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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닭과 초록 행성 외계인 ㅣ 동화는 내 친구 88
앤 파인 지음, 김이랑 그림, 황윤영 옮김 / 논장 / 2017년 8월
평점 :
별로 두껍지 않고 재밌어 보이길래 중학년인 우리반 아이들이 읽기 좋을까 싶어 집어왔다. 뜻밖에도 동물권을 얘기하는 책이었다. 얘기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을 빌어 거의 웅변하는 책이다.
하지만 작가의 흥미로운 상상력은 강렬한 주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독자를 즐겁게 이끈다. 두 아이가 닭이 준 책을 펼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그 책은 닭이 직접 쓴 것이었다.(내가 말하니 왜 황당해 보일까.ㅎㅎ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당연한듯 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 제목하여 <골 천지 농장의 실화>!
그 책엔 닭이 겪은 놀라운 이야기(실화^^)들이 들어 있었다. 비좁고 고통스러운 닭 사육 환경은 이미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어느날 그 농장에 외계인들이 들이닥쳤다. 온몸이 초록으로 빛나는 그 외계인들은 닭장 문을 열어 닭들을 모두 내보내고는 순식간에 닭장을 고쳐지었다. 닭장은 '사람장'이 되었다. 옴쭉달싹도 할 수 없는 크기의 철망 안에 사람들을 잡아 가두었다.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너희는 맛있어. 그게 이유야!" 라며 다가올 운명을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이 닭은 입장이 뒤바뀐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알겠냐? 그동안 너희들이 우리에게 안겼던 고통을?" 이라고 고소해 하는 대신에 몰래 외계인들의 우주선에 숨어들었다. 초록행성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토크쇼에 출연할 기회를 잡은 닭은 그들이 환호하는 묘기를 보여주는 사이사이 최선을 다해 메시지를 전한다. 그중엔 이런 얘기도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잡아먹힐 대상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크게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기 위해서는 무조건 먹어야 합니다. 사실상 누구에게든 먹음직스러워 보일 정도로 충분히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배 속에 쌓이고 쌓일 때까지 억지로 먹고 또 먹어야 하죠. 그러니 결국 접시에 담긴 여러분을 먹게 되는 자가 누구든, 애당초 그냥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먹으면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라뇨?"
"곡물과 채소입니다."
육류의 지나친 섭취와 그로 인한 기업형 축산,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환경오염과 식량부족의 문제까지 닭은 짚어내고 있다. 이토록 고군분투했건만 별 소득은 없었고, 닭은 지구로 오는 우주선에 또 숨어들었다. 거기에서 놀라운 방송을 듣는다.
"절반 이상의 청취자분들이 자신들의 초록접시에 올라오기 전에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면 사람버거 값으로 좀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청취자분들이 사람은 더 적게 먹고 빵과 씨앗과 곡물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먹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닭은 인간에 대한 복수 대신 이런 모험을 해냈고 그 실화를 책으로 적어 사람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이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하려고 하면서 책은 끝난다. 이것이 닭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이겠지.
근데 인간 어른인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어렵다. 오늘은 모처럼 온식구가 모였다며 삽겹살을 구워 먹었고, 김치찌개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갔고, 힘든일을 끝마친 날이나 편하게 야구를 보는 날엔 당연히 치킨이 있어야 하고, 고기 구경 안하는 날은 드물다. 급식에 영양사님은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넣어주시지만 아이들은 고기만 밝히고, 남은 돈까스 한조각은 서로 먹겠다 다투지만 시금치 나물은 마지못해 한 가닥씩만 가져간다. 직장생활에 지친 나는 나물을 사서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하는 반찬 대신 한꺼번에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놓고 꺼내먹는 곰탕이나 불고기를 애용한다. 이래저래 나와 가족들은 육식인이 되어간다. 근데 이것이 나만의 형편은 아니더라.^^;;;
자비의 의무를 다한 닭은 우리에게 실화 한 권을 남겼다. 이에 대한 답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좁은 우리에 갇힌 인간들을 바라보던 초록 외계인들의 눈빛을 떠올리며. 인간만 행복한 지구란 있을 수 없으니. 역습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으니.ㅠㅠ