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아이 시리즈는 모두 4권이다. 그중에 나는 두번째 나온 <줄리안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었다. 각편 모두 독자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서 읽고 감동받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전편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크리스 이야기>와 <샬롯 이야기>가 나왔길래 그걸 먼저 읽고 이 책은 가장 나중에, 너무 늦게 손에 잡았다. 읽으면서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 이 책을 먼저 읽을걸! 그리고 작가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고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한방에 대단한 작품을 썼을까! 500쪽에 가까운 분량도 분량이지만 그 분량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읽히고, 주인공 오기와 주변 인물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구성이 유기적이고 탄탄하다. 서로 다른 입장과 시각에서 사건을 볼 수 있고 그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

오기(어거스트) : 선천적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모든 유전적 요인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나타냈다고 보면 된다. 누구나 헉! 하고 놀라게 되는 일그러진 얼굴. 10살이 되도록 홈스쿨을 하던 오기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다. 그 험난하고 사연많은 1년의 이야기다.

비아(올리비아) : 오기를 사랑하고 오기에게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오기보다 더 분노하는 누나다. 이런 누나도 없다 싶지만 그 마음에 갈등이 왜 없으랴. 오기의 상태와 원인에 대한 설명은 주로 비아의 입에서 나오는데 그 담담한 설명이 가슴아프다.
<유전학 개론> 이라는 장에서 "그리고 내 몸에도 그 유전자가 존재한다."
<푸네트의 사각형>이라는 장에서 "배선 섞임이나 염색체 재배열, 혹은 지연 돌연변이와 같은 말들 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무수한 아기들이. 나의 아이들처럼."
같은 대목들이 그렇다.ㅠ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비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진통을 겪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의 중심엔 동생이 있다.

서머 : 오기의 외모에 개의치 않고 단번에 점심친구가 되어준 소녀. 어거스트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 어거스트를 두고 '전염병놀이'를 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 관계 권력에 굴하지 않는 쿨한 아이. (이런 아이가 학급마다 있으면 좋겠다)

잭 : 오기의 입학 전 교장선생님께 환영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받은 세 명 중 한명. 줄리안이 자기 패거리들과 함께 악의적으로 오기를 괴롭히고, 샬롯은 형식적으로 대해주는 것에 비해 꽤 진심으로 잘해준 아이. 그러나 완전히 괜찮았던 건 아니어서 자신도 모르게 오기의 뒷담화에 동참했고, 그날은 마침 할로윈이라 가면을 쓰고 있던 오기는 그 말을 들었고, 한참을 앓았다. 그러나 그 상처를 극복하고 좋은 친구가 되는 두 사람.

저스틴 : 비아의 남자친구. 바이올린을 켠다. 비아의 집에 초대되어 부모님께 많은 관심을 받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님께는 아무 관심도 못받는 아이. 틱이 있다. 투정부리지 못하고 살아온 비아의 눈물을 보아주고 닦아주는 아이. 생각이 깊은 아이.

미란다 : 비아의 오랜 친구로 어릴 때부터 오기를 예뻐했고 가족과 무척 가까웠던 누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비아와의 관계가 삐그덕! 비아에게 많은 고민과 눈물을 안겼지만.... 오기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 마지막으로 비아가 연극무대에서 환호를 받을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

이렇게 6명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야기가 어느 한군데 아귀가 맞지 않는 곳이 없다. 저마다의 입장이 다 이해되고 그를 응원하게 된다. 너무 두꺼워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아이들과 '온작품읽기'로 읽어보고 싶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 내가 준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후비지 않고 가장 잘 낫게 하는 방법, 차별에 대하여, 방관자와 수호자의 역할, 그 구도에 따라 상황은 얼마나 바뀌는지 등....
또 이 책에 브라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월별 금언을 제시해주시고 아이들 스스로의 금언도 적어오게 하시고 글쓰기와도 연관지으시는데 교사로서 그 지도방식이 아주 좋아보였다. 여기 나온 금언들로도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웨인 다이어 박사" 와 같은 것들 말이다.
다룰 수 있다면 시리즈 4권을 다 다루고 싶지만 이 한권도 쉽지는 않아보인다. 고학년이라면 도전해볼 만하고 중학교에서 다루어도 아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존재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참 난감한 요구라 할 수 있지만) 난 오기의 부모님을 꼽겠다. 나이가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가장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도저히 그들처럼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엄마들이 자식에게 매우 헌신적이고 서양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줄 알았는데, 오기의 부모님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 오기가 있었다. 그러나 비관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고 그들은 끊임없이 행복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힘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불행히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빠는 눈물이 나올 순간에 가족을 웃겨주었고 엄마는 언제나 아이들이 품에 들어와 울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들의 가족애는 다른 집 아이들까지 품어줄 정도였다. 미란다나 저스틴 같은. 사실 도움을 받는 존재와 도움을 주는 존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힘든 이들에게 시혜적 태도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브라운 선생님이 첫번째 주신 금언처럼 '친절'을 내 삶에 스며들게 하면 될 일이다.

비아의 장에서 한밤중에 방문을 열었다가 오기의 방문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보고 쓴 대목이 나온다. <문가의 유령>이라는 장이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밤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그럼에도 늘 침착함을 잃지 않는 오기의 엄마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 난 이 책의 모든 이야기의 가능성은 이 부모님에게서 나왔다고 본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 외에는 주지 않으신다"는 말이 너무나 싫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기가 이 가정에서 태어난 걸 보면 그런 말이 실감난다. 나같은 작고 소심한 그릇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굳이 그릇을 따지지 않아도 좀 다른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작가도 그래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저스틴의 장을 읽다가 간지를 끼워둔 대목이 있다. 그부분을 옮겨놓고 오늘따라 구구절절한 리뷰를 마치겠다. 아! 그리고 이번 주 안에 영화를 꼭 볼 것이다.(Wonder)

"그렇다면 이 우주는 거대한 복권 뽑기 기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야. 진정 완전한 무작위라면 우주가 우리를 완전히 버리는 셈이지만, 그건 아니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크나큰 사랑을 베푸는 너의 부모님.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녀석. 그리고 심지어 네 사진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니는 그 분홍머리 여자애까지. 설령 복권 뽑기 기계일지라도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 우주는 자신의 모든 새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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