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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업 - 교실, 인권을 만나다!
이은진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사회나 도덕교과서에 인권 단원이 있고 나도 이 단원을 잘 지도하려 애쓴 경험이 있다. 인권은 당연히 지도해야 하는 핵심 가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서로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 인권존중의 기본이며 그럴 때 살 만한 세상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인권이라는 말이 학교에 내려꽂힐 때의 불편함이 내 마음 한 구석에 가시 하나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불편함은 나의 성공경험 부족(이에 따른 실패경험 풍부ㅎ)과 시너지를 이루어 지금껏 학급운영에서 인권을 중요 이슈로 다루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 성공경험의 부족 중 대표적인 것은 인권을 주장하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거의 못봤다는 점이다. 은진샘 정도의 고수가 아니라면 자기 권리도 주장하며 남의 권리도 지켜주는, 다시 말해 그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잘 찾는 학급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일까? 교과전담을 할 때의 경험이 대표적이다. 그 학년엔 학생인권을 중요시하시고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주시는 선생님도 계셨고 은진샘의 초기모습처럼 왕칼 선생님도 계셨다. 전자의 학급에 들어갈 때는 심호흡을 해야 했다.(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샘들이 그러했다. 영어샘은 원어민샘과 잘 견뎌보자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들어가기도...^^;;;)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시가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행동을 제한할 때의 반발이 무시무시하고 이글이글하며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그냥 두고 수업하자니 30명이 다 각자 따로 논다고 할까.... 도저히 준비한 수업을 다 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반면 왕칼 선생님의 학급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나를 따뜻이 반겼다. 수업준비가 되어 있었고 혹 안되어있어도 "안되어있네요~?" 이 한마디에 바로 반응했다. 눈은 내게로 집중되었고 사소한 활동도 즐거워했다. 앞반에서 받은 상처를 그반에서 힐링했다.
제한적인 경험일 뿐이니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체로, 존중과 허용 캐릭터 교사의 학급에서 소위 '내로남불'을 많이 경험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권리를 목청높여 주장하지만 남의 권리와 부딪칠 때는 나몰라라 하는.... 이런 아이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왕칼 선생님의 학급은 초반에는 좀 얼어붙는 듯하지만 안정을 기반으로 점차 아이들의 능력이 공평하게 꽃피우기 시작한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같은 문제도 훨씬 적게 일어난다.
내가 A의 최악의 경우, B의 최선의 경우를 경험한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A와 B에 선을 긋는다면 나는 A에 좀더 가깝다. 타고난 성격이 남에게 강제하지 못하고 이래라저래라를 싫어한다. 반면 존경하며 학급운영을 배우고 싶은 선생님들은 B에 많으시다. 말하자면 나는 B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ㅎㅎ
은진샘은 B를 탈피하는 것으로 인권교육을 시작하셨는데 나는 B를 지향하고 있으니 그 접점을 어디에서 찾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1,2장을 읽으며 내게 다가온 핵심낱말은 '인권감수성' 이었다. 테스트가 있어서 해봤더니 34점~? (30점 이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되어있는데ㅋ) 점수를 올려놓은 항목을 보니 학교내 휴대폰 사용문제와 복장문제로, 역시나 보수적인 나의 성향이 인권감수성을 깎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논란으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지엽적인 문제에 막혀서 전체를 못보면 안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다가온 낱말은 '인권친화적 교실'이라는 말이다. 다른 인권서적과 차별화된 이책만의 특징이라면 교실살이를 통해 인권을 배우게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회성 이벤트성 수업에 비해 아이들의 삶에 훨씬 가깝고 깊게 다가갈 것이다. 그를 위해 교실 시스템을 인권에 맞출 필요가 있다. 새학년맞이를 고민해야 하는 이 때에, 이런 부분의 고민을 함께 해야 되겠다. 일단 요즘 관심갖고 있는 '학급긍정훈육법'이 인권존중을 상당부분 염두에 둔 학급운영 방식인 것 같고, 의무로 행하던 기본과제들, 예를들어 일기나 복습공책 같은 것들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가장 도움이 된 실제사례는 '학급권리선언 만들기'였다. 학기초 규칙만들기를 대신할 수 있고 인권에도 더욱 가까워지는 활동이다. 특히 "우리는 누구나 비난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특히 체육시간이나 수업시간에 실수를 하더라도 야유를 보내서는 안 된다."와 같이 지켜주어야 할 권리를 함께 명시한 부분은 앞에서 말한 내로남불을 방지할 특효약이라 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단, 원칙론을 넘어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은 교사간, 또는 교사-학생간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디테일한 사례까지 반드시 이것이 인권이다라고 내리꽂는 방식은 불편하다. 그런 방식 자체가 인권존중이 아니다. 이를테면 얼마전에 교육청에서 각 학교로 '인권친화적 교실' 이라는 다량의 벽보자료를 배부했는데 거기에는 원칙론을 넘어선 구체적 사례들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사례별 정답을 제시해주는 방식은 맘에 들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반감을 사는 일이다. 상황적 맥락이라는 것도 있는데 한가지 방법만이 정답일 수 없다. 너무 덤비지 않는 세심한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장에서는 그동안 학교와 학급에서 당연한듯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일들을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일련번호, 일기검사, 반성문, 화장실 허락, 초상권, 모범상, 운동회와 학예회 등.... 이 역시 당연한 문제제기지만 해결방식에는 정답이 있지 않다고 본다. 잔존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듯 없애는 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갖고 대안을 찾는 태도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실제적 도움이 된 부분은 4장이었다. '교실속 인권수업의 실제' 라는 이 장에서는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은진샘 수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이라고 감탄하게 되는 건 교과수업의 틀을 넘는 방식과 광범위하게 또 적절하게 자료를 취하는 선구안 때문이다. 또 머리로만 이해하는 수업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업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 수업들은 언젠가 적절히 구현해볼 수 있도록 나중에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교실살이에서 인권교육의 싹을 뿌리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교실이 다가 아니다. 그래서 인권의 나무가 싹이 돋고 자라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인권교육이 교실문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이다. 제5장 '교실너머 인권교육'에서는 이런 부분을 다루었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부분에 많이 공감했다. 참 어려운 문제다.
마지막 6장에서는 교권의 개념과 교사인권을 다루었다. 나는 그동안 좋은 환경에서 주로 좋은 분들을 만나서, 교권침해에 울분을 터뜨릴 개인적 경험은 그다지 없다. 하지만 들려오는 많은 황당한 사례들을 들으며 함께 분노한 적은 많다. 그러나 은진샘은 우리가 분노하는 모든 사례가 교권침해는 아니라는 점을 차분히 짚어주었다. 그러고보니 수긍은 가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인내하며, 더욱 능력있고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더해지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인권수업의 모든것'을 담은 책을 한번 정독했다. 이정도의 안목과 콘텐츠를 갖추기까지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존경스럽다. 책을 읽으며 부지런히 나를 대입해 보았다. 우리 교실엔 강제하는 것이 적은 편이고 아이들의 요구가 (비교적) 잘 받아들여지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하고 싶은 말을 잘 하는 편이다. 어떻게보면 조금만 노력하면 인권친화적인 학급이 금방 될 것 같다.ㅎ 하지만 그것은 내 안에 인권감수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성격적인 유약함 때문이며, 내 안에 총칼만 있었다면 바로 그것으로 아이들을 제압했을 터이다. 그러므로 바꿔야 할 부분은 나의 운영 방식 보다는 주로 나의 내면에 있다고 보겠다.
앞에서, 요즘 학교에 요구되는 인권교육의 획일성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제기했다. 그것이 인권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선 안될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여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은 인권교육의 목표이자 곧 교육의 목표이다. 세세한 사례별 방법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존중되면 좋겠고, 그래서 모든 선생님들이 인권교육에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의 사례들을 기쁘게 나누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