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월간 아이들과 읽은 <진짜 도둑>과 <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은 성공적인 책선정이었다고 자평해도 되겠다. 학년 수준, 아이들의 흥미도, 주제와 독후활동 연결 등 모든 면에서 괜찮았다. 계속 활용할 목록에 넣을 것 같다.

지난 수요일 북부 한책읽기 연수에 다녀왔는데, 쟁쟁한 강사님들이 포진해 있었으나 주제강의 후 분과별에선 그 중 한 강의만 들어야 했고 시간도 짧아서 그냥 연수교재를 참고하는 것 외에 큰 효과는 어려웠던 것 같다. 여러 강사님들이 교재에서 나름의 목록들을 제시해 주셨다. 겹치는 것들도 많다. 이 중에서 우리 학년샘들은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와 <양파의 왕따일기>에 관심을 보이셨다. 근데 난 왠지 조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ㅎㅎ 좋은 책이 너무 많아 고민인데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책을 굳이 다룰 필요는 없겠지?^^;;;

양파의 왕따일기는 이분야 거의 고전에 가까운 책이다. 엄청 팔렸고 4학년 목록에 거의 빠진 적이 없다.(우리 학교도^^) 여왕벌 같은 아이와 그 아이를 따르는 아이들의 그룹인 '양파'를 중심으로 여자아이들의 무리짓기와 따돌림 문제를 리얼하게 그려냈다. 2001년, 나온지 17년이나 됐다. 다시 읽어보니 역시 잘 쓴 작품이다. 아이들의 행태와 심리묘사는 지금 읽어도 전혀 뒤떨어질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과 젊은 선생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교실체벌 장면(주인공 정화가 여왕벌 미희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고 꾸중들을 때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는 장면 등)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문제점은 있다. 또 여학생 그룹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문제될 건 전혀 아니지만) 다같이 읽기엔 조금 아쉽다.(전적으로 내 주관적 생각;;;)

이 책을 읽다가 작년에 서평을 썼던 유승희 작가의 <콩팥풀 삼총사>가 생각났다. 곤충학교에 사마귀라는 녀석은 그 이미지처럼 학급 친구들을 괴롭힌다. 관계폭력을 주로 행사하는 양파와는 달리 이놈은 놀욕때빼험따 학폭의 총망라를 한다. 그 학급에 풀무치가 전학왔고, 비로소 폭력에 맞설 3인의 법칙 조건이 만들어진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조력자 등 평화교실 수업에서 가르치는 관계의 원을 두루 언급할 수 있는 설정이다. 이 책은 어떨까?

책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괴롭겠으나 많아서 고민이니 즐거운 비명이랄까. 어쨌든 고민은 고민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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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별 때때롱 (양장) 개똥이네 책방 1
권정생 지음, 정승희 그림 / 보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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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읽어봤다. 내가 손꼽는 작품 중 하나인데다 4학년 수준에도 잘 맞아서다. 학년마다 권정생 선생님 작품을 하나씩 넣는다면 4학년-랑랑별 때때롱, 5학년-밥데기 죽데기, 6학년-몽실언니 이렇게 넣겠다. 특히 이 작품은 2007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남기신 유작이고 자연과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오늘 과학수업은 지구와 달 단원 마지막 차시 '소중한 지구를 어떻게 보존할까요'라는 주제였다. 수업을 하다가 이 책 만큼 그 주제를 잘 말해줄 책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대여섯 명이 반갑게 손을 들었다. 작년 선생님이 일부를 읽어주셨단다. 다른 아이들도 관심을 보인다. 다음 돌려읽기 책으로 이 책을 확정해도 되겠다는 느낌이! 아 결정은 어렵다.^^

권정생 선생님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도 아니라 잘 모르지만 아주 순수한 영혼을 가지신 분인 것 같다. 거의 순진함과 해맑음 수준. 그분은 무소유와 소박하고 부지런한 삶으로 진정성을 증명했기에 그 순수함에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탐욕스럽고(아주 그러한 사람에 비해 심하진 않으나 권정생 님에 비하면), 게으르고 특히 몸뚱이 움직여 일할 줄 모르는 나는 그분이 그리는 순수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ㅠ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엄마 아빠가 없는 동물을 왜 만들까요?" 라고 묻는다. 이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 지구별의 새달이 마달이 형제는 랑랑별의 때때롱 매매롱 형제와 교신을 하던 끝에 랑랑별에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시골마을 쯤 되는 모습이다. 밤이면 호롱불을 켜고, 반찬은 자연에서 난 것으로 세 개 이상 넘지 않는.... 때때롱 할머니는 말끝마다 "500년 동안..." 어쩌구 하시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신다. 어느날 일행은 투명망토를 입고 랑랑별의 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놀랍게도 그곳의 500년 전은 우리가 상상하는 지구의 가까운 미래 모습이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유전자 조작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자연적인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런 세상에서 랑랑별이 500년을 걸려 겨우 회복한 모습은 바로 지구의 50년전 모습과 같았던 것이다.

50년까지도 아니고 내가 고등학생 때 얘기다. 친구 국어 선생님이 여행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얘들아, 그 나라에선 가게에서 물을 사먹어." 이 말씀에 아이들이 박장대소하며 "와하하~ 물을 사먹는대~" 이랬다고 한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 물을 사먹는건 일상이고 이제 공기도 사서 마셔야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노는게 좋다는 걸 백번 알아봤자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 확인하며 운동장은 텅텅 비어가는게 요즘의 모습 아닌가 말이다. 학부모님들은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라고 민원이 빗발친다. 인간이 저지른 일들은 기계가 해결하고, 그러는 와중에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우리는 랑랑별의 500년 전의 모습을 향해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500년을 애쓴들 랑랑별처럼 과거로 회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빠르고 편리한 생활을 버리고 느리고 불편한 생활을 각오할 수 있겠는가, 몸으로 땀흘려 사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 희생(?)을 다함께 결단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권정생 선생님은 본인의 삶으로 실천하셨지만 나는....ㅠ

그러나 진리는 단순하고 순수하다.(그에 이르는 길은 단순하지 않다 물론...ㅠ) 그 진리가 이 동화에 담겼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근데 읽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 이제 그걸 고민할 차례다.

*1. 아참, 10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 이 책의 삽화다. 인물을 그림자인형처럼 처리한 이 삽화들은 따로 그림책으로 제작해도 좋겠다 싶을만큼 멋지다. 그림자인데 표정과 생동감까지 담긴 느낌. 이 책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는 요소다. 읽고 나서 이 책의 그림을 본따 책의 일부분을 그림자인형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아 그러려면 장비를 사야한다.....^^;;;; (행정실에서 중고거래는 못해주신다고 못을 박았다. 그럼 사비로라도?ㅠ)
*2. 머리말에 "그다지 잘 쓴 동화 같지는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진함이 느껴져 웃음짓는다. 아닙니다 선생님.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좋은 동화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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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주인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5
다카시나 마사노부 지음, 아라이 료지 그림, 고향옥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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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드러내기 싫어서 황당한 허풍을 치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두 아이의 이야기이다.

 

아이는 자신이 우주인이라고 뻥을 친다. 이 책의 제목은 거기에서 나왔다. 안녕, 우주인.

류토, 네 가운뎃손가락 끝에 특별한 힘이 없어도 나와 만주는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우주인과는 이별해. 안녕. 우주인.”(요코의 말, 79)

 

이 책을 읽으며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을 살펴 행동하는 사려깊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남이 불쌍하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가 정말 불쌍한 건 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그건 정말 아주 살짝만 빗나가도 상대에 대한 우월감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시와 폭력 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이것도 조심해야 할 감정 중 하나이다.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상대방이 그것을 버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더라도 굳이 버리지 않도록 넌지시 받쳐주는 배려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두 친구, 요코와 만주는 그런 아이들에 속한다. 요코는 생각이 깊어서, 만주는 순진하고 상대방을 잘 믿어서 류토를 받아주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켄타우루스 알파별 제3행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전학생 류토. 잠시의 관심 뒤에 모든 아이들은 류토를 무시하기 시작했지만 두 아이는 끝까지 류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주인으로 자신을 가장해야 하는 류토의 불우한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 특별하지 않게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맛있게 먹다가 터진 류토의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때로는 주변에서 이토록 조심하는데도 스스로 열폭해서 기어이 주변에 아무도 남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엔 답이 없다. 대단한 희생자가 옆에 있기 전에는.... 나는 누구에게도 이런 희생자가 되어 줄 마음은 없다. 학급의 아이들에게도 위에 말한 배려 수준까지는 요구하지만 더한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진짜로 불쌍한아이는 이런 경우이다. 스스로를 돕지 않는 경우. 그런 아이에게는 강한 어조로 너 자신에게 협조하라고, 너 자신만이 너를 위해 살 수 있다고 다그친다. 그래서 조금은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직도 나는 방법을 모르겠다.

 

시공주니어문고 2단계, 책등이 연두색인 책이다. 두께로 봤을 땐 노랑색(1단계) 정도로 보이지만 중학년 이상 권장이라고 되어 있다. 읽어보니 짧은 이야기지만 작가의 의미를 어느정도 파악하려면 정말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될 것 같다. 이 짧은 이야기에 작가가 담은 키워드 하나가 더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것은 상상이다. 상상과 거짓말의 차이는 뭘까? 책의 앞부분엔 글쓰기 숙제를 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요코는 있지도 않은 일을 글로 쓱쓱 쓰면서 그것을 상상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듯한 좋을 글이 되기도 하고 살짝 거짓말과의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다. 책의 마지막엔 류토의 그림이 나온다. 상상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의 동물원이라는 그림이다. 3행성과 우주인 얘기는 상상과 거짓말의 경계에서 머뭇거렸지만 이건 그야말로 상상이다. 밝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삽화인 류토의 그림을 포함해서 삽화들이 대범한 구도와 색감을 가진 자유로운 저학년 그림의 느낌을 주어 정감이 가고 글의 내용과 잘 어울렸다. 그림책 작가인 아라이 료지의 그림이었다. 글과 그림 모두 따뜻한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었다. 모든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 대신 상상으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가만 두기만 해도 달릴 수 있는 존재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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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차 돌려읽기 4권을 이번주까지면 다 돌려읽는다. 문학은 문학대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었고, 비문학도 학습내용과 관련지으면서 끝까지 김빠지지 않고 열심히 읽었다. 이제 그중 문학으로 이야기 나누기와 표현활동을 좀 더 한 후에 2차로 넘어가려고 한다.

2차의 비문학은 사회 [4.시대마다 다른 삶의 모습]과 관련지어 고대유물과 생활사 중심의 역사서를 선정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각종 시리즈 역사물들의 1권(선사시대편)을 훑어보다가 오늘은 이 두 권의 책을 들고 퇴근했다. <고고학으로 만나는 구석기 사람들> 책은 구석기 시대의 도구들을 상세히 설명한 점이 좋으나 조금 지루해 보이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겠다. 그보다 훨씬 두꺼워 200쪽이나 되긴 하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드는 한국사 유물 열아홉 / 안민영 / 책과함께어린이>은 좀더 관심을 끌게 생겼다.

엊그제 비오는 현장학습날 방문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일 먼저 보았던 반구대 암각화로부터 시작해서,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중요하게 설명하셨던 빗살무늬토기, 농경문 청동기가 이어서 나온다. 짧은 시간 방문해서 주로 선사관 위주로 관람을 했기에 책의 중반부터는 우리 아이들에게 낯선 삼국시대 이후의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끝까지 읽지 못해도 능력껏 읽는 데까지 흥미있게 읽는다면 의미가 있을 책인 것 같다.

특히 이 책을 읽고 구미가 당기는 점은 '손으로 만드는' 부분이다. 즉 체험활동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종이판화 기법으로, 빗살무늬토기는 고리모양 말아 올리기 기법으로, 농경문 청동기는 동판화로(이건 좀 어렵겠다...^^;;;) 체험활동 안내가 되어있다. 5학년 역사 가르칠 때 만들었던 '찰흙거푸집으로 청동검 만들기'도 좀더 정교한 방법으로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미술시간마다 관련 체험활동을 진행하면 되겠다. 힘들긴 하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이리하여 지금시각 11시. 난 이때까지 초과근무 교재연구를 한 것이다. 초과수당 같은 건 물론 받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말을 오늘은 하고 싶은 거이다. 잠시 후에 이불 속으로 퇴근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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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닭과 초록 행성 외계인 동화는 내 친구 88
앤 파인 지음, 김이랑 그림, 황윤영 옮김 / 논장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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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두껍지 않고 재밌어 보이길래 중학년인 우리반 아이들이 읽기 좋을까 싶어 집어왔다. 뜻밖에도 동물권을 얘기하는 책이었다. 얘기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을 빌어 거의 웅변하는 책이다.

하지만 작가의 흥미로운 상상력은 강렬한 주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독자를 즐겁게 이끈다. 두 아이가 닭이 준 책을 펼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그 책은 닭이 직접 쓴 것이었다.(내가 말하니 왜 황당해 보일까.ㅎㅎ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당연한듯 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 제목하여 <골 천지 농장의 실화>!

그 책엔 닭이 겪은 놀라운 이야기(실화^^)들이 들어 있었다. 비좁고 고통스러운 닭 사육 환경은 이미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어느날 그 농장에 외계인들이 들이닥쳤다. 온몸이 초록으로 빛나는 그 외계인들은 닭장 문을 열어 닭들을 모두 내보내고는 순식간에 닭장을 고쳐지었다. 닭장은 '사람장'이 되었다. 옴쭉달싹도 할 수 없는 크기의 철망 안에 사람들을 잡아 가두었다.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너희는 맛있어. 그게 이유야!" 라며 다가올 운명을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이 닭은 입장이 뒤바뀐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알겠냐? 그동안 너희들이 우리에게 안겼던 고통을?" 이라고 고소해 하는 대신에 몰래 외계인들의 우주선에 숨어들었다. 초록행성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토크쇼에 출연할 기회를 잡은 닭은 그들이 환호하는 묘기를 보여주는 사이사이 최선을 다해 메시지를 전한다. 그중엔 이런 얘기도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잡아먹힐 대상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크게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기 위해서는 무조건 먹어야 합니다. 사실상 누구에게든 먹음직스러워 보일 정도로 충분히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배 속에 쌓이고 쌓일 때까지 억지로 먹고 또 먹어야 하죠. 그러니 결국 접시에 담긴 여러분을 먹게 되는 자가 누구든, 애당초 그냥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먹으면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라뇨?"
"곡물과 채소입니다."

육류의 지나친 섭취와 그로 인한 기업형 축산,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환경오염과 식량부족의 문제까지 닭은 짚어내고 있다. 이토록 고군분투했건만 별 소득은 없었고, 닭은 지구로 오는 우주선에 또 숨어들었다. 거기에서 놀라운 방송을 듣는다.
"절반 이상의 청취자분들이 자신들의 초록접시에 올라오기 전에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면 사람버거 값으로 좀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청취자분들이 사람은 더 적게 먹고 빵과 씨앗과 곡물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먹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닭은 인간에 대한 복수 대신 이런 모험을 해냈고 그 실화를 책으로 적어 사람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이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하려고 하면서 책은 끝난다. 이것이 닭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이겠지.

근데 인간 어른인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어렵다. 오늘은 모처럼 온식구가 모였다며 삽겹살을 구워 먹었고, 김치찌개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갔고, 힘든일을 끝마친 날이나 편하게 야구를 보는 날엔 당연히 치킨이 있어야 하고, 고기 구경 안하는 날은 드물다. 급식에 영양사님은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넣어주시지만 아이들은 고기만 밝히고, 남은 돈까스 한조각은 서로 먹겠다 다투지만 시금치 나물은 마지못해 한 가닥씩만 가져간다. 직장생활에 지친 나는 나물을 사서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하는 반찬 대신 한꺼번에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놓고 꺼내먹는 곰탕이나 불고기를 애용한다. 이래저래 나와 가족들은 육식인이 되어간다. 근데 이것이 나만의 형편은 아니더라.^^;;;

자비의 의무를 다한 닭은 우리에게 실화 한 권을 남겼다. 이에 대한 답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좁은 우리에 갇힌 인간들을 바라보던 초록 외계인들의 눈빛을 떠올리며. 인간만 행복한 지구란 있을 수 없으니. 역습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으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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