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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주인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5
다카시나 마사노부 지음, 아라이 료지 그림, 고향옥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3월
평점 :
이 책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드러내기 싫어서 황당한 허풍을 치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두 아이의 이야기이다.
아이는 자신이 우주인이라고 뻥을 친다. 이 책의 제목은 거기에서 나왔다. 안녕, 우주인.
“류토, 네 가운뎃손가락 끝에 특별한 힘이 없어도 나와 만주는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우주인과는 이별해. 안녕. 우주인.”(요코의 말, 79쪽)
이 책을 읽으며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을 살펴 행동하는 사려깊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남이 불쌍하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가 ‘정말 불쌍한 건 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그건 정말 아주 살짝만 빗나가도 상대에 대한 우월감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시와 폭력 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이것도 조심해야 할 감정 중 하나이다.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상대방이 그것을 버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더라도 굳이 버리지 않도록 넌지시 받쳐주는 배려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두 친구, 요코와 만주는 그런 아이들에 속한다. 요코는 생각이 깊어서, 만주는 순진하고 상대방을 잘 믿어서 류토를 받아주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켄타우루스 알파별 제3행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전학생 류토. 잠시의 관심 뒤에 모든 아이들은 류토를 무시하기 시작했지만 두 아이는 끝까지 류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주인으로 자신을 가장해야 하는 류토의 불우한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 특별하지 않게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맛있게 먹다가 터진 류토의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때로는 주변에서 이토록 조심하는데도 스스로 열폭해서 기어이 주변에 아무도 남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엔 답이 없다. 대단한 희생자가 옆에 있기 전에는.... 나는 누구에게도 이런 희생자가 되어 줄 마음은 없다. 학급의 아이들에게도 위에 말한 배려 수준까지는 요구하지만 더한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진짜로 ‘불쌍한’ 아이는 이런 경우이다. 스스로를 돕지 않는 경우. 그런 아이에게는 강한 어조로 너 자신에게 협조하라고, 너 자신만이 너를 위해 살 수 있다고 다그친다. 그래서 조금은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직도 나는 방법을 모르겠다.
시공주니어문고 2단계, 책등이 연두색인 책이다. 두께로 봤을 땐 노랑색(1단계) 정도로 보이지만 ‘중학년 이상 권장’이라고 되어 있다. 읽어보니 짧은 이야기지만 작가의 의미를 어느정도 파악하려면 정말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될 것 같다. 이 짧은 이야기에 작가가 담은 키워드 하나가 더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것은 ‘상상’이다. 상상과 거짓말의 차이는 뭘까? 책의 앞부분엔 글쓰기 숙제를 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요코는 있지도 않은 일을 글로 쓱쓱 쓰면서 그것을 ‘상상’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듯한 좋을 글이 되기도 하고 살짝 거짓말과의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다. 책의 마지막엔 류토의 그림이 나온다. 상상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의 동물원’이라는 그림이다. 제3행성과 우주인 얘기는 상상과 거짓말의 경계에서 머뭇거렸지만 이건 그야말로 상상이다. 밝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삽화인 류토의 그림을 포함해서 삽화들이 대범한 구도와 색감을 가진 자유로운 저학년 그림의 느낌을 주어 정감이 가고 글의 내용과 잘 어울렸다. 그림책 작가인 아라이 료지의 그림이었다. 글과 그림 모두 따뜻한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었다. 모든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 대신 상상으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가만 두기만 해도 달릴 수 있는 존재들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