서 밀려난 4학년 순목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앞의 <복길이와 호준이>보다 좀 더 큰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권력을 탐하는 남자아이들의 본성이랄까?(아니, 딱히 성별을 따질 일은 아니겠다. 여자아이들도 권력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때론 살벌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너희는 왜 대장이 되고 싶니? 통제할 때의 기분은 어떠니? 통제 당할 때의 기분은 어떠니? 통제하지도 통제 당하지도 않는 학급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요즘 학급긍정훈육법 연수를 듣고 있는 중이라 반사적으로 이런 생각이 줄줄줄....ㅋㅋ 하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이게 아니다)
골목대장 자리를 탈환할 틈을 노리던 순목이는 어떤 무용담(?)을 꾸미게 되는데,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자기 거짓말에 자기가 속는.... 그런 거짓말의 생리를 보여준달까? 하여간 그동안의 동화들에서 흔히 못봤던 얘기였다. 아이들 얘기지만 약간은 단편소설 느낌이 나기도 했다. 순목이의 거짓말은 심판받지 않았고, 대장을 넘어선 무려 '고문'이라는 직책을 얻게 되었다.(고문이라니...ㅋㅋㅋ)

그러고보니 시리즈 소개글에서 "8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즐기는 상상의 만찬입니다"라는 안내가 맞는 것 같다. 자신의 이해 층위에 맞게 받아들이며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 좋다. 우리반 2학년 아이들에겐 뒷편은 약간 어려워 보이지만 앞편 복길이 이야기는 책상을 치며 좋아할 것 같다. 시리즈 나머지 책들도 얼른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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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업 - 교실, 인권을 만나다!
이은진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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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나 도덕교과서에 인권 단원이 있고 나도 이 단원을 잘 지도하려 애쓴 경험이 있다. 인권은 당연히 지도해야 하는 핵심 가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서로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 인권존중의 기본이며 그럴 때 살 만한 세상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인권이라는 말이 학교에 내려꽂힐 때의 불편함이 내 마음 한 구석에 가시 하나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불편함은 나의 성공경험 부족(이에 따른 실패경험 풍부ㅎ)과 시너지를 이루어 지금껏 학급운영에서 인권을 중요 이슈로 다루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 성공경험의 부족 중 대표적인 것은 인권을 주장하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거의 못봤다는 점이다. 은진샘 정도의 고수가 아니라면 자기 권리도 주장하며 남의 권리도 지켜주는, 다시 말해 그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잘 찾는 학급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일까? 교과전담을 할 때의 경험이 대표적이다. 그 학년엔 학생인권을 중요시하시고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주시는 선생님도 계셨고 은진샘의 초기모습처럼 왕칼 선생님도 계셨다. 전자의 학급에 들어갈 때는 심호흡을 해야 했다.(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샘들이 그러했다. 영어샘은 원어민샘과 잘 견뎌보자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들어가기도...^^;;;)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시가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행동을 제한할 때의 반발이 무시무시하고 이글이글하며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그냥 두고 수업하자니 30명이 다 각자 따로 논다고 할까.... 도저히 준비한 수업을 다 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반면 왕칼 선생님의 학급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나를 따뜻이 반겼다. 수업준비가 되어 있었고 혹 안되어있어도 "안되어있네요~?" 이 한마디에 바로 반응했다. 눈은 내게로 집중되었고 사소한 활동도 즐거워했다. 앞반에서 받은 상처를 그반에서 힐링했다.
제한적인 경험일 뿐이니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체로, 존중과 허용 캐릭터 교사의 학급에서 소위 '내로남불'을 많이 경험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권리를 목청높여 주장하지만 남의 권리와 부딪칠 때는 나몰라라 하는.... 이런 아이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왕칼 선생님의 학급은 초반에는 좀 얼어붙는 듯하지만 안정을 기반으로 점차 아이들의 능력이 공평하게 꽃피우기 시작한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같은 문제도 훨씬 적게 일어난다.
내가 A의 최악의 경우, B의 최선의 경우를 경험한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A와 B에 선을 긋는다면 나는 A에 좀더 가깝다. 타고난 성격이 남에게 강제하지 못하고 이래라저래라를 싫어한다. 반면 존경하며 학급운영을 배우고 싶은 선생님들은 B에 많으시다. 말하자면 나는 B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ㅎㅎ

은진샘은 B를 탈피하는 것으로 인권교육을 시작하셨는데 나는 B를 지향하고 있으니 그 접점을 어디에서 찾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1,2장을 읽으며 내게 다가온 핵심낱말은 '인권감수성' 이었다. 테스트가 있어서 해봤더니 34점~? (30점 이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되어있는데ㅋ) 점수를 올려놓은 항목을 보니 학교내 휴대폰 사용문제와 복장문제로, 역시나 보수적인 나의 성향이 인권감수성을 깎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논란으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지엽적인 문제에 막혀서 전체를 못보면 안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다가온 낱말은 '인권친화적 교실'이라는 말이다. 다른 인권서적과 차별화된 이책만의 특징이라면 교실살이를 통해 인권을 배우게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회성 이벤트성 수업에 비해 아이들의 삶에 훨씬 가깝고 깊게 다가갈 것이다. 그를 위해 교실 시스템을 인권에 맞출 필요가 있다. 새학년맞이를 고민해야 하는 이 때에, 이런 부분의 고민을 함께 해야 되겠다. 일단 요즘 관심갖고 있는 '학급긍정훈육법'이 인권존중을 상당부분 염두에 둔 학급운영 방식인 것 같고, 의무로 행하던 기본과제들, 예를들어 일기나 복습공책 같은 것들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가장 도움이 된 실제사례는 '학급권리선언 만들기'였다. 학기초 규칙만들기를 대신할 수 있고 인권에도 더욱 가까워지는 활동이다. 특히 "우리는 누구나 비난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특히 체육시간이나 수업시간에 실수를 하더라도 야유를 보내서는 안 된다."와 같이 지켜주어야 할 권리를 함께 명시한 부분은 앞에서 말한 내로남불을 방지할 특효약이라 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단, 원칙론을 넘어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은 교사간, 또는 교사-학생간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디테일한 사례까지 반드시 이것이 인권이다라고 내리꽂는 방식은 불편하다. 그런 방식 자체가 인권존중이 아니다. 이를테면 얼마전에 교육청에서 각 학교로 '인권친화적 교실' 이라는 다량의 벽보자료를 배부했는데 거기에는 원칙론을 넘어선 구체적 사례들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사례별 정답을 제시해주는 방식은 맘에 들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반감을 사는 일이다. 상황적 맥락이라는 것도 있는데 한가지 방법만이 정답일 수 없다. 너무 덤비지 않는 세심한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장에서는 그동안 학교와 학급에서 당연한듯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일들을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일련번호, 일기검사, 반성문, 화장실 허락, 초상권, 모범상, 운동회와 학예회 등.... 이 역시 당연한 문제제기지만 해결방식에는 정답이 있지 않다고 본다. 잔존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듯 없애는 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갖고 대안을 찾는 태도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실제적 도움이 된 부분은 4장이었다. '교실속 인권수업의 실제' 라는 이 장에서는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은진샘 수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이라고 감탄하게 되는 건 교과수업의 틀을 넘는 방식과 광범위하게 또 적절하게 자료를 취하는 선구안 때문이다. 또 머리로만 이해하는 수업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업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 수업들은 언젠가 적절히 구현해볼 수 있도록 나중에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교실살이에서 인권교육의 싹을 뿌리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교실이 다가 아니다. 그래서 인권의 나무가 싹이 돋고 자라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인권교육이 교실문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이다. 제5장 '교실너머 인권교육'에서는 이런 부분을 다루었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부분에 많이 공감했다. 참 어려운 문제다.

마지막 6장에서는 교권의 개념과 교사인권을 다루었다. 나는 그동안 좋은 환경에서 주로 좋은 분들을 만나서, 교권침해에 울분을 터뜨릴 개인적 경험은 그다지 없다. 하지만 들려오는 많은 황당한 사례들을 들으며 함께 분노한 적은 많다. 그러나 은진샘은 우리가 분노하는 모든 사례가 교권침해는 아니라는 점을 차분히 짚어주었다. 그러고보니 수긍은 가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인내하며, 더욱 능력있고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더해지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인권수업의 모든것'을 담은 책을 한번 정독했다. 이정도의 안목과 콘텐츠를 갖추기까지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존경스럽다. 책을 읽으며 부지런히 나를 대입해 보았다. 우리 교실엔 강제하는 것이 적은 편이고 아이들의 요구가 (비교적) 잘 받아들여지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하고 싶은 말을 잘 하는 편이다. 어떻게보면 조금만 노력하면 인권친화적인 학급이 금방 될 것 같다.ㅎ 하지만 그것은 내 안에 인권감수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성격적인 유약함 때문이며, 내 안에 총칼만 있었다면 바로 그것으로 아이들을 제압했을 터이다. 그러므로 바꿔야 할 부분은 나의 운영 방식 보다는 주로 나의 내면에 있다고 보겠다.

앞에서, 요즘 학교에 요구되는 인권교육의 획일성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제기했다. 그것이 인권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선 안될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여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은 인권교육의 목표이자 곧 교육의 목표이다. 세세한 사례별 방법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존중되면 좋겠고, 그래서 모든 선생님들이 인권교육에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의 사례들을 기쁘게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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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않는 병 휴먼어린이 중학년 문고 2
정연철 지음, 김고은 그림 / 휴먼어린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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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엄마는 이혼했고 아들 은오를 혼자 키우게 됐다. '아빠 없는 애란 소리 안듣게 하려고' 아이에게 엄청난 지침을 안겼다. '아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거기엔 인사 잘하기 같은 당연한 것도 있지만(당연한게 당연하지 않은 순간도 있는것) 눈물 금지, 음식투정 금지, 아빠에 대한 말 금지 같은 본인의 설움을 반영한 것들이 더 많다. 그리고 방귀나 재채기 같은 에티켓에 관련된 것들도 있다. 한마디로 엄마는 '성가시지 않고' '반듯한' 아이로 은오를 키우려 하는 것이다.

엄마의 힘듦과 슬픔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기세에 주눅든 은오는 십계명을 지키려 애를 써보지만..... 그럴수록 병이 깊어진다. 이 책의 제목인 '웃지 않는 병'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된 엄마가 단기간의 집중노력을 통해 얻게 된 직업은 '웃음치료사' 화장을 하고 문을 나설 때, 전화를 받을 때, 엄마는 연기모드로 들어간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그러나 집에 들어서면 그 가면을 벗는다. 가면 밑에는 우울하고 지친 엄마의 모습이 있다. 당연히 엄마는 아들을 웃게 하진 못한다.

뭔가 새로운 전기가 필요한 시점에, 작가는 어떤 사건과 인물들을 넣었을까? 엄마의 출장, 외삼촌 가족. 엄마에게 그런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외사촌 범수는 밥상머리에서 거침없이 방귀를 뀌어대고, 엄마의 구박도 웃음으로 넘기고,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엄마한테 반말을 하고 심지어 말대꾸까지 해도, 그래서 엄마가 한대 쥐어박아도 가족의 분위기는 얼어붙지 않는다. 은오에게는 신기한 풍경.

범수와 더불어 은오는 마을에서 말썽을 부리고, 야단맞고 돌아온 외삼촌댁에는 예정에 없던 엄마가 돌아와 은오를 꼬나보고 있다. 화내는 엄마, 피토하듯 괴로움을 쏟아놓고 달려나가는 은오, 그 밤에 휘몰아치듯 일어난 일들. 그 와중에도 엄마는 "은오야, 힘들었지? 엄마가 미안해." 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그런 신파는 피차 좋을게 없긴 하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든든하면서도 절절하다. 대답은 없었지만 엄마는 그 말을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
"그런 소리 마라. 네가 떳떳하지 못할 게 뭐 있어."
"네가 행복해야 은오도 행복한 거여. 이것아."
등등의 여러 말씀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은오는 '엄마십계명'을 마음속으로 적어본다. 나한테도 웃어주기, 일주일에 두번은 밥해서 나랑 같이 먹기, 운다고 뭐라 하지 않기 등등으로....^^

이 책을 전체한테 읽어주기엔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마음을 힘들게 할까봐 조금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이들이, 또는 엄마들이 이 책을 찾아읽는 건 권하고 싶다. 어느 지점일지는 모르지만 위로나 치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찔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아이들 키우며 '반듯함'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한 것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은오가 아니고 나또한 강한 엄마가 못되어서 그 중 절반 이상이 허공으로~~ 그러나 어쩌면 그게 다행 아닌가 싶다. 내 말을 다 듣고 내가 가리킨 길로만 갔으면? 지금보다 나을거라 나는 장담을 못한다.ㅋ 너무 말을 잘 듣는건 어쩌면 위험한거다. 혹시 엄마들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이런 위로를 받으셨음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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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둘째주가 되어서야 겨우 혼자놀기를... 아버님이랑 저녁 먹은 후 나가서 저녁 8시 영화를 보고 바로 들어왔으니 잠깐의 혼자놀기였다.^^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영화를 봤다. 98년? 2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네. 영화의 배경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 기착점?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은 7일을 머물며 인생을 복기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 하나를 골라 간직한 채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영화가 매우 진지하고 아름다워 우습다는 생각을 느낄 겨를은 없다.
근데 그곳에서 일하는 존재들은 누굴까? 천사? 차사?.... 여야 할 것 같지만, 오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들이다.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한. 어떤 이는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서. 어떤 이는 어린 딸을 두고 죽어서.... 그들은 이곳의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낸다. 직장으로 치면 밤낮으로 빡센 직장이다. 수요일까지는 죽은 이들이 기억을 고를 수 있게 상담해주기, 금요일까지는 촬영준비하기, 주말에는 촬영하고 시사회하기까지. 그렇게 1주가 가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그 영상의 기억을 안고 저세상으로 떠난다.

영화는 그 딱 1주의 시간을 다룬다. 저너머 환한 빛을 등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선다. 이곳의 규칙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바로 떠올리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할머니, 뭐 이래? 라는 식의 젊은이, 디즈니랜드라고 바로 대답하는 여중생,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완강히 버티는 중년남자, 고민하는 할아버지 등....

이곳에서도 남녀의 얽힌 관계는 있다. 4각관계라 해야되나? 할아버지의 기억을 돕던 모치츠키(남직원. 20대. 50년 전 전사함)는 할아버지의 부인이 참전하기 직전 약혼자인 교코인 걸 알게된다. 그런 모치츠키만을 바라보는 시오리(여직원. 18세. 생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음). 그들의 마음을 영화는 담담하게 담아낸다. 결국 할아버지는 부인 교코와의 추억을 갖고 떠났고, 알고보니 먼저간 교코는 모치츠키와의 추억을....ㅠ 이제 모치츠키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안다. 그는 무슨 추억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남겨진 시오리는?

가장 색다른 설정은 이곳에서는 방문자들이 선택한 기억을 재연해 영상으로 촬영해 함께 감상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가장 동분서주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내고자..... 이곳은 꼭 오래된 학교건물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중 별관 같은 곳에 들어서자, 영화 세트장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세트장마다 각 주인공들의 행복했던 한때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신선한 발상이고 실제로 이 대목이 재미있긴 했지만 재연이라니.... 그렇게 추억을 재생하는게 가능할까? 그건 박제일거다. 그래서 공감은 가지 않았다.^^;;;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나와 다르지만, 거부감은 거의 없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저승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이승을 말하는 영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소중한 기억을 만들고 있나요? 헉, 지난주 돼지우리 같은 집을 정리하며 "추억 따지지마, 다 갖다 버려!!" 라고 명령하던 나는 뭐란 말인가???ㅋㅋ

한가지 기억만 남긴다는 것도 좀 그렇다. 그건 추억끼리도 경쟁해야 한다는 거잖아.... 어릴적 여름밤, 엄마가 갈아입힌 깨끗한 옷을 입고 엄마의 부채질 바람을 느끼며 잠이 들던 기억? 긴긴겨울밤, 삼남매가 엄마아빠의 귤내기 맞고를 관전하며 운좋은 밤엔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던 기억? 배깔고 주황색 계몽사 전집에서 린드그렌을 읽던 기억? 남편과 결혼전 눈오는 성탄절 무렵에 나홀로집에를 보고 대학로를 걷던 기억? 첫 딸을 낳고 바라보던 기억? 결혼 20년만에 남편과 대만여행을 했던 기억?....... 뭘, 왜, 선택해야 하냐는 거지.ㅎ

이렇게도 이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를 참 괜찮은 영화로 고르겠다. 인생에 대한 경의. 그런게 느껴져서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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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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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시리즈는 모두 4권이다. 그중에 나는 두번째 나온 <줄리안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었다. 각편 모두 독자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서 읽고 감동받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전편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크리스 이야기>와 <샬롯 이야기>가 나왔길래 그걸 먼저 읽고 이 책은 가장 나중에, 너무 늦게 손에 잡았다. 읽으면서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 이 책을 먼저 읽을걸! 그리고 작가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고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한방에 대단한 작품을 썼을까! 500쪽에 가까운 분량도 분량이지만 그 분량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읽히고, 주인공 오기와 주변 인물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구성이 유기적이고 탄탄하다. 서로 다른 입장과 시각에서 사건을 볼 수 있고 그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

오기(어거스트) : 선천적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모든 유전적 요인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나타냈다고 보면 된다. 누구나 헉! 하고 놀라게 되는 일그러진 얼굴. 10살이 되도록 홈스쿨을 하던 오기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다. 그 험난하고 사연많은 1년의 이야기다.

비아(올리비아) : 오기를 사랑하고 오기에게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오기보다 더 분노하는 누나다. 이런 누나도 없다 싶지만 그 마음에 갈등이 왜 없으랴. 오기의 상태와 원인에 대한 설명은 주로 비아의 입에서 나오는데 그 담담한 설명이 가슴아프다.
<유전학 개론> 이라는 장에서 "그리고 내 몸에도 그 유전자가 존재한다."
<푸네트의 사각형>이라는 장에서 "배선 섞임이나 염색체 재배열, 혹은 지연 돌연변이와 같은 말들 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무수한 아기들이. 나의 아이들처럼."
같은 대목들이 그렇다.ㅠ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비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진통을 겪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의 중심엔 동생이 있다.

서머 : 오기의 외모에 개의치 않고 단번에 점심친구가 되어준 소녀. 어거스트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 어거스트를 두고 '전염병놀이'를 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 관계 권력에 굴하지 않는 쿨한 아이. (이런 아이가 학급마다 있으면 좋겠다)

잭 : 오기의 입학 전 교장선생님께 환영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받은 세 명 중 한명. 줄리안이 자기 패거리들과 함께 악의적으로 오기를 괴롭히고, 샬롯은 형식적으로 대해주는 것에 비해 꽤 진심으로 잘해준 아이. 그러나 완전히 괜찮았던 건 아니어서 자신도 모르게 오기의 뒷담화에 동참했고, 그날은 마침 할로윈이라 가면을 쓰고 있던 오기는 그 말을 들었고, 한참을 앓았다. 그러나 그 상처를 극복하고 좋은 친구가 되는 두 사람.

저스틴 : 비아의 남자친구. 바이올린을 켠다. 비아의 집에 초대되어 부모님께 많은 관심을 받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님께는 아무 관심도 못받는 아이. 틱이 있다. 투정부리지 못하고 살아온 비아의 눈물을 보아주고 닦아주는 아이. 생각이 깊은 아이.

미란다 : 비아의 오랜 친구로 어릴 때부터 오기를 예뻐했고 가족과 무척 가까웠던 누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비아와의 관계가 삐그덕! 비아에게 많은 고민과 눈물을 안겼지만.... 오기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 마지막으로 비아가 연극무대에서 환호를 받을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

이렇게 6명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야기가 어느 한군데 아귀가 맞지 않는 곳이 없다. 저마다의 입장이 다 이해되고 그를 응원하게 된다. 너무 두꺼워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아이들과 '온작품읽기'로 읽어보고 싶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 내가 준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후비지 않고 가장 잘 낫게 하는 방법, 차별에 대하여, 방관자와 수호자의 역할, 그 구도에 따라 상황은 얼마나 바뀌는지 등....
또 이 책에 브라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월별 금언을 제시해주시고 아이들 스스로의 금언도 적어오게 하시고 글쓰기와도 연관지으시는데 교사로서 그 지도방식이 아주 좋아보였다. 여기 나온 금언들로도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웨인 다이어 박사" 와 같은 것들 말이다.
다룰 수 있다면 시리즈 4권을 다 다루고 싶지만 이 한권도 쉽지는 않아보인다. 고학년이라면 도전해볼 만하고 중학교에서 다루어도 아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존재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참 난감한 요구라 할 수 있지만) 난 오기의 부모님을 꼽겠다. 나이가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가장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도저히 그들처럼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엄마들이 자식에게 매우 헌신적이고 서양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줄 알았는데, 오기의 부모님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 오기가 있었다. 그러나 비관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고 그들은 끊임없이 행복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힘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불행히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빠는 눈물이 나올 순간에 가족을 웃겨주었고 엄마는 언제나 아이들이 품에 들어와 울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들의 가족애는 다른 집 아이들까지 품어줄 정도였다. 미란다나 저스틴 같은. 사실 도움을 받는 존재와 도움을 주는 존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힘든 이들에게 시혜적 태도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브라운 선생님이 첫번째 주신 금언처럼 '친절'을 내 삶에 스며들게 하면 될 일이다.

비아의 장에서 한밤중에 방문을 열었다가 오기의 방문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보고 쓴 대목이 나온다. <문가의 유령>이라는 장이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밤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그럼에도 늘 침착함을 잃지 않는 오기의 엄마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 난 이 책의 모든 이야기의 가능성은 이 부모님에게서 나왔다고 본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 외에는 주지 않으신다"는 말이 너무나 싫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기가 이 가정에서 태어난 걸 보면 그런 말이 실감난다. 나같은 작고 소심한 그릇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굳이 그릇을 따지지 않아도 좀 다른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작가도 그래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저스틴의 장을 읽다가 간지를 끼워둔 대목이 있다. 그부분을 옮겨놓고 오늘따라 구구절절한 리뷰를 마치겠다. 아! 그리고 이번 주 안에 영화를 꼭 볼 것이다.(Wonder)

"그렇다면 이 우주는 거대한 복권 뽑기 기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야. 진정 완전한 무작위라면 우주가 우리를 완전히 버리는 셈이지만, 그건 아니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크나큰 사랑을 베푸는 너의 부모님.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녀석. 그리고 심지어 네 사진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니는 그 분홍머리 여자애까지. 설령 복권 뽑기 기계일지라도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 우주는 자신의 모든 새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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